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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만으로도 족합니다 [막7:24-37] 본문

신약 QT

말씀 만으로도 족합니다 [막7:24-37]

주하인 2024. 2. 29. 06:27

부제)주님만 만나뵐 수 있다면

(펌)

주님 만 제 안에 모실 수 있다면

풍랑이는 밤바다 여도 괜찮습니다

 

주님 저와 함께 동행하심을

제가 느낄 수만 있다면

상아래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로 만족하는 강아지여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주여

이런 나를 그윽히 바라보시며

돌아가도 된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그 눈빛을 느낄수만 있다면

그어떤 인생의 고통도

잘 받아 갈무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거룩하신 내 주여

그 모든 풍랑의 주재자 이시며

온 우주의 구석구석 모든 현상

모두 허락하시는 분이시여

 

이제 제 모든 인생을 질식시키려는 

인생 풍랑 안에도 계신

내 주 예수님을

제 안에 모셔 드립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말씀하소서

 

홀연히 일어나 

 고요한 평강의 내면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성장된 모습을 

주께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내 주

예수그리스도시여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예수께서'도 피곤하셨을 것이며

아무도 모르게 홀로의 시간이 필요하셨을것이다 .

 주님도 모든 인간의 어려움을 체휼하시었다.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주님의 잠잠하심'

얼굴이 안보이심.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발아래 엎드림'.

 

 눈치가 보임과 

절박함.

 주님의 시간을 빼앗는 무례와

그보다 넘어서는 절박함의 주님 찾음.

무엇이 옳은가?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주님께서 진정 좋아하시는 것은

'절박한 찾음'이시다. 

 주님의 눈치를 살피고 가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귀신달린 아이의 엄마인 이방여인의 입을 통하여 

이리 말씀하신다. 

 

 '주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것은 

간구이시다.

 무조건 주님을 찾음을 

주님이 가장 기뻐하신다. 

주님은 주님 찾는 자를 위하여 '십자가'로 활짝 열어 놓으셨다. 

그게 '복음'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인의 열렬한 '믿음'에 대하여 

예수께서 그러셨다. 

'돌아가라 .. 나갔'다...

 

 그 말씀을 들으며 여인은 어찌 느꼈을까?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뭐 증거나, 설명도 없이 

그냥 '말씀'으로 "나았으니 돌아가라" 만 하셨다. 

 

 그래.. 모든 '미안함'.. 죄송스러움..

이방인으로서 당연히 받을 저항,

질타, 손가락질.. 

쪽팔림

죄송함...........등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예수 앞에 그냥 매달렸는데

'기적', '환상', '설명', '위로'.........그 어떤 것도 없이

그냥 '나았으니 돌아가라'라는 말씀만 들어야 했다 .

(펌) 무언가 욕구 불만 , 두려움, ..이 서린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 기분 탓인가? ^^;
(펌) 아니면 이랬을까? 두려운 , 슬픈, .. 하지만 윗사진의 강렬한 욕구의 여인 눈이 맞을 듯... ^^;

 

아니다. 

'반짝'이시는 '예수님의 눈빛'을 보았으리라.

(펌) 예수님 눈을 마주할 바로 그 때, 이랬을까? ^^*

그리고 그게 다였다. 

 

 말씀.

약속.

그리고 자애로우신 '눈빛'........

그게 다였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그리고는 그 절절히 끓는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그 모든 장해물을 뚫고 예수께 왔던 여인은

단지 그 '말씀' 만을 붙잡고 

마음이 갑자기 차분히 가라앉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 

여기 이 부분이 아닌가 싶다. 

증거,

현상의 변화... 

우리가 바라는 그 어떤 성령의 특별한 증거가 설령 없어도......

그냥 말씀이 있으시니 

이제는 믿어지는 단계........

그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 

 

 열렬한 간구가 바탕이 되고(물론 .. 그러기 위하여 이 땅의 고통은 필연이 아닐까? 그 절절함을 위하여..?... 그렇다.. 지속적으로 묵상하지만 풍랑 마져 예수님의 허락하에 있다.  그 풍랑을 주재하시고 그 안에서 같이 배위에 있으신 예수님... 그것은 우리의 열렬한 간구를 위한 매개체 뿐이지 않으시던가?   그러시면서 같이 있으신... 이게 복음이다. 할렐루야)

그 바탕을 통해

'말씀' 그 자체.. 

말씀 하시니 

어떠한 설명으로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영혼 안에 폭풍우치던 갈등과 혼돈의 풍랑이 잠잠해지고

알지 못하는 '고요한 평강'이 자리 잡아

그냥 믿어지고

그 모든 체면 따위도 다 집어던지며 매달리게 하던

마음의 폭풍이 사라지고

알지 모르는 확신으로 

슬며시 일어나게 하는 것................

믿어짐..

하나님 성전에서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하는 

그 온전한 믿음의 '증상^^*'으로 일어나

여인은 

정말 아무 흔들림 없이 집으로 향하게 되었을 것이다. 

 

거기엔 '낫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또다시 와서 매달리나?... 혹시 나를 이리 보내고 귀찮으시니 도망가려시는 것은 아닌지...*&^%$#@.. ' 등의 

그 어떤 '의혹'이나 '의심'의 그림자로 

그 가슴 한구석이 멍하며 집으로 돌아갔을

그 어떤 혼돈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 감격에 겨워 미리 마음이 들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외치게 되는

오버의 흥분도 아니다 .

 

 당연히도 나았을 것에 대한 

막연한 확신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펌) ^^*

마침내 '침상에 누워 있는' 아이의 평온한 얼굴을 보게 되지 않았을까?

