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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의 배고픔 영의 배부름 그리고 주님의 긍휼[막8:1-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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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의 배고픔 영의 배부름 그리고 주님의 긍휼[막8:1-13]

주하인 2024. 3. 1. 00:04

 

(펌)

이 인생은 그렇다

누구에게나

고통이고 고난의 연속이다

 

믿는 우리는 안다

인생광야

허락하신 연단의 과정

십자가를 같이 지길 원하시는

좁은 길의 연속

 

그러기에 당연한

이 삶의 버거움과 힘듦이

꼭 그러해야만 하던가?

 

아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 인생을 반추해보았다

배고픔이 사실이었지만

그 배고픔을 넘어서는

기쁨과 행복이 있어왔다

 

누구에게도 확실히 증거해낼

간증거리들이 넘쳤고 넘치고 있음이다

 

배고프지만

안배고팠다

오히려 풍성했다

다시금 깨달았다

 

십자가는 사랑이다

 

그 분은 긍휼의 눈으로

지금도 날 보고 계시며

또 곧

내 배고픔을 채워주시리라

 

그게 믿어짐이

더 큰 기쁨이고

풍성한 배부름으로 다가옴은

주께서 기뻐하심이

맞으실 듯 싶다

 

참.. 감사하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으로 인하여가 아니시면

내가, 우리가 

이 부족하고 마치 사흘 굶은 거지 무리같이 ㅠ.ㅠ;; 모여든

군중과 하등 다를 것 없는게 

나, 

우리 아니던가?

 

 이 세상에 

무엇 바라볼 거 있던가?

무엇 기대할것 남았던가?
물질로는 그 시대의 저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족하지만

영적으로는 과연 저들 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그 물질...

비록 소수의 사회 소외계층 말고는 

넘치고 지나쳐 '성인병'으로 고생하고

그 넘치는 물질 조차 '일본의 방사능', '오염된 미세플라스틱', '중국발 미세먼지..' 

기후,며칠전 서울의 몇배가 타버린 미국 텍사스 산불..ㅠ.ㅠ  , 전쟁, ..으로

비록 우리는 잊고 살려 망각에 빠지지만

그 끝이 눈 앞에 보이는 '풍족' 아니던가?

(펌) 3일 굶은 분위기라기 보다 오히려 천국의 풍성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

 하여튼,

저들 군중의 입장을 돌이켜 본다.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3일을 굶은 자들이고

거기에 또 돌아갈 길이 남아 

언제 먹을 수 있을 지 모르는 ,

거기에 모여든 군중에 따르는 현대의 '간이매점'......들이 있을수 도 없는

절대의 기아 선상에 머문 .....그들... 아닌가?

 

 그런데 왜.. 그들은 떠나지 않고

좀있으면 닥칠 지도 모르는 '기아'의 위험을 감수하고도

떠나지 못하는가?

 

 왜 

주께서는 매일 3시 세끼는 아니어도 

규칙적인 음식 배급을 하시지 않았던가?

 아니.. 왜 .. 

이제야 불현듯 깨달으신 것처럼

갑자기  '불쌍히' 여기셨을까?
 

 

 그리고 위의 예상처럼 

현대인의 입장에서라면

배곯아 폭동이라도 나고 

서로 서로 물건을 빼앗고 

닦거나 배설 처리... 등등.. .일어나도 한참 전에 일어날

그 소요의 흔적이 있을 그 상황에서 

'예수님의 불현듯 깨달으신 듯한 

그 긍휼하신 시선이 

왜 바로 그때였을 수 있을까?... ' 생각해보면

그 소요는 전혀~~아니고

오히려 그냥 '잔잔하고 고요한 '... 

마치 어미의 처분을 바라는 조용하고 착한 아이들 처럼

그리 가만히 꿍꿍앓으면서도 인내하고 있었을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그 4천명 군중에서 

그 모든 동일한 반응을 가져와

마침내 

불현듯

갑자기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 찰나의 순간을 가져온 것.. 

그것.. 

아무리 생각해도 

일상적이지 않지 않은가?

 

 일상적이라 하면

'육신'의 필요가 너무도 풍성히 있는 현대인의 기준...

특히 못먹는 순간이 내 죽을 때 가까운 시간임을 

늘 주장하는 나의 이 육신의 약함을 기준으로 한 거다. ㅠ.ㅠ

 

  말씀을 묵상하며 떠오르는 생각이 그거다. 

