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은 바닷가에서(막 5:21~34) 본문

신약 QT

주님은 바닷가에서(막 5:21~34)

주하인 2007. 1. 16. 10:14

2007-01-16 마가복음 (Mark) 5:21~5:34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 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 우리는 어떻게 해야 열정적으로 주님을 기다릴 수 있을까? )

 

 

 예수님이 배를 타고 넘어가시며 그 유명한 태풍 재우기를 펼치시고 다다른 반대편에서 그 유명한 군대

귀신 -그러고 보니 유명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 쫓아내기 시행하시고 또 다시 배를 타시고 저편으로 건너 가셨다.

 모두가 하나의 연결된 시간 속의 장면이다.

그런데 왜 그리 왔다 갔다 하셔야만 했을까?

누가 가라고 하셨던가?

누가 오라고 하셨던가?

 여지없이 그 분 주위에는 큰 무리가 모인다.

24절에 '에워싸 밀'정도로 사람들이 몰린다.

 

주님 곁에

주님의 역사를 보려고

주님께 치유를 받으려고

주님을 모함할 정보를 수집하려고...... 수많은 자들이 모인다.

 현재의 우리의 믿음, 아니 나의 믿음은 이처럼 모이는 자 속에 들어가 있지는 않은가?

밑에 곧 나올 야이로도 역시 그런 믿음 수준에 어찌 보면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묘한 장면이 여기서 연출이 된다.

주님은 그 많은 사람 들 중에서 움직이지 않으시고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라는 표현처럼 마냥 누군가를 기다리시는 것 같은 느낌을 주신다.

 이 때 주님은 아마도 이런 포즈를 취하고 계셨을 것이다.

다리 한쪽은 배에 ,다른 다리 한 쪽은 육지에 ...

아니면 뱃머리에 우두커니 서셔서 많은 무리의 위쪽을 약간은 멍한 듯 보이지 않는 자를 찾는 ...그러한 모습일 수도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배를 타고 왔다 갔다 하시면서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셨겠지만

특별히 어떤 이벤트를 벌이러 가신게 아니면서 반대편 지역에서 귀신 들린 자, 이곳에서 곳 나올 야이로와 혈루증 여인 얘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들을 만나기 위함인 기다림이 신 것이 분명하다.

 아..

야이로나 혈루증 여인은 분명코 예수님과 약속이 되어 있지도 않다.

아니..

그들은 회당장으로 오히려 예수님과 적대할 위험이 있는 인물이고 혈루증 여인은 아마도 거의 밀랍처럼 하야서 보기 혐오스러울 피흘리는 부정한 여인인데 그들을 주님은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이것을 보아 생각이 드는 게 있다.

 

야이로나 여인 , 귀신들린 남자 모두

스스로는 예수님을 만날 자격 조차 없는 사람들이라는 '낮은 자존감'을 지녔을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 전 부터 주님이 만날 계획을 하고 계신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무언가 군중 속에 있지만 그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을 것이다.

아래에 곳 나올 것이다.

그것은...

그리고

주님은 그들의 예상치 못한 가짐 ~ 즉, 자신들의 병이 남들, 즉 이 성경 구절을 보고 묵상하는 수천년 후의 후대나 그 당시 그들의 기적을 보면서 주님을 받아들일 자들을 위한 훌륭한 치유의 도구와 믿음의 도구가 된 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렇다.

주님 안에서 쓸모 없는 자는 하나도 없다 .

문제는 주님을 얼마나 믿고

주님을 얼마나 의지 하는 가이지... 스스로의 정죄라든가 남의 손가락질에 의해 영향 받을 이유는 하나도 없으며 희망이 없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아래에 곧 나올 이들의 믿음이나 오늘 개인적으로 당부하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있을 뿐이다.

 

 

 

 

 


22.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 이렇게..)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린다. 

야이로가..

순간 야이로의 입장이 되어 눈 앞에 보이는 예수님의 발끝이 연상이 된다.

오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순간 느껴진다.

몸을 더 낮추라.

더 겸허히 하고

더 주님을 진실히 만나라.

머리 속의 수많은 생각과

나름대로의 상상으로 그 분을 재고 흐뭇해 하거나 스스로의 그 지력에 만족하는 콧평수 넓히려는 의도를 포기하고 완전히 주 앞에 낮추라.

