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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는 것( 느 2:11-20 ) 본문

구약 QT

가만히 있는 것( 느 2:11-20 )

주하인 2009. 12. 1. 12:20

제 2 장 ( Chapter 2, Nehemiah )

 

 

가만히 기다리는 동안

나의 발걸음은

늦은 밤시간에도

기도원을 향할 때가 많다.

 

주님과의 긴밀한 만남을 마친 후

젖은 눈을 들어

집으로 향하려다가

올려다보는 내 눈에

조용한 어두움에 깃들어

내리 쬐는 이 녹색의 불빛은

나만이 알 수있는

주님과의 아련한 기쁨을

돌아보게 한다 .

 

주님....

 

 


11.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한지 삼일에
  그냥 가만히 3일 간 있었다.

이 것을 안다.

 

'가만히 있는 것' 의미.

'분주하지 아니함'

'기다림'

'내려놓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지켜봄'

'그 분과의 내밀한 동행'

' 평강'..


 
12.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내 하나님.

내 하나님이란 단어를 '아.. 실제..!' 라 느낄 수 있는

행운을 가진 자들이 얼마나 될까?

난 고난이 많은 자가 맞다.

하지만 그 고난에 비례하여

성경 속의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으로 느껴질 때가 자주 있다.

 

 내 마음을 감화하사.
솔직히 난 나를 안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은

내 본성으로는 절대 불가하다.

메마르지는 않은 자고 감성은 있지만 분석적이다.      

그 분석은 이론적이고 합리적 - 이 합리적이라는 기준은

내 경험을 철저히 분석하고 가져다 맞추어 본다는 의미다.

절대 합리적이 진리에 가깝다는 의미는 아니다.  - 인데 맞지 않으면 믿지 않는 다는 이야기다.

그 내 마음에 '첫사랑'으로 강력하게 임하셔서

감화시키시고 예수님의 살아계신 사실을 의심치 못하게 하신 후

자주 자주 삐껴 나오는 이 모진 마음을 갈아내셔서

이제는 모진 생각의 흔적들은 별로.........

그리하게 되기 위하여

주님은 살아계셔서 내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감화시키는 작업을 하셨다.

의심과 악한 모진 판단 들을 녹이시기 위해서는

감동시키지 않고는 안되셨다.

나에게 주님은 '감화'다.

감동이다.

기쁨의 연속이시다.

그래서 믿는다.

지금껏 ...

 

예루살렘을 위하여'

누구를 위한다는 것은 나에겐 그리 의미없는 일이었다.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은 나를 감동시키는 일 뿐이었다.

그것은 아주 가까운 자들에 의한 상처 탓이었다.

말의 상처.

관계의 상처.

......

그러기에 난 내가 남에게 해를 주지 않고

나의 감성에 어긋나지 않는 도덕적인 삶 만 살다가면

그것이 그냥... 어쩔 수 없이 태어난 ... 이 세상에

내가 하는 최선의 도리일 뿐이었다고 생각했다.

예수님 믿고는

나를 온전해 주시는 유일한 분이신

그 분' 주님을 위하여 ' 

그 분의 말씀을 따라 내 안의 성화를 이루어 가다가

주님 부르시는 그 날에 기쁘게 웃으며 가는 게

내 최선의 삶의 목표로 조금 바꾸었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위하여'  주께서 '나에게 행하시는' 것이 있음은

그리 고려하지 않았지만

말씀을 따르다 보면 '예루살렘'과의 '관계'를 고려치 않을 수 없었다.

'주님은 주님의 주권대로' 사랑하시는 자녀들의 마음에

강권적으로 감동을 주시사

남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시고

가끔은 선택받은 리더 들에게

그들 백성을 위해 잘 이끌어 나가도록 '강권적으로 '인도 하신다는 이야기다.

그 리더가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뛰어난 자들 뿐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리더로 설 수 밖에 없는 관계를 말하기도 한다.

'아버지' 로서의 리더.

직장의 장으로서의 리더.

나이든 자로서의 리더.

........

 수많은 관계에서도 주님은 그들 지도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우리의 마음에 '감화'를 넣어서 '행동하도록' 행하신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게

우리 들 , 말씀 앞에 겸허하길 선택한 자들이 할 일임을

조금씩 더 깨달아 가고 있다

그것은 그냥 단순한 의무를 넘어선다.

위에 계속 언급하였지만 '감화'와 감동을 통해서 그렇다.

 

 
 
18.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느헤미야는 그 감동과 감화를

'하나님의 선한 손'이라는 표현으로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한 손'  

그 분 하나님이 직접 손을 들어

유치원생 아들을 이리 저리 이끌고 다독거리는

부모님의 손같은

그런 '손'.

 

 거기에 느헤미야가 할 일은 그냥 가만히 맡기는 것 뿐이었다.

