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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흐름의 끝(느 2:1-10 ) 본문

구약 QT

내 흐름의 끝(느 2:1-10 )

주하인 2009. 11. 30. 12:37

제 2 장 ( Chapter 2, Nehemiah )

 

 차창 밖으로
노란 은행 잎이
스쳐 지나간다

 

세월도
내 육신의 눈을 
그리
어지럽히며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주님 안에

의지를 내려놓고
바라보면
그건
스쳐 지나감이 아니다

그것은
흐름이다

 

흐르는 것은
세상이 아니다
흐르는 것은
세월이 아니다
흐르는 것은
주님이시다

 

흐르는
주님의 원리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맞추면
어지럽지 않다
오히려
아름답다

 

 

 

 

1.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금식하고 기도하고 나서 수개월 지나도 주님의 응답이 없다. 

( 기도하고는 기다리자.

  완전한 변화  한꺼번의 완전한 응답을 기대함은

  마음을 상하고 초조하게 한다. )

 


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얼굴에 드디어 수색이 든다.

왕 앞에서 큰일 날 일이다.

드디어 들켰다.

( 근심하고 걱정할 일은 내 할 일이 아니다.

  주님이 하실 일이다.

  하지만 , 그게 마음대로 되던가?

  그것 마져도 들어서 주님은 응답하신다.

 내려 놓음 . ) 


 
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

     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하지만 그는 담담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 기다리는 동안 준비해야 할 일 )

 

 

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중요한 것은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잠시 화살기도 .

그러고는 왕의 묻는 말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 늘 깨어 있어야 한다.

   화살기도를 자주 날려야 한다. )

 


  
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거침없는 대답.

오랫동안 생각했던...

그리고는 응답이 떨어진다.

 ( 세상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기다려야 한다.

     
  
 
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그러나,

응답 후에도 반드시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응답 뒤에는 사단의 '근심'이 있다.

사단의 근심은 장애물이 생길 수 있음을 뜻한다.

느헤미야님은 몰라도 벌써 반대 세력들이 듣고 있다.

그리고는 심히 근심하고 있다.

( 모든 일에 주님의 뜻이 임하심을 믿어야 한다.

  궁극은 '선'이지만 과정은 아닐 수도 있다.

  오래 걸려서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만

  방해는 또 있을 것이다.

  그것마져 주님의 뜻이다.)

 

 

  여러가지 어렵지만

자식들 문제 만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또 없는 것 같다.

생각 같애서는 이렇게 이렇게 하면 쉽게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눈 앞에 뚜렷이 보이는 것을 못하는 애들에게

다구치다 보니 아이들은 크면서 자존감이 약해져 있고

다 커버리니 서먹거린다.

큰 아이 군대 갔다오고

내년 복학 때까지 겠지만

지 방에 틀어 박혀 밤낮 바뀐 상태로 컴에 매달린다.

 울뚝불뚝 성질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기도하고 인내 했다.

아뭇소리 안했다.

오히려 사과 깍아 들어가서 '먹어가며 해라... 먹어야 힘내지.. '했다. ^^;;;

아내가 옆에서 웃는다.

한 두달 참으니.. 아이가 오히려 다가온다.

어제는 '지'가 먼저 다가와 용돈 좀 달라한다.ㅎ

지 엄마와 난 '웃음'나오려는 것 참느라 힘들었다. ^^*

서서히 가정의 회복의 봄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참 힘든 과정이 맞다.

급한 성격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가 많았다.

그래서 집안에 비교적 썰렁 ~한 편이다.

작은 아들 군대가기 까지 큰 아들이 군대 가 있었던 시기.

둘째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많이 차분해져

아빠 엄마와의 관계가 회복되어감을 보고

군대에 들어 보냈다.

그 과정이 참 힘이 들었지만

말씀 앞에 서려 하는 동안

하나하나 풀어지고

둘째는 둘째 답게 훨씬 달라 붙기 잘하는 천성으로

말씀 읽고 나누고 교회에서 신앙 생활 회복 시키고

많은 부분에서

정말 이게 옳은 방향이구나.. 하는 쪽으로 인도해갔다.

그리고는 입대.

아이의 아픔.

전화..

어제의 묵상에서도 썼듯이

사단의 흔적은 오래도 갔다.

그래.

그래도 둘째는 시간이 지나면... 이라는 확신이 강한 편이었다.

 첫애.

솔직히 큰 아이는 '비상'했다.

훨씬 귀족적이고 자기 단속도 잘하고

자랄 때 부터 빠지는 게 없었다.

배움에 대한 욕구도 많고

실수를 하지 않는 아이였다.

하지만, 문제는 나였다.

