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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인의 차분함을 위하여(눅17:1-10)

주하인 2008. 2. 26. 10:42

눅17:1-10

저 구름처럼

가벼이..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요.

가끔은

어리석어 보이기도 해요.

어찌 보면

어린아이 같아지는 거 같아

나이에 맞지 않는

감성의 왜곡은 아닌가 하고

스스로 당황할 때도 있답니다.

 

 수술 방에 올라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열정적인 믿음의 소유자이신

W 선생이

'어린아이 같아져야지요..'라는 말에

그나마 한숨 놓았어요.

 

 잘 나간다고 생각하던 믿음이

구원파 같은 믿음을 지닌 분들의 이야기나

세상에 열심으로 잘나가는 분들

부정적 언사의 소유자이신 분들의

비아냥 섞인 소리에

한번 씩

흔들릴 때가 있거든요?

 

 오늘도 주님은

말씀으로 경고하시네요.

 

'조심하라.'

예.

말씀으로 붙들고 살아야지요.

그것 만이

이 어수선한 세상에

주님을 붙들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압니다.

 

죄를 범하는 형제가 있으면

'경고하라'고 하시네요.

 예.

제가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겠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구원의 문제에

많은 사단들이 끼어 들어

예수님의 그 십자가 보혈을

무색하게 하고

끝이 다르게 하는 논리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그것들의 잘못된 논리에 젖어있을 거라

예상되는 사람들을 향해

고치고 지도하고

주님 앞으로 끌고 오고 싶은

욕구가 '불끈' 하고 일어납니다.

그럴 때

내 머리는 마구 돌아가고

심장이 적당한 흥분으로 벌렁벌렁하고

의욕이 넘치려 합니다.

 승부사와 교사로서의 욕심이지요.

그러나,

주님은 '경고하라'고 하시네요.

경고는 했습니다.

그리고는

기다려야지요?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겠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위기의 분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종교적 잘못된 신념에 빠져

말씀으로 자기를 돌아보고

그 안에서

자기 반성을 통하여

돌이키려 하지않고

말씀 마져

자신의 확신에 구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의 신천지나,구원파.. 들의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비슷하나 끝을 구부립니다.

끝이 다르다고 해서

'이단'이라 합니다.

 비슷한 논리의 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냥

'권고' 뿐임을

오늘 다시 확신해야 합니다.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는 - 제시하지 않는 것도 죄일 듯 싶습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지요.

주님께 기도하면서...

 

그리고 나서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

이 문제에 대하여

할 이야기가 참으로 많습니다.

특별히

역기능 가정에서 태어나서

분노와 화가 많았었습니다.

 용서에 대한 이유는

예수님을 믿고나서

잘 알았지만

믿음의 부족 문제인지

도저히 탈피가 되지 않았습니다.

용서 했다하면

언제나 불현 듯 튀어나오고야 마는

분노..........

 주님의 십자가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늘 부담이었고

그 부담은 더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안 믿었으면.. 이란 소릴 한 적이 많았었어요.

그럼에도

주님은

말씀 앞에 선 시간이 지나자

눈 녹 듯이

그 미움을 녹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아직은

내 마음에

살 얼음 조각 같은 상처의 파편들이 남아 있지만

많은 부분 미움과 원망이 사라졌습니다.

 나이의 영향도 있으리라 생각을 해보지만

변하지 않는

연세드신 분 들이 얼마나 많으신지,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지는 게

사단의 성질

육신의 성질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는

그 사단의 성품을 벗어 버리는 기회이라 압니다.

 용서는

감정적으로도

다 풀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불가능 한 이야기지요.

그냥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용서한다는 결단을 한 후

관계의 회복 부터

감정의 엮임까지

주님께 맡겨 버리는 결단을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말씀을 잡고

기다리면

어느 순간에

미움과 원망과 헛된 상처들은

아물어 들어 가게 됩니다.

주님은

그런 결단을 하라 하십니다.

 

 그래서

다시 이러기로 했습니다.

어제 늦게까지 

생각했던 부분을

그냥 내려 놓기로요.

 충분한 경고를 했습니다.

벌써..

그러기에

이제 주님께서 치리하실 밖에요.

나 자신에 대한

생각도 내려 놓기로 했습니다.

내가 부담을 준거는 아닌가...

또 내 옛성품이 나온거는 아닌가.. 하는 잡다한 생각요.

그것도

그냥 '경고'라고

주님이 위안하시네요.

참 편해요.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요.

살아 계신 주님이

영혼 깊숙이 들어오셔서

하나하나 집어주고 꿰어주고

인도하시어서

삶을 편안하게 해요.

저를

용서의 그 불가능한 원리를 이해케 하시고

실행케 하시고

모든 면에서

점점 자유롭게 하시잖아요..?

 누구든 오시라고

누구든 용서하고 받아드리겠다고

그렇게

외칠 날이 멀지 않았다 생각합니다.

날아갈 것 같아요.

그때쯤이면

주하인의 어깨에

혹시

날개가 달리지는 않을까요?ㅎ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차분해 진다는 거요.

 생각이 단순해지고

그 단순함이 선한 쪽에 귀착되어 있을 때

그런 거 같아요.

