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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누구든지 어떻대도 ( 레 5:1-13 )

주하인 2010. 8. 11. 11:05

제 5 장 ( Chapter 5, Leviticus )

어두워진

마음 가지고

주 앞에 옵니다

 

주여

당신의 허락하신

회복으로

내 영혼

환희로 차올라

주 영광 나팔 불듯

찬양 올리게 하소서

 

 


1.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누구든지'

죄를 깨닫는 사람은 철저히 털어야 한다.

그 죄가 적던 적지 않던

죄가 죄임을 깨닫는 자는 '죄인'이다.

죄가 죄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버려질 자'일 수도 있다.

그들은 불신자들이다.

주님은 죄인임을 인식하고 깨닫는 자를 선택하신다.

선택받은 그 누구도 '죄'에 대하여 민감하기를 바라신다.

 

 

5.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범과하였노라 자복하고    
 그리고 하나라도 허물 , 즉 죄가 있음을 알게 될 때는

'자복'하기를 원하신다.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11.  만일 힘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에 미치지 못하거든 그 범과를 인하여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일을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 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죄'라는 단어와

회개라는 말에는 누구도 민감하다.

그것은 우리가 죄인이 맞다는 직접적인 증거다.

나도 그렇다.

죄, 속죄, 회개.........라는 단어는 기독교인,

그 중에서도 깨어 있을 자, 주님의 선택받은 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함을 알면서도 적당히 멀리함을 유지해온 것이 사실이다.

왜인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은 싫은 일이다.

늘 평안하고 편한 달콤함을 유지하기에 '죄'는 거북스럽기 때문이다.

회개나 속죄는 그래서 구시대의 '작태'처럼 느껴져오는 것은

따라서 '사단'의 쉬운 도구일 수 밖에 없다.

누구도 어려운 일에 귀 기울이지 않으려 한다.

일단 회개하고 속죄하려면 아픔이 오기 때문이다.

 

 말씀 앞에 서 있다고 자부하려는 자, 주하인도

어느새인가 편하고 달콤하고 좋고 쉬운 말씀에만

나도 모르는 새 적당히 꽂혀 있는 눈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칭찬에만 귀기울이고 눈돌리게 되고

주님이 진정으로 주고 싶어 하시는

성찰과 죄에 대한 온전한 털어냄은 게을리 한게 사실이다.

 나도 모르게 내 생각과 영혼의 움직임에

옛 성질의 흔적들이 하나 하나 들어와 있다.

 이런 것들이다.

그렇게 온유하고 겸손하기를 결단하고

열심을 낼 때는 아무렇지 않던 일들이

괜히 싫어지고 짜증이 나게 된다.

서운해지기 자주이고

다시 '통제'를 하여 가정의 폭군으로 서 있고 싶은 욕구가 불현듯 자주 드는 것이다.

거기에는 적당한 이유가 들어 붙는다.

나,

'성질도 이전보다 나아 졌고 ^^;

 어려운 시대에 비교적 경제적으로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든든히 하고 있고 ㅜ.ㅜ;;

 말씀으로 권위에 힘을 받고

 당직도 열심히 서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는데................     
 왜 나를 이렇게 대접하는가........?'  

이런 어이없는 생각들이 날 사로잡는 빈도가 조금씩 늘어간다.

어...

이것은 아닌데 하면서도 그렇다.

그러나, 아직은 그게 죄 임을 인식하는 ' 말씀의 메커니즘'이 내 안에서 돌고 있다.

흔들린다.

 흔들리는 게 힘이 든다.

누구들 처럼 고민하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큰 죄 아니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담대'함 - 그게 맞다면 말이다.  .- 이 있었으면 좋겠다.

예수님 믿어 , 사사로운 것에 제동이 걸리는 듯하니

힘이 든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그게 실제는 안 그럼을 잘 알고 있다.

특별히 오늘 묵상에서 그러지 않으시는 가?

 '죄를 자복하는 자'에게는 죄가 죄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던가?

죄를 인식하지 조차 못하는 자들은 이야기를 해주실 가치조차 없다는 이야기다.

말씀을 통하여 매일 살아있는 하나님을 누리는

그 임재의 사실은 '죄를 죄로 느낄 수 있는 자'들에게만 허락된다는 이야기다.

이 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자들은 '버리운 자'들이다.

성경 어디에 나온다.

'그렇다면 너희는 버리운 자니라'

돌려 생각하면 '죄'를 인하여 괴로워 하는 나는

아직 주님의 사랑이라는 증거이다는 것이다.