 혹시 그 분이 보이시는 게 꺾어지고 부러진 발톱이시고

혹시 그 발에서 냄새가 날 지라도

그 외적인 상황에 흔들릴 육신적 판단을 내려놓고

진실히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는 뜻 같다.

세상의 모든 것보다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그 분을 만나라는 의미 같기도 하다.

 한편 야이로가 주님에게 기다리는 인물이 될 그런 자격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소견이기도 한다.

 

난 주님 앞에 겸손한 자가 되어야 그 분을 더 가까이 뵐수가 있다.

절실한 바램이 있어야 한다.

이 처럼 회당장이라는 신분에도 주님 앞에서 엎어질 ....

 

 

 
23.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주님이 기다리시는 또 다른 모습

많이 간구하여야 한다.

절절히도 절실한 모습.

 주님이 진심으로 보고 싶어하시는  내 장래의 모습에 대하여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주님 안에서의 장래의 모습에 대하여

내 주위를 위해 .... 이리 많이 간구한 적이 난 정말 있던가?

 

그 절실함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도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임을 확실히 인식하고

마치 죽을 자식 살려야 하는 절박함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주님은 나에게 하나하나 집어서 이렇게 기도해 보기를 권하시는 듯하였다.

  (사랑하는, 없으면 안될...) ( ) 이 ()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  )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이렇게 ...

그 안에 내가 들어가도 좋다.

내 자식이

내 아내가

내 직장이 ....

 이렇게 오늘 기도해 보리라.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그럴 때 만이

아무리 많은 방해가 있어도 응답될 수 밖에 없는 기도가 될 것이다.

 

 

 
25.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부정한 여인으로 몰릴 수 밖에 없는 처참한 처지의 사람.

스스로도 굉장히 낮은 자존심을 소유하여

군중 사이에 숨어 들어 온 여인이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질타에 소스라치게 놀랄 가녀린 심령의 소유자 이다.

아마도 깊은 우울증에 소심증이 같이 있을 여인이다.

 

의학적으로 12년 출혈을 했다면 아마도 헤모글로빈 3-4의 재생 불량성 빈혈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얼굴에는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밀랍인형 같은 사색(死色)의 여인이었을 것이고

그 고통 속에 살아온 터라 분위기는 어두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굶은 짐승에서 보이는 순간 순간 눈에 비치는 광기 비슷한 안색이 주님을 향하는...

군중이 밀리는 상황 만 아녔으면 누구라도 돌을 던지고 싶을 충동의 여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

본인 스스로도 깊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질 기회를 주도록 주님은 기다리고 기다리셨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 두 사람의 예를 엮어서 성경에 쓰일 것을 아시고 또한, 그 성경을 보면서 심령 깊숙이 전율을 느끼면서 삶의 방향에 대하여 새로운 고찰을 하게될 수천년 동안의 배려를 주님은 엮고 계신 것이시다.

 그게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라는 표현의 이유인 것이 들어 났다... 드디어....

 

 


26.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여인에게 의원들은 희망의 사람들이 었을 것이다.

맹장 수술을 당해보니

아들이 손가락 뼈가 부러져 보니

같은 의사지만 시술하는 의사는 참으로 높아 보였다.

 그러나 여인에게 그들은 스쳐지나가는 결과 밖에 주지를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가산을 탕진하게 하였고

기대를 하나하나 꺾어버려 배신감을 느끼게 하였을 뿐 아니라

병의 중함을 더하게 하였다.

 

 이게 사람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사람을 의지함은 끝없는 수렁에 빠지게 할 뿐이다.

가깝고 의지하고 픈 다정한 사람들 역시 한계가 있는 육체의 존재일 뿐이다.

그들은 영원을 책임 질 수 없고 우리 인생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미미한 먼지의 존재일 뿐이다.

그들 역시 시간 속에서 스러져 갈 것이며

해 뜨면 없어질 이슬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들과 함께 영원을 함께 할 것 같고 그들이 있으면 지옥이라도 괜찮을 것 같은 심사는 다 엉터리 착각일 뿐이다.

물론 관계는 필요하다.

아니 관계를 통하여 화합을 이루고 그 화합을 통하여 교회의 벽처럼

주님 나라의 들보로서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시려 함이 주님이 인생을 만들고 세상을 창조하신 목표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 안에서 그런 연합하는 존재일 뿐,

절대로 의지하거나 해결해줄 상대자는 아니다.

