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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에서 ( 삿 1:22-36 )

주하인 2007. 11. 19. 12:55

 마치

하늘이

천사의 날개로 가득 찬 듯했습니다.

아침의 발걸음이

춥지만

상쾌했습니다.

 

 

 

제 1 장 ( Chapter 1, Judges )


22.  요셉 족속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24.  탐정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의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너를 선대하리라 하매  
27.  므낫세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30.  스불론은 기드론 거민과 나할롤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나 가나안 사람이 그들 중에 거하여  
31.  아셀이 악고 거민과 시돈 거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32.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니 이는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33.  납달리가 벧세메스 거민과 벧아낫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오늘은 이 글이 크게 다가온다.

묵상의 진행은

모세와의 40년 광야의 혹독한 시간을 지낸 후

여호수아와 더불어

계속적인 이기는 전쟁, 정벌의 시간을 거치고

이제 하나하나 마무리 하는 과정이다.

 

 조금 편안한 과정이다.

수술의 본 과정은 끝나고

마무리하고 나오기 위해

지혈을 하고

유착이 생기지 말라고

유착 방지 필림 등을 붙히고 나오는 과정이다.

 본 수술 보다는 어렵지는 않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라도 놓치면

나중에

상처에 혈종이 생기기도

추후에 오랜 시간 후에

장유착이나,

상처 염증 등 불편한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어쨋든 수술의 전 과정은 하나라도 소홀히 할 것은 없다.

 

 애굽의 노예 생활,

세상의 원리에 원죄가 있는 우리가 뿌리 깊이 들어 있는

악감을 내려놓고

주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

우리 주님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수술해 주신 그 영혼을

잘 보존하여 온전히 마무리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surgeon이신

우리 주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잘 꿰매고 마무리 하고

상처를 마저 봉합해야 한다.

 

 주님 예수님.

나와 함께 하소서.

 

 기왕에

주님을 내 주로 모시고 살게 되었으니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원리에 맞게 살고 싶지만

이 인간의 마음은

늘 이리저리 널 뛰는 망아지와 같아서

마무리하는 시점이 다가오면

마음이 해이해지게 된다.

 윗분이 시키는 원리에 따르지 않고

임의 대로 수술을 진행하다가

때로는 돌이키기 어려운 일에 직면하기도 한다.

 

요셉 백성이

그 뛰어나신 주님이 함께 하셔서

좋은 수술을 하시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교만과 자만으로

감염을 유발하게 만들고있다.

그런 해이와 교만으로

'쫓아내지 않으니'

결국은

'쫓아내지 못하고'가 다섯 번이나 나온다.

 

 어제

예전과 다름없이

교회에서

점심 '찬양예배'를 이끌었다.

조그만 교회인데다

행사가 많아서

한사람이라도 빠지게 되면

가끔은 정신없이 부산하게 되는 일이 없지 않아 있다.

 Powerpoint 띄워 주시는 분께서

자리를 비우시게 되니

노트북 컴퓨터를 가져오지 않으시고

그러다 보니

나중에 다시 가져오게 되고

편법으로

그냥 복사를 해서 찬양 곡을 나눠주고 진행하고 있던

예배 중간에

그제야  준비하려

왔다 갔다 하시는 몇몇 부지런하시던 분들 때문에

찬양의 맥이 이곳 저곳이 끊기게 되었다.

 조용히 기다리면 될 것을 

그 분들을 제지 시켰다.

속에서 '불끈'하고 특유의 화가 치미려 한다.

가만히 들여다 보니

'이렇게 귀중한 자리를...'

' 아니..내 말을.. ' 한다.  

 진행하는 찬양의 소리가 까실해 진다.

나름대로는 금방 정상을 회복했지만

돌아보면

그 안에

그들 보다 훨씬 나은 자리에서

은혜를 나누어 주는 자리... 라는 무서운 교만이 슬그머니 침투했기에

그들을 제지시키는 높은 위치를

잠시 차지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분노'

 

 주님을 찬송하는 자리에

전혀 맞지 않는

이 악감의 원인은 어디인가?

 오랜 시간의 신앙 생활과

묵상과

마음 공부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서

온전히

그러한 교만한 마음을 내려 놓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슬그머니 타협하며

이정도면 되었지..라는 생각으로 나태하게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러한 속 마음을 온전히 다 내려 놓고

성화되려면

갈길은 멀 줄 안다.

그러나

오늘 보이시는

정리 단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함께 하시던 주님이

나름의 교만과 해이로

온전히 쫓아낼 노력을 아니하니

나중에는 쫓아낼 수 없는 것이 다섯 번 씩이나 되풀이 되는 현상을 보이심은

영적인 최전선 앞에 서는 찬양 진행자이고

수술도 할 수 밖는 자로서

그러한

교만함과 해이와

주님 앞에서 최선을 다한 성화의 노력을 하지 않음이

가져올 수 밖에 없는 결과에 대하여

주님은 미리 경고하시는 듯한 생각이다.

 

 주님은

당연하시지만

'항상 함께 하심을 ' 약속으로 다시한번 보이신다.

감사하신 그 분.

 나의 성격,

이 정도면.. 이라는 생각의 안이한 태도를 경고하신다.

 

 

적용

 

1. 회개한다.

 특별히 경멸과 분노에 대한 마음을 회개한다.

 

2. 찬양은 주님이 받으셔야 한다.

 주님 앞에 서 있는 나 임을 늘 인식한다.

 

3. 감사한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

 

4. 성경 다섯장 읽겠다.

 

5. 나에게 허락되어진 일들의 이유에 대하여 다시금 묻는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뜻대로

주님과 함께 있음을 늘 기억하고

교만과 해이와 분노를 내려 놓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하소서.

어 떤 상황이라도 주님의 뜻이면 받아 들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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