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을 알게 하려하심[겔6:1-14] 본문

구약 QT

주님을 알게 하려하심[겔6:1-14]

주하인 2019. 7. 19. 07:36


1.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난

이제

이리 생각한다.


여호와의 말씀을 놓치지 않는것.

그 분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것이

그 분, 말씀이신 로고스 하나님을 매일 내게 임하게 하는 것이고

그러한 사실이

그 어느 것...

세상의 어느 것 보다 중요하다 생각한다.


즉, 말씀이신 하나님을

매일 내 영혼에 모셔들이는 것..

주님이 내게 임하셔서

매일을 코람데오로 사는 것.

그것 이상.. 내 삶을 유지할 이유가 전혀 없음을 확신하며 사는 것.,.

이제는 고백할 수 있다.



7.또 너희가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게 하여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10.그 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이런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겠다 한 말이 헛되지

    아니하니라 
   구약.

그 중에서도 예언서들은 정말 힘들다 .

그 시대, 고대 중세 시대에 가까운 시절의 인간에 대한 시선이

자칫 살인까지도 쉽게 표현해내서인가

거북하기도 하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질은 같기에

감안하고 볼 뿐,

어쨋든 묵상하기에 버겁긴 하다는 이야기다 .


그 말씀 중에

'하나님이신 줄 알게 하려 하심'이란 구절이 눈에 계속들어온다 .

그 고통, 그 징벌, 그 공의의 그러하심........

그런 모든 힘듦이

결국 '하나님을 알게 하려 하시는 데' 그 목적이 있으심을

지속적으로 말씀하신다.

 그것.

성경 내내 흐르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셔서

우리와 교제 하며 느끼시려는 기쁨이 크시므로

우리의 타락을 통하여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

그래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 (^^; ) 을 가장 싫어하신다.

그것을 영적 간음이라 표현하는 것이시다.

 내 아들들.. 내 손녀

나보고 아버지, 할아버지 아냐.. 라 하면 심한 통증이 느껴질 것이다. ㅠ.ㅠ;

 그러시기에 주님,

온전한 사랑의 정화이신 그 분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고난이 바로 이런 이유이시다 .

'아버지인 나를 잊지 말거라.'

얼마나 처절하신 배려이신가?


 나.

돌이키면 다시는 ~ 살아내고 싶지 않은

그리 힘든 삶을 살아왔다.

굴곡.

누구도 내 상황에서 살아내려면

십수번은 자살할 만큼 될 것이라 생각할 만큼

난.. 녹록지 않은 역경을 건너왔다

어찌 다 표현해낼까?

(궁금하세요?... 그렇다면.. 내 블로그 15년치 다 읽어보세요.ㅎ)

그러면서

점점 깨달아 지는 것이 있었다.


 '아......... 아픔은

주님을 더 깊이 만나게 하는 도구이구나'

그렇다 .

귀찮게 하고 아프게 해서 다가오게 만들려시는 그런

정신적 이상자의 심사가 아니다.

안타까워서 그렇게 허락하신 것이시고

그리 됨으로 다가가 만나는

하나님의 임재감의 그 놀랍고 무한한 에너지의 가능성,

그로 인한 절대 평강의 가능성,

천국의 끝자락의 감성이라도 느끼게 하심으로

점차로 '진리'에 가깝도록 배려하심이시다.

 수년전, 먼저 병원 (미션병원) 에 '전인치유 (全人治癒)' 찬양리더로 봉사할 때

아픈 환우 분들의 '치료'를 위한 열렬한 기도를 같이 하다가

불현듯 깨달은 바,

' 아프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가?

 튼튼함은 축복의 궁극인가?

 아프면 저주이고 죄인인가?

 하나님이 계실 유일한 이유가 이땅의 건강하고 복 받음이 전부인가?" 라는

당연하지만 진실에 마주하는 생각이 뇌리를 채우면서

인사이트로 확실히 내 영혼에 꽂힌 깨달음이

' 어떤 일이든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함이 본질이다' 엿다 .