그게 아침에 느껴지니 감사하다.

한편으로 '죄' 문제에서 더욱 한걸음 나가 자유로와 지지 못함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러함은 내 소망이고 비전으로 남겨 두면 되니

마음이 좋다.

 이제 그렇다면 회개 문제가 남아 있다.

 

엊저녁 수술을 세분이나 하게 되어 파김치가 된 몸으로

버스를 타고 한시간 가량이나 걸려 집으로 들어 가서는

졸린 눈을 억지로 뜨고

'조이스 마이어 목사님의 은혜로 사는 삶' 이라는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

거기에 그리 나온다.

'' 성경'을 율법으로 읽는 것은 고통을 가중 시키는 것이다.

 누가 있어 성경을 온전하게 지킬수 있다는 말인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자에게 구원이 있다라는 말은 그러기에

 믿는 자로 하여금 가중되는 무거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 은혜로는 가능하다.

 은혜는 율법이 안되는 것을 되게 하시는 것이기에

 율법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루고 온전히 되려하지 말고

 문제를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서 이룸을 보아야 한다.

 그때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 '

맞다.

말씀과 기도 하며 늘 통쾌한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이유가

난 '은혜' 탓이고 ,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주님'이 이루심을

인정시켜 주시는 탓임을 고백하고 있다.

 

'회개'

'자복'

특별히 주님이 그러신다.

"'흠없는 어린 양' 이 제물로 되면 좋지만

 안되면 '비둘기'로 하라

 그것도 안되면 -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에 미치지 못하거든 - 에바 가루도 괜찮다.

 자복만 하라"

 

할렐루야 아닌가?

은혜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죄는 은혜와 멀어지게 하기에 그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죄가 죄임을 안다는 것은 '고통'이지만

은혜의 신호이다.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들고 가야 한다.

그리하면 주님은 내 제물을 나쁘다 부족하다 하지 않으시고 받으시고

온전한 회복을 허락하신다.

 

 큰 아들이 진도 선교를 다녀오고

감격과 감동을 가지고 돌아와

'회복'을 기대하고 갔더니 놀라운 '회복'과 더불어 눈물을 주시고

중보의 감동을 주셨다고 내내 내 방에서 떠들고 돌아간다.

할렐루야다.

자기 말로 이년간 하나님을 떠나 있다하던 그 아이가

저렇듯 변한 것은

회개를 통한 회복을 결심한 아이의 선택을 받으셔서

주님께서 온전히 은혜를 주심으로 인한 탓이다.

 

주님은 자유다.

주님은 기다리신다.

주님은 깨닫기를 원하신다.

자복하기를 원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죄에 민감해야 하고

늘 주님 앞으로 가지고 나와

허심탄회하게 회개하고 깨끗함을 받아야 한다.

그게 삶을 올바르게 살게 하고

감동가운데 주님 부르실 그날까지 나가게할 유일한 길이다.

주님은 기쁨이시다.

기쁨 가운데 그럴 수 있다.

 

할렐루야

 

적용

1. 성경 세장 읽으리라.

 말씀 죽도록 붙잡자.

 

2. 기도한다.

 무엇이든 그러자.

 

3. 회개하자.

 주님 앞에 나가는 것을 막는

죄로 부터 멀어지자.

 

4. 감사하는 하루가 되리라.

 깨닫는 것은 감동이다.

 힘이 들어도 사랑하시는 주님이 계심을 느낀다.

 주위에 내 감사를 전하리라.

 

 

기도

주님.

죄가 너무 많은 자 올시다.

그 죄가 너무 많아서 너무 무거움이 너무 싫어서 죄를 생각하기도 싫어하던

죄인이 올시다.

그 죄인을 불러서 십자가로 회개시키시고

구원하시고 말씀으로 날 마다 붙드시는 그 하나님께서

다시한번 고통을 통해 감사함을 깨닫게 하시니

그 또한 감사합니다.

주님은 나의 모든 사정을 아시는 분임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내가 혼자 할 수 없는 그 무거움을 아시고

온전히 내 사정대로 가지고 나오길

기다리시는 그 십자가 하나님의 그 사랑에 감격합니다.

주여.

오늘 하루 죄에 대하여 민감하고

회개의 기도와 결심을 늘 하는 하루가 되게 하시고

회개와 죄라는 단어에 더욱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진실을 보는 자 되게 하소서.

저 그리하시고

제 식구들 그리하시고

여기 오시는 분들 다 그리하시고

세상의 모든 기독교인들 그리하게 하시사

사는 이곳이 천국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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