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을 모심(대상13:1-14) 본문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다윗이 사울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궤 ' 앞에서의 물음 여부다.
하나님의 궤..
어제 금요 예배 때 목사님께서 그러셨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큰 차이는
'상징'성을 이용하냐 아니냐..라는 것이다.
칼빈의 종교 개혁 이후 '쯔빙글리'라는 분의 노력으로
장로교는 '외적'인 '터부'의 시작인 '상징성'에 묶이는 것을 벗어났다는 말씀이시다.
그렇다.
'하나님의 궤'
하나님이 이 땅에 거하시는 장소.
하나님의 보좌와 세상을 연결하는 것.
궤 자체도 중요하지만
궤의 진정한 의미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궤는 현재로 말하면 '교회'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 자신 , 하나님의 성전이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이 거하시도록 하는 노력.
그것을 진정으로 노력함이 중요하다.
다윗의 왕으로서의 시작은
'하나님의 궤'를 올바로 자리잡음이다.
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하나님'을 내 영혼의 구주로 받아 들인다.
그것은 나 자신이 하나님의 '종', 하인이 됨을 의미한다.
그것은 구속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일부분의 자유를 속박당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은 그 속박은 더 큰 '자유'를 의미한다.
이 역설적 진리를 깨달은 자들은
'비파와 수금과 ... '로 연주하며 즐거워 할 수 있다.
이 블로그의 정체성.
'선택받은 소수'를 위한 ......
그 선택 받은 소수들은
진정으로
주님 오실 그날까지
그 속박을 기쁨으로 받을 체험을 한 자들이다.
그들은 이 역설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은 자다.
그래서 , 나.....
이 가상의 공간을 통하여
모든 믿는 자들이 같이
이 하나님 궤 앞에서의 '기쁨'을 같이 누리는 자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블로그를 지속한다.
물론, 그를 통하여 나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기에 난 더욱 그렇다.
9.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10.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게 이렇다.
하나님의 궤를 '다시금' 우리 영혼에 돌리는 작업을 하면서도
정도를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쁨 만을 추구하는 '감정적' 믿음은
결국 이러한 '영적인 죽음'까지 올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오늘 말씀 묵상의 포인트가 여기인듯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나를 세워야 함을 말씀하시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원리를 깨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원리 .
내가 혹시 깨드리고 있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내가 두려워 해야 할 ' 하나님의 원리'는 무엇일까?
14.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모시는 자들에게는
복으로 화답하신다.
주님을 나를 아들로서 대하시지만
나는 주님 앞에
주님의 Servant (하인)이란 마음 가짐으로
나 자신을 낮추기 위한
마음가짐의 표현으로 지은 닉이라면
그에 합당하는 태도로 살아야 한다.
조금더 절제되고
조금더 주님 말씀에 귀기울이고
그 분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그래서 그 분, 내 주인님이 허락하시는
영육의 축복으로 통하여 '감격'하고 살아가는 인생이라
나 자신을 정의 했다면
내 하루 하루의 삶이 달라야 한다.
솔직히
하나님의 축복은 사모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감격의 기쁨의 감정적 달콤함은 사모하지만
내 의무라는 면,
오늘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공의'라는 면에서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자꾸만 하나님의 궤가 내 안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그런 것 같아 난 당혹스럽다.
예전에 한참 말씀으로 뜨거울 때는
열심히.....열심히 큐티도 나누고
오전 일찌기 말씀도 올리고 했었다.
그러다가 바빠지면서 아침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잠깐 들여다 보고
하루 늦게 되어서야 말씀을 정리하고 올렸다.
그래도 거의 매일 빠지지 않았다.
그러다 점점 빠지면서
사진올리고 시 올리는 것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마음에 부담이 많았다.
하루를 말씀을 들여다 보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나에게 생각하지 못할 일이다.
정말 불가피하게 말씀을 들여다 보지 못할 때는
회개하는 마음이 많이 앞서길.. 노력했다.
그런데.. 이제는 자주 .....잊어도 아무렇지 않다.
아니....솔직히 편하다.
그것.....
하나님의 궤를 다시
내 영혼의 성전에 모셔 들여야 하는 일이 아니던가?
그러하면서 난 자꾸만...
주님 말씀의 기본을 잊어 가고 있는 듯하다.
두려워 해야할 하나님을
사랑으로만 생각해 게을러지고 태만해지는 것.
오늘 .
토요일.
벌써~다.
또 올 한해의 반이 가버리고 있다.
벌써~ 다.
나........무엇을 했던가?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나타낸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진정.. 나.. 주님 말씀대로
내 영혼의 성장은
이루어 내고 있던가?
주님 말씀을 더 깊이 사모하자
내 회개할 것은 없던가 기도하자.
하나님 앞에서 난 어떻게 살아야 하던가 더 몸부림쳐보자.
기도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을 제 영혼에 깊이 모셔서
늘 신행일치되는 삶을 사모하기는 하지만
살다보니 자꾸만 흐트러지고 흐려집니다.
어떤때는 제가 의도하던 아니든
하나님의 뜻을 위배하는 일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여.
그러한 어리석음을 절제하게 하시고
주님의 뜻 가운데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하소서.
아침.
눈을 뜨니
괜한 고민이 제 머리를 흔듭니다.
이유.
압니다.
주님.
절 붙드시사... 더욱 강력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우심으로
절 세우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제 안에 오늘도 다시좌정하셔서
제게도 온전한 영육간의 축복을 허락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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