그렇다 .

아프다가 기도하여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눈물 흘리고 감동하고

결과적으로 몸까지 마음까지 나으면

하나님의 임재가 본질이지

겨우 육신이나 마음이 고쳐짐이 다 이던가?

아니지 않는가?ㅎ


오늘 ,

하나님을 알게 하려 하심..

내게 의미하는 바도 그러하시다.

 하나님을 알게 하심이 '근본'이다.


 그 후에도 아주 많은 고난을 건너오고

건너올 때마다 더 깊은 체험을 하고

더 평온이 찾아오며

이제 이전의 그 심한 롤러코스트 같은 부침이 없고

비교적 어떤 일에도 잔잔함을 유지하게 됨은

이제는 어떤 일이든 주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만나게 하려 하시는

주님의 뜻이 있으실 것임을 믿게 됨이

내 영혼의 기본 흐름으로 바뀌어 가기 때문임을 안다.


 오늘.

새삼,... 잘 알고 있는 이 은혜의 깨달음을 새삼 들어 올리셔 말씀하심은

이 지루한 인생의 변함없는 매일에

또 잊어버리고 망각할 내 귀중한 은혜의 깨달음을 다시 상기시키심이

그 가장 중요한 이유이실 것이기도 하고

또 하나는.. 내 깨달음을 

살아계신 하나님이 세상에 보이고자 하심,

그리함으로 이 글을 접하는 그 누구인가

필요한 만큼 채워지게 하시는 매개체로 쓰려 하심일 것으로 느껴진다


살아계신 하나님.

감사하다 .


주여.

그렇습니다.

이제는 확실히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 부족함, 내 죄됨으로 인하여 그리되어도

아무 이해할 수 없는 내 삶의 그러함으로 인해도

가장 근본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의 임하심을 더 가까이 느끼고

 평강의 하나님을 임재하시는 삶'의 어떠함을

더 깊이 체험케 하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이심을 믿습니다.

주여.

내 깨달음,

모든

주님을 영접한 자녀들이 알게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썩어져 버릴 오물들,

눈 앞에 매끄러워 보이는 속임들이

주님의 임재하실 때 주시는 진정한 기쁨과 감동에

비할 바가 아니어

세상의 그러한 흔들림, 유혹 , 누름  괜한 부하뇌동들

다 내려 놓고

진리이신 하나님 앞에 모두 회개하고

올바로 서게 되는

그런 역사가 일어났으면 합니다.

제게 그런 자격없지만

주님의 놀라운 임재의 감동으로 인하여

저 그리 기도하나이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과거묵상 (2011.11.08)


삶 속에 주님을 초청하다


이리 찬양하는 것도

주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매일 말씀을 묵상함도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한마디 예수님을 전함도

  놀라운 하나님의 사역이다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하는

노력은 진정으로 귀한 행위다

 

그것이야 말로 내 삶 속에

주님을 초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님이 말씀하실 때 듣자.

그러길 간구하자.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을 향하여 그들에게 예언하여
 
이스라엘 '산' .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산'

그것도 이스라엘'의 이름을 띤 늙은 수탉 같은 신앙인의 노릇을 하지 말자.

 

 

 

3.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언덕과 시내와 골짜기를

    향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주님 말씀하실 때 

듣자.

 

 

10.그 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이런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겠다 한 말이 헛되지

    아니하니라
13.그 죽임 당한 시체들이 그 우상들 사이에, 제단 사방에, 각 높은 고개 위에, 모든 산 꼭대기에,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무성한 상수리나무 아래 곧 그 우상에게 분향하던 곳에 있으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4.내가 내 손을 그들의 위에 펴서 그가 사는 온 땅 곧 광야에서부터 디블라까지 황량하고 황폐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그리고는 모든 이유가

주님을 앎에 있는 줄'알라'

 

 주님이 말씀하시는데도 끝까지 듣지 않으면

아.........

듣지 않는 영적 이스라엘 인이면..