 

주님은 주님을 통하여 세상을 보도록 만드셨고

주님을 통하여 만족을 얻기를 원하신다.

 고린도 후서 3:5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이 여인이 증거다.

내가 증인이다.

나 스스로에게...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야이로와 공통되는 모습이다.

절박하다.

얼마나 절박하면 돌에 맞아 죽을 각오로

힘도 없을 육신을 끌고

어지러운 머리를 간신히 들며

그 부대끼는 사람들 속을 뚫고 와 예수님의 등 뒤에서 그 분을 터치하고 가는가?

 심장은 얼마나 요동을 치듯이 뛰었을까?

두려움에도 그랬지만 그 정도의 건강 상태라면 심장 비대가 와 있을 것이고 조금만 움직여도 저산소증으로 심장이 격동할 수 밖에 없는 상태였을 것이며 그녀의 육신은 심한 고통과 피곤으로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 녀는 한걸음 만 더 , 한걸음 만 더...하며 예수님의 등 뒤에 손을 내밀며 마치, 거친 계곡의 격류 속에서 한 걸음 씩 밀고 나가는 어려움으로 슬로비디오 같은 , 찰나 지만 수천년 지나는 듯한 시간의 느림을 짧은 순간이나마 맛보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뚫고 그녀가 그 분 예수님의 옷을 만지고 도망 가는 데는 어디에도 갈데가 없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고, 그 절박함은 예수님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

 

배울 바가 있지 않은가?

주하인??

너는 ??

그런 절박함으로 기도해 본 적이 있는가?

주님이 다 아실 것이라는 영적 교만함에

아직도 믿을 구석이 있다는 양다리 걸치는 마음에 그런 적이 없었던 걸 주님 예수님.... 회개합니다.

주여 용서 하소서.

야이로와 같이 고백하려 합니다.

여인과 같이 주님을 만지려 합니다.

주님 앞에 납짝 엎드리고 싶습니다.

주여 그리 되도록 하소서.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혈루 근원이 곧 마른다.

 몸에 깨달는다.

아마도 나무가 새싹에서 자라다가 성장한 나무가 말라서 점차로 낙엽이 떨어지고 고목이 되어가는 그 장면이 역으로 빨리 돌아가는 장면 같지 않은가?

신기하다고?

 여인이 혈루가 늘 흐르면 그게 흐르는 지 마르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은가?

인간의 감각 체계는 그렇지 않다.

곧 마르고 몸에 깨달음은 주님의 기적 만이 가능한 현상이다.

 

주님은 그렇게나 역사하신다.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이 때의 주님 표정이 연상이 된다.

과연 그 분께서 모르고 계셨을까?

아니면

누가 ....라는 말씀이 질책으로 들리는가?

 그 분은 아마도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마음 속에서 '이제야 왔군.. '하면서 누구도 이 여인의 믿음을 보고 기적을 보길 바라시는 목적으로 강조하시는 말씀일 테다.

 사랑이 넘치는 그분께서...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나에게도 이런 소리가 들리는 기도하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네 믿음이 너를 ...

평안히...

네 병에서 놓였다.

건강하거라..

 

할렐루야.

믿는다.

 

 

 

 

적용

 

1. 주님 발 앞에 엎드리듯이 주님을 묵상하고 기도한다.

 

2. 야이로 처럼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

 내 가족이 힘들어 하고 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주님 안에서 힘있는 삶을 살게 하소서

 

3. 절박하게...

 

4. 겸손하게..

 

 

기도

 

주님

이들의 믿음 닮게 하소서.

그들 처럼 주님 만 처절히 쳐다볼 수 있도록 하게 하소서.

겸손하게

낮아져서..

기다리시는 주님을 쳐다보시게 할 수 있도록 하소서.

주님 저희가 힘이 드오니 제 위에 손을 얹으사, 제 가족 위에 손을 얹으사 저희로 주님 손으로 구함을 받아 힘있는 삶을 살게 허락하소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걸 주님으로(막6:1~13)  (0) 2007.01.18
(막5:35~5:43)  (0) 2007.01.17
心耳를 위해(막 4:21~34 )  (0) 2007.01.13
전도는 말씀을 뿌리기(막4:13~20)  (0) 2007.01.12
소리와 뿌리(막4:1~12)  (0) 2007.01.1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