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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보시도록(눅5:27-39)

주하인 2012. 2. 2. 10:59

(눅5:27-39)

 

비록

구름 가리어도

해는

그 자리에 있었다

 

나도

그래야 한다

 

비록

삶이 그리

녹녹치 않아도

주님 앞에 나와야 한다

 

언젠가

주님

불현듯

날 찾아

보시길 원하실 때

즉시

기뻐 따를 수 있도록


 

27.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보시고'

 

예수께서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시고

셀 수 없이 많은 곳을 다니셨을 것이며

그 중에 세리는 수도 없이 끼어 있을 것임에도

뜬금없이  - 죄송 ~ ^^;   주께 불경한 표현이지만 느껴지는 객관적 상황 설명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ㅎ -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를 제자로 선택하셨다.

그리고 그는 즉시 집에가서 '파티'를 벌인 후 예수님을 따랐다.

 여기에 '예정론' 을 대입하면 당연한 것이지만

거기에는 변수가 있을 수 있음이 느껴진다.

 만일 레위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그래서 예수께서 그 자리에 지나실 때 그 분의 눈에 '보이지 않았더라면.. ' 이라는 가정이다.

물론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는 없겠지만

오늘 특별히 ' 보시고'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며

'제자'의 입장을 묵상해본다.

레위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또한 가룟 유다가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우지 않았을까?

물론 수 많은 가능성 있는 자들 중 

예수님의 '눈' 에 뜨인 자들 중에....

그게 하나님이 세상에 약속하신 '자유의지' 와 '선택'을 통한

이 땅의 수많은 스토리 재료들이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 기쁨'을 드릴 거리들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

우리 각자의 인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무엇일까?

오늘 말씀에서 보이다 시피

'주님께 보여 드리는 것'이다.

물론 레위는 자신이 그럴 운명에 있음도 몰랐고 그 자리에 나왔지만

그의 세관에 나와 충실한 삶을 견지함으로 인하여

선택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일 그가 자주 자리를 비우고 꾀를 부렸더라면

다른 역사가 씌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굳이 제자로 선택 받는 목적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만나고

주님께 더 깊이 쓰임 받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자주 나를 보여 드려야 한다.

 삶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의사로서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내 주어진 자리에 열심히 서 있어야 한다.

그게 '믿는 자'가 삶을 더 열심히 살아야 할 당위성이다.

삶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기도자'로서 내 모습이 있다.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더 열심히 묵상해야 하고

더 열심히 찬양해야 한다.

 

 어제는 '수요일'

얼마 전 부터 '병원의 전인치유 예배'에 거의 매주 참석하고 있다.

게으르고 나태해져 잊어버렸던 '수요 예배'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오래전에 발길을 끊었던 전인치유 예배가 생각났다.

수년을 '찬양리더'로서 참여하다가 내려 놓은 후

치유 예배의 특성과 더불어

이사간 집을 돌아 보기 싫은 마음과 더불어 발길을 끊었었는데

언제 부터인가 수요일 만 되면 아주 뜨거운 찬양- 정말 잘한다 , 전문팀이 초빙되어서 왔는데..  - 에 끌려

참여하게 되었다.

새해를 맞이 하며 습관화된 수요 예배의 참여는

아침 시간을 조금 당기는 것과 더불어 나의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어제 역시 참 뜨거웠다.

나와 영감이 비슷한 분들이 인도하시는 찬양 안에서

참 열심히 두손들고 주께 영광올렸다.

세상에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

예배에 참여하여 마음이 뚫리는 것.........!

 

 K 목사님의 설교가 이어지신다.

제너럴 셔먼호의 대동강 불시착과 더불어 불타버리면서

그 즈음에 우연히 그 곳에 놀러 갔던 '최치량' 어린이의 손에 넘겨진

성경 두권.

기름 먹인 종이에 한자로 씌여진 성경은 '禁書'였기에

겁먹은 그는 평시 자기를 괴롭히던 친척 '박영식'에게 골탕먹일 속셈으로

넘겨 주고..

