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돈을 사랑할 때 ( 눅16:14-31 ) 본문
제 16 장 ( Chapter 16, Luke )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다약 종족 사는 곳입니다.
김익배 선교사님을 통해
주님께서 허락하신 '아가페 병원' 및 '마을'입니다.
주님.
이런 일에도
기쁨으로
열심을 낼
'돈'도
좀
주시면
감사하겠나이다.
^^;;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돈을 좋아한다.
그래서 비웃게 된다.
돈은
영혼이 메말라지는 지름길이다.
영혼이 메말라 지면
하나님의 말씀도 비웃는다.
돈이 많이 있는 자란 이야기가 아니다.
돈을 좋아하는 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기에
부자가 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난한 자는 다 안그렇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 부자도 있고
돈을 좋아하는 가난한 자도 많다.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돈을 사랑함은 맘몬을 사랑함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마음은
'사람 앞에서 옳다' 함을 받기를
간절히 갈구하게 된다.
사람 앞에 칭찬을 갈구하는 마음과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은 양립할 수가 없다.
주님은 온전한 관심을 원하신다.
그러기에
자신을 높이게 하는
돈을 사랑함은 주님의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20.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유명한 '부자와 나사로' 예화.
자칫
잘못 읽고 이해하면
부자가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아서
지옥을 갔다는
'권선징악'적 이야기가 되고
부자는 악하고
가난한 자는 선하다는 흑백론에 머물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
이땅에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전혀 설명될 틈이 없는 듯
당혹스럽다 .
그러나,
위의 구절을 이해하면 가능하다.
부자는
돈을 사랑하는 자다.
그러기에
그의 마음이 교만과 자신 만을 사랑함으로 가득찼고
불쌍한 나사로에게는
관심이 없다.
만일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사모 회원'의 부자였더면
자신도 모르게
그 마음에 긍휼함이 일어났을 것이고
나사로에게
자신의 심령의 상태에 맞는
적절한 대접을 했을 것이다.
성화가 많이 되어가는 자 같으면
그를 불러 들여 같이 먹었을 것이고
덜 된 평범한 하사모 회원이라면
돈 몇 푼이라도 쥐어서 보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행실이 반드시
믿음의 지표는 아니지만
간접적 지표가 되기는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맘몬에 깊숙히 잠식되었다.
그는
돈을 깊이 사랑하는 부자였다.
그러기에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자리 잡을 틈이 없는
악한 심령이 되었을 것이다.
마치 형이 탕자 동생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 악함이 드러나지 않은 것처럼
부자는 부자지만
악한 부자로 익어갔을 것이다.
그 결과가 '지옥'이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
그 삶을 살 동안
그 삶의 전반적인 과정이 '행복'이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돈이 많으면
근심이 많은 법.
벼락 부자 중에 불행하게 되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돈은 그렇다.
편하긴 하지만
위험하다.
돈은
결과가 되어야지
목적이 되면
위험하다.
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나사로가
지옥에서 고생하며
얼마나 힘들었으면
갖은 애원 끝에
식구들 만이라도
돈의 위험성을 알아
세상에 살 때의
세상재물,
불의한 재물이 되지 않도록
나누는 삶을 살도록 권하길
그리도 간절히 바랬을까?
그럼에도
그 재물의 위험성과
그 유혹의 끈질김은
너무나 대단하여
유사 이래
자유로운 자 그리 많이
나오지 못했다 .
오늘 성경에서도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로 나오지 않는가?
돈으로 부터
자유로움은 너무나도 힘들다.
죽어서 다시 살아나 권유해도 안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성경 어디에선가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
'돈을 사랑함은 침륜'에 이르는 지름길이라 고 분명히 나온다.
오늘
묵상은
재물을 나누어 주는 삶을 살라는
도덕적 차원의 것을 넘어선다.
그 것을 넘어서는 길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우리 곁에서 계속 권면한다는 데
비밀의 열쇠가 있다.
모세와 선지자로 묘사되는 것은
말씀으로 대치할 수 있다.
주님의 말씀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말씀에 맞추어
적용하고 회개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갈구하여
그 분이 주시는
그 크고 놀라운 기쁨,
비밀의 감동
성령의 충만함으로 표현되는
심령천국에 참여하게 되고
세상의 원리,
그 중 일부인
돈에서도
자유로와지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이 침륜에 빠지지 않고
실족의 위험에 빠지지 않고
주님 오실 그날까지
열심히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쉬운 길이다.
가벼운 방법이다.
적용
1. 돈... 묵상하자.
아직은 그게 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ㅎㅎ
주님의 원리 안에서 자유롭게
너무 아끼지도
너무 지나친 거부도
너무 탐닉도 안생기고
주님의 허락하신 안에서 자유로운 벎과 사용을 허락하시도록...
2. 성경 여섯 장 읽겠다.
3. 긍휼한 부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ㅎㅎ
4. 아이들 위해 기도한다.
아이 들도...
5. 돈 보다 더 귀중한 하나님의 기쁨을 알게 됨을 감사한다.
너무 감사하다.
그냥 감사한 게 아니구..
6. 주님 제 마음 속의 계획 아시고 계시지요?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묵상이 돈에 대한 것입니다.
돈 뿐입니까?
명예와
권력.....얼마나 유사한 유혹이 많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그 맘몬의 무서움에 일단 정확히 이해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원리가
주님의 인도하심에
잘 순종할 수 있는
거치지 않는 장해물로 넘어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삶을 살면서
돈으로 부터 자유치 못하겠습니다.
아직은요.
그러기에
주님 그도 허락하소서.
어제 늦은 저녁
둘째가
아주 부하지도
아주 가난하지도 않을 부..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 아이의
그 고백이
정답입니다.
아이들과
저
제 주위의
주님을 사모하는 자들이
모두 그렇게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주여
간절히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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