산 같이 꿈쩍 않는 '이스라엘 ' 같은 자가 '나'라면...................

당연히도 고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시겠지만

' 사랑에 바탕을 두시며' 허락하신 것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시다.

'주님이 여호와 인줄 알리라' 하신다.

그러기에 고통스러워도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매사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을 위해서 세상을 살고,

내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주님과 교류하는 것임을 아는 것.

그것이 주님이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시다.

바꾸어 생각하면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사는 것'..

그렇게 이어이어 인생을 꾸려가는 것.

그것이 인생의 목표라는 것이다.

 어떠한 재미있는 일도,

무슨 행복한 일도

견디기 힘든 모든 어려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길 원하시는 것이시며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함을 누리면서 사는 것,

그것보다 귀한 축복이 없기에 그렇다.

 

 생각해 보자.

이 허탈한 인생.

살다가 죽고

또 살다가 죽고...

수도 없는 많은 인생들이 이 땅에서 나고 꺼져 가며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많은 고민과 갈등을 가지고

그 것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의미'를 붙혀갔지만

또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들은 '죽음'의 부름 앞에 꺼져가고

그들이 붙혔던 인생의 갖은 이름이나 의미도 '하나' 남는 것이 없다.

결국은 잊혀져 간다.

그러면서 또 다른 세대가 그 자리를 차지하며 그들의 살과 혼을 불살라 가며

또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하다가

영원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 또 꺼져 간다.

 

'명멸'

너무나도 정확한 표현이 아니던가?

그런 과정에서 기뻐하는 것은 또 어떠한 의미가 있고

슬퍼하고 몸부림치고 좌절하고 울고 웃고.........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돈벌고 자식 잘기르고 멋진 영향을 세상에 끼치고 공부 잘하고 세상에 이름내고..................

정말 그게 의미가 맞던가?

그것 마져 시간이 지나면 스러져 가는 조건 들 아닌가?

반총장 님은 또 얼마 동안이나 이 지구상에 기억될 이름이던가?

마이클 잭슨은?

그 유명한 엘비스도 모르는 신세대가 많지 않을까?

복고풍의 유행으로 비틀즈가 다시 이름 내기 전에는 모르는 애들 투성이였다.

비지스를 아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될까?

'나가수'의 조용필 편에서 그 분의 노래가 너무도 대단했음을 보고

후배들의 경외어린 노력으로 그 분을 넘어서려는 몸부림은

부럽기는 했지만

그러한 그들 만의 '리그'를

또 영원에서는 얼마나 기억이 될까?

시간이 가면 또 스러져 갈것.............

 

허무한 것이 이 땅에서 살다가 가는 것이다.

 

............................        여기까지가........

하나님을 전제로 하지 않은

겨우 생각할 수 있는 '인생의 의미 '이자 '무의미'  즉, 허무함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게 되면 달라진다.

 하나님을 아는 것.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그것 이야 말로 '영원'에 내 족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의 그 누구가 날 기억 못하면 또 어떤가?

세상의 누구가 다 칭찬해도 늙어가는 몸과 영혼의 허전함은?

 

 오직 의미는 '주님을 인정하는 것.'

'주님을 아는 것'이다.

 그렇다.

일상에서 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림이 되고

하나님이 그런 나를 기뻐하심을 느끼게 됨이 얼마나 기쁜가?

 

 나.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행운아다.

말씀 묵상 (큐티란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ㅜ.ㅜ;;) 을 하는 자도

전체 기독교인의 비율에서 많지 않은 선택받은 수이겠지만

거기에 난 더욱 깊이 말씀을 받아 들이는 자 다.

말씀을 듣고 적용하려는 노력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느낀다.

내 잘못이 이제는  조금 덜 '죄책감'으로 다가오고

오히려 '회개'함으로 주님을 더 초청하는 기회가 되도록 하고 있다.

매일 매번은 물론 아니지만........

그러니... 그 하나님을 듣고 알아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축복이다.

 

그러기에 오늘 내가 할 일이 있다.