그 넘긴 성경은 마침 도배지가 부족한 박씨의 손에 의하여 기쁘게 받아 들여져

도배지로 쓰였다

그 도배지를 쳐다보며 잠들던 박영식은 결국 성령님의 인도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대 역사가 일어나고

그 집을 결국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헌물한다.

그리고 46년 후 그 곳은 '장대현 교회'로 바뀐 후

길자선 목사님의 인도하에

'회개'가 터져

우리나라 기독교의 대 부흥이 일어난 장소가 된 것이라신다.

최치량은 추후 목회자가 되고...

 

' 셔먼'호의 좌초와 불행.

최치량의 우연한 발걸음

도배지로 이용되어 버린 성경.....

 모두 예정론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지 않을 수 잇던가?

어제 설교는 '환우'분들이 아픈 것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보면 모두 '선'임을 강조하시며

'회개'가 전제되는 감사가 따르면

그것이야 말로 대 축복이 될 수도 있음을 갈파하신 것이시다.

참......감동이었다.

 

나.

그것을 인정한다.

'하나님은 무조건 선을 이루신다. '

나를 무조건 사랑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것도 감사하려는

의도적 노력을 한다.

기도로 그리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오늘 말씀도 그것 아니던가?

레위는 그냥 자신의 그리 자랑스럽지 못한 '세관'에 나와 앉았고

그냥 천직이라 생각하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주님께 보여져 선택을 받았다.

그리고 '따랐다'.

 

나.

무엇이 다를까?

레위의 변하지 않는 일상처럼

나의 일상도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또 내일과 이어져

큰 변화가 없을 듯도 싶다.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그렇듯,

그렇고 그런 목표 이외에는 그리 큰 의미있는 비전은 없다.

그래서 또 하루 내 세관 - 진료실 -에 나와 앉아 있다.

그래도 난 조금은 다르긴 하다.

하나님의 뜻을 늘 살피긴 한다.

그리고 조심스레이 어디쯤 계시는 지 살피는 노력은 하고 있다.

그래서 내 삶의 부패하거나 나태한 부분을 고치려 노력을 하고 있다.

이제 오늘 말씀에 ' 보여 드리는 ' 노력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래야 한다.

날씨는 너무너무 춥다.

아침에 운동을 할때 쓰고 나가는 '강도'가 착용할 듯한 얼굴부터 귀까지 가리는

안면보온대를 차고 나왔다.

사람들이 많아서 어제도 그제도 버스타고 다니기 쉽지는 않았지만

정말 오랫만에 운전하지 않고 다니는

그 사이사이 주님을 묵상하고 성경을 읽고

지나가다 눈에 띄는

내려 쏟아 붓는 눈발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을 기회가 많아져 좋다.

주님에 대한 '옛'감성이 다시 회복된 것 같아 참 좋다.

 새해 들어 다시 축복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리에 대한 설교를 듣는 장면을 연상했다.

정말 살아 움직이는 강력한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들 영혼은 매일 매시간 매초 깨져 나가고 있고

감동으로 너울 거렸을 것만 같다.

그런 그들이 시간이 지나며

'가룟 유다'는 배반을 할 태도를 연습하게 되고 ㅜ.ㅜ;;

어떤 이들은 정권을 잡을 때 차지할 자리를 탐하고 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무료한 3년의 공생애 사역에

영적 양식만 먹고 좇는게 힘들 것이 예상은 되긴한다.

그러기에.. 이 새해의 정결한 감사의 마음이

더 유지되기 위해서

어찌 해야 하는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자식'들의 장래.

그들에 대한 나의 영향력을 어디까지 끼치는가 의 문제.

하나님께 모두 맡기고 내려 놓음의 자세를 견지함의 중요성에 대한 문제.

사도가 되어도 똑같이 되풀이 되는 그들같이 

변함없는 내 매일매일에서 내가 해야할 비전과의 상충문제.

..........

 

솔직히 오늘 묵상은 이러시는 것 같다.

'지금처럼 조금 더 '영적'인 결단을 하고

 매일 매일을 기도와 더불어 말씀 안에서 삶을 충실히 살아라.

 그리고는 기다리라.

 그러시면 '예수님'의 주하인 , 너에 대한 뜻이 임하리라.'

