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놀라운 평안( 요14:25-31 ) 본문

신약 QT

놀라운 평안( 요14:25-31 )

주하인 2009. 3. 26. 12:02

제 14 장 ( Chapter 14, John )

 

 

 

불꺼진 기도원 건물.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이

잘 다듬어져 있는 나무의 실루엣을

멋지게도 꾸미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다.

 

아니.

내 맘이

더 밝고 평안해서 이리라.

 

주님이

기쁘다.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도움을 주시는 그 분.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신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단다.'

 

참~ 쉽다.  ^^*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평안을 주신단다.

그냥 평안도 아니다.

예수님의 평안이다.

얼마나 좋은가?

하나님의 평안을 직접 주신다니...

 

 세상의 것.

평안이 있다면 반드시 반대급부가 있다.

내가 편하려면 다른 자는 손해를 본다.

우리나라가 경제가 부강해지면 세계의 어느 나라인가는 굶게 된다.

세상이 풍요로와 지면 자원은 고갈되고

지구 온난화는 가속화 된다.

풍성한 소출이 인간의 손으로만 이루어진다면 - 동물성 사료, 유전자 조작 농사...- 땅은 급속히 병들어 간다.

편해지는 일회성 용기의 사용은 지구가 더럽혀지는 지름길이다.

병을 치유하기 위한 유전자 조작은 생명의 파괴를 가져온다.

암이 급속도로 는다.

.......

 

 

 하지만,

주님이 주시는 것은 다르다.

주님의 평안은 '무한'하다.

주님의 평안은 한없이 팽창되어간다.

 평안을 좇기 위해서 노력할 때 나에게는 남는 것이 불안과 초조와 허무와 불행감 뿐이더니

주님께 맡기고 말씀 앞에 내려 놓기 시작하니

평안은 절로 찾아오더라.

그 평안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촉촉한 감성의 배가를 가져온다.

기쁨은 자꾸만 커진다.

평안은 그냥 평안이 아니다.

기쁨의 평안

전율의 평안이다.

 

 그 평안은 세상 삶의 안정도 가져온다.

시기와 방법 만 다를 뿐 사실이다.

난 , 절절히 체험하고 있다.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기적이 다름없다.

주님 말씀 앞에 선 후

내 진료의 패러다임이 확 변해 버렸다.

현실이 바뀌어 간다.

 

 

 저녁에 수요 예배 참석을 못한 차 예배가 간절하던 차

저녁에 늦게 기도원에 올랐다.

침낭 - 아들 때문에 수년 전에 준비한 것이 내 갑작스러운 기도원 발행시 자주 이용된다.

 주님은 하나도 버리시는 게 없다.ㅎㅎ - 을 들기도 귀찮고 춥기도 해서

청바지 입고 혁대에 끼워 차고

겨울 바람 같은 추위를 이기려 두꺼운 옷을 입고 호주머니에 손 넣고 올라갔다.

 개울가를 건너

쌩쌩 불어오는 계곡 바람을 맞아가며

씩씩하게 걸어갈 때의 느낌은 참 좋다.

이것 만 가지고도 주님의 축복을 느끼기도 할 때가 있다

가는 길길이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에 맑은 달과 별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안양 예술공원 , 기도원 길목의 맑은 밤하늘을 수놓는다.

 나도 모르게 찬양을 한다.

찬양을 하면서 쏟아져 들어오는 깊은 깨달음의 선한 생각들.

내가 주님을 위한 일을 선택 - 실은 나를 위함이지만 ..ㅎ-하고

주님이 좋아하실 일을 하기만 하면

늘 그렇게 주님은 마음의 지평을 열어 주시고

하나씩 어두운 생각들 대신

생명의 생각으로 날 채우신다.

이게 놀랍도록 나를 깨운다.

감성이 솟구치고

아이디어가 밀려나올 때도 있다.

 

 수첩을 들어 적는다.

 

내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내 달란트로 - 의사로서, 찬양좋아하는 자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큐티를 하는 자로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문제는

그러한 원리를 앎에도 달라붙는 수없이 많은 잡념 들이었지만

점차로 뚜렷해지고 맑아지는 생각의 정결화는

주님이 원하시는 때

한점 흔들림없는 강력한 '드라이브'로 날 몰아세울 것을

난 깨달았다.

그렇다.

문제는 시간이고 기다림이고 맡김일 뿐이지

내가 서두를 일은 없다.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울 것이다.

 예술 공원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찬양을 혼자서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지금은 창피하고 내가 무슨...이라는 내적 부대낌들이 있다.

주님이 원하시면 내 달란트를 쓰시겠고

그 쓰임받는 하나의 그림 중 하나일 뿐이지만

훨씬 자유로운 삶이 날 기다릴 것은 분명했다.

 아들에 좋은 아버지로서

난 그들에게 인생의 확고부동한 '소명'을 발견하는

길을 보여줄 자신감이 스물거리면서 기쁨으로 밀려온다.

 콧노래 부르면서 올라간다.