자꾸만 게을러져 가는

나의 중독적 성향을 다시한번 배제 해야 한다.

조금 더 기도의 분량을 늘려야 한다.

주님의 말씀의 본질,

그 안에 깔려 있는 뜻 ...

믿음과 사랑과 겸손........등을 삶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그러한 총론적인 이해가 이제 삶속에서 '각론'으로 되어야 한다.

나 ..

정말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약한 것을 기뻐하리라'

'궁핍을 기뻐하리라'.

'곤란을 기뻐하리라.'

그것이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는 길이기도하다.

어렵다.

어렵지만 각론적으로 쉽다.

이전의 왜곡되었던 잘못된 세상관, 인간관........을 찾아

하나하나 말씀 가운데 기뻐함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것 만 가지고도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본 태도 가 아니던가?

그러기 위해 더욱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어제 다시 말씀 가운데 적용했지만

' TV'나 '비디오'등의 안목의 정욕을 눌러야 한다.

말씀이시고 깨달음이니 그래야 한다.

 어제.

퇴근후 운동하고 집에 가는 길에

힘든 발걸음을 돌려 기도원에가서 기도하고 갔다.

 참 약하디 약한 외로운 내 삶의 방편이다.

그러나, 그러한 약함을 주님의 결국 이루어주실 '선'을 믿고

안타까워 하거나 몸부림 치지 않고

기다리면서 기대하고 사는 것.. 또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이다.

내 부족한 모든 것,..

내 혼자 몸부림 쳐도 더 이상 어찌 할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도 주님을 인정하고 알아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고

모든 것을 주님이 인도하실 것임을 믿어 버리는 것.. 그것도 주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오늘.

무엇을 통하여 주님을 알아갈 까?

더 깊이 내 삶속에 임재하신 ,

내 어릴 적부터,

엄마 배, 어머니 탯속으로 부터 날 만드시고 지으신

내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고 깨닫는 길일까?

 늦은 시간이다.

오늘도 바빳다.

두분의 수술을 마치고 내려오니 이 시간이다.

어찌 주님을 내 일상에서 체험할까?

 

 

적용

 

1. 기도한다.

 

2. 성경 세장 읽겠다.

 

3. 말씀을 기억한다.

 '내가 여호와 인줄 알리라'

 

4. 낮아짐을 기뻐하자.

  약함도 기뻐하자.

  정말 어려운 저러한 말씀을 주님의 뜻이시니 그러기로 선택하자.

 

5. 매 사에 주님을 초청하자.

 

 

 

기도

 

 주님.

 현실.

주님의 뜻을 생각지 않으면 속상하고 화도나고 어찌할 수 없는 혼란으로

머리가 터질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 맡깁니다.

때로는 너무 방치하는 것 아닌가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맡깁니다.

주님께 기도했으니 저도 더 깊이 주님을 알게 되고

그들도 그 상황도 주님을 알아차릴 수 잇을 거라 믿습니다.

주님.

제 삶에 주님을 초청합니다.

주님이 초청되실 분임이 제 인생의 결국임을 앎으로

난 이길 것을 확신합니다.

승리의 인생이 내 것임을 믿습니다 .

지금 변하고 흔들리고 날 배제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듯한

내 주위의 모든 현상들이

신기루이고 사실이 아닐 수 있음도 압니다.

믿습니다.

난.. .승리할 것입니다.

주님을 제가 알아가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주님을 제 인생에 받아 들여 동행하고자 하는

제 열심이 아직 그대로이기 때문에

전 그리 고백합니다.

감사하나이다.

주여.

제 자식들... 제 가족.. 모두 주님을 알아차리는 믿음 되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대를 보다[겔8:1-18]  (0) 2019.07.22
[겔7:1-13]  (0) 2019.07.20
내 지금은 요란하지 않은가[겔5:1-17]  (0) 2019.07.18
단 고난 기쁜 복종[겔4:1-17]  (0) 2019.07.17
일으키시고 세우시고[겔3:16-27]  (0) 2019.07.1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