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의 평강 위에서( 느4:1-14) 본문

구약 QT

주님의 평강 위에서( 느4:1-14)

주하인 2009. 12. 3. 12:15

제 4 장 ( Chapter 4, Nehemiah )

 

 

 

아침에 출근하는 데

천둥오리 두마리가

아파트 앞 개울에서

미끄러지듯 수영한다.

 

주님 평강 안에서의

내 마음과 같다 ^^*

 

 

 


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사단의 비웃음은 분노를 가장함이다.

그들의 분노는 우리 , 믿는 자들을 두려워 함이다.

그러기에 비아냥은 화 낼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올바른 선택을 반영하는 일이기에

한편으로 기뻐할 일이다.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케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필역하려는가, 소화된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가로되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비아냥의 실제 모습을 보라.

' 이 미약한 자들이 하는 꼴 좀 보라. .. 무엇하는 짓인가?

 지 들만 잘났나?

 제사라도 드리려나?

 하루 아침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은가?

 저리 폼잡고 악을 써도 사상누각일세.

 여우 한마리만 올라가도 무너질껴...

  뭐 성을 보수해?   헛된 소리 하지말라구 해.. .'

많이 듣던 소리들.

악한 소리들.

그럴 듯해서 귀 기울이게 되며

'맞아.. '하는 순간 온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실패의 두려움이 밀려와 자기 혼자만 실패자인 듯

나락에 빠질 것 만 같은 상황이 올듯한 말들...

 남의 좋은 일에 초치는 말 들.

 

 말.

이 말들은 살아 있어서

그래.. 하고 선택하는 순간 영혼에 작동을 시작하여

실제로 결과도 그리 만들어 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말 조심'을 하는 게 중요하다.

반면, 늘 긍정적인 말을 접하고 생명력이 있는 말을 접하다 보면

인생도 그리 펼쳐 지게 되어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언어에 부정적인 단어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공통점이다.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치고 성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우울한 분위기일 때는 부정적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것 처럼

 감정이 '생각'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역이기도 하다.

때로는 몸이 아픈 등 신체적 증상으로 감정이 결정되어 생각이 그리가기도 한다.

반장을 시켜 놓으면 건전한 생각을 많이 하려 하고

그런 경험은 긍정적 생각을 많이 하는 결과로 오는 것 처럼

인간은 '감정-생각-행동-증상'이 전혀 분리될 수 없는 존재로

이 중의 하나를 잘 선택하여도

모든 방향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 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이나 증상은 컨트롤 할 수 가 없고

하려해도 힘이 들기에 생각과 행동 부분에 수정을 가함으로

인격이 변화할 수 있다.

 오늘 보이는 '사단의 상징인 이방인들'의

이 비아냥으로 대표되는 '악한 생각'들은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은 평강으로 유지될 수 있다.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저희가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니이다 하고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되고 고가 절반에 미쳤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하였

    음이니라 
  그러나, 초절한 의지의 소유자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매 시간 매일 그러한 '선한 생각'을 선택할 수 있는가?

사단은 영이고

그들은 우는 사자와 같아서

정신없이 바쁜 일상에서 늘 옳은 '선택'을 하기위해

정신 에너지를 집중한다는 것은

경쟁에서 도태되고

인간성, 인격, 성화, 믿음.......의 고귀한 부분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현대 '포스트 모더니즘' 의 악령에 깊게 물들어 있는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경쟁에서 이겨내기가 힘들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의식이던 무의식이던

'악한 비아냥'의 소리 들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악한 소리에 주눅이 들고

때가 되어 육신의 힘이 약해지는 '갱년기'나

강한 외부적 충격이 오게 될 때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게 되는

그 두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 두려운 상황이란

실제로 환경적으로 어려운 것도 있지만

우선은 그 보다는 강력한 두려움, 무서움, 공포.....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울증'의 상황이다.

 보라.

오늘 표현해지는 구절구절 마다 얼마나 속이 답답한가?

실제로는 현실에 어떠한 변화도 없었지만

곧 무슨 일인가 터질 듯하고

이곳 저곳에서 기습적 공격이 있을 것만 같은...

그래서 답답한...

 

 그렇다.

현실은 아니어도

마음이 그렇게 옥죄어 있으면

그게 지옥이다.

우울증은 이 땅에서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라 누군가 말했다.

설령 우울증이 아니어도

우울한 저런 상황

즉 감정은 애초부터 경험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어찌 이 바쁜 세상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는가?

매초마다 선택으로 에너지를 뽑아버리고는

어찌 경쟁에서 이겨나갈 수가 있는가?