불신의 가장,

역기능 출신의 성질 급한 가장으로 과도한 기대를 걸은

자수 성가한 아빠가 바로 나였다.

내 아이에 대한 사랑과 자랑이 클 수록

아이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폭언 ,....은 아이를 많이 아프게 했었다.

예수님을 믿고

주님 예수님의 사랑이 감사한 만큼

그러지 못하고 잘못된 가장의 나는

아이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많이 힘들은 아빠이자

나 였었다.

그러다가 이제 정말 말씀으로 깊게 다가온 주님의 평강을

깊게 영혼에 받아 들이기 시작하면서

아이에게 올바른 아버지 모습을 보이고

아이에게 좋은 믿음을 내려주고 싶은 시기가 되자

아이는 많이 많이 나이가 들어 버렸다.

 제대하고 나온 아이.

아이의 반항은 이전 부터 였지만

청년의 아들은 가까이 오려 하지 않았다.

벽이 너무 두터웠다.

그래.

그러면서 그냥 더 이상 큰 상처 안주고 지내면 되지만

주님은 날마다 말씀으로 평범한 가정보다는

조금은 더 나은 가정을 말씀하시고

아이가 가진 그 아픔에 대하여 회복을 기대하시는 느낌이었다.

내가 할 일은 그럼에도 없었다.

 대화도 시도 했고

 통제도 해서

아이를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미래를 향해 계획을 세우도록 유도하려 해도

오히려 반항으로 만 오고

그것은 나이들어가는 부모로서의 자괴감을 훨씬 더 크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둘째에게 성공적인 가장은 아니어도

이전보다는 나은 모습으로 이끈 경험이 있다.

말씀에 매일 나를 맞추다 보면 될 것이다.

결국, 시행 착오는 수정하기로 했다.

'내'가 하려던 모든 계획을 내려 놓았다.

걱정도 내려 놓았다.

엄친소에 대한 비교도 내려 놓았다.

말은 쉽다.

그러나 쉽지 않다.

 늦게 까지 컴에 붙어 있는 아이를 아무소리 하지 않고 견디는

의사로서의 아버지는 아이의 관절 및 '중독'을 걱정하고

정서적 파괴를 걱정하게 하는 소리가 들리게 된다.

몇 번이나 방문을 열고 '야....' 하고 소리 지르며 예전처럼 강압하고 싶은

충동을 참은 게 한두번이 아니다.

 이웃의 성공한 자녀를 비교하고 온 날이면

군대 다녀와 비전 없이 컴 앞에 만 앉아 있는 아이는

'실패자 '아들이다.

 아내와 난

그게 주님의 원하심이 아닌 지 알면서도

잠시 잠시 '낙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과정에서 아내와 아들 사이의 갈등도 있다.

아내가 힘들어 하면 나도 답답하다.

참으로 많은 부분 영적 충만함을 유지하면서도

가족의 갈등 부분으로 들어가면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함이 우리를 사로 잡는다.

그래...아이라고 저러고 싶을까..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하다.

 그러면서 답답함이 올라오면 잠바를 입고 기도원에 올라간다.

다행인 것은 기도원이 집 바로 옆이다.

주님이 날 정확히 예견하시고 이곳에 내 집 마련 해주셨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ㅜ.ㅜ;;) 산부인과 의사는

많이 힘들다가 3년 전에야 겨우 이 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주님은 기다림의 댓가로

아주 큰 영적 축복을 허락하셨다.

늘 새롭게 날 할 수 있는 .........

올라가며 하늘 쳐다보고 십자가를 본다.

중얼 중얼 .. 십자가에 내 마음을 내려 놓고 기도한다.

아이와 아내와 장래와 남들과 내 권위와..................................

많은 갈등 거리를 십자가 앞에 내려 놓고

'주님 아시지요.... 주님 아시지요.. .' 하면

큰 문제가 아닌 것들은

큰 문제가 아니게 느껴진다.

 제대한지 '두 달'

이전의 불같은 성질에는 벌써 두세번 이상 사단이 나도 났을 것을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

 정말 기도하면 마음이 통쾌하게 느낄 때가 자주 있다.

뻥 뚫린다..는 표현.

사도 행전의 '그날이 통쾌하게 임한다'는 비슷한 구절이 있다.

그것을 난 자주 체험한다.

그리고 나면 내 본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차분해진다.

아내는 나보고 많이 달라졌다 한다.

주님이 날 달라지게 한 거지.... 당연히도..

그리고는 기다리며 기대하고 내려놓고 또......또.....한 보람이 있다.

아이가 훨씬 밝아 졌다.

위에 나온 이야기 처럼

아이가 먼저 이야기를 걸어온다.

'할렐루야'

 일요일.

둘째 아이도 전화가 왔다고 썼다.