 차분하면

크게 슬프지도

크게 즐겁지도

크게 욕심도

크게 남을 탓할 일도

크게 화날 일도

크게 목소리 커질 일도

크게 기쁘지도 않할 것입니다.

 웃어도

은근한 미소가 그 입가에 걸리고

슬퍼도

눈물 한 방울 맺힐 듯 습기 어리다가 사라질 것만

같은 상태일 것 같아요.

생각이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 선한 것에

차분한 열정으로 관심을 갖게 되고

생각은

범사에서 벗어나

조금은 넓고 깊게 하게 될 것 같고

행동은

점차로 어린 아이의 그것처럼

단순하고 명료하게 바뀌게 될 것 같아요.

 

 난

그것이 부럽습니다.

그런 분들이 부럽습니다.

그런 자가 되고 싶습니다.

 

 아주 복잡했던 사람이거든요.

 

위의

묵상 구절을 통해

고백처럼

용서가 되는 상황까지

내가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니

내 속에서

슬금슬금 다양한 생각이 듭니다.

' 이것봐라.

난 

이 만큼이나 하잖아.

잘 하잖아?

주님이 얼마나 기쁘실까?

어..

저런 어이없는 사람들 보아......'

 그 바탕의 마음엔

자신의 성장을

주님이 기뻐하실 것이란 전제가 있고

그 전제의 바탕엔

주님이 돌보아 주셔야할 사람이란

마음이 있는 듯 합니다.

 

 압니다.

주님의 선택 받은 아들이고

주님의 청지기이고

한편

주님의 그 십자가 보혈에 빚진

주님의 하인입니다.

Servant지요.

 그렇다면

하인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 성설이 아닌가요?

물론

일면

주님의 사랑을 받을  아들이란 자격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아들의 자격에 대한 사랑은

주님의 주권적 영역이지

스스로 당사자인 난

주님의 아들로서의 자부심과 더불어

주님의 하인으로서의 

겸손과

확실한 자기인식이  필요합니다 .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저 말씀은

주님의 하인,

주 하인으로서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 원리입니다.

'하인은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하고 이루어놓은 성과로

자화자찬하고 만족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열심히 해야 한다.

불만을 토할 이유가 없다.

자랑할 이유는 더더구나 없다.

칭찬이 없어도

그냥 그것으로 족하다.

그게

주 하인의 신분이다.

 

 복잡한 난,

칭찬이 필요했었다.

깨어진 사랑의 탱크는

주님의 칭찬 대신이라도

거짓 관심이라도

채워져야 만족했었다.

그것은

칭찬 갈급증을 가져왔기도 했다.

리플

박수

칭찬..에

나도 모르게 민감하려 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마음을 분주하게 했다.

칭찬하면 기쁘고

안 하면 허전하고..

 

 주님은

다시금 말씀하신다.

'주하인

넌 내 하인이다

당연한 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최선을 다하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마.. '

 

그렇다.

주님의 말씀으로 가벼워 지자.

단순해 지자.

차분해지자 !

 난,

주님의 그 십자가의 보혈이 감사하고

성령의 주시는

그 평안함이 감사해서

일상에서

주님의 말씀을 준행하려는

아주 약간의 노력

즉, 주님의 일을 할 뿐이다.

주님이 주신 급료,

성령의 충만이 내 위로가 될 뿐이다. 

 

 단순하고 가벼운 삶을 위하여  ! 

차분함을 위하여

 

 

 

적용

 

1. 난 내가 주 하인임을 인정한다.

 

2. 하인의 정체는

 주인을 위한 것임을 확인한다.

 

3. 칭찬이나 상급의 기대는 내려 놓겠다.

 

4.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도한다.

 

5. 성경 여섯 장 읽겠다.

 

6. 내 한 일에 만족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한다.

 자기 자랑을 내려 놓겠다.

 주님이 하신 일

 내가 자랑할 일은 없다.

 

7. 늘 조심하라.

 자신의 만족함에 대하여

남들의 칭찬에 대하여

 

8.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라.

 내 것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것에 욕심을 내는 것은 자멸의 길이다.

 

9. 권고한 자들을 위해서

 내려놓고 기도한다.

 

10. 말씀을 외우겠다.

3 절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

10 절 '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

 

 

 

기도

 

주여.

주여.

주여.

불가능한 게 용서 였습니다.

하지만

용서도 가능합니다.

더 용서할 마음의 폭을 넓히시고

영혼의 가벼움을 허락하소서.

어리석은 기댈 내려 놓게 하소서.

내려놓음의 아픔을 아프지 않게 하시고

당연하고 기쁘게 하소서.

제가

주하인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하인의 당연할 의무에 대하여

다시금 가르치소서.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샬롬을 허락하소서.

 죽을 때까지

주님의 말씀에 고착되어 살게하소서.

 혹시 약간의 실수가 있어도

주님의 손을 놓치 않도록 하소서.

그래서 그 잘못이

주님의 손 통해 지도 받도록 하소서.

헛된 생각과

헛된 이념으로

날 굳게 하지 마소서

내가 이룬 일에 대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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