더구나 선교 전도...해야할 일이 태산 같은 데

저런 이웃을 가장한 잡 마귀들의 송사에 매사 ......

 

 느헤미야님의 오늘 태도가 정답이다.

그 분은 기도를 했다.

기도도 정확한 기도다.

'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소서 !'했다.

주님 앞에 철저히 가져와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속삭이는 기도가 중요하다.

사단을 쫓는 기도도 좋고 좋지만

일단 주님 앞에 모든 문제를 철저히 가져와

주님 아버지 앞에 조잘거리는 아들의 입장이 되는 기도가 중요하다.

주님 찾아온다는 확실한 대응법이 중요하다.

그리고는

'저들이....저리.. 요리 .. 이야기 하니  주님 저들을 그냥 두지 마세요.

 저 죄들을 그냥 두지 마세요. 

 도말해버리지 마세요... ' 하고는 그대로 이른다.

 또한,

 '저는 상황이 이렇고 이렇게 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 해결해 주세요'

기도한다.

 그렇게 대처함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인이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철저히 믿고 의지하는 자들이다.

성령의 도우심을 믿고 의지하는 자다.

그러한 우리가 그 어마어마하고 무궁무진한 에너지와 연결할 수 있음에도

괜한 헛된 두려움과 싸우고

혼자 이겨내고

그렇게 한다음 승리하여 주님 앞에 이쁜 모습 만 보이려는 태도는

잘못된 생각이다.

 주님을 내 아버지로 모시고 인정하는 우리이니

악한 생각은 좋지 않은 감정을 가져옴을 알기에

긍정적 생각, 성령의 열매를 우리 인격 안에 펼치는 것이 옳은 것임을 인정하는 바

이 생각 부위의 건전함을 받기 위해

우린 주님을 적극적으로 의지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 올바른 생각의 선택은

영적인 '경건함과 평강'을 보장한다.

감정은 놀랍도록 온화해지고 기뻐진다.

그 분이 펼쳐주시는 영혼의 지평은 한없는 듯하다.

그 한없음이 너무도 놀랍고 기적같아

자주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증상' 이 나온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더욱 겸손해지고

목소리는 낮아지며 포근해지고

자극에 반응하는 속도가 느려지는 '증상'이 현상으로 나온다.

 위에 말했던 '생각 - 감정 - 행동 - 증상'이 하나로

선순환 되어 가는 원리다.

그 순환이 악하게 되어 고착화 되는 것이 '우울증'이다.

 

 

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에게 고하기를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그리고 나서 해야 할 것이 있다.

노력이다.

'기도한 후 두려움이 없어지면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

그 분이 다 도우실 것임을 믿어의심치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난 후

"'우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해서 싸우라" 다.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우리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주님은 결코 세상의 일을 도외시 하라 하지 않으신다.

먼저 기도하고

(기도하는 목적은 주님을 인정하고 그 분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주위, 이웃을 위해 최선을 다해 치열한 삶을 살으라..는 이야기다.

주님은 평강의 놀라운 기적,

심령 천국의 놀라운 감성으로 도우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달려가도 피곤치 않고 쉬지 않아도 곤비치 않을 것이다.

 

 사람이 많다보니

별 사람도 다 있다.

나이 들어도 본성은 바뀌지 않고

의사라는 직업이 인격을 고상하게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당연하지만.. ㅎ

 어제 당혹한 이야기 두번 들었다.

하나는 GS 선생의 말기암 환우 전원 건에

괜히 나를 걸고 들어간 사건.

결국은 나의 결백 (ㅜ.ㅜ;;) 은 밝혀지고 그 선생의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순간 면피용으로 관련없는 타인을 끌고 들어가는

그 분의 유치함이 '화'가 났었었다 .

 어제 '영혼의 성' 묵상이 없었더라면 크게 야단 치려 했던..

오늘 느헤미야님의 기도와 어제의 기도에 따라

솔직히 내려놓고 기도해서 인가?

진실은 밝혀 졌다.

 또, 하나는 퇴근 시간 늦게 행정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모 과장의 지나친 '폭언'과 '업무 과실'에 대하여

직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진료 과장급들에게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지

의견 취합한다고 이전에 당했던 일을 들었노라 전화가 왔다.

 또.. 불뚝..하고 잊었던 옛 일이 올라오려 한다.

분명코 그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었고

그냥 두기엔 위험한 일이긴 했다.

