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너는 무얼 보느냐 (렘 24 :1-10 ) 본문

구약 QT

너는 무얼 보느냐 (렘 24 :1-10 )

주하인 2009. 10. 24. 11:16

제 24 장 ( Chapter 24, Jeremiah )

 

 

 

너희가

그나마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를

알고 있느냐

 

그것은

네 뒤에

네 위에

그리고

네 안에 계신

하나님  때문이란걸

 

 


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

    살렘 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내게

    보이셨는데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니이다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이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이 버리되 
 

 주님이 보여주시며

주님이 '네가 무엇을 보느냐 ' 물으신다.

보여 주시는 것은 '극히 좋은'  무화과와 '극히 나쁜' 무화과이신데 저러신다.

당연히도 극히 좋은 것이 좋아 보이고 극히 나쁜 것은 나빠 보일 것이 당연함에도 저러신다.

 그러나, 극히 좋은 것은 잡혀갈 백성들이라하시고

극히 나쁜 것은 남아 있거나 애굽으로 도피할 자들이라 하신다.

늘 그렇듯 주님의 말씀은 이율배반적인 것처럼 보인다.

타향, 타국에서 육체적 심리적으로 모진 고생이 뻔하게 예상되는데

그들을 잘 돌보신다고 말씀하신다.

 마음고생, 몸고생이 심한데 그것을 잘 돌보신다는 말씀이시다.

 그들 좋은 무화과가 좋은 무화과의 조건을 겪는 것은

'고난'이 전제되는 것이다.

그 고난은 그냥 겪는 고난이면 고난에 지나지 않지만

고난이 '좋은 무화과'가 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음을 분명히 하신다.

7절이 답이다.

'주님이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 '

'진심으로 주님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 그것이 답이다.

 고난을 겪는 것은 필연이되

그 고난이 고난을 위한 고난이 되기보다는

주님을 위한 고난이 되고

그 주님을 위한다는 뜻이

'주님이 구원의 하나님이시고 나의 하나님이심'을 알기 위한 고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 만이 '좋은 무화과'가 되기 위한 조건이다.

 좋은 무화과란 무엇인가?

'주님의 백성이 되고 주님은 그들의 왕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다.

 

 어제 금요예배.

구역별로 모여앉고 타교회 목사님 초빙하셔서

전도에 대한 부흥회하신다 하여

워낙 탁월하신 홍목사님이 아니시고

전도 부흥회라는 전제하에  어느 교회나

대부분 비슷비슷한 포맷에

비슷비슷한 부흥사님들의 톤에

비슷비슷한 부담감을 얹어 주며

전도의 당위성을 이용하여 교회에 이득을.......라는 막연한 부정적 생각에

기도원으로 그냥 올라갈 까 했었다.

 아내와 저녁을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어제 늦게 잔데다 아침 조회로 일찍 일어난 터

집에가서 잠을 자고 나서 철야기도 가려다가

그래도 말씀 적용 부분에서 교회에 간다는 맹세가 생각이 나서

아예 졸 것을 감안하여 이층으로 아내와 떨어져 혼자 올라가 앉았다.

 그러면서 어제 묵상의 말씀 중

천지에 편만하시고 어디에나 계신 불같은 하나님.

그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오늘 이같이 배부르고 졸린 상태에서도 올지 궁금해 하며

강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강사님은 시종 일관 날카롭고 높은 소리로 외치셨다.

듣는 동안 졸음이 달아났다.

목사님의 설교는 유머와 간증, 그러면서 적절한 말씀을 이어가며

시종일관 뜨겁게 달구어져 갔다.

워낙 기도를 많이 하시는 - 시간이 허락하시는 때는 평균 하루 여덟시간 정도 하신다 한다.    - 분이시고

부흥회를 많이 초청되어 다니시는 분이시라인지 간증이 예사롭지 않으시다.

