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죽은 삶 부활의 삶 (시 105:1-23 ) 본문
제 105 장 ( Chapter 105, Psalm )
주님 모르는
이 죽은 삶 속에서
예수님의 부활로
저 또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내 영혼 노래합니다
저 어두운 사망의
누름을 이기고
이 순백의 화사한
찬양의 꽃을 피워올립니다
주님 받으소서
제 생명의 노래를 받으소서
제 감사의 노래를 받으소서
주의 얼굴
이제 제게 보이소서
1.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렇다.
그게 내 인생 목표다.
2.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
이렇게 하고 있기도 하고 노력하기도 한다.
3.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자주 내 환경과 상관없이
마음이 즐거워 진다.
4.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주님의 능력이다.
그 분의 얼굴을 더 가까이 느끼기를 원하는 탓이다.
더 그래야 겠다.
더 능력을 구하여야 겠고
더 아버지 얼굴을 뵙듯 주님의 임재를 사모해야 한다.
말씀을 대면하여 주시듯 그리 친밀한
내 아버지 하나님을 항상 구할 것이다.
17.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요셉 .
이 대단한 인물도
고난과 연단이 심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연약한 우리의 심성은 축복만 생각할 뿐이지만..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그의 연단은 엄청났다.
그런데.. 그 연단은
말씀이 응할 때까지다.
저를 단련하신 것은 오래다.
주님의 때가 될 때까지시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우리가 받는 현재의 어떠한 고난도
다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시다.
그 때까지 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 연단은 다 의미가 있음이다.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셔... 정금이 나오는 연단.
묵상하고 마음에 받을 말씀이다.
그렇다 .
주님은 기쁨이시고 즐거움이시다.
주님은 살아계시고 늘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시길 원하신다.
나는 살아가면서 그 놀라운 주님을 감사올리며
그 하나님의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역할을 감당할 소명을 지니고있다.
비록 삶이 나를 어렵게 만들지라도
그 어려움도 실은 주님의 연단이실 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소망이 있다.
주일까지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다.
마음도 몸도 모든 일에서 마치 '죽음' 같았다.
정말 특별한 계기가 없이도
마음이 메말라 버려 아무 생각도 하기 싫고 심지어는 말씀 조차......
그러다가 월요일 아침
정말 의지를 발휘해 말씀을 읽었다.
아주 잠시..
'부활을 믿느냐"고 네번씩 되풀이 되어 나온다.
순간 눈에 띄었지만
일어나 출근하기에도 내 모든 에너지는 고갈 된 듯하다.
하루 종일 그냥 그렇게 그렇게 버티다가
네시 가까이 되어서야
'혼자만의 큐티' 카테고리에 비밀글로
내 모든 속을 하소연할 목적으로 말씀을 들고 앉았다.
어쨋든 수년간 해온 말씀 묵상을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멈출 수가 없지 않던가?
내 삶.
대 부분의 의사들이 '순진'하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은
진료실에 집중하는 에너지가 너무 많아 세상을 많이 치루어 볼 여유가 없음인 바
그 중에서 특별히 그리 사귐성 좋지 않은 나는
더욱 폭이 좁아 ^^;
그 경험의 부족으로 어찌 수년간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던가?
더구나 어제까지와 같이 '고난주간'까지
그 어려운 메마름의 과정 중에서도
글감이 끊기지 않았음은 정말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않으셨으면
가능치 않은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 다시 블로그에 로그인해 들어왔다.
아무 생각없다.
주제도 ..
그냥 막연히 쓰다보면 될 거 임을 난 안다.
그게 주님이 인도하시는 방식이심을 안다.
줄 줄.. 썼다.
서운한 마음.
두려운 마음.
걱정되는 마음.. ...
그러면서 '부활'이란 단어가 되풀이 되면서
마음이 확 뚫림을 느꼈다.
그것을 어찌 표현할까?