그 이후 

여인의 반응이 어땟을까?

 

 잠시 

가만히 

멍하니 

그런 아이를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지는 않았을까?

 언제인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잠든 아이의 천사같은 얼굴이 

또 깨어날까 숨죽이며 뛰쳐나가 

구석쟁이에서 오열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

 

 

 무엇인가?

무엇을 보이시려는가?

 절박함은 '배려'를 앞선다. 

나의 절박함이 타인의 권리를 침범하는 문제는 

또다른 '절망'이다. 

이  유한한 세상의 '인간관계'의 한계.

또다른 갈등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러신다. 

" 언제든지 환영한다 

어떠한 환경과 분위기가 네 앞에 놓여있더라도

그를 넘어서는 것은 

나를 찾는 절박함이다.

 나는 그러하다.

그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던가?

네게 필요한 것은 절박함이다

더 매달림이고 간구다. 

그리하면 마침내 응답이 있으리라' 하신다. 

 

그 응답은

현실의 변화,

기도제목의 이루어짐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즉, 풍랑의 멈춤보다 더 중요하고 확실한 것은

풍랑 마져 주재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고

그러기에 '풍랑'의 밤바다 안에서

스쳐지나가시는 "예수님'의 존재를 깨달아 알며

그 분은 우리의 영혼에 받아 들임이 

진정 중요함임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즉, 풍랑, 고난은 

주님을 모셔들임을 위한 매개체 일 뿐이었음을 깨달아

마침내 모든 삶의 목적이 

'예수님의 영, 성령'을 내 영혼의 지성소에서

늘 임하게 하시게 하는 것...

그것 아닐까?

 여인도 '딸의 귀신 축사'를 목적으로 

예수님께 매달리다가 

더 큰 '축복'을 받았다. 

 

그냥.. 

예수님 '말씀' 그자체

예수님 뵈었다는 사실 그 자체

예수님의 눈빛을 통해 감전되듯 깨달아 버린

'믿음'의 본질........그 자체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할 수 없는 '고요함'.. .'흔들리지 않는 평강'과

이어지는 '믿어짐'.. 

그리고는 그처럼 뗑강부리듯 매달리던 

일체의 행동을 여미고 

남들 보기에 아무일도 없다는 듯.. 

'아.. 감사해요.. 나.. 나았어요... 주님이 .." 등등의 

엑스터시 등의 표시없이

차분히 물러나와

이전부터 그랬다는 듯

침상에서 고요히 잠들고 있는

회복한 아이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

 

 '믿음의 본질'.

'내 평생의 고질'

딜레마

그 어떤 고난, '풍랑'도

하나님께서 모르실 일이 하나도 없는

풍랑 마져의 허락하신 분... 

나의 유익을 위하여 허락하신 분이시고

그 유익의 본질이 바로

그냥 '말씀이 있으시니 믿어지고'

그 믿어진 그대로 

주님의 때 주님의 시간에 

자연스레이 이루어질 거란 이야기다. 

 

 문제는 

내게 있어 저 여인의 '열렬한 간구'가 있느냐 없느냐..다.

예수님을 찾아 뵙는 그 동기를 가지고 

주님 예수를 잊지 않고 있는가...다.

 

 나.

자주 

요새

경험한다 .

말씀을 근거로 '고요~~'해지는 저 체험.

그리고는 '변화'.......

내 안에 그러한 나를 기뻐하시는 주님의 쓰다듬으심........

내 어떠함과 상관없이.. 

꼭 주님 앞에 칭찬받을 믿음의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매일 말씀을 붙들려 노력하는 

이 작은 결심을 지속함을 통하여

내 스스로 '귀신들린 딸가진 이방여인'의 

저 내면의 모든 '신경쓰임' 조차도

주님을 찾음을 이유로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그 눈빛을 통해

온 우주와 내가 꿰뚫어져 알것 만 같은

그 깨달음... 

그 순간의 그러함을 통해

천둥 폭풍우 같던 내면이 '고요히' 가라앉아

자연스레이 이어지는 

현실의 흐름...........

 

 이제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이 땅을 살면서 주님을 의식하며 사는 자의 어떠함.. 말입니다. 

 

오직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와 목표가

굳이 몸부림치지 않아도 이해가 되어

더 이상의 큰 흔들림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주여.

상황이 어떻든

이전 부터의 제 속의 터부들, 장해들이 

낫든 낫지 아니하든

이정도면 되었다 싶을 그때에 

다시 또.. 그러하는 절망의 존재함이든 아니든

그 모든게 이제

주님 예수님의 

제 삶에 모셔들이고

내 영혼의 움직이는 조타를 

주 예수께 맡겨 들여도 될 것같은

그러함을 위하여 허락되어진 

고요한 안정이 제 안에 이해가 되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저에게 필요한 것.

제게 정말 부족한 것은

저 여인의 절박함.. 

그로 인하여 더더욱 주님을 찾고 기도함입니다. 

주여.

힘을 주소서

오직 주님 만을 바라보려는 

제 시선을 더 강하게 하여 주소서.

그어떤 일이 제 안에 벌어지더라도 

말씀이 있으시니

또 하루 저를 세우고 살며

그 기쁨의 평안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더욱 주님께 매달리는 자 되게 하소서.

 

세상의 흔들림, 유혹

이제 더 이상 제게는 큰 의미가 없게 느껴지오니

오직 주님 말씀으로 인하여 허락되어지는

매일의 '고요한 누림'을 누리는 '귀신 떠나간 자식'의 잠든 모습을 보는

여인의 감탄과 감동을 

놓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 임재.. 

주님의 임재감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더욱 열렬히 사모하게 하소서.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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