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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주님으로(막6:1~13)

주하인 2007. 1. 18. 09:02

  2007-01-18 마가복음 (Mark) 6:1~6:13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 선입견은 과거의 얼굴을  절대로 잊지않는 것이 랍니다.  ) 

 

 고향에 가신 예수님 .

그를 모를 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에 놀라고 권능에 경이로와 했으나

곧 그가 아는 사람임을 알게되자 갑자기 달라져 버렸다.

 이걸 보면서 사람들의 어리석은 본성에 대하여 놀랄 수 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기적 조차도 부정하는 것이다.

정말 바보다.

이게 과연 옛날이라 그런가?

현대는 안그런가?

메스컴이 그리 발전을 하여 아무리 간증을 해도, 또한 스스로 아무리 눈으로 보아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 버리는 게 현대인 들이다.

나도 그렇다. 

 

거기에는 생각할 점이 몇가지 있다.

우선 어리석은 인간의 본성이란 점이다.

'설득의 심리학'이란 책에도 놀라운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예를 들어 놓은 것이 있다.

사람이 아파트 단지에서 살인자에게 맞아 죽고 그걸 30여 가구에서 사람들이 내려다 보고 있으면서도 전혀 신고한 사람들이 없다는 예화가 나와 있다.

 중국이나 우리 나라에서도 버스기사 맞는 걸 그냥 보고 만 있는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 나와있다.

그런데,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그게 군중 속에서 이름이 불리지 않고 존재하면 누구나 그런 맹점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일반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나 만일 한 사람이 먼저 행동을 했거나 당하는 자가 손가락으로 지명을 하면서 도움을 요청했거나, 이름을  부르면서 도와달라 했다면 달라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부족함을 이해하면 예수님이 기적을 베풀었지만 믿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즉,  인간은 절대로 온전한 존재가 아니니 의지할 대상이라기 보다는 긍휼히 여기고 감싸야 한다는 생각이다.

온전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긍휼로서 세상을 보려는 마음이 드는 장면이다.

 

 

 또한 오늘같이 어리석은 인간의 근본적 메카니즘의 원인은 다름이 아니고  '선입관'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2차 지각 체계'라는 또다른 심리용어로 표현될 수 있다.

세상을 볼 때 있는 그대로 보면 될 것을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으로 한번 비틀어서 보는 것.

 어제 신문에 보니 사람들이 똑같은 미녀를 보아도 어떤 사람은 다리를 , 어떤 사람은  S 라인을 ,어떤 사람은 다른 부위를... 등 기억하는 내용이 다르다는 얘기를 보았다.

이렇다.

이게 사람의 인지 능력이다.

자신의 특질에 의하여 재 구조화해서 인식하는 것이다.

 특별히 미숙한 사람이거나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거나 교만한 자들, 아집이 심한 사람들일 수록 더 그런 성향이 많아진다.

  이러한 것은 '일차지각체계'로 보려는 노력으로 얼마든 지 바뀔 수 있다.

일차 지각체계라는 것은 가려진 눈꺼풀을 벗겨 내는 것이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지 않고 보는 능력이다.

거기에는 배움도 필요하고, 노력도 필요하고, 상처의 치유도 필요하다.

 세상에 벌어지는 일을 그냥 관조의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 까?

내 이념과 내 코드에 달라도 받아 들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성숙된 '인격자'가 아닐까?

만일 오늘 묵상의 장면에서 고향 사람들이 그냥 있는 기적을 있는 기적으로 받아들이고 대단한 예수님을 인정하였더라면 훨씬 더 구원의 기회가 많지 않지 않았을까?

 이러한 왜곡된 스스로의 선택은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예수님께서 이상히 여기시며 안타까이 떠나실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 수 있는 영적 원리의 또하나는 이렇다 .

'주님이 기적을 나타내시려면 우리가 믿어야 한다.

 믿음이란 선택을 하지 않으면 주님 조차 스스로의 원리로 권능을 행해 주실 수 없다.

