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말씀이 우선이다. (애 1:1-11 ) 본문
제 1 장 ( Chapter 1, Lamentations )
보홀 섬 로복강 투어 중 강가 마을 공연.
이들은 웃지만 웃는게 아닌 것 같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지만
그 노래는 허공에 흩어질 뿐이다.
슬프다.
이들을 위하여 진심으로 가슴아파해줄
중보의 기도가 필요하지만
나도 이들의 감미로운 공연에
즐기다 왔을 뿐이다.
그것을 슬퍼해야 한다.
1.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난, 남을 위하여 슬퍼할 수 있는가?
그들을 위하여 진심으로 중보할 수 있는가?
엊 저녁 묵상의 적용을 위해
늦은 시간이 되어서 아내와 함께 기도원에 올랐다.
절박한 기도제목이 별로 없었지만,
주님이 좋아하시는 기도임을 아는 나는
예전의 그 복잡하던 생각을 물리칠 수 있다.
그래서 기도 굴 속에서 가벼히 앉아서 찬양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은혜가 오면 나도 모르게 방언으로 기도를 하다가
또 기도하고.........
마음이 깊이 침잠하고 놀라운 은혜가 쏟아지려는 순간 ~
옆 옆 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금방,
들어와 앉으신 여성 - 30대 중 후반 ? - 의 애통하는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의 톤이 높기가 말도 못하게 높고 소리가 찌르는 듯이 들려온다.
참 날카롭고 강한 소리다.
표현이 애통이지 , 실제로는 '악'을 쓰는 듯한 필링이다.
들어 앉자 마자...
거기에 발음은 얼마나 정확한지 울부짖으며 하는 소리 하나하나가 귀를 뚫고 들어온다.
대 부분이 기도하려 앉으면 눈을 감고 집중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는 게 원리일 듯 싶기도 하다는 생각이
마음을 흔들면서 '옆 사람도 생각지 못하고 자기 기분대로... '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서 내 기도의 맥이 끊기는 속상함이 올라온다.
맞기는 맞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동시에 '얼마나 힘이 들면..' 이라는
세미한 생각이 그 부정의 틈을 뚫고 들어 온다.
가끔, 주님의 선한 생각이라 생각되는 이러한 소리를 선택하기 시작한 이후
성공률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내 기도를 멈추고 그 기도에 날 맞추려는 시도를 해 보았다.
중보기도다.
그냥 가만히 밀려오는 부정감을 들여다 보면서
그 분의 애절함에 내 입술을 들어 더하는 기도를 했다.
처음에는 어색하더니 점점 불쌍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다.
감정은 앞서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생각을 뒤서기를 잘한다.
무엇을 선택하는 가에 따라 감정이 따라온다.
주님은 주님을 선택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따르기를 선택하는 순간
놀라운 선한 감정이 내 속에서 일어나고
평강이 날 사로잡기 시작하는 체험을 종종하지 않았던가?
여인의 그 소리소리 질렀던 마음이 얼마 전 '내' 마음이 아니었던가?
이해못할 것이 무엇이던가.. 하는 생각이 평화롭게 날 잡는다.
기도를 마치고 내려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평화로운 마음이 날 지배한다.
2.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이 들의 아픔이 언젠가 부터는 남의 이야기 처럼 들렸었다.
실제로 얼마 안된 내 이야기 이기도 한데..
불안하고 속상하고 원망되고........
앞으로는 또 어떨까?
늘 지금의 평화로움이 유지가 될까?
나의 잘못과 상관없이 주님의 연단 여정에서
마치 출애굽한 신광야의 평안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군사와의 싸움을 거쳐
결국 가나안 땅 들어갈 때까지 60만 죄악 백성들이 거의
다 죽을 때까지 연단이 되지 않았던가?
나의 지금 현 상황이 연단의 전부인가?
난 온전히 성화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이후에도 어쩌면 이전에 겪었을 마음 고생이 있지는 않지 않을까?
그렇다면 또, 그냥 스치고 지나버리거나
마음 고생으로 뛰어들을까?
8.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 같이 되니 전에 높이던 모든 자가 그 적신을 보고 업신여김
이여 저가 탄식하며 물러가도다
어쨋든 이들의 이러한 탄식은 '연단'과정의 불가피하고는
조금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이들의 고난은 '큰 범죄'의 탓이다.
큰 범죄란 무엇인가?
범죄라 죄를 말하지만 그 죄 만 가지고 겪을 고난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죄중의 가장 큰 죄는 주님을 잊는 죄다.
똑같은 죄에도 주님을 인식하고 회개하고 변캐하려는 노력이 있으면
그 죄는 덜 죄이다.
주님의 말씀을 모르는 죄는 덜 죄이다.
주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짓는 고의적 죄는 큰 죄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다.
