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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주님 앞에 서다(렘51:20-32)

주하인 2010. 5. 28. 12:57

제 51 장 ( Chapter 51, Jeremiah )

 

어디에 있어도

꽃은 꽃이다

 

작아도 드러나고

구석에 있어도 뜨인다

 

주님의 눈에

내가 그럴 것이다

 

주님 앞의 작은 꽃이다

영롱한 한떨기 원색의 꽃이다

 

내 짧은 생 마무리할 그날까지

최선 다해

주님 영광을

꽃 피워내리라.

 


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의 철퇴 곧 병기라 내가 너로 열방을 파하며 너로 국가들을 멸하며
 메대보고 '너는 나의 철퇴 곧 병기라'고 하신다.


 
24.  그들이 너희 목전에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 대로 내가 바벨론과 갈대아 모든 거민에게 갚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 보고 이러신다.

'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대로 갚겠다'

 

 

세상에는 완전한 '정권'은 없다.

花無 十日紅이다.

 

그 꽃이 피어나는 기간은 전적으로 주님의 손 안에 있으시다.

바벨론이 활짝 피어난 듯 번성함도 주님의 뜻 안에 있다.

꽃은 십일 밖에 못 핀다.

 

 악은 악으로

하나님의 쓰임은 받았지만 바벨론은 결국 망했다.

 모든 원수는 주님의 손으로 .

바벨론이 시온을  건드림은 결국 징죄를 받았다.

 

 믿는 자들도 고난을 겪는다.

불신자 대표 바벨론의 손으로 시온의 징죄를 하셨다.

 

주님의 징죄는 무섭다.

메대의 '부순다', '파쇄'라는 소리가 무섭다.

특별히 '북한의 위협'이 극을 달린다.

전쟁의 위협이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전쟁이 나면 큰 고통이 임할 것은 사실이긴 하다.

 

 

 오늘 나에게 주시려는 말씀은 무엇인가?

위의 여러가지 느낌을 주셨지만

과연 나에게 레마로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시온의 입장이던가?

그렇다면 세상의 강국들이 아무리 이리 저리 바뀌고 변화하고

나랑은 상관없는 몰아침이 있어도

결국 그 것마져도 하나님 붙들고 있으면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말씀이시던가?

 그들의 흥망성쇠, 특별히 메대의 '분쇄기' 같은 파죽지세의 공격에

두려워 할일도 부러워 할 일도 없고

바벨론의 망함에 고소해 할 일도 없다는 이야기신 듯하다.

어차피 그들의 망함은 결론이 아니던가?

 

 어제 유난히 많은 생각을 했다.

당직 방.

 환우들이 조금이라도 궤도에서 벗어난 다 생각하면

내 가슴은 아픔과 불안으로 흔들거린다.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도 좋지만.. .

 어제 묵상 중에 나온 '신상' 문제로

깊은 중심에 다다르려 하니 사단의 저항 탓도 있었다.

'나'와 '세상'에 대한

스스로의 오래된 왜곡된 기본 인식에 대하여

'하나님'의 눈으로 다시 잡으려 하니

저항들이 일어나는 듯 했다.

그 모든 것, 신상 들을 ' 둥근 방패'와 '화살촉'으로

막는 기도를 하느라 그랬다. 

 당직 내내 묵상을 하고 집중을 하였고 일부 깨닫기도 했지만

많이 힘이 들었다.

내 깊은 감성의 구석엔

' 외로움'이란 단어가 아직도 온전히 뿌리 뽑히지 않은 것 같다.

오래된 가슴앓이.

'세상은 마구 돌아가는 데 난...'

주님은 말씀으로 그게 아님을 알게 하고 인식을 허락하셔서

훨씬 뚜렷이, 가벼이 느껴지긴 하지만

가끔 내 대 흉근 한쪽 구석을 얼얼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어쩌면 그 깊은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초조함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했다.

늘 부족한 부족감은 외로움과 초조함을 자극하려 하고.......

이제 주님의 원리는 날 깊이 인식하게 하고

매일 말씀으로 방패를 치라 하시고

화살로 깨라 하시어 훨씬 가볍다.

 당직 중 새벽에 일어나 수술 한건 했다.

피곤하다.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묵상을 들여다 보았지만

그리 큰 감동이 없다.

말씀을 블로그에서 전개하려다 보니

막연히 느껴진다.  

주님이 위안하시는 말씀처럼 생각된다.

'초조나 불안할 이유가 없다. '

' 결국, 모두가 주님의 뜻이시고 주님의 시간에 포함이 되어있다. 

 세상이 주님 안계신 듯 마구 돌아가지만

 결국 그 분의 손 안에 있다.

 그 흐름의 중심은 믿는 자다. 

 나를 둘러 싸고 있는 어떤 것도 주님의 뜻 아니신 것 없다.

 그러려니, 그래도.........해라.

 그리고 주님을 바라라.

 모두가 잘 될 것이다. '

마음이 한결 가볍다.

 

  기도

 

주님.

오늘은 금요일.

일찍 끝나는 날입니다.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은 일찍 끝나는 날이지만

무엇인가 할 열심도 의욕도 없으면서

마르다의 분주함만 느끼며 살아온 제 삶입니다.

주님.

주님 안에서 차분히 하루를 마감할 수 있길 원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기다릴 수 있길 원합니다.