 믿음을 방해하는 것은 왜곡된 인지체계이다.

 그것은 2차 지각체계이다.

 2차 지각 체계는 스스로의 성품도 있지만 오래된 상처에서도 비롯된다.

  따라서 상처는 치료 받아야 하고 그 치료는 올바른 인식과 말씀과 끝없는 긍휼의 마음으로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소수의 사람'에게는 여전히 기적을 베푸셨다.

희망이다.

사랑이다.

주님이 필요하시면 필요하신 대로 기적은 베푸신다.

 

 한편  이런 일차 지각체계는 멍청하고 바보스러운 것과 어찌해야 달라진 개념이 될수가 있는가?

아니면 그 백지 같은 인성에 잘못된 가치로 물들어지면 단 한번 어긋나 버릴 수 밖에 없는 위험성은 없는가?

 그것은 그렇다.

왜곡된 인지체계를 벗어 버리고 난 후에는 그 인생을 끌고 나갈 어떤 가치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그러한 가치관을 세계관이라고 한다.

큰 그림.

그러기에 진실을 받아 들여서 깨끗해진 눈으로 힘있게 나아가야만 인생이 가치가 있어진다.

그 가치의 끝, 종국 적인 위치에 주님 예수님이 계셔야만 한다.

세상으로 끝난 다면 ,

헛된 세상의 모든 지식 추구나, 재물, 자식 , 철학, 인본주의적 가치... 이 원리가 될 수있다.

그러나 ,

우리는 세상의 고단한 삶 끝에 - 내 일생 여정 끝내어, 강건너 언덕 이를 때... 찬양이 생각이 난다 ♪- 가야할 천국이란 곳이 있지 않은가?

 그 천국의 정상에 주님이 계신다.

이 세상이 천국의 삶에 대한 연습이 되려하면

일차 지각을 쓰면서 모든 판단을 주님께 맡기는 삶이 되면 그게 바보스럽지 않고 내적인 평안을 유지할 맑고 깨끗하고 힘있는 삶이 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모든 자들이 받아들여야 할 구원의 원리가 되겠고

그 구원의 삶을 이 땅에서 힘있게 살 원리가 또 되며

환경과 풍파에 상관없을 심령 천국의 모형이 되는 것이다 .

 

오늘 나타난 고향 사람들의 어리석은 바보같은  헛똑똑이 들의 모습이 부디 내 삶 속에서는 하나하나 버려져야 할 악덕이 되어야 할 듯 싶다 .

 맑고 깨끗한 눈을 들어 주님의 원리로 세상을 바라 보고 싶다.

최소한 오늘 하루 만이라도...  

 

 

 
 

 

 

10. 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 하나님을 믿는 것은 늘 기적을 만지는 걸 체험할 기회를 갖고 있는 삶이다. )

 

  특별히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묵상이다.

 

'뉘 집'이라는 단어가 새삼 내 직장으로 대치시켜 보았다.

난 예수님 믿고도 한참 동안을 , 아니 지금도 많은 부분 남아 있지만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의 유형이었다.

 난, 현 직장에 간증거리가 될 이유로 해서 오게 되었었다.  

그럼에도 위와 같은 이유로 몇번이나 옮기려 했었었다.

그러다가 몇차례 움직일 시도가 실패를 하고 나서야 주님의 손길 - 지금은 절대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 인 것을 머리로 나마 인정하게 되었었다.

 아침마다 큐티 모임을 인도하게 됨이 나에겐 아주 큰 생각의 차분함을 가져오게 되었고 , 목요일 전인 치유에 희한하게 참여하게 되면서 많은 내외적 변화가 있게 되었다 .

최근에는 '무조건 기다린다.   그리고 인도하심을 지켜본다.   '로 바뀌었다.

더 이상 내 삶은 내가 콘트롤 할 수 있는 유형의 것이 아니었다.

난 아무것도 할 힘도 없고 능력도 없다.

그냥 주님께 맡길 수 밖에..