 

 기도원 안마당은 지금쯤

벗꽃으로 폭죽을 터뜨려야할 즈음이지만

날씨 탓인가 아직 꽃은 피지 않고 썰렁한 느낌이다.

 그래도 괜찮다.

하늘은 달과 별이 있고

그 하늘을 맑게 스치며 지나가는 춥지만 신선한 바람이 있다.

 그 하늘을 차지하고 있는 기도원 십자가 조명이 있다.

자연의 빛으로 꾸며지는 조경수의 실루엣이 아름답다.

무엇보다 기도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림이 정겹다.

조용한 평안이 날 사로잡는다.

 

사진을 몇컷 찍고 성전에 들어가 자리잡고 기도하다가 잤다.

 

아침에 개운하게 새벽에 일어나진다.

이 게으름 뱅이 아침잠 덩어리 주모가...

 기도 잠깐 하고 집으로 향하려 걸어나와보니

밖에는 비가 제법 내린다.

우산도 없다.

감기가 깊이 들어 있다.

걱정이다.

 

갑자기 지혜가 번득 떠오른다.

침낭을 펴서 온몸에 두르고 가자..

 새벽길 비오는 아침이라선지 사람들이 별로 안올라와 덜챙피하다.

몇몇 사람들이 우산들고 올라올 때는

침낭 을 더 오무려 눈만 내 놓는다. ㅎㅎ

누가 날 알아야 내가 창피하지..?ㅎㅎ

따스하기 까지 하다.

이불 속에 들어가서 집으로 가니 얼마나 푸근하고 좋은지.ㅎ

 집에 들어가 거실에 널찍히 깔아 놓아 말리면서

묵상하고 있으려니 아내가 새벽기도 마치고 들어온다.

 4시 반이면 어김없이 나가는 아내.

우산도 가져가지 않았는데 비 하나도 안맞았다 한다.

 아내는 정말 그러하다.

이전에도 열심히 교회로 - 아주 적은 교회 섬길 때 ,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이던 그때- 삼십분을 걸어서

매일 같이 기도하러 가던 때도

비가 올 때면 기도하고 가다보면 비가 멈추고 올때도 그렇고

참 신기했었다.

 아침에 도 그랬단다.

일찍 나가니 몇 방울 와서 기도하고 갔더니 안오더란다.

나오면서 비가 많이 와 평소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싶어서

다시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고 나오니 비가 멎었다고...

나 올 때는 많이 퍼부었는데...

 

 얼마 전 '세미한 간증' 이야기를 쓴 적 있다.

살면서 기도하고 겪는 약간 특별한 일들,

그러면서 어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하고 지나버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신 흔적을 '세미한 간증'으로 모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예전 같으면 무식하게 그냥 빗속을 걸어 왔을 나...

그래도 별것 아니지만 '지혜'를 떠올리게 하신 것은

당신 기뻐하시는 일을 한 불쌍한 주하인을 위해

주님 성령께서 떠올리게 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또 , 아내는 더 특별한 세미한 체험을 자주 인도하신다.

이것이 모두

성령의 가르치심과 말씀을 생각나게 하심이라는 위의 성경 묵상 구절에

하나도 다름이 아니시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부족한 우리다.

나다.

그러기에 성경에서 '하라'는 말씀에 숨이 막힘을 느꼈었다 .

처음에는...

하지만 주님의 뜻은 그것이 아님을 날이 갈수록 체험적으로 느낀다.

말씀에 나온 것은 다 사실이다.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교훈하시고 상담하시고 위로 하시는 ' 어제의 묵상에서 처럼

'보혜사'로서 기다리신다.

 

맡기면 안락하고 편하다.

쥐고 흔들려는 통제의 욕구를 버리지 않으면 끝까지 힘들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평안'이 그것이다.

주님 성령께서 인도하실 것을 믿고 내려 놓으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평안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 것이다.

걱정이나 근심이 왜 필요한가?

 예전 같으면 기도원 마당에서 쪼그려 앉아

아내에게 전화하고 아들에게 전화하고 혼자 짜증내고 있었을 것을 ^^;;

주님은 지혜로 편하게 하신다.

걱정이나 근심이 왜 필요한가?

삶의 전 분야를 다 이끄실 것을...

 

 

 

적용

 

1. 오늘 당직이다.

 주님 사고나지 않게 하소서.

 늘 그렇듯 산부인과는 위험한지 아시지요?

 너무 피곤하지 않게 하소서.

 아시지요?   저 ..몸이 좀 ..

 

2.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실 줄 믿는다.

 이해한다.

 체험하는 하루가 되자.

  걱정과 근심을 다 내려 놓자.

 그것은 부정의 언어다.

 생명으로 날 바꾸자. 

 말씀으로 내 영혼을 흐르게 하자.

 

3. 평안하다.

 나누자.

 전도 한명하자.

 했다.   벌써...

 

4.  주여. 생명의 원리로 날 채우소서.

  내 삶이 주님을 증거하는 데 온전히 쓰이도록 기도하자.

  달란트가 온전히 이용되도록..

  그것으로 불타게 하소서.

  더이상 반하는 생각으로 흔들리지 않길 기도하자.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