제게 허락된 제삶을 즐길 수 있길 원합니다.

주님.

간절히 원할 것은

우리 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을 조만간 마무리 시키시어

북한 역시 주님 안에서 좋은 마무리가 지어지게 하시고

때가 되면 주님의 손 안에서 '그들'로서 잘 연합하는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아침 신문에 '북한 수용소 '의 비참한 실태를 읽었습니다.

그러한 고난이 이제는 곧 마무리되었으면 합니다.

주님.

 

주님은 선이십니다.

저는 그 선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것을 잊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내 삶에 '그러려니' 하며 녹아 들어가고

주님이 원하시는 어떤 것이 있으시면

잘 알아듣는 열린 귀를 허락하시옵소서.

그리고 필요하시다면

제 고난을 풀어주시어서

남과 나를 위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쓰일 수 있도록

제 달란트를 열어갈 기회를 주소서.

하나 간절히 빕니다.

모 방송에 지난달 보낸 '글'이 채택되길 원합니다.

주님 아시지요?

아니어도 받아 들일 수 있는 제 영혼의 버퍼도 주소서.

조그만 소원입니다.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메대에 대하여 )

 

이런 바벨론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은 다른 망치는 잡으셨습니다.
다른 망치는 메대 바사였습니다.
메대와 다리오는 바벨론왕 벨사살을 쳐서 무너뜨렸습니다.
-
메대(Medes)는 민족 이름이고 메디아(Media)는 그들이 세운 나라 이름입니다.
메대는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 하나인 야벳의 아들
마대(Madai)의 자손들이 세운 나라입니다.(창 10:2, 대상 1:5)
메대는 페르시아와 함께 메소포타미아와 인도 사이에 놓인 이란고원지대에 살았습니다.
-
메대 족속에 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은 기원전 9세기 중엽인
앗수르의 살만에셀 3세(859-824 BC) 때부터 역사에 등장합니다.
이들은 앗수르의 여러 왕들에 의해 거듭거듭 정복되어 조공을 바쳤습니다.
북방 이스라엘이 망한 후 포로된 백성들이 앗수르에 의해
메대의 여러 도시들로 강제로 이주되기도 했습니다(왕하 17:6, 18:11).
헤로도터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 후 기원전 7세기 초에 데이코스가 일어나
메대 족속들을 통일하여 왕국을 세우고 엑바타나를 수도로 정하였습니다.
-
데이코스의 아들 파라오르테스가 남쪽에 있던 페르샤족을 복종시켰습니다.
파라오르테스의 아들인 시악사레스(Cyaxares I)가 즉위하여 약 40년간 다스렸는데,
그는 앗수르를 넘어뜨리기 위해 느브갓네살의 아버지인 나보포랏살과 동맹을 맺었고,
BC 612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시켰습니다.
이때 앗수르의 영토는 양분하여 티그리스강 동쪽과 북쪽은 메대가 차지하고,
바벨론은 이 자연적인 경계선의 서쪽과 남쪽을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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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악사레스의 아들 아스티아게스가 즉위하여 약 35년간
다스렸는데 그가 바로 고레스의 외조부라고 전합니다.
역사가 헤로도터스에 의하면 아스티아게스는 꿈을 꾸었습니다.
자신의 딸 만다네에게서 강물이 흘러나와 아시아 전역에 넘치는 것을 보고,
이를 경계하여 딸을 메대의 귀족에게 시집 보내지 않고
그의 페르샤의 봉신왕인 캄비세스 I세에게 멀리 시집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결혼 관계를 통하여 태어난 것이 바로 페르샤의 국부인
고레스 대왕(Cyrus II 558-530 B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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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의 기록에 의하면 고레스가 12세 되었을 때,
외조부인 아스티아게스는 딸과 외손자를 불러들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간 뒤에도 고레스는 메대에 남아서 외조부에 의해 양육되었습니다.
고레스의 비범한 재간과 통솔력은 그가 장차 위대한 통치자가 될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한 때 외조부에 의해 고레스를 죽이려는 시도까지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고레스에 의하여 도전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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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53년 고레스는 종주국인 메대에 대해 반기를 들고 외조부 아스티아게스에 도전했습니다.
처음 두 번은 패했지만, 세 번째 싸움에서 메대의 내분으로 마침내 550년 고레스는
수도 엑바타나를 점령하는데 성공했고 아스티아게스도 사로잡았으나,
선대하여 저 멀리 카스피해 남쪽의 히르카니아의 지방 장관으로 보낸 것으로 전합니다.
그러나 본래 메대와 페르샤는 종족도 같고, 두 왕가가 왕실 결혼으로 긴밀히 관련되어
한 나라 같았기 때문에 급격한 정변은 없었습니다.
한 왕가에서 다른 왕가로 정권이 교체된데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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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페르샤의 귀족들이 정부 요직에 대거 진출했습니다.
그럼에도 역시 유능한 메대 사람들도 여전히 기용되었습니다.
고레스는 메대 사람들에게 유화정책을 써서 아스티아게스가 죽은 후에
그의 아들 시악사레스 2세를 즉위시켜 메대의 상징적인 왕으로 남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메대와 페르시아의 연합군은 바벨론을 침공하여
BC539년 10월 13일 고레스의 장군인 구바루(희랍어로 고브리아스)가
바벨론에 진입했고, 고레스는 10월 29일에 입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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