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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주를 위한 수고함 ( 렘51:54-64)

주하인 2010. 5. 31. 12:00

제 51 장 ( Chapter 51, Jeremiah ) 

 

등나무 꽃이

주렁 주렁 열렸다

 

눈 돌리어 바라보면

전도할  대상 들이

저리도 많다

 

모든 존재 들의

살아 있는 의미는 

주님께 붙어 있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

 

주님 가지에서 떨어짐은

사망을 의미함이다

 

우리 믿는 자들은 해야할

가장 가치 있는 수고는

전도다

그 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연합의 꽃이다

우리 인생에서 할 수고의

가장 귀한 결실이다

 

  
 

58.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의 넓은 성벽은 온전히 무너지겠고 그 높은 문들은 불에 탈 것

     이며 백성들의 수고는 헛될 것이요 민족들의 수고는 불탈 것인즉 그들이 쇠패하리라 하시니라 
' 수고' 

백성들의 수고

민족들의 수고.

대단한 무리들이 ,

그것도 대 바벨론 제국의 무리들이 전력을 다한 '수고'

   그 수고는 불타고 파괴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수가 촛불을 들어도

아무리 세상이 극강한 힘으로 미친 듯 돌아가도

주님이 전제되지 않은 모든 '수고'는 헛되다.

바람 불어 오면 말라 없어질 꽃같은 존재일 뿐이다.

아무리 뜨거운 여름, 온 정성을다해 피워내도

그들의 수고는 찬바람 불면 , 그것으로 끝이다.

 그들은 헛된 수고를 하는 것이다.

 

 

61. 예레미야가 스라야에게 이르되 너는 바벨론에 이르거든 삼가 이 모든 말씀을 읽고 
64. 말하기를 바벨론이 나의 재앙 내림을 인하여 이같이 침륜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니 그들이 쇠패

      하리라 하라 하니라 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마치니라
  스라야.

예레미야님의 명령을 듣고

바벨론  , 그 위험한 지역에서 목숨걸고 그들에게 나쁜 예언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 있는 '책'을 들고 간다.

 그렇다.

수고 중의 수고다.

가장 보람있는 수고다.

생명을 걸고 하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수고다.

 

 

 어제.

주일.

교회 앞이 예전보다 훨씬 벅적인다.

6월 2일 선거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선거 운동을 위하여 인사를 하려 저리들 나와 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이 주일 아침 일찍인데도

예배를 다녀 왔을까 걱정 ^^;;이 된다.

그래서 들어가며 인사해오는 그들을 향해

'예배드렸어요?

 교회는 다녔어요? .. ' 했다.

진심으로 걱정이 되는 그들.

그리고 생명보다는

헛된 인생의 수고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작용했다 .

그러고 보니 그들은 교회 앞에 찾아온 불신자 가능성이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겠지만,

전도에 대하여 안타까워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 만 같다. ^^;

 바빠서 그냥 예배에 들어갔다.

성가대에 늦은 자가 어찌 그러겠는가? ㅎ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께서 광고를 하신다.

' 3주간 신한 은행에서 나와서

 교회 정문 마당에서 카드를 신청받고 있습니다.

결제하는 마일리지의 20%가 선교에 쓰이고 있으니

많이 신청해주셔서 선교지에서 고생하는 분들의 힘이 되 주세요.

오늘이 마지막 신청일입니다'

그렇다.

큰 도움이 되면서도 크게 어렵지 않는 방법이 아닌가?

좋다.

 

 예배를 마치고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점심을 먹었다.

행복하다.

날씨는 화창하고

아들이 화합하고 있지 않은가?

원두 커피 전문점에 가서 재미난 커피 이야기

- 르왁커피가 사향 고양이 똥에서 나온 커피 알갱이로 뽑은 것이고

 한잔에 수십만원 호가 하는 것을 아는가?

 '죽기 전에 해야할 101가지 이야기, 바켓리스트에서 나온 ...  - 도 듣고

'컬럼비아'와 '더치', 그리고 ' 코스타리카'라는 이름의 원두커피를 빼내어

한잔 씩 들고 교회로 왔다.

 오후 예배까지는 20여분 시간이 남아 잠시 망설이던 중

잊었던 신한은행 카드신청처가 보인다.

가 보니 직원 십수명이 나와서 열심히 신청을 받는다.

신청을 하고 갑자기 번득하고 생각난 것이 있었다.

'교회 다니세요?'

안 다닌단다.

'기왕이면 다니시는 직원에게 할 걸.. '하니

' 팀장님은 다니신다' 며 '좋은 일 하시는 것인데 누구에게 하면.. '한다.

그렇지만 기회를 놓칠세라..

난 그랬다.

