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시대를 보다[겔8:1-18] 본문
1.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에서 내게 내리기로
나.
매일
주의 권능이
내 위에 내리는 삶,
그래서 더 이상, 세상의 유혹, 과거의 흔적, ....그 어느 것도
내게
별 크게 흔들리는 의미가 되지 않기를 원한다
'주의 권능이
내게 내린다.'
가슴을 스치는 구절이다.
3.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다'
SF에 나오는 듯한 장면이 연상된다.
2011년에도 비슷이 묵상되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물질, 시간, 공간 ,차원........그것을 달리하지만
내 삶의 주변을
멀리 떠서 관조하고 있는 모습.
바라기는
신비로운 체험이 '신비주의'가 아닌
주의 말씀이 있으시니
주의 말씀에 근거한
영적 체험이 되어
정말 생생하게
이러함을 경험하고 싶다.
이제는...
5.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
보니 제단문 어귀 북쪽에 그 질투의 우상이 있더라
'바라보다'
6.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에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보는가"
'보리라' 하신다.
그렇다.
작금의 현상들.
'영적 리더들'이라 했던 존경할 만했던 목사님들.. 수두룩 하게 넘어지심을 보아왔다.
따라하고 싶었던 앞서나가던 기독교 선배들.. 모두 어디에 있는지 흔적도 찾기 힘들다.
열렬히 기도하던 S기도원, H 기도원.........나무 뿌리 뽑으리라던 그 열정들
어디에도 보기 힘들다.
대형교회마다 철야 금요 기도회로 들썩거리던
그 열렬한 부흥의 기운들이 찾아보기도 힘들다.
아.. 이 시대의 영적 상황들.
비록 숨겨진 7천 선지자를 기대하고는 있지만
힘든 시대다.
기후, 환경.
미국 북한 중국을 넘어
잔챙이같은 아베마져 한국을 뒤흔들려 한다.
이 마X 같은......ㅠ.ㅠ;;
............
이 시대에
다행이도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허락되어진
로고스 하나님의 코람데오 하심으로
여기까지 오고는 있지만
이 작은 영적, 육적 버퍼를 가지고
더더구나 하염없이 들어가는 세월의 무게에
이러한 혼란들은
자칫 흔들리는 마음이 허락되어지곤 한다 .
그것 아시는 지
이렇듯 뜨거운, 조금은 신비로운 연상이 되는 말씀을 허락하신다.
그렇다.
이전에 묵상에서도 언급했듯이
J의원의 예처럼, 그 분 뿐 아니라
나이들어가는 자들의 육체적 ,
이 지구에 발들여놓고 물질적 삶을 사는 자들의
그 유한한 한계,
그로 인한 좌절처럼
나이들어가면서 누구나 직면하게 되는
'더 이상 의미없는
늙어 쇠퇴해가는 자들의
자극이 부족해짐으로 오는
영혼의 허함'에
동일한 생각, 더 발전할 기회가 없는 생각들은
'허무함' 좌절. 이 올수 밖에 없다 .
숙명적으로 말이다.
나, 내게도
만일 매일 말씀 묵상이
되풀이 되는 문자의 나열이거나
도덕의 틀 안이거나
철학에 갇혀 있는
무기력한 믿음의 내가 되지 않기 위하여
주님께서 이렇듯 말씀으로
내 영적 인 부분을 더 터치하시는 듯하다 .
그렇다 .
이 무기력한 나이의 모진 세상에
조금은 한걸음 떨어져
이 무지한 죄들에 대하여
주님이 보이시고자 하는 안타까움에 같은 시선으로 보는 것.
그것을 내게 허락하심이시다.
그러핰으로
또 내 매일은 '소망'이 늘어나고
내 내일은 더 힘이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감사하다.
주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나이다.
주께서
임하시어
임재하시는 주님을 인식하며 사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주께서 저를 붙들어 인도하시는
비전을 볼 수 있기도 기대합니다.
시대를 보고
시대에 매몰되지 않고
시대를 긍휼히 여기고 죄를 돌이키게 하는데
일조할 수 있는 제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
주여.
믿고 바랍니다.
주여.
이처럼 살아계셔서 매일 임하시고
그 임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생물학적 환경적으로 노쇠해가며
절망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 시간,
이 팍팍해져가는 현대의 시대
이 환경적으로도 종말의 시간을 달려가는 이 시간에
오직 주로 인하여
비전을 보고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그 말씀 덕에
생명을 보고
우주를 내다보며
영원을 기대할 수 있는 제가 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이 나이와 더 먹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주여.
소망있는 삶.. .
나머지의 그러함을 기대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과거묵상 (2011.11.11)
주님과 앉아 바라보는 지구
1.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에서 내게 내리기로
어디에 있더라도
어떤 상황 속에 있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이 내리시기만 하면
3.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세상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고
난 ' 천지 사이'로 끌어올려져 갈 것을..
하나님의 권능 가운데
성령의 임재 가운데
난 '천지사이에 ' ,
우주에 떠서
차원이 몇차원인지도 모를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뚜렷히 인식되지 못할
그 사이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면
내가 그토록 고민하고 갈등했고 영원까지 버틸 것만 같았던
이 좁쌀 같은 인생의 문제들..
