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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보시옵소서(애 1:12-22 )

주하인 2009. 7. 2. 09:57

제 1 장 ( Chapter 1, Lamentations )

 

 

 

 

아침에 출근하려 빨리 걷다가

지나칠 뻔 했다 .

끼이익~

다시 돌아가 사진 한장 얼른 찍도

늦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눈에 선한 것만 돌아가지 말자.

회개, 돌이킴, ......

어려운 말이라도

주님이 좋아하시고 원하시면

늘 놓치지 않고 돌이키는

그런 자가 되어야 겠다.

 

 

 


12.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지나가는 자.

관심없이 머리 놓고 아무런 느낌 없이 스쳐 지나가는 자인가?

관심은 있지만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다고 단정하는 돌덩어리 같은 자이던가?

 아니면,

무언가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다가 비슷한 환경의 누군가를 보고

괜한 가슴이 찡함을 느끼지만

그냥 그런 감정은 스치는 한낱 바람에 지나지 않는 자이던가?

 

 난 누구인가?

옳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결국은 회개하지 못하던 어떤 이유로 인하여

주님께 사랑의 회초리를 맞고 있는 자인가?

아니면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넋놓고 사는 불의한 자여서

결국은 주님 오실 날에 저런 혼나고 있을 자 인가?

아니면, 스치고 지나는 위의 세 부류 중의 한 부류 일까?

 

오늘 묵상의 혼나고 있는 자는

지나가는 자 보다는 훨씬 소망이 있는 자이다.

 고쳐서라도 내 품에 끼고 있는 자식이

아무런 상관없어 방치되어 버리는 자 보다는 소망이 있지 않는가?

 

 

 
  
20.  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 내가 환난 중에서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번뇌하오니 나의 패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으로는 칼의 살륙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나이다 

 ' 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 

 비록 회개 못해서 혼나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그의 심성은 그가 아직은 선한 상태임을 보여 주고 있다.

선악의 기준은 도덕적 태도에 있지 않음은 이제는 누구든 안다.

주님이 기준이시다.

주님을 인정하고 하는가 인식하지도 못하고 하는 가가 선악의 기준임은

조금이라도 지혜가 남아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이 고통 중에서

'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라고 외칠 수 있는 자는 아직은 선하다.

그는 그의 회개하지 못하였던 어떤 일로 인하여

주님의 사랑의 채찍은 맞고는 있지만

그의 결말은 '행복'이 될 수 밖에 없다.

 

 아침 내내 고백이 '신음'소리이다.

그 신음이 그러나 그리 낙망스럽지 않은 것은

그의 눈이 아직 '여호와 하나님'께  고정 되어 있기 때문이다.

 


    
22.  저희 모든 악을 주 앞에 나타내시고 나의 모든 죄악을 인하여 내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곤비하니이다
 

 목요일 아침

내 찬양 뒤에 설교하시는 목사님.

어제 그제 식사를 마지막으로 미국에 유학 가셨다.

아침.

다른 목사님께서 아침을 부탁한 다는 말씀을 듣고

'그러라'고 하였다.

부담은 있지만 얼마전 묵상을 했던 바 아니던가?

규격 속에 넣어서 안된다고만 해오던 것이 내 인생의 버걱거림이었던 바

이제는 조금은 주님의 뜻 안에서 다른 체험을 해 볼 생각도 있다.

 엊저녁 부터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

흔들리지 않도록..

 

 아침에 별게 다 문제다.

잘 돌아가던 컴퓨터 마우스가 문제고

배가 살살 아프다.

10분전에 가서 스크린 내리고 기타 조율하고 ppt걸고 불 키고.......할일이 많은데..

오늘 준비는 더구나 블로그에서 음악을 키고 할 예정인데..

 다행이도 잘 안나오던 반주자가 일찍 나왔다.

부탁하고 생리적 문제 해결하고 오니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담대해진다.

주님은 날 시험하시는 것만 같다.

 그들에게 전할 것은 분명하다.

이 당황.

이 버걱거림의 상황을 견디지 못함.

'난 탄식이 많고 곤비한 자였다. '

그러나, 주님을 기대면 자유롭다...라는 것.

일상의 조그만 일로 난 흐름을 읽을 수 있다. ㅎ

 찬양을 했다.

뒤에서 직원이 도와줘서 컴퓨터 잘 조절해준다.

간간히 살짝 살짝 따라하는 직원들이 있다.

많이 성장했다.ㅎㅎ

 찬양을 마치고 난 말을 이어갔다.

'나의 여기까지 올때... 이랬다.

 산부인과 의원을 접고 레지던트 다시하러..

그러다가... 겪을 수 밖에 없는 가슴 앓이...

 그것은 '탄식...곤비.. '그 자체다.

중년 우울증이란게 이런 것임을 절실히 체험해 갔다.

하지만 큐티를 접하고 ..

 난, 이렇게 변화되었다.

 외부적으로 내 진료 영역은

최신기법인 복강경 시술로 완전히 탈바꿈되었다.

주님이 주신것이다.

 무엇보다 내 내적인 자유로움이 주님이 허락하신 가장 놀라운 변화다.

 이 자유로움을 여러 분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난 수개월 째 당신 불신자들의 뜨악함을 견디어가며

아침 일찌기 나올 수 밖에 없다.

 내

블로그에 올려진 큐티 중 그 허허러움을 써놓은 것 하나 를 소개하겠다. ...'