점점 '죽었다 살아난 자' 등의 간증이 이어지며 간증의 강도가 크라이막스를 달리면서

당신이 목사고시를 며칠 앞두고

아내분의 실명 사건

갓 태어나 몇달 안된 아들의 마비 사건

브라질에 사시던 아버지-그토록 존경하던 - 의 교통 사고로 전신 뼈가 부서지고

뇌출혈로 손도 대지 못하고 돌아가시었다는 전화가 브라질에서 모시고 살던

동생의 전화가 오면서 이도저도 못하고 울부짖고 있을 때

기도하며 처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려던 때

주님께서 '왜 감사하지 못하는가'하는 메시지를 듣고

그냥 억지로 억지로 감사찬양을 드리자 일어났던 기적들

즉, 아버지가 살아나시고 뼈마디 다 회복되시고 뇌출혈도 기적적으로 없어지고

그 후에 아들, 아내 회복......을 들어가면서

고난과 감사에 대하여

그리고 '기적'이라고 일컫어 지는 현상들이

도처에서 많은 분들에게 버젓이 일어나고 있음을

불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에게 들려지고 있었다.

난 ,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인지..........

남의 아픈 이야기 듣고 있으면서 눈물을 흘림이 말라 버린지는 오래되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른 간증 예화때는 아니던 것이 그 목사님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난 때 부터였다.

그것은 '슬픔'이나'공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난

내 멍한 심령과 졸리고 배부른 육신의 상태 속에서도

전혀 한번도 눈이 내리 깔리지 않고

주님이 살아계셔서 날 간섭하듯이

내눈을 들어 뜨게 하시고

내 영혼에 불같은 말씀 - 그 분의 목소리가 날카롭기가 불같고 감동이 불같았다.-으로 소리를 지르시는 것이

어제 큐티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강사님의 주제는

고난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고난을 감사로 바꿀 때' 

더 이상 고난이 아니라는 것이시다.

 그 고난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기회가 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인생은 감사할 조건과 축복으로 바뀌게 된다는 요지시었다.

 

 오늘 좋은 무화과를 보여 주시며

'보이느냐'하셨다.

보여주시는 내 인생의 조건들을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눈으로 보는 내가 되어야 겠다.

 

 

적용

 

1. 고난이 오면 그 고난을 주님을 위한 고난으로 생각해야 한다.

  주님을 더 가까이 하기 위한 고난은 좋은 것이다.

 

2. 나에게 좋은 무화과는 없던가?

 나에게 늘 상존하는 고난은 있다.

 그 고난을 주님을 위한 고난으로 바꾸자.

 솔직히 눈치는 채고 있다.

 체험도 하고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영혼 전체가 그것을 떼어 버리기 보다 받아들이는 쪽으로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아직은 힘들다.

 

3. 성경 일곱장 읽겠다.

 

4. 당직이다.

   기도한다.

   오늘 내일 고난이 없는 하나님이 못느끼는 상태와

   지금의 고난은 상존하지만 지금처럼 주님이 가까이 느껴지는 상태와 어느 것이 좋을 것인가 묵상하자.

  

5. 고난은 끝이 날 것이다.

 좋은 무화과가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된 후 다시 돌아오게 된다고 하셨다.

 고난의 끝은 주님을 내 하나님으로 강력하게 인식하게 된 후다.

 기대로 기다리자

 

기도

 

주님.

솔직히 이전에는 고난이면 몸서리치듯이 싫었었습니다.

주님

이제는 조금은 견딜만 합니다.

그것을 넘어가는 동안 주님이 함께하셨음을 느끼는 체험이 늘어나면서

고난이 반드시 고통 만은 아님을 눈치는 채고 있습니다.

주여.

어제 강사님의 간증 같은 고난은 그러나, 저에게는 견디기 힘들것입니다.

아직은 부러지고 넘어지고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같사오니

견딜 만큼 만 주소서.

주여.

아직 내재 되어 있는 고난을 달콤하게는 보지 못하겠습니다만

주님을 알아가기 위한 도구임은

역시 눈치 채고 있습니다.

주여.

주님은 내 왕이심을 고백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나는 주님의 백성임을 고백하게 하소서.

이 흔들리는 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꾸어

흔들릴 때마다 기쁨으로 발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