' 팀장님은 천국가도 본인이 못가면.. ' 하며

나의 이야기를 쏜살같이 꺼냈다

' 내 나이 ..요..

 내 나이가 되면 이런 아름다운 여성 분들을 보아도..

 무슨 인생의 의미가 있어요?

 열심히 성공을 해서 대리가 되고 ..

 결국 인생 말년에 의미라고는 '자식' 밖에 더 있을 겁니까?

 그런데 그게 인생의 의미가 맞나요?

 수천년을 내려오는 그런 비천한 수고로

 이땅에 태어났다 사라져간 세대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이나 해보았어요?

 또 그러다가 내 나이보다 더 되면

 까우둥하며 속았다는 듯 세상을 뜨게 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인생..

 주님 만이 의밉니다.

 나.................. 이렇게 놀라운 체험이 있소.

 예수님은 '기쁨'이요.

 그렇게 불면증, 담배, 건강회복, ........날라 다녔지요.

 주님은 기쁨입니다.

 ..................'   막 시간이 없는 관계로 속사포를 날리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팀 장과 옆에 있던 이쁜 두 아가씨 직원 마져 눈이 똥그래져 집중한다.

'아무리 바쁘지만 교회 다니세요.

 우리도 바쁘니 얼른 들어갈께요.'하고 얼른 나왔다.

 내 이야기로 회심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만

그게 아니어도 언젠가 그 들의 영혼에 심겨진 그날의 내 조그만 수고로 인하여

그들이 살다가 어려움을 겪을 때

정말 기뻐하던 자의 얼굴이 예수님 믿던 자의 모습이었음을

주님 성령께서 기억나게 하시어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교회로 옮기게 되는

그런 역사가 되었을 가능성에 대하여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교회로 향했다.

아내도 재미있고 기뻐서 연신 옆에서 맞장구를 쳐댄다.

오후 찬양예배.

내내 은혜롭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듯하다.

 

 수고.

그 수고가 어떤 의미있는 수고인가?
무엇을 위하여 그런 수고를 하는가?

그 대상의 본질이 누구이던가?

'나'는 아닌가?

민족의 수고

백성의 수고..

아무리 큰 의미를 가져다 붙이려고 해도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나'를 위함이 기본이다.

나의 안전을 위한 나라를 위한 수고고

나의 기쁜 잘낫 맛을 위한 백성에 대한 수고다.

아무리 고상한 도의 이야기를 해도

결국은 그것은 '자기 만족'이다.

그것은 '일차원적'인 수고다.

결국........바벨론이 부흥하고 번성할 때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옆에서 너도나도 다 똑같은 소리를 하니 같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의'처럼 착각이 되어도 그것은 모두 헛된 유한함이다.

몸이 스러져 가고 영혼이 장막을 떠나

진실이신 주님 앞에 갈때,...

'너희가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살았던가 ' 물어보실 때

결국 자신 밖에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모'없는 고아의 삶이 아니던가?

 

 수고.

가장 가치있고 보람있는 수고는

주님을 위한 수고다.

그것이 헌신이던 봉사이던 긍휼 사역이든 선교이든 .......

무엇이 되던 간에

'주님'을 위하여 진실로 하는 것이 아닌 것은

헛된 수고이다.

'주님 테두리 안에서'가 아니다.

'주님을 위하여 ' 하여야 한다.

'전도'

가까이 찾아오는 자에게라도

주님의 생명을 전하는 가장 귀한 행위는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

나.

주님의 이름.

단 한마디라도 전하여야 할 것이다.

 

 

 

적용

 

1. 전도 한 사람이라도 하자.

 

2. 성경 3장 읽겠다.

 

3. 아버지 학교 가겠다.

 특별한 세상적 이익이 있겠는가 마는

주님을 가장 가까운 데서 느낄 수 있는 나 만의 결심이다.

 

4. 내 길의 올바름에 대하여 묵상하자.

 비교할 것 없다.

 당혹할 것없다.

 주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만 '옳다'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오늘은 수고에 대하여 묵상을 하였습니다.

수고.

열심을 다해서 살아 왔습니다.

돌아보면 이루어 놓은 것은 별로 없지만

나름대로 주님 말씀을 접하고 사는 이후로 부터

그리 후회스럽지만은 않은 것은

주님의 말씀을 준행하려는

나름의 노력탓인 듯 합니다.

그것을 기뻐하는 주님의 사랑 탓입니다.

감사하신 주님.

아직도 제가 이루지 못하는 열매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없지 않고

총론적인 삶 만을 사는 것이

유치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당혹스러울 때도 없진 않지만

주님이 허락하신 삶임을 믿습니다.

다시금 그리 합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시여 .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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