마치 물 풍선을 가시 위에 떨어 뜨리면
순간적으로 푹~하고 터지면서 사라져 버리듯
마음 속의 답답하고 스모키하던 어두움은 사라지고
청명한 듯 담대한 듯 잔잔한 듯
기쁨이 날 사로 잡고 있다.
정말 걱정이 없어진다.
참 놀랍다.
'부활을 믿느냐?'
난.. 최근에 감정의 상태에 상관없이 '말씀'을 믿는 연습을 많이 해왔다.
그리 기도를 하면 진짜로 믿어졌다.
깨달았다.
'죽음'은 바로 이전까지의 느낌이다.
살되 죽음은 마음이 온통 부정적이고 속상하고 어지럽고 답답하고 메마르고...다.
그러던 것이 갑작스레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연상하자 마자
모든 죽음의 기분들은 가시 나무 덩쿨 아래로 터져 스며 사라지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게 '부활'이지 않던가?
새 생명.
살아 있되 살지 못하던 내 영혼에
주님은 '피뿌리시어 ' 내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새 생명을 내 영혼에 넣어 주시고
이제 곧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에너지와 능력을 주시리라.
이 살아계신 하나님.
이 놀라우시고 세밀하신 하나님을 어찌 증거하지 않을 수 있는가?
태어나자 마자 죽어가기 시작하는 이 유한한
지구상의 육신의 삶은 '죽은 삶'이다.
어찌 안그럴 수 있던가?
그러한 불신의 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새로 살리셨음인 데
이 생명을 사람 들에게 전함이 우리의 목표가 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러나, 깨달음이 삶 속에서 부대끼며 다시 잊혀지고 약해지기 원치 않는다.
어찌 해야 이 유혹적인 죽음의 삶 속에서
새 부활의 생명,
새 생명의 삶을 유지하며 살 수 있던가?
주님의 얼굴을 사모해야 한다.
주님의 능력을 사모해야 한다.
매사 말씀으로 주님을 만나야 한다.
더욱 친밀한 하나님.
더욱 긴밀한 주님.
더욱 귀한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만나야 한다.
그 분의 능력을 아버지의 베푸실 능력으로 받아야 한다.
감사하다.
주님의 생명은 어찌 이리 개운하고 놀랍던가?
죽은 삶에서 부활하여
새생명의 삶을 삶은 얼마나 힘이 있던가?
늘 잊지 않고 말씀 가운데 거할 수 있길 소원해 본은 하루다.
적용
1. 부활을 감사한다.
부활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적을 체험하는 삶이다.
2. 감사한다.
늘 감사 하여야 한다.
정말 죽을 수 밖에 없던 나 같은 자가
말씀 가운데 이렇게 변화가 되어 왔다.
점점 자유로와 진다.
그게 감사하다.
3. 능력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능력 앞에 기도하고 내려놓자.
여쭈어 보고 기도하고 기대하자.
4. 얼굴을 구하라.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신다는 것은 더욱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함이다.
5. 성경 세장 읽겠다.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부활하시어서
그 부활이 단어의 유희가 아님을
영혼 깊숙이 이해하게 해주셨습니다.
아..
그런 체험이 늘어날 수록
전 하나님께서 제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점점 더 힘있게 외칠 수 있게 됩니다.
저..
주님이 자랑스럽습니다.
예.
불손한 어투임을 압니다.
주님.
그러나,, 전 아버지 같은 하나님.
제 아버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얼굴을 구하라.
어찌 표현할 방법은 없지만
점차로 그 뉘앙스와 그 뜻이 좀더 현실감있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많은 부분 현실의 것을 포기하고 내려 놓고
이제야 주님이 더욱 가까이 느껴지나이다.
주님.
어제 아내랑 대화했던 여러 이야기들....
주님 앞에 내려 놓습니다.
주님 허락하시면 제 모든 인생의 변화도 인도하실 줄 압니다.
현실적 문제 말입니다.
주여.
인도하소서.
부활의 주님.
그 주님을 체험할 때마다
제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삶 속에서 제 영성은 더욱 늘어날 것을 압니다.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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