 

솔직히 예정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난 그들이 어찌 반응하는 지 모르겠다.

옛버릇은 그들 얼굴 표정을 살피고

그들의 감탄과 무반응 사이에서

내 감정을 결정하느라 힘들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들 중 일부는 내 자유로움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시간이 가면 언젠가 내 가지는

여호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라는 분의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나에게 하나님이 무엇이냐라면

탄식과 곤비와 ... 의 지옥 속에서

자유로움과 평강의 샬롬 속으로 올려 주신 분이시다.

그 분은 자유다. ..라고 쉽게 선언할 수 있다.

 

 오늘 보이는 고난 중의 記者와 스쳐 지나가는 자의 묵상 중에서

몇가지 생각할 바가 있다.

 

 고난 받는 모습이 반드시 지금의 나랑은 상관이 없을 것인가?

아니다.

'주님의 뜻'을 염두에 두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단 하루라도 거리를 두면 언제고 나의 죄는 쌓일 수가 있고

모르고 지은 죄는 주님께 상급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고

그것은 다시 말하면 내 영혼의 정화를 위해

주님께서 고통으로 허락하실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늘 회개를 해야 한다.

잘못이 아닐 것이라는 잘못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저녁에 자기 전에 주님 십자가 앞에 앉아

주님의 가르치심을 들어야 한다.

주하인.. 너.. 이것을 회개 해야 겠구나.. 이런 마음이 들도록 감성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는 회개 하여야 한다.

 

 또한, 난 스치는 자의 태도는 없던가?

있다.

분명코...

나라면 저렇게는... 이라는 생각을 가끔 함을 느끼고는 화들짝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그 놀람은 다행이다.

확실히 단정해버리고 교만해버리는 것은 무서운 죄다.

 

늘 깨어 있자.

이 평강의 기쁨을 체험케 하신데는 주님의 뜻이 있으시다.

나에게 바라시는 그 무엇이신가 있다.

 

우선

오늘 아침 찬양 인도같이

불신의 그들,

잠시 고난 중에 있는 묵상 중의 저들 같은 분들에게

내 아는 주님의 놀라운 기쁨을 전해주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오늘 저녁

성결대에서 많은 목사님들 앞에서 특송을 한다.

그 앞에서 나에게 부여된 달란트를 가지고

주님의 평강을 노래하길 바라시는 것이시다.

난 , 그냥 내려 놓을 도구이시기에 그런 평강을 체험케 하시는 것이다.

 

 또 있다.

주님은 워낙 생각이 꼬여 있어 늘 곤비하던 나에게

살아계신 주님의 실체가 이런 것임을 보이시기 위해서

그 나에게 이런 평강을 보이시는 것이시다.

그런 기쁨을 도구로 난 내 일생의 여정을 살아나가는 것이다.

주님을 위한 성화의 열정은 기쁨을 놓치기 싫어서 더욱 박차를 가하라는

격려의 체험이시다.

 

 

 

 

적용

1.  어디에서나 난 주님의 기쁨과 평안을 전할 뿐이다.

 어제 목사님이 그러셨다.

중국 속담에

'새는 노래할 때 마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노래가 있기에 노래할 뿐이다.' 하셨다.

 무슨 의미를 부여 하려는 게 내 찬양할 때 마다 부딪치는 내적 욕심이었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눈치보는 내 습관 탓이 크다.

그러나, 이제는 서서히 체험하고 있어서 안다.

 그냥 주님이 거기 계시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목적이고

 그냥 주님이 기뻐서 노래할 뿐이다..'라는 것을.

 거기에 찬양의 곡조나, 내가 은혜되고 뿅... 가고..ㅎㅎ.. 하는 것은 의미없다.

 아침에도 그랬다.

 

2.  회개하자.

 회개는 잘못이 클 때만 하는 거 아니다.

 매일 정화되어야 할 우리가 해야할 당연한 의무다.

 난 스쳐 지나가는 자가 아니다.

 

3. 늘 주님 만을 의식하는 삶이 되자. 

 내 삶이 힘들었던 것은 '사람을 많이 의식'했던 탓이 없지 않아 있다.

 주여 보시옵소서.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4.  성경 일곱장 읽겠다.

 

기도

 

 

 주님.

내 삶은 주님 이후로 밝아 졌습니다.

주님 보시옵소서.

주여 보시옵소서.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님 보세요...

늘 이런 마음 놓치지 않도록 하소서.

죽도록 주님의 뜻을 발견하여 사는 삶이 되게 하소서.

가다가 굴곡이 없지 않아 있으리라 생각은 하지만

그게 나의 회개하지 못하는 죄가 쌓여서 나온

주님의 진노의 결과가 아니게 하소서.

주여 .

부디 덜 회개 함으로 받는 고통이라도

주님 보시옵소서.

..놓치지 않는 믿음이 되게 하소서.

주여.

인생길 가다가

힘든 자를 보거든 스치고 지나가는

무반응의 내가 되지 않게 하소서.

회개하거나 긍휼히 여기거나 그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들 힘든 자를 위하여

한줌 중보의 기운을 더해주고 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겸손하게 하시고

늘 깨어 있게 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사랑의 소유자가 되게 하시고

굳건한 믿음의 주하인이 되게 도우소서.

사람의 그것보다...

주님만 보시면 만족할 수 있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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