'영적'인 풍성함이 

육신의 배고픔을 잊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이유(몇 끼식 굶는게 일상인 그 고대의 당연한 인식, 병고침을 이유로.. 갈급한 이유... 궁금증으로 ... 등등..)로 모여들었다가

그냥 그리 시간이 자신도 모르게 지날 정도로 

예수님의 카리스마, 

하나님으로서의 영적 권위에 

그 말씀의 살아 있으신 깨닫게 하심에 

누구도 설명할 수 없지만 바로 거기가 '천국'(예수님이 직접 살아계셔서 음성을 들려주시는 그곳이 천국이 아니고 어디일까?^^*)일 것이기에

그들의 배고픔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닐 것이며

숙식,거처, 일신상의 괴로움은 더 이상 

그곳에 모인 자들에게는 문제가 아닐 것이었을 것이다. 

 

아니.. 실은

육신의 배고픔은 느끼지 못했을 개연성이 너무도 많다 .

그것,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성령의 충만한 은혜 체험 할 때의 

우리들의 경험으로 유추해도 가능치 않을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 않음을 주장하는 것이

바로 '체험'하지 못한 증거 아닐까? 

 그래서 기독교는'체험'의 종교라 하고

간증이란 증거들이 우리네 인생들에 수북히 쌓인 것이고... 

 비록 자주 잊어서이지.. ㅠ.ㅠ.

 

 각설하고 

주님께서 갑자기.. 불현듯.. 3일 만에 

군중들의 '배곯음'이 불쌍히 여겨지심은

오늘날과 다른 식생활 (있으면 그 시간이 식사시간이 될수 밖에 없을 고대의... ^^;) 패턴에도 불구하고 

영적 배부름으로 육신의 배곯음이 느껴지지 않았을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3일이란 시간은 너무 긴 시간임,

거기에 나머지 이후의 시간도 결코 충분히 식사할 만한 

가능성이 없을 것임을 

드디어 깨달으신 듯 말씀하시고

또 오병이어 같은 기적을 베푸시려 하시는 바로 그 시점이다 .

 

내게... 무엇을 보이시는가?
 

 첫째, 

주님의 응답은 주님의 시간에 달렸다는 거다. 

항상 매시간 잘했다고 주시는 것 아니고

일정하게 배곯지 않게 항상 채워주시는 것 아니라 는 이야기다. 

 

 둘째,

그러함에도 배곯음을 느끼지 못하는게 

영적 '충만함'의 증거 아니던가?

 주시던 아니 주시던

지금 이 4천명의 군중들에게는

어쩌면 큰 문제가 아니었을 거 같다는 게 

분위기로 느껴진다. 

 즉, 인생의 그 어떠한 문제들로 인하여

예수님께 오게 된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 인생의 절박한 문제는 잊어 버리고 (맞다.  잊어버리고 말씀에, 은혜에, 기쁨에.. 취해 배고픈 거 , 고단한 거, 불편한거 다 잊어 버린 거 아닌가?)

주께서 '먹여주실 때'까지.. 

육신의 배고픔을 채워주실 때까지 

어린양 처럼... 

정말 어린양이 되어서 기다리고 있게 된 거 아닌가?
어린양의 눈이 떠오른다. 

갑자기... ^^*

 

 그거다 

인생에서 필요한 것,

얼마나 많은가? 

나... 

 

그러함에도 

그냥 그렇게 그렇게 지나오게 되었다 .

아니 오히려 내 그러한 육신적 배고픔(허리는 5군데... ㅈㄹㅅ , 혈압...ㅠ.ㅠ.. 이제는 위장까지.. ㅠ.ㅠ;;)을 통하여 

다른 방향의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다. 

 심적 어려움을 통하여 

난 주님을 지금, 이시간까지 매달리고

더 열심히 매일 말씀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진즉에 죽어도 열몇번은 더 .. *&^%$#@....세상을 떠나 없어져도 될

그 갈급하고 폭풍우 롤러코스터의 괴로움을 통하여

난... 영적 풍성함을 누리고 있다. 

매일 말씀 묵상,

나도 모르는 성무일과,

이제는 '곤란, 인생의 풍파' 올 때마다 

'내 안에 예수님을 모셔들이는 것' 자체가 귀중함,

그러함을 위하여 

이 인생, 육신 속 삶의 모든 괴로움을 허락하신 것이고

그를 통하여 '배'로 표현되는 

이 3차원 세상의 모든 갈급함,

배고픔은 있지만

오히려 더 큰 '행복'.. 