 맡기는 것은 ' 거부 반응'을 내려 놓는 것이다.

자기의 통제를 빼앗긴 다는 것은 불쾌한 감정이다.

정말 어린이라면 몰라도 초등학교 저학년 만해도

이거하라 면 '싫어 !' 라 반응한다.

더 크면 그 부모의 손길의 당위성과 사랑을 앎에도

다양한 이유를 달면서 자기 합리화로 거부한다.

 느헤미야에 나의 입장을 대입시켜 본다.

편한 왕의 관원으로 자리를 놔두고 황무지나 다름없는 먼 고향으로 왜 가는 가?
가면 보기 싫은 , 거지 같은 못배운 , 그러면서 동족이라고

선민이라고 고집 센 자들이 득실 거릴 것을..

또한 내 본 업이 아닌 성전 건축에 이것 저것 해달라고 요구도 많을 것이고

일부는 잘했니 못했니 ...말도 많을 것을 .. 밉다.

 이런 다양한 마음 들이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장애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의 마음을 순종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느헤미야님은 순전한 순종을 하는 사람이다.

  또한, 받아 들인다 해도 거기에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남자들은 특별히 명분이 있어야 움직인다.

비전이라는 이름하에 큰 자격을 주어야 움직이려한다.

그러기에 느헤미야가 보이는 3일간의 '가만히 있음'은

온전히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내밀한 주님과의 동행을 경험하지 못한

남자들이 할 행태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다.

기다리는 동안 자신이 드러나지 못함은 얼마나 남자들로 하여금 초조하게 할 것인가?

 교회에 보면 많은 '봉사자'들이 일요일 여러개의 조직에 속해

숨도 못쉬면서 허덕이며 봉사하는 것을 보고 있다.

그들의 모두는 아니겠지만

그들에게 '장로'나 ....다른 조건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온전히 끝까지 버틸 분이 얼마나 될것인가 ... 하며 생각해 본다.

 과연 나의 헛된 생각일까?

물론, 오늘 느헤미야 님의

그 순전한 '감화'

내밀한 주님과의 동행의 기쁨을 아는 자들이 더 많을 것임을 안다.

그들 주님을 가까이 아는 '선택 받고 순종하는 소수'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함을 절실히 바란다.

 

나.

주하인.

자격이 되지 않아 그런 열심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느헤미야님의 리더로서의 절절한 '비전'을 주님께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하나 내 속에서 '감화'를 '비전'으로 표출하고

그 과정에서 '가만히 기다리는 '

느헤미야님의 그 영성을 이해는 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적은 범주이지만

내 삶속에서 표출하려 노력을 하고 있다.

그게 감사하다.

 

 

 당직이었다.

제왕절개만 세분 시행하고 왔다.

산모가 있으면 밤새 잠을 못잔다.

자다깨다 한다.

두 분 째는 세벽 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한 분이 문제였다.

자궁 문이 6cm에서 영 열리지를 않는 것이다.

진통은 잘 오는 데 비 특이적이다.

지난 낮 동안 진통 유도제를 넣어 두었던 환자로 다음 날 아침인

오늘 7시에 촉진제를 쓸 예정이던 환자다.

그런데 밤새 진통이 오기는 오며 강한데도

진행이 되지 않고 비특이적이라서 판단이 묘한 환자이긴 하다.

산모는 150cm의 단신으로 골반이 협골반.

이런 경우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촉진제를 써서 조금 뚜렷한 진통을 유도하거나

제왕절개.

 설명은 하였지만 남편께서 비협조적이다.

 일단은 새벽이라서 위험하고 태아 상태가 건강하기에 지켜보기로 하였다.

  아침 일곱시.

 변화가 없다.

시간이 문제다.

촉진제 쓰기엔 태아 곤란이 예상이되고

설령 진행되어도 난 출근이 여덟시 반,

이쪽 여성병원은 아홉시 출근.

따라서 출근시간이 자칫 위험할 수 있다.

담당 과장에게 전화하니 사정상 일찍 올 수가 없다한다.

환우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여덟시 까지 촉진제 보류해보자 하고

내 당직 방으로 올라왔다.

 마음이 답답하다.

위험할 가능성이 많아 지금 제왕절개 하면 좋을 것을..

그러면 출근시간 도 맞고 ...

기왕에 일어난 김에 피곤하지만 기도하기로 했다.

머리가 많이 복잡하다.

한시간 여 동안 시간이 있다.

' 기다림'

서두르고 싶다.

쫓아내려가 예측되는 무서운 결과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강제적으로 제왕절개 시키고 싶다.

촉진제 써도 제왕절개할 가능성이 어쨋든 농후하니까..

그러나, 기도먼저 하기로 했다.

