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여 다시[사 8:1-8] 본문
주여
제게도
다시
말씀하소서
그 아침의
그 풍성한 시간들
하나님 앞에
그대로 올라가던
그 날들 처럼
주여
내 영혼의
놀라운 감동들을
다시
회복시키소서
저로
다시
살게 하소서
5.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주여.
저에게도 '다시'
또 다시 .......
크게 말씀하여 주소서.
이제 이 어리석은 심령은
다 아는 것 같고
매일 똑같은 거 같고 해서
어저면 제가 묵상하고 쓰는 글들이
매너리즘 빠진.....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 묵상을 가장한
제 소리인 듯 할 때가 있습니다.
주여.
한참.. 안된 그때에
사진이 풍성히도 찍히고
아침에 가슴이 저릿저릿하여 출근하던
그 감동의 시간들을 다시금 느끼길 원합니다.
주여
제게도
말씀하소서.
6.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천천히 흐르는 물'
예루살렘 도성을 끼고 도는 실개천, 실로아.
실로아는 '실로암'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 실로아가 '연못'에 모여 그 유명한 실로암 연못이 되었다.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한.......
' 천천히 흐르는' ..에 눈이갔다.
그 여유로움.
그 느림.
그 세미한..
이 급박한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더구나 빨리 빨리가 입에 달린 우리나라, 그 중에서도 급한 나.
그런 나에게 '천천히'는
답임을 알지만
또 그 지루함에 마음이 답답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원리는 우리의 시간과는 다르다.
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결국은 승리'다.
눈엔 느릿느릿한 게 잘못인거 같고
안될 것 같고
실패자인 것 같지만
결국은 '선'이시다.
그것을 믿음은 진정한 믿음에 이르게 한다.
기다릴 줄 아는 믿음
주님은 무조건 '선함'을 믿는 훈련을 하는 믿음
과정에서 받아내는 영적 평강의 체험.
난.......안다.
그 느린 미학에 대하여 안다.
솔직히 하나님 나라가 '급하고 빠른 ' 그런 나라 같지는 않다.
돌아보면 그 느린 흐름 사이,
다른 이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명예와 지적 탐구와 재산과 .......노후 준비와 인적네트워크 구성에
그리도 열심히 뛸때
난 자의반 타의반.........말씀 안에서 내려놓고 느리게 가는 훈련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난, 많은 것 이루어 냈다.
돌아 보니 그랬다.
그러면서 그 와중에 '풍성히 '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감에 너무도 황홀히 거했었다.
한동안.........
7.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한동안이라 함은
요즈음은 아닌 것만 같다는 이야기다.
풍성한 누림 가운데서
현상적으로도 많은 귀한 모임들이 이루어 졌었다.
그러다가 '나'만이 알수 있는
그 시점 부터 '확실히'......조금씩 조여들어감을 느낀다.
그것을 허락 받음도 난 안다.
그 이유는 이제 조금 더 '주님' 만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훈련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게 말씀 묵상하는 매일의 과정에서 자연스레이 느껴져 온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흔들리지만
오랫동안 평안을 유지하고 조용히 한걸음씩 나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또 풍파 처럼 한번 , 어려움이 밀려온다.
그러니..... 빨리 .......해결하고 픈 유혹이 일어난다.
'아.....나.....이게 뭔가'...하는 생각이 들려한다 .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라는 오늘 표현처럼
눈에 쉽게 보이고
빨리 보이는 그 유혹들에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이전처럼 쉽게 반응을 보이고 싶다.
그래서 아침의 묵상 구절에
'천천히 흐르는 강'이 눈에 들어왔음에도
그 구절을 주신 이유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시간까지 뒤로뒤로 미루면서
묵상을 이제야 올리고 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주님의 말씀을 '다시'...
