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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랑에 취하여 (요14:15-24 )

주하인 2009. 3. 25. 11:46

제 14 장 ( Chapter 14, John )  

주의 사랑에 취하여

 

주님.

 

이리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답니다.

 

피처럼 붉은

이 죄인 중의 괴수를

오직 당신의 은혜로 씻으셔서

희디 흰 영혼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죽을 수 밖에 없던 

이 메마르고 거친 영혼에

초록의 생명을 부어 넣어주시다니요.

 

주여.

 

이제야

이 주모는

기쁨과 감사함을

주님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아주

조금이나마

감당하여 보렵니다.

 

사랑합니다.

주여 ♥

 

주님의 사랑에 취한 자입니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사랑한다면 말씀을 지켜야 하겠지.

하지만, 말씀을 지키기만 한다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인가? 

 전제가 있다.

'주님의 사랑을 아는 자' 만 해당한다.

주님의 사랑을 알고

주님을 사랑하려 한다면...

계명을 지키는 게 당연하다 라는 말씀이다.

 

 게으른 주모.

핑계 쟁이 주모.

이제는 결단해야 지 않는가?
주님은 큰 사랑을 계속 보이시고

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확신하니

주님의 사랑을 이유로 계명을 지키려는 결심이 필요하지 않는가?ㅎ

더구나 두번 씩이나 강조하시지 않는가?

 

주여.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 (NIV : another Counselor  :고문 , 상담역

    KJV :another Comforter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補惠사.

도와주시는 은혜로운 분.

영어로는 NIV에서는 고문, 상담역

KJV에서는 위로자로 나온다.

 

 어떻게 보면 영어가 더 정확하게 깨닫도록 해주기도 하지만

성령님을 한계 속에 집어 넣는 것 같아 안타까운 느낌이 없지 않다.

가끔은 '개역개정'이 놀라울 때가 있다.

어찌되었든 간에 성령 그 분은 '상담'자가 되시기도 하고 위로자가 되기도 하신다.

가끔은 인생의 기로에서 고문의 역할을 해서 우리 삶을 제대로 이끌어 주기도 하신다.

 실제로 모든 면에서 '은혜'를 끼치시는 도우시는 분이 맞다.

 

 아침에 환자 한분이 오셨다.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폐경'

당황하신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히 홀몬 치료에 대하여 물으신다.

 의사로서 안타까운 것이 이것이다.

늙어가는 것은 병이 아닌데

자연스러운 육신의 현상 중에 조금 빨리 노화가 온다고

병으로 인식하고 '홀몬'을 적극 사용 - 이익은 많기는 하다.- 하기 위해 서두르는 것.

그래서 난 '선택'을 권했다.

자연스럽게 영육혼의 조화를 이루어 가며 '노년'을 맞이하다가

정말 힘든 육신적 문제를 만나면 그때가서 호르몬을 고려해볼 것인가

아니면 육신의 문제니 간단히 홀몬을 먼저 선택하실 것인가.. 에 대하여.

물론 두 선택의 장 단점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예수님' 믿는가에 대하여 슬쩍 물어 보았다.

어리둥절 해 하신다.

 난, 예수님 믿으면서 좋은 것이 이것이라고 설명했다.

천국을 보장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보다 '이 땅위에서의 삶이 단순해진다'는 것이 좋다라고 했다.

 삶은 매 시간 '선택'의 결과로서 이루어져 간다.

그 모든 선택을 나 혼자 하려니 스트레스 받고 추해져 가다가 우울해지는 것 아닌가?

우리는 매사 주님께 묻는다.

그러니, 삶이 가볍지 않은가?

 보혜사는 '상담자'이시자 '위로자'이시자  매사의 도움이시다.

그는 내 보호자 이시기도 하다.  

날 혼자 내 버려 두지 않으시겠다고 하지 않으시는가?

 예수님 믿을 것을 간곡히 권하고 진료실을 내 보냈다.

 

 그런데 '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하여 간구할 때

헷갈릴 때가 많았다.

어느때는 예수님을 빌다가, 어느 때는 성령님을...

차이가 없음을 앎에도 가끔은 당혹스러울 때가 없지 않았다.

예수님은 나에게는 '고난을 감수 함으로 얻어지는 성화의 모범'으로

성령님은 '부활 이후의 축복'의 존재로...

 물론, 믿음이 일천한 탓도 있지만 일천한 이 주모의 머리와 영혼으로는

두 분의 상반된 듯한 이미지를 온전히 융화시키기는 어려웠다.

 

 오늘 '또 다른 ' 보혜사라 나온다.

또 다른 보혜사란 예수님도 보혜사라는 말씀이시다.

이해되지 못할 듯 하면서도 이해가 될 듯한 말씀이시다.

 아래에 단초가 나온다.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주님 예수님은 승천 하신 후 세상에 재림하실 때야 오실 분이시지만

그 분은  성전이신 내 영혼에도 거하시는 분이시다.

 

 보라.

하나님은 그 분 안에

그 분은 하나님 안에

나는 예수님 안에

예수님은 내 안에..

성령님의 존재는 어디?
어찌 이해가 될 것인가?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가?
삼위 일체의 하나님을 믿은 순간,

우리는 역설적이고 이해하지 못할 신비적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분의 놀라운 임재 안에 거하는 체험을 한 우리는

그 분이 내 안에 계심을 확신할 수 있다.

머리가 아니다.

영혼이 그렇다.

나는 그 분 안에 거하는 것을 또 알 수 있다.

그 분이 예수님이시기도 하시고

또 성령님이시기도 하심을 알 수 있다.

믿을 수 있다.

아직 그 개념이 영혼으로 확실히 증거되지 않지만

예수님이 보혜사고

보혜사가 성령님이시고

두 분이 다 보혜사이고

성령님과 예수님은 다른 보혜사이기 하다는 것.

 

 그 차분하고 인내와 성화를 필요한 시간에는 주님 예수님 보혜사 안에 거하게 되고

전도와 발전과 축복과 회복과 에너지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주님 성령님 안에 거하게 되는

그래서 날로 주님의 임재 안에서 동행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하나님의 그 영원무궁한 에너지 안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은 더 깊이 느끼게 되길 원한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삼중 보호를 믿기에 감사합니다.

그 삼중보호의 평강을 알기에 감사합니다.

인생의 선택의 기로 기로 마다 도움자이시고 권고자이시고 상담자이시며

어려울 때 위로자이신 성령님이 계시기에 감사합니다.

힘들 때 좇아갈 모델이시고

날 당신 안에 거하게 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감사합니다.

늘 주시고 싶으신 큰 사랑의 정화이신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기에 감사합니다.

우주의 온 에너지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서 하나로 통할 수 있음을 알기에 감사합니다.

그 하나님의 에너지에 접속하는 길이

다름이 아니고 사랑을 행하고 주님 만을 믿고

당신의 계명을 따르는 아주 간단한

그러면서도 그것마져 도우셔서 의지를 실행할 기운을 허락하시는

성령께서 계시기에 또 감사합니다.

 

정말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보호하시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철저히 내가 할 일이 오직 결단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길 선택하는 것 이외

특별히 할 일이 없음을 감사드립니다.

이 게으름 뱅이 주하인은 특별히 행운이올시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이유로 전 이리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이 부정덩어리 분노덩어리 주하인 말입니다.

주하인이라는 스스로의 자기 정체성을 갖게 해주시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 하며 그 사랑에 취하여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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