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만 바라봅니다[대하20:1-19] 본문
주님
왜이리도 저에겐
고난이 쉬지 않는지요
참으로
숨 쉴틈도 없는 것 같고
머리는 아파오려 하고
심장이 먹먹한 듯합니다
때로는 속상하고
주여
때로는 미안합니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주여
힘이 다 빠지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때마다 얼른 눈들어
주만을 바라보려
애를 씁니다
아니
이제
그런 것이 조금은
버릇이 된 듯합니다
주께서
내 싸움 대신 싸우시고
이 고난
주님께 속한 것임이
이제는 조금
믿어지는 듯 합니다
그래서 자주 평온합니다
그래서 자주 노래합니다
내 살아계신 주님이시여
1.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하 한지라
열심히 '하나님'과 동행해도 '고난'은 필연이다.
4.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을 떠난다.
고난이 있으면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난이 있으면 더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고난을 그렇다면 어찌 대할까?
당연히도
고난은 없으면 좋겠지만 피할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모든 약함과..핍박과.... 기뻐하라. " 라 하시지 않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함은 하나님을 위함이요
하나님을 위함은 '나'를 위함이다.
또한 고난은 ' 광야에서 받아야 할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통하여 반석의 물남을 체험하고
만나를 체험할 전제조건
즉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그 평강을 체험할 기회이며,
우리를 시험하여 낮추사
마침내 복을 주실 기회라 하셨다.
그렇다.
고난이 필수 불가결하고
그리도 귀한 기회이니
당연히도 고난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기쁨' 이 되어야 한다.
12.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하지만,
당연히도 새디스트가 아니고 고난을 즐기기가 어찌 쉬울까?
그러나 우리에겐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다.
우리가 해야 할 고난에 대한 첫 태도는 '주만 바라보는 것'이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는 고백이 되어야 한다.
13.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모든 사람들,
가족이 하나가 되면 더욱 좋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나라도 '모든 '마음을 다 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하고
습관이 되어야 한다.
나.
이렇듯 나이가 많고
수없는 인생의 쓴 경험을 해도 고난이 닥치면 무섭고 움츠러든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안다.
고난이 고통 만은 아니고
고난은 내 인격의 '겸손'해지는
이전 , 조금 젊고 조금 더 육신의 자신이 있을 때는 경험해보지 못하던
그 인생의 풍성한 가능성이 열릴 경험..
'겸손'의 영혼이 되는 것이 어떤 기쁨을 가져오는지..
그리고
낮아지고 그 낮아짐을 기뻐해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고개숙이게 되는 게
어떤 영혼의 향기를 스스로 맡게 되는지..
그것은 다른 차원의 기쁨이다.
14.여호와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그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그렇다.
하나님의 뜻을 전제로 '고난'을 받기로
전심을 다하여 마음을 모두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다.
말씀으로 임하신다.
그래서 내 영에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임하시기 시작하시는 것이다.
그때는 고난은 그냥 고통이 아닌 것이다.
풍성한 경험이 되고
삶의 지혜가 되는 것이며
마침내 주실 '복'을 깨닫는 것이며
그 복이 겨우 우리 지금의 일상에서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고
고난과 고통이 일시에 사라지고 자식이 잘나가고..........
겨우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
실은 '진정한 복'은 지금의 상황과 아무 상관없는
영혼의 고요함과
마음의 기쁨과
삶의 평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실의 막힌 것 풀어지는 것은 '부수적'인 현상일 뿐이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그렇다.
15.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
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그런 자들에게는 '고민'이 사라진다.
고난은 더 이상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게 된다.
고난은 내가 고민할 영역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할 일은
얼른 하나님 만을 바라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믿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날 구원하시고 나에게 먼저 다가오셨고
모든 거 다아시고 우주보다 크신 분이시니
그냥 그 분께 맡기는 것이다.
그러한 결심을 하는 것이다.
결심과 앎 만 가지고 안되니 이 어줍짢이 '불안'으로 습관들은
세상의 삶의 잔재들을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어 해결하시는 '경험'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 채우는 간증이 늘어나고
시간이 지나게 되면
우리는 점차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일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영혼이 알아채게 되는 것이다.
그때는,
그어느 것도 우리의 영혼을 흔들 수 없다.
우리는 늘 평강과 은혜로 폭포수처럼 영혼이 채워지게 될 것이다 .
그게..심령천국의 삶이다.
적용
1. 자식들....직장... 풀지 못하는 문제..
고난이다.
이것을 기뻐할 수 잇던가?
그냥 주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문제로 치부하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으나?
머리가 복잡할 때 ,
온전히 주만 바라보길 기대하신다.
2. 믿음 문제.
고난은 가끔.. 자주.. 자괴감으로 밀고 올 때 힘들다.
그것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 아니다.
하나님의 싸우실 문제들에 내가 끼어들 필요가 있는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심을 믿어야 한다.
그래도 난.. 주님의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음을 믿는다.
3. 주만 바라보나이다.
온전히, 모두..
4. 성경 세장 읽겠다.
5. 난 승리할 것을 믿는다.
주님이 먼저 오셔서 날 구원하셨다.
주님이 책임지실 것이다.
싸움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기도
주여.
어찌 이리 인생은 고난은 멈추질 않는지요?
그래도 주님이 말씀하신바
인생은 누구나 광막한 광야, 그 크고 어렵고 불뱀과 전갈이 쏘는 고난의 광야를 거칠 수 밖에 없고
그러하심은 '반석의 물남과 만나'의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나 만의 긴밀한 체험을 쌓는 것인 도구이기 때문임을 알고
또 말씀대로 그러한 경험이 말씀대로 늘어나기 때문에
그 어려움의 불가피함을
정말~ 잘 앎에도 불구하고
일단 고난이 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우선입니다.
주님.
아직도 덜컥합니다.
가슴이 미어질 듯하고
숨이 쉬기도 어려울 듯하고
팔 다리에 힘이빠져 연민속에 들어가 나오기 싫어지려고도 합니다.
주여.
그 고난 통해서
겸손,
그 놀라운 품성의 향기,
그 품성이 제 안에 경험되기 전에는
그토록 놀라운 다른 경지의 세상이 있음을 알지 못했던.. .
그 겸손을 이루게 하시기 위함임을
주여.. 제가 기쁨으로 알게 하시되
간절히 소원할 것은 저로 인하여 '고난'을 더 가중되게 받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을 더욱 불쌍히 여기시길 소원합니다.
주님.
오직 주만 바랍니다.
이 고난 주께 돌리오니
주께 달린 이 고난을 가장 선히 해결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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