그 천천히 흐르는 듯하지만 평화의 실개천,
내 눈을 뜨게하는 '실로아' 물길이 모이는 '실로암' 연못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날 폭퐁우처럼 휘몰아치려는
그 어려움이 조금 가라앉는 듯하다.
홀로 있어도 괜찮다.
가만히 주님의 흐르는 물결 만 바라볼 수 있다면.......
주위에서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도
눈돌릴 필요 없다.
난........
내 눈을 뜨게하신 예수님의 실로암 기적의 기억이 있다.
그 실로암 연못으로 흘러들어가는
그 적은 실로아의 천천히 흐름이
결코 실패가 아니고
결코 늦은 것이 아님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내 함께 하시던 하나님의 임재.
그 임재하신 고요한 기쁨..
느린 듯하지만 빠르고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가역적 원리.
그 것을 난 안다.
하나님은 무조건 '선'이시고
결국은 '천천히 흐르는 ' 실로아의 물길을 바라봄이
내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
그래서 모든 것을 그냥 흐르는 물길 대로 맡길 수 밖에 없는 것이
내 운명임을 난 안다.
이제
곧..
다시 승리할 것이다.
난..
적용
1. 주님의 원리는 '천천히'다.
느림이다.
흐름이다.
기다림이다.
그 잔잔한 여유로움이시다.
그래도 결국 '실로암의 기적'을 보이심이다.
결국 승리다.
그것을 믿고 기다리자.
이제 내가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더 이상 몸부림 쳐야 어쩔 수 없다.
인본적인 것은 '이제는~~ ' 내려 놓자.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
옆에서 창수야 흘러라, 큰 물아 소리를 내라.. 하자.
난 가만히 실로아 만 볼 것이다.
2. 다시.
주님의 말씀하심을 '다시' 사모하자.
그 말씀하실 때의 절절함을 기억하자.
주님의 임하시던 그 풍성함을 사모하자.
다시 말씀하실 하나님을 기억하자.
주님이 주시면 또 이루어내자 .
아니면, 기다리자.
3. 성경 세장 읽겟다.
기도
주님.
주님은 아시지요?
제가 왜 이리 힘들어 하는지요?
오랫동안 잔잔햇습니다.
그러다가 흔들립니다.
외적인 여러 현상을 들여다 보면서 '좌절'하려 합니다.
옆에서 흐르는 창수를 보고 부러워 하려 합니다.
이전에 벌써 많이 했고 포기 하는 훈련을 했던 것들에
또다시 눈이 꽂히려 합니다.
그러한 사실을 이제는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랫음에도 그냥 다시 급히 눈돌아가고
비교하려는 제가 스스로 답답합니다.
이 저항할 수 없는 어이없는 심성을
이제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천천히 흐르는
적은 물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세상것과 비교하면 너무 적어
볼품없어 보이기도
가치 없는 미련한 것 같아 보이는
실로아 물을 바라보렵니다.
주님.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아야 가능하리라 압니다.
그래서 ......자꾸만 방향을 놓칩니다.
마치 nystagmus처럼 말입니다.
주여.
이 영적으로 어리석은 제 흔들림을 가련히 여기시어
다시...
말씀을 주신 줄 압니다.
그래서......느즈막히........도저히 글을 이끌어 낼 글감이 생각나지 않았음에도
의지를 들여 시작하니
역시 다른 때처럼 일사천리로 이즈음까지 오게 하십니다.
주님.
전 .........임하시는 '세미하신' 하나님의 흔적,
실로아 물길의 그 천천한 가느다람을 통해서
주님의 성령을 느낍니다.
주여.
이제.......
세상의 그것들을 모조리 배제하고
주님으로만 이끌어내시는
승리를 목도하려합니다.
이성적으로 별로인......그 실로아를 봅니다.
주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곧 연못에 이르러 다가오실 예수님의 기적을 기대하며 말잋빈다.
제 눈뜨게 하소서.
제 아들들......
제 아내...
네 모든 지인들.......눈도요.
기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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