더구나.. 나이든.. 나에게 함부로 까지... ㅜ.ㅜ;;

그러나, 한번 건너 뛴 경험이 바로 전에 있지 않던가?ㅎ

그래서 '아니다.   괜찮다.' 하려 했으나

'옆에 증언하는 다른 임상과장이 있다'라는 말에

지나가는 말처럼 이러한 유형의 위험성이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러니 ' 그정도 면 된다'라며 끊었다.

 집에가니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다.

늘.. 신경쓰이는 게 난 주님이다.

그래서 메시지를 썼다.

'나이도 있으니 그러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가능하시면 제 이야기는 빼주세요.'

엎질러 진 물 담을 수는 없지만 '회개'의 건은 분명하다.

분명코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병원'을 위하거나

'환우의 적정진료'를 위해서 공의로 한 것은 아니다.

속이 상했던 과거 일에 다른 분들이 더 많은 해를 받았다는 데서

마음의 부담을 가지지 않고 덜썩 시원한 기분으로 내 뱉은 것이 맞다.

올바른 감정이 아니다.

그리고 나선 '기도'했다.

'주여...'

편하다.

아침에 역시 담당자가 왔다.

다른 분들에 대한 피해가 너무 커서 내 말은 보고 안해도 상관없을 정도란다.

안되었다.

그 두분 모두 생각을 잘못 선택한 것이 맞다.

하지만 난 다행이다.

내 속의 비아냥 거렸던 사단에 걸리지 않았다.

남들은 아무것도 아닐 지 모른다.

성품이 온유한 천성을 가지고 난 사람들은 아무 것도 무리가 없을 지 모른다.

난, 다르다.

자주 넘어 졌던 '급한 분'의 소유자였다. ㅜ.ㅜ;

지금도 온전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성경의 그 분들처럼 내 행태를 변화시켜 가고 있다.

난 '말씀'을 선택한 후

내 영혼의 성은 날로 remodelling되어 가고 있다.

조금 있으면 그들 사단의 비아냥과 자극에 담담하리라.

 내 영혼은 점차로 지평이 넓혀져 가고 있다.

 

 

적용

1. 주님의 원리가 아닌 것은 '한걸음 ' 멈추자.

 그리고는 심호흡하자.

  즉각 반응을 피하자.

 

2. 주님의 말씀을 선택한다.

 말씀의 원리대로 생각하겠다.

 당연히도 주님의 성령이 날 도우실 것이다.

 그럴 때 내 영혼이 느끼는 자유로움은 말도 못한다.

 

3. 모든 것을 주님께 기도로 알린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서운'해지는 경향이 많다한다.

 어린 아이가 되어간다.

  이유가 있다.

 뒷방에 감금되는 것 싫어하는 마음이다.

 사람들의 갈채가 있어야만 살아나는 것 같은 이 자아의 끈이

 언제나 되어야 끊어질꼬..

 

4. 성경 일곱장 읽겠다.

 말씀 앞에 서는 게 사는 길이다.

 

5. 장해물은 장해물 대로 ..

  세상일은 세상일대로 최선을 다한다.

 

6. 불쌍히 여기는 마음 주시라 기도하겠다.

 

 

기도

 

 주님.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도 살면서 얼마나 부닥쳐서 이겨내기 쉽지가 않았던지요?

그럼에도 올해는 말씀으로 이겨내는 경험을

많이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힘이 납니다.

모든게 주님의 영광입니다.

남 들은 쉽게도 이겨내는 것을

저는 이리도 약한 것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하라 하시는 것 같아

오히려 감사합니다.

어제 '청룡 영화제의 김명민' 님이

그리 소감을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끄덕였습니다.

부족하기에 더 매달리게 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런 큰 상을 받을 수가 있어서

그 하나님이 더욱 감사하다고..

제가 그렇습니다.

남들은 그냥 느끼지도 못하고 지날

예민한 일들이 약함을 초래하고

그 약함을 통해 주님의 기쁨을 더 가까이 느끼니 말입니다.

주여.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 더욱 더 그러기 위해서

저에게 더욱 주님을 깊이 생각할 수 있길 원합니다.

주님.

기도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

매사에 반응하지 않고 주님 만 이르는 제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이시여.

불쌍히 여기시올 것은 저들에게 깨달음을 허락하소서 .

저들도 악한 비아냥을 나쁜 선택으로 받아들임 탓인 줄 압니다.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사단의 송사에 무조건 적으로 반응하는 오늘 날의 세태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에게 옳고 크고 밝고 건강한 진리이신 주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구원의 기회를 허락하소서.

여기 오시는 모든 분들과

제 가족과 제 모든 지인들에게

더 깊은 주님 체험을 허락하시고

늘 주님의 말씀 가운데 올바른 선택 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