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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 이런 능력허락하소서[막6:30-4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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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 이런 능력허락하소서[막6:30-44]

주하인 2024. 2. 25. 08:48

부제) 제 영혼을 주의 긍휼로 채워주소서

한복 입을 때마다 하는 만두 머리띠 .. 지가 골랐다고 조잘댄다. ㅎ

손녀가

참으로 귀엽다

 

그 중에서도 

할아버지 앞 사랑 받는 자로서의

확신에 찬 시선으로 

아는 모든 것들을

낱낱이 조잘댈 때 

더욱 그렇다 ㅎ 

 

그렇다. 

주께서도 매일 내게

주께서 내 안에 계시고

그 주님께서 이렇게 하셨다라

그리 말씀하신다

 

그러시며 그러신다

나, 주하인 

그러한 사랑 받는 자로서

오늘은 조금 더

세상을 긍휼의 시선으로 

 바라보아도 된다 하신다

 

할렐루야

 

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사도들이 '자기들이 행한 것들'을... 

'낱낱이 고하'였다. 

 대뜸. .손녀가 떠오른다. 

조잘 조잘.. 

"이렇게 이렇게 했고요..

이러 이러했대요..^^*"

허락하기도 전에 불쑥~하고 할아버지 무릎안으로 안겨들어와

조잘조잘 댄다. 

 얼마나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겠던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사랑하시는 아버지 어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시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그것을 제자들이 느끼는 것 아닐까?

 예수님.

하나님의 능력과 카리스마 안에서

전적으로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들이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을

'가장 옳다'는 확신 가운데

'무조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심없는 능력을 행하고

그 이루어지는 경이로움은

그들의 눈을 잠시나마 그리 밝혀주었을 것이고

그것을 마치 아기처럼

주님 앞에서 '낱낱이' 아뢰는 모습이 

순간 그런 연상을 하게 하신다.ㅎ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무엇인가?

그 삶이 퍽퍽하고 힘들고

때로 지쳐서 자주 잊고 있지만

그들은 지금 '소망'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들, 그 시대의 인생들이 경험해보지 못하고 상상해보지도 못한

안전감과 더불어

인생의 목적이 뚜렷이 그려짐,

그것이 절절 끓는 예수님의 영적 카리스마 안에서 

확신으로 차 있음 아니던가? ^^*

 그래서 밥 안먹고 일에 치여도 

기뻐할 여지가 생긴 ^^*..

 

 나.

우리..

이러한 자들이다. 

우리의 부족함, 결점, 죄 탓에 

아주 잠시 (그렇다 .. 단지 아주 잠시 .. 일 뿐이다. ^^;)

자주 자주 잊을 뿐이지.. 

 

 오늘도 또

하나님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다. 

또다시 내 실제가 이러함을 잊지 않고 살아야 겠다. 

 나는 이런자다. ^^*

 

33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이때.. 쉬러가는 

이 고단한 '예수님 공생애'의 시작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은 큰 무리가 따라 붙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연상할 때마다 

솔직히 땀이 난다. 

속상하려 한다 .

나... 그렇다. 

 

 쉬지도 못하게 

자신들만 피곤한가....*&^%$#@..가 내속에 드는 

뒤엉키는 생각들이고 

분노가 올라오려 한다 .

 

 그런데 주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사

그들을 다 받아 주셨다 

다시... 

 

 이거.

예수께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시기에 '피곤'하실 만한데도

그 분은 다른 선택을 하셨다는 이야기다. 

'인간의 부족함'.. 

인생들의 자기만 아는 이기적 본성..

원죄적 존재들의 어쩔 수 없는 추악함에 대한 경멸......^%$#@.. 뭐 이런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악한' 생각들의 꼬리는 

절대로 하지 않으심이다. 

 대신 '불쌍히 여기'시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

하나님의 뜻이 '구원' , 복음을 세상에 제시함이시다. 

그러함으로 인한 '긍휼'이 넘침이 

자신의 육신의 피곤함, 

자아의 고요한 감정적 안정 보다 우선이었다는 거다. 

 

 여기에 드는 반항이 이거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었다. 

능력이 있으시고

더구나 그 시점 입고 계신 '예수의 육신이 젊으시기에^^;' 

더더욱 그럴 수 있다는 것..

젊은이도 지치고 번아웃 안드나?

일정시간 자고 일어나고 자신의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예수께서도 피곤하셨으리라.

하지만.. 그를 넘어서는 다른 동기가 

훨씬 더 커 그러한 갈등을 넘어섰다는 이야기시다. 

 ' 긍휼'

'사랑'

' 하나님 명령의 순종'의지가 

피곤함, 짜증, 원망................이 .. 사단의 그러한 자극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아니다. 

아마도 범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

그게.. '불쌍히 여기사'다.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오병이어'의 기적은

능력적 측면, 

이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부분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오늘은 '긍휼의 상징'.. 

예수님의 세상을 바라보시는 긍휼의 시선

그 상징으로 바라보여진다. 

감사하다. 

 

 

주님

오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묵상하며

그 안에 어릴 수 있는 

제 마음 속 오래된 왜곡들,

당연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이 세상의 가치

그 깊은 곳에 자리잡은

'자아'.. '자신'... '자기'.. 

그 어떤 표현이든 내 속의 느낌이 우선되게 하며

세상을 '워라밸'.. '좋은대로 '.. '삶의 쾌적함'... 등으로 

기준 삼게 만드는 모습을 묵상하게 하셨습니다 .

 

아.. 

힘이 듭니다. 

나의 피곤함과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내 '경계'를 마구 침범해 들어오는 

이기적 주변들... 에 대하여 

속이 상하려 하는 듯합니다. 

 

주여

그렇지만 

진정 '하나님의 긍휼'로 다시 제 마음을 채우소서.

저 혼자 되지 안사오니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주여.

가능하면 

더 큰 사랑의 마음으로 절 채우시사

능력도 허락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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