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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나를 하나님이시여 나를[시70:1-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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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나를 하나님이시여 나를[시70:1-5]

주하인 2021. 8. 28. 08:37


[ 아침에 눈을 뜨니 약한 비내리는 해변 아침의 풍경이
한참 영적 투쟁을 벌이며 가난과 궁핍에 힘들어하던
그 시간들의 내 영적 상태처럼 흐리게 보인다. ^^;
하지만 하나님을 내가 인식하고 있는 한
아름다움은 흔들리지 않더라..]

1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하나님이여..라며 부르짖는 그 마음이 느껴진다.
여호와여 속히.. 라는 그 마음이 그대로 이입된다.
하나님이여 나를
여호와여 나를... 이라 부르짖음이
그때의 나의 절박함을 느끼게 하신다.
건지시고 도우시지 않으시면 곧 죽을 것 같은
그 절박한 상황....ㅠ.ㅠ;

지금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옳은 결과로 ^^*
당진 앞바다 , 비오는 새벽에 , 루프탑 안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가장 좋아하는 쉼의 자세로 ^^*
늘 허덕이던 두려움과 불안의 오래된 습관에서 언제부터인가 벗어나서
차분하고 안정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일상의 평화,
허락되어진 평강 (아..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시면 평안, 평강, 행복은 있을 수 없다.. 이땅에서는 .. 최소한 나에겐..^^;) 안에
있으며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

묵상을 옮기기 위하여 성경앱을 펼치니
이 구절에 진하게 붉은 밑줄이 쳐져 있다.
아마도 튀어나올 듯한 과거의 불안이 두려운 가운데 말씀으로 순간 안정된 순간이었든
내 삶의 고민이나 문제거리가 날 사로잡으려 할 때
말씀을 통해 날 위로하시던 그 때에 그리된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왜 이 아침...
이 평안한 시간에
저 구절을 펼쳐 놓으셨을까?

왜 절박한 저 심사를 다시 슬그머니 느끼게 하시고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
내 안의 예수님의 뜻이실까?

혹여 지금의 평안은 누리고 감사하되
영적 전쟁터에 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라심은 아니실까?
하나님의 허락하신 평강의 현상들 속에서
순간, 게으름 나태 , 뒹굴뒹굴로 빠져 버릴만한 개연성이
너무도 많은 나,
주하인과 죄하인 사이의 거리가 얼마되지 않는
줄타기의 인생을 사는 그런 내게
영적 각성을 위하여 허락하신 말씀이실까?


2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말씀을 보며
세 존재에 대하여 느끼게 되었다.
당연하지만 물질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로서
너무나 잊기 쉬운
본질, 진실... 말이다.


내가 간절히 찾는 하나님.
나를 찾는 영적 오류, 사단.


나를 창조하시고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주님의 나라에 들어오길
지켜보시는 하나님과
막아서며 영멸로 끌어가려 '나의 영혼을 찾'아 나의 상함을 보면 기뻐하려는 자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수치와 무안, 상함을 경험하게 될,
그로 인하여
삶의 어려움에 허덕이는 '나'..............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어려움, 인생의 풍파, 광야의 고난이
모든 인생에게 허락된
반드시의 숙명이며
당연히 하나님과 사단 (-> 그마져 허락되었지만 , 당연히...) 사이에서 허락되어진
영적 전쟁을 인식하고 살아야 함을
말씀하심이다..


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이제..
당연한 이 영적전쟁으로서의 인생,
그 과정을
다시금 인식하고 사는 하루를 또 열었으니
쉬는 하루, 늘어지는 하루로 태만하기 보다는
가난하고 궁핍한 인생에서 허락되어지 축복임을 감사하고
쉬어도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삶은
가난하고 궁핍하고 물속에 빠져 있는 자로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정말 미련하고 가련한 그러함이니
순간순간 하나님을 잊지 않아야 함이다.

그리고는
겸허하고 감사하는 태도로 살아야 한다.
주님이 안보이시면 난..
가난하고 궁핍하여
주여 나를
하나님이시여 나를 ...하고 외칠 수 밖에 없었던
그 인생의 고난, 풍파와
그를 통하여 넘어지게 만들려는 사단의 궤계에 순간 넘어질 수 밖에 없음을....

미리 기도하라신다.
감사하다.


주여.
전 가난하고 궁핍한 자 맞습니다.
그러한 결핍으로 몸부림치고 아니라 부인하며
지옥같은 고통으로 부르짖던 불신의 시간들 때는
죽을 것만 같았고 온통 어두움 뿐이었습니다.

주님의 철저한 주권으로 구원하여 주신 후에도
비록 그 빈도와강도는 줄었으나
번연히 남은 가난과 궁핍으로 인한
고통과 아픔은 여전히 힘들게 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귀하고 감사한 것은
주님을 인식하는 순간
곤란과 고통은
어느새 그 보다 더 큰 회복의 기쁨,
평강으로 정의 되는 영적인 나른함,
행복과
알지 못하는 소망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가난과 궁핍의 상황이 오면
기대의 심사가 따라 커졌던게 사실입니다.

예..
분명코 은혜라는 단어로 정의될 수 밖에 없는
성령의 도우심을 경험한 모든 믿는 자들의 심사에 느껴지는
그 영적 기쁨이
가난과 궁핍에 반하여
점점 더 커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주여.
주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2주 만에 또 해변가에 나와 쉬고 있습니다.

주여.
이 평안한 육신과 마음의 쉼 중에
힘든 시기의 주셨던 말씀을 주셔서
잠시 멈칫했었습니다.

그러나,
가난과 궁핍......
그 것들은 사단의 궤계와 더욱 멀어지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다른 축복이심을 깨달아
태만과 게으름 말고
진정한 평안과 평강을 위하여
잠시라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하루를 살아
영적 전쟁,
하나님이 부르실 그날 에야 끝날 수 밖에 없는
그 광야의 여정을
잘 이겨낼 수 있길 기대합니다.

주여.
홀로 영광 받으소서.

거룩하시고 귀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쓰다듬으시는 것 같습니다.
이 나른한 하루의 시작에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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