얼마나 많은 갈등과 괜한 자랑과 그에 따른 허튼 고민들... 은
어느새 멀리 사라지고 말 것이다.
즉, 허상은 멀어지고
난 진리이신 하나님의 품에서
또 다른 세계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 안은 '평강'이고 '충만함'이고 '경이'이게 될 것이다.
6.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에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리고는 그 눈으로 세상을 내려다 보면
내가 그토록 죽고 못살고
하나님 나라와도 바꾸지 못할 듯 허덕이던 문제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이었든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을 것을...........
나.
이제 어느 정도
그러한 허탄한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머리 속의 유희에서 가슴에서 내려와 있다.
이제는 내 이땅에서 바라보던 것들의 어이없음이
진실로는 얼마나 큰 '우상' 단지 들이었고
얼마나 큰 어리석음이었고 죄 이었든지 깨달아 간다.
문제는 깨달아 가면서도 또 순간 순간 그 속에 빨려 들어감이다.
어찌 '자식의 문제'가 탈속해 초연해질 수 있는 문제이던가?
어찌 '현실적 흔들림'이 우상으로 치부해 버릴 문제이긴 하던가?
어찌 모든 인생의 변수들이 '먼지' 같은 것으로 내려 놓을 수 있던가?
.......
이게 가끔 가끔 깨닫지만 내려 놓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우상'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천지 간에 주님의 권능에 앉아서
세상을 관조하며 내려다 보고 살듯 현실을 흐르면서
에스겔 님의 오늘 마음처럼 사는 것과
우상 섬기듯, 철저히 매달리며 살거나나
그렇지 않은 듯 하지만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장로 같은 모습과 구분이 될 수 있는가?
어떡해야 하는가?
'성령'의 기쁨을 놓침과 그렇지 않음 차이는 아닐까?
기쁨.
하나님으로 기뻐서 세상의 욕심을 놓을 수 있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세상으로 인한 실망도 내려 놓고 받아 들일 수 있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세상의 실망을 '소망'의 기대로 인내할 수 있다면
그게 제대로 나가는 방향이 아니던가?
그 과정에서 성령께서 도우시고 성령으로 인도하셔서
어느 순간에 세상은 흔들리되
내 마음은 '천지 간'에 떠 있는 듯
고아한 영혼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오늘 에스겔님이 보이시는
저러한 신비한 권능 속 체험이 아닐까?
하나님의 권능.
가능하면 조금 더 폼이 나게 '머리채'를 잡지 않으셨으면 좋았을 것을.. ㅎ
주님은 모든 인간적 기대와 가능치 않을 포기를 허락지 않으신다.
나.
그렇다면 오늘 어찌 살아야 할 것인가?
어제 당직이었다.
아들은 느즈막히 전화왔다.
'시험은 어려웠어요.
하지만......최선은 다했어요'
나름 차분하다.
현실 만을 보면 '피곤하고 어려운데 조금 더 좋은 결과..' 를 기대하지만
그래도 주님은 나에게 '머리채' 잡듯 하시는 것 아니신가 싶다.
허나.. 그래도 말씀 가운데 주시는 메시지를 통하여
내 인지의 한계를 넘어서는 다른 기대를 가지게 하신다.
아이가 나중에라도 이땅에서의 성공을 보게 하실지도
예상 못한 놀라운 기적을 보일 지도
하나님의 다른 예비하신 일을 쓰게 하실지도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적인 깊은 변화를 아이에게 허락하실지
그 어떤 것도 예상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하나 믿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잇는 것은
지금은 그렇지만 '결국은 승리'하는 내 자식이 될 것이란 이야기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어쩌면 '나'와 '내 아내'의 더욱 긍정적 변화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나름의 말씀 가운데 정리는
나로 편하게 한다.
아이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지나친 실망도 할 개연성이 줄어든다.
당연히도 난 스트레스가 적다.
적어지는 스트레스는 내 주변을 편하게 할 것이다.
.....
난.. 그들을, 그들을 통한 내 자아의 성취를 '우상'으로 삼는 일을
조만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아직은 가슴이 좀 멍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난 조금씩 조금씩 걱정과 비교의 답답함.........으로 부터 벗어나고 있다.
오늘도 벌써 어제까지의 이 시간처럼..........
'벌써.. ' 점심시간이 되어가고
'벌써'.. 금요일 오후가 되어간다.
이제 조금 있으면 또 하기오스 찬양에 '성령집회'가 다가올 것이다.
그 벌써의 시간에
난 천지 지간에 잠시 앉았다 간
'여호와의 권능'을 체험한 자로서 서게 될 것이다.
내 그러한 깨달음의 은혜는
또 찬양 시간의 반주자와 찬양대의 목소리를 뚫고 흘러나오는
내 조금의 감동의 목소리를 깨닫는
그 어떤 영혼의 심금을 울려
그들에게 '은혜'라는 깊은 영적 감응을 아주 조금이나마 제시하게 될 것이다.
그게 ... .오늘 내가 '천지 지간에 앉아 ' 있다가야할
내 당위성이다.
적용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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