 복잡하지만 집중했다.

주님이 기도를 시키신다.

마음이 풀린다.

'내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내 의학적 예견상황 만 생각했지

 고통 중의 산모에게는 '긍휼함'이 전혀 없었구나.. '

환우와 보호자를 위해 잠시 중보하였다.

당연한 것이지만 늘 위험한 산부인과의 특성상

이런 긍휼함이 많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출근 시간 늦는 것'

약 한시간 정도 늦을 것 같다.

병원에서 그렇지 않아도 성실도를 체크하고 있는 것 같던데...

기도하며 병원 ( 본원인 샘안양 병원과 당직하고 있는 샘 여성 병원')을 위하여 중보하였다.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생각이 정리가 된다.

주님이 주시는 정리의 지혜다.

'그래.  늦으면 주님이 알아서 이해시키실 것이다. ' 

걱정이 안된다.

그래서 중간에 기도를 멈추고 간호사에게 전화했다.

'한시간 정도 늦을 것이다. '

그리고는 환우 분에게 정확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걱정안되도록 할 여유가 생각이 나고 느껴진다.

그렇게 하고 나니 훨씬 기도가 풍성해진다.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생각나는 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회개하고.....

어제 누가복음 읽는데, 예수 십자가 앞에 회개하고 세례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가?

마음이 여유롭다.

기쁘기까지 하다.

 

 묵상집을 펼쳐들었다.

3일간 가만히 기다리는 느헤미야가 눈에 들어온다.

그 분의 기다리시는 이유가 이해가 된다.

내 마음이다.

서두르지 않는다.

아침 의 serene 이란 분의 답글이 눈에 들어온다.

'serene'은 '조용한' , '고귀한'이란 뜻이다.

그 분의 답글이 날 감동시킨다.

하나님은 '감동'이다.

난 늘.................................

주님의 말씀 앞에 감동한다.

환경과 상황을 통해 감동으로 주님은 얼굴을 보이신다.

아침이 감동이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동하는' 느헤미야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산모'와 '여성병원'을 먼저 생각하겠다. .. 라는 마음이 결정되었고

그것은 '주님의 감동'이 날 인도하는 생각이다.

그렇다.

그게 올바른 흐름이다.

내 영혼이 흐를 올바른 방향이 맞다.

 묵상의 구절처럼 내 마음에 감화를 집어 넣어 주시는 듯하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마음을 넓히라 하신다.

그러겠다.

 기도가 끝나고 다시 여덟시 되고 내려가니

산모와 보호자들이 먼저 그러신다.

'제왕절개' 해주세요.'

그래.

그게 맞다.

그러마하고 시간을 잡아보니 마취과장님이 8시 40분에 온단다.

잠시 올라가서 세면을 마치고 조금있다가 수술을 하였다.

태변에 듬뿍 젖은 애기가 나왔다.

당연히도 수술은 잘 결정했다.

이쁘게 닦이고 신생아실 보내고 수술을 진행하니 다른 과장들이 출근했다.

맡기고 나왔다.

 

 아침이 유난히 맑다.

현관문을 나서자 마자

내리쬐는 아침 양광을 받으며

번쩍번쩍 거리는 개인 택시 - ㅎㅎ 최소한 내 눈에 그리 보였다.

실제로 내부도 굉장히 깨끗해서 감탄하며 칭찬을 했더니

기사님 , 너무 좋아 하신다.

하나님의 감동은 많은 분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친다. ㅎㅎ -  가 성결대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해

내 눈 앞에 '리무진'처럼 당당하게 나타난다.  ^^;

 

 

적용

1. 가만히 있는 영성을 깨닫자.

  가만히 있는 것은 초조하다.

  지는 것만 같고 소외되는 것 같고 도태되는 것 같다.

  가끔은 게으르지 않는가 할 때도 있다.

  잘 구분하고 주님 말씀 하에서 가만히 있는 내가 되자

 

2. 예루살렘을 위하여 

  남을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그것마져 감동에 의하여.

 

3. 주님의 감화를 기다리자.

  절대 주님을 앞서지 말자.

 

 4. 피곤하다.

 피곤할 때 마음이 약해진다.

 주의하자.

 

5. 성경 일곱장 읽는다.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아침을 무사히

큰 트러블 없이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과정이

저와는 스케일이 너무도 다른 느헤미야님이시지만

하나님의 역사와 그 안에서 흐르는 영적 교류가 비슷함을

전 느낍니다.

주여..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늘 주님의 뜻이시면

무리하고 무례한 내 옛 구습들이 날 사로잡지 못하게 하시고

주의 인도하심 안에서 흐르는 영감을 허락하소서.

감화시키시고

절 남들을 위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다리고 차분히 주님을 교류하는

그런 믿음을 이어나갈 수 있길 소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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