아이는 고비를 넘겼다.

그럼에도 단시간에 확~~바뀌기를 기대한 게

기도하는 엄마와

기도하는 아빠인

우리 부부의 솔직한 심사다.

아이는 그리 많이 바뀌었을 것임에도

마음 속에 슬그머니 더 힘차고 더 당당한 둘째의 목소리를 기대했다.

그게 약간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안다.

주님께 기도하면 '확' 바뀌고 180도 기적도 있다.

순식간에 완전달라짐도 있다.

내 담배가 끊어지고

내 불면증이 없어지고

내 불신의 시절이 단 한방에 눈물과 더불어 기독교인으로 바뀌는 것도 있다.

하지만, 아닌 것도 있다.

시간이 지나며 성장하며 살아가는 과정은

그것보다 훨씬 지루하지만

어느새

이해하지 못하는 일로 가지고 '확' 바뀌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을 난 '흐름'으로 인식한다.

둘째와 함께 지난 일년간 말씀 묵상하고 변해가는 그 모습을 보며

더욱 잘 알고 있다.

기다릴 인격이 아닌 내가 내려놓고 포기하고 기도만 하며

기대하는 믿음 가운데

봄기운 도는 봄동산 처럼 큰 아이가 변해감을 보고 느낀다.

아..

'주님이 또 작업하셔가고 있었던데 확실하구나'

 

오늘

느헤미야님이 그토록 간구하고 금식하고 울며 앉아 슬퍼한 어제의 이후

4개월이 지나서  또 한번 가슴떨리는 위기를 맞게 되고

그 위기는 위기가 아니고

그일을 통하여 왕께 직고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 결과 느헤미야는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한편 또 한번 사단의 방해가 예상이 되는 일이

느헤미야님이 알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게 될 것 같다.

 

 느껴지는 게 그렇다.

1.주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

  그 시기는 주님의 온전한 뜻 안에 있다.

  그러기에 그냥 기대하고 기다리면 된다.

2. 그 시기와 방법은 우리의 예상을 넘어선다.

   절대로 실망할 일도 당황할 일도 없다.

3. 주님의 일은 자연스럽다.

   그 때는 기도하고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면

   어느새.. 이루어 지게 된다.

4. 주님과 동행함은 절대로 놓치면 안된다.

  화살기도를 하는 느헤미야님의 습관화된 신앙을 본다.

 ' 삶속의 영성.'

  매사가 주님의 연단과정이다.

  사는 것은 주님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기에 어떤 일에든 주님의 뜻을 생각해야 한다.

   나..............

   아들을 옳게 이끌어 그 아들을 통해 영화를 볼 생각은 전...혀...없다. !!

  단,  그 아이의 아버지로서 역할을 못하면

  난 주님께 볼 면목이 없음이 더 안절 부절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니... 거꾸로 이야기하면 아이에게 더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

  난 주님의 평강을 놓치지 않을 것이란 마음이 강하다.

  또한 아이는 나의 어려움을 답습하면 안된다는 절박함도 많다.

  유전적 아버지와 유전적 아들의 천륜 만 가지고는

  좋은 아버지 될 수 없다.

   그것은 주님을 동행함을 놓치지 않으려는 내 본능이다.

5. 앞으로의 과정,

 그 과정에도 장해는 있을 수 있다.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그냥 받아 들이겠다.

  지금처럼 그냥 맡기고 기다리며 기도한다.

 때가 되어 필요하면 권고만 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

 나머지 부담은 주님이 하실 것임을 믿는다.

 

 주님은 흐름이다.

그 흐름에 날 맡기고 날 내려 놓는 순간

난 흘러가게 된다.

그 흐름의 곳곳에서 '환희'를 맛보게 된다.

 그 끝은 바다가 될 것이다.

 주님의 바다.

절대 흔들리지 않는 광활한 영혼.

탁트인 영혼.

내 깨달음과 내 믿음의 방향은

내 자식들에게

꼭 내려주고 싶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응답이 없는 것같지만

과정은 진행되고 있었고

어두운 것 같지만

벌써 밝아지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안에서는 제가 고민할 이유도 없고

낙심할 아무 당위성도 못느낍니다.

아무 것도 안되는 것 같지만

벌써 다 이루어져 가고 있고

어느때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

화창한 아침의 햇빛을 보게 될 때가 있음을

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주여.

주님은 절대 '선'이고

내 기도의 끝은

반드시 승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려 합니다.

제 자식들...

 그 아이들에게만으로 믿음의 기도를 제한시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흐름 안의 아이들의 선을 보고 있습니다.

주여.

귀한 주여.

감사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일상도 열심히

아버지로 해야할 것도 열심히

장래도 열심히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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