' 그리고 그 비전 없는 듯 기다리는 생활 태도가

 네 자식들의 도전해야할 세상의 삶에

 어쩌면 부정적이고 무기력한 아비의 모습으로 비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은 내려 놓으라.

 그것이 공생애 따르는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부분과 일치하는 것이다...' 라는 것 같다.

 

내려 놓음

그리고 인도받음.

 

참 쉬운 단어이고 명쾌한 결론이고

그것이 실은 가장 옳은 신앙인의 태도이지만

나처럼 부족한 지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지금처럼 글로 정리되기까지 많은 혼란으로 흔들리게 하는 부분이었다.

세상을 열심히 살면서 내려 놓는 것.

하나님의 일과 세상일의 절묘한 중립을 유지함.

둘을 병행하면서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의 정말 어려움........

 내려놓음...은

내려 놓기로 결단한 순간

더 많은 무게가 다가올 수있다.

가끔 그리고 인도 받기 위하여서는

주위의 책임 -부모로서......... - 마져 소홀히 되버릴 지 모르는

무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잇기에 조심스럽다.

주님은 '관계' 에서 승리하길 바라시는 데........

 

어렵다.

신앙은 시간이 지날 수록 어려운 듯 싶다.

그래서 말씀이 좋다.

더 머리 쓸일이 '하루'만 족하다는 것이다.

내일이 되면 또 말씀으로 날 인도하실 것이시다.

오늘은 그냥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

하나님 앞에 날 자꾸 보여 드리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 밖에 신경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감사하다.

 

 

적용

 

1.  내 세관을 묵상하자.

  내 진료실, 내 가정, 내 교회..에서 최선을 다하자.

 

2. 나는 매일 누구를 만나던가?

 내 오래된 생각?

 내 가치?

 .......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그분의 말씀으로 늘 나를 다져야 한다.

 

3. 기도하자.

 퇴근 시간 전에 꼭 기도하고 가자.

 

4. 성경 세장 읽겠다.

 

5.  내려 놓음.

 걱정은 내가 붙듬이다.

 완전히 잊어 버림은 방치다.

 내려놓되 기도하자.

 그리고 기다리자.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은 기도하고 기다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내 마음은 가장 선한 방향으로 바꾸어 기다리는 태도를 주시길 기도하자.

 

 

기도

 

예수님

절 바꾸어 가심이 감사합니다.

새해 들어 조금 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전의 감동이 조금씩 다시 회복되는 듯하기도 합니다.

주님.

오늘 레위인 마태를 보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주여.

저.. 제자로 간택될 만큼 그리 큰 그릇은 아닐 듯 하오나

주님을 제 삶에 모시며 살길 원하는

그런 사모함이 있습니다.

주님이 절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느끼고 사는 자로서

매일 더 주님 앞에 절 내놓고 싶습니다.

주님이 보셔서

주하인아 날 따르라 하시도록

보여드리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주님.

그래서 아침에 조금 묵상을 해보앗습니다.

그러나 제 안에 걸리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아실 줄 압니다.

제가 어떤 부분들을 힘들어 하는 지요.

주여.

간절히 바라옵기는 그 모든 터부를 없이 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원함이 그것들로 인하여 좌절 됨을 알고 있기에

그리하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주여.

제 약함이 절 여기까지 인도하게 된 '기여부분'도 생각합니다.

그게 꼭 옳지 만은 않은 간구임도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남들처럼 절절히 매달리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주님.

저 이처럼 복잡함 꼬임을 단순하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의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그리고 내 삶을 참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수많은 터부들..........

주여 주님이 원하시면

그게 간구할 것인지 아닌지도 가르치소서.

그러기 위해서 저 주님께 저를 보여드리려 합니다.

특별히 오늘 날씨가 너무 춥습니다.

마음마져 추운 분들이 있지 않도록 도우시고

주님 모르고 세상에 춥기까지 한 불신자들을 불쌍히 여기시사

제 입을 통해서 던져지는 말 한마디 통해서라도

주여 그들의 영에 불을 붙히소서.

복음의 불을 붙히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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