 그러나, 조직쳬계에서 능력없는 중년 산부인과 남자의사가 선교 병원에서 '기도'에만 힘쓰는 것이란  ㅅ송사가 가끔은 힘을 잃게 만들었었다.

그럴 때 마다 마음 속으로 열 두번도 더 옛 버릇이 그리워 지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어제였다.

점심시간 동료와의 얘기 중 진료 실적에 대한 얘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실적을 행정직에 물어 보았다.

작년 대비 50% 이상의 성장 !

최근에 좀 바빳던 게 사실이긴 하지만 산부인과라는 문 닫아야 할 퇴행 - 황폐가 맞다- 진료과에 성장이라니..

더구나 4년 간의 제자리 걸음 후에 급작스러운...

이건 주님 믿고 아침이 풍성해진 이후의 변화가 맞다.

그 분이 보이신 기적이다.

 

 오늘 아침 버스타고 오면서 들여다 본 묵상집 을 보면서 난 몇가지 힘을 얻었다.

'주님 만이 원리다.

'그 분은 살아 계신다.

' 경제 조차 그 분의 원리로 모든 사람들의 황폐해지는 영혼이 맑아지면 자연 스레이 회복될 것이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라는  또 한번의 인생 운영 체계의 각론적 원리에 대하여 지도 받은 기쁨이 있다 .

어려운 말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고 막연히 이게 옳지 않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확실한 지시를 받은 기쁨이란 얘기다.

너무도 당연한 위의 몇가지 깨달음이 이제는 살아서 내 영혼에 자리잡기 시작하는 것이 기쁘다.

 그러시면서 '혹시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 라는 확증성 말씀까지 하신다.

 착각인 줄 모르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들린다.

(이것도 이차지각 체계인가? ㅎㅎㅎ)

" 지금처럼 주님 기쁨이 우선이 되고 그로 인한 이웃, 환자에 대한 긍휼이 펼쳐지며 성경 말씀의 원리로 하나하나 삶이 바뀌어 가게 되면 모든 재물이나 실적이 올라가게 되어 있다.

그냥 끝까지 있어라.

그러다 보면 때가 되면 지금 네 인생에 벌어 졌던 드라마 같은 역정이 또 한번 펼쳐질 것이다.

그 때 만일 네 직장에서 그 원리를 모르는 리더쉽이 너를 혹여 나가게 하는 일이 벌어지면, 그때는 미련없이 발아래 먼지를 털듯이 나오라.

그게 그들에게는 땅을 칠 순간이 될 것이다.

주님의 원리를 가까이서 증거받고 스스로 변할 기회를 잃은게 될테니까..".....ㅎㅎ

 

너무 지나친 상상인 줄 모르지만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나같은 새가슴의 소유자 -실제로 삶이 불안의 전철이었었다.    최근 말씀을 매일 가까이 하면서 거의 대부분 없어 졌다.    -에게는 너무도 힘이 되는 말씀이다.

 

이것은 '응답'이다.

며칠 전 안양 역 이후 또 한번 나에게 보이시는 주님의 아주 개인적 말씀이시다.

 

 

 

 

 

적용

1. 감사한 기도를 올린다.

 특별히 목요일 전인치유에 열심히 참가 하겠다.

 

2. 증거를 묵상한다.

 . 오래 있자.

 . 먼지 털어라.

 

3. 성경 5장 읽겠다.

 

4. 있는 대로 보려는 노력을 한다.

 모든 판단은 주께로...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믿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하나하나 말씀의 약속들이 들어 맞는 듯한 결과를 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시한번 찬양합니다.

주님

옳은 판단을 하고 옳게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 비슷한 감정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지고 기쁩니다.

주님

어찌 인도하실런지 알수 없지만

내 삶은 어렵고 힘들고 비틀려져 왔었지만 이제는 주님 안에서 누구보다 잘 나갈 수 있음을 예감하는 기쁜 마음이 들어 감사드립니다.

환경과 상관없는 제 기쁨이 기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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