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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의 共感(행 28:16-31 )

주하인 2007. 11. 16. 10:28

제 28 장 ( Chapter 28, Acts )

( 07.11.15 필그림의 '전인치유' 연주 후)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제한적 자유.

이 땅에서의 기독교인의 삶은

제한을 받는 자유이기도 하다.

주님의 명령 안에서 순종해야 만 하는 속박.

그 안에서의 자유.

 

 

 

20.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노라 
  

이스라엘의 소망

쇠사슬

매임을 기뻐함.

순종함의 자유.

 

 쇠사슬은 생각만 해도 힘이 들다.

고통이다.

자유를 빼앗김이 답답해서도 그렇지만