영적인 배부름을 '점점 더'.. 날이갈수록 '크~게' 누리고 있음을

확실히 고백할 수있게 된다. 

 

그리고 ..

더더구나 말씀으로 말씀하시지 않는가?

주님이 주님의 때에 

'육신적 배고픔'마져 채워주실 거라고.......

약속.. 

아니.. 

주님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취해서 사는

그 행운의 사천명 속에 속한 것도 모자라

'육신의 문제 마져 긍휼'하게 바라보시고 계심을 

나에게 깨워주신다. 

 

어제가... 2월의 마지막날이었다. 

비록 밝힐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난.. 이재에 밝지 못하여

AY샘 병원, 충J 의료원...........거쳐

여기까지.........많은 시간을 

남자 중년 산부인과 의사로서 .. 많은 현실적 제약을 거쳐

지금까지 이르렀다. 

다행이도.........주님께서 내 의사로서의 상대적 어려움을 붙들어

여기까지 붙드셔서 이 나이까지 붙들어 주셨구나.. 

그리고 내 평생의 '두려움'.. 불안함을 넘어 

든든한 안정을 '허락'하셨음이 

새삼.. 현실적 여러 풍성함으로 보여주신다. 

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열심히 "주님.. 고쳐달라" 매달릴 때는 아니시더만 

그 아픈 육신을 통하여 '수영'을 나도 모르게 하게 인도하시어

오히려 더 반듯한 몸을 이 나이까지 허락하시고

내 흔들리는 심성의 두려움을 통하여

더욱 풍성한 '감성'과 '깨달음'을 허락하시고 

이 블로그에 있듯 수없는 많은 '예술적 ^^;, 영적' 창작물을 이루고 

'현실적'.. 배고프지 않은 

풍성함 마져 허락하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계속 고백이지만 내 욕심에 차여진 만족이 아니다. 

내려 놓으니 채워주시는 감사로 인하여 

더 넘치는 풍성함일 뿐이다. 

Sala...마져 말이다. ㅎ

 

 그렇다. 

오늘 말씀의 포인트다. 

주님은 내 모든 것을 다 아신다. 

그리고 내 모든 원함에 어쩌면 반하시는 듯하지만

주님은 주님의 시간에 

우리의 '영적 심적' 뿐 아니라

물질적 요구도 다 채우신다. 

 

그 증거들이 

내 삶에서 넘치고 넘친다. 

 

거기에.............

이제는 그 배고픔 마져 잊어버리고 살아오게 하신

영적 풍성함을 통하여 

진정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 .. 

하나님 말씀이며

성령으로 인한 은혜 임이고

그를 통하여

이 일상을 살아갈 나도 모를 결심을 기뻐하시는 주께서

배고 픔,

육신의 필요마져 잊게 만드심을 넘어

배부르게 해주실 때가

주님의 필요에 따라 허락되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걱정하고 근심하고 초조할 이유없다. 

벌써, 영혼의 만족함을 통하여

육신의 갈급함으로 인한 유혹은 가라앉은 지 오래다 .

주님의 때가 되면 

내 잠시의 허전함 마져 또 채우시리라. 

감사하다. 

 

주님..

감사합니다. 

무조건 그렇습니다. 

영혼이 중요하다고 

영혼만 중요하다고 그러시지 않습니다. 

 

물질과 심리의 갈급함은

영적 갈급함을 채울 매개체이고 

그 해결의 옳음은

당연히도 예수 님을 내 안에 모심,

성령 하나님을 내 영혼 지성소에 모셔들임이며

그로 인하여 충만한 풍성함,

세상의 그 어떠함에도 흔들리지 않는

담담함으로 이어지다가

마침내 그 세상의 부족함 마져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뜻대로 풍성히 채워주심을 느낍니다. 

 

주여.

제 나머지 남은 싸움,

이 영적 싸움에서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그로 인하여 허락되어진 풍성한 은혜의 배부름으로 

이 3차원 세상의 배고픔을 잊어버리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마져 채워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그냥 가끔... 예.. 가끔 기대하다가 

마침내 이루시는 그 손길을 

또 간증으로 채우게 되고

그러함으로 인하여 

영육혼간의 마침내 완전한 배부름,

그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는 것을 목격하게 되게 하소서.

그러다 마침내 부르실 

그때에 

살아계신 주님을 찬양 하며 

두손들고 주의 곁으로 소천할 수 있길 원합니다. 

감사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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