그 고의 적 죄가 주님이 원하시는 '한계'에 걸릴 정도로
되풀이 되풀이 되어 쌓여지면 그것은 큰 죄다.
11.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소성시키려고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
죄가 '큰 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회개 해야 한다.
회개의 개념이 문제다.
일반적으로 회개라 하면 '감정적으로 까지 온전히 깨끗이 되어 다시는 짓지 않는 돌이킴'을
상상하기 쉽다.
쉽게 말해 완전히 기분 최고로 인정받은 ^^;;; 회개를 원하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다.
주님은 주님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회개의 결단을 하는 것으로 족하다.
감정적 차원은 주님이 알아서 하신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잘못이 이것이고
이것은 주님에게 회개할 일이기에
마음에 사단이 뛰놀듯 내키지 않지만 그럼에도 말씀 앞에 서는 회개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는 기도하면.. 시간이 지나면 주님이 다 알아서 해결하신다.
마음은 청정해지고 기분은 괜찮아 진다.ㅎㅎ
평안이 찾아오고 삶은 변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원리다.
만일 , 오래된 부정적 습관으로나
의지적 반발을 선택함으로 회개의 기회를 놓침이 쌓이면
그것은 감정적 영역의 상처로 눌어 붙게 되고
당연히도 인생은 부정으로 흘러 실패자가 되게 된다.
그게 오래되면 오늘 '애가' 의 곡 소리가 흘러 나오게 된다.
'친구는 떠나가고............'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주님 앞에 앉아 깊이 회개 해야 한다.
주여..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
이래야 한다.
산다는 것.
쉽지 않다.
걸레 쪽 같은 원죄를 가진 영혼의 인간들이 사는 삶이
어찌 평화로울 수 가 있는가?
잘되면 잘되는 대로
못되면 못되는 대로
인생은 고통과 고난의 연속일 뿐이다.
대통령 했다고 평안한가?
현대가의 일족이라고 또 편안하기만 할까?
행복해 보이는 누구들이 반드시 행복할까?
아니란 것을 지금 나이의 나는 확실히 안다.
그러나... 어렵기만 한가?
아니다.
기쁘기도 한다.
무엇이 차이인가?
생각의 차이이다.
그 생각의 차이는 무엇으로 나는가?
선함과 악함의 차이다.
악함과 선함의 차이는 무엇인가?
주님이 전제가 되지 않는 모든 선함을 가장하는 것 조차 다 악함이다.
결과가 증명한다.
최소한 내 경험과 역사의 주님을 올바로 믿으려 노력하는 모든 분들의 증언이 증거다.
성경이 증거고 오늘 내 마음이 증거다.
최소한 오늘 '애가'에서 보이는 이 절절한 부르짖음은
주님으로 생각을 바꾸는 내 운명이 아니다.
난 행복할 것이다.
아직까지 난 주님 앞에 서려는 몸부림을 늦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믿는다.
내 마지막 날까지 내 인생의 형태가 어찌 변할지
내 자식들의 운명이 어찌 나갈 지 알 수 없지만
주님 앞에 서려는 노력이 끝까지 가는 한
그들과 내 영혼은 평강이 지속될 수 밖에 없음을...
최소한 이들의 이 회한에 찬 소리지름은 없을 것임을...
적용
1. 회개하는 삶을 살자.
회개는 도덕적 차원의 것을 넘어선다.
주님 말씀에 서지 못하였음을 회개한다.
하루가 주님의 뜻과 어긋났음을 회개한다.
회개는 감정이 아니다.
감정은 주님이 허락하시는 결과물일 뿐이다.
2.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
이 고백을 가슴에 품자 .
잘못해서라기 보다 잘못이 숙명인 우리이기 때문에 그러자.
3. 성경 일곱장 읽자. .
4. 오늘 문상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교회에서 간다한다.
기도
주님
평안한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회개의 의지를 가지고 허락된 감정이기에 더욱 기쁩니다.
이것은 주님이 기뻐하신 결과물임을 믿기에 더욱 힘이 납니다.
주여.
오늘 회개하지 못하고 사는 자들의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그 비참함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과 인과 관계는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얼마되지 않았던 내 마음의 부정적 고통이 생각나고
그 보다 수백배 평안한 내 현재의 마음을 보면서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힘이 납니다.
절 도우소서.
주여 그리고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 라는
당신의 이 구절을 마음에 담고
늘 나를 낮추고 겸손하게 만드소서.
주여 동행하시는 줄 믿습니다.
절 늘 권고하시고 인도하소서.
아직도 변치 않고 뿌리 박혀 있어 깨닫지 못하는 악습들을 깨닫게 하소서.
나로 이 악습이 저 회개 못하는 저들의 상황으로 이르지 못하도록
막아 주소서.
주님이 그러하소서.
성령으로 도우소서.
간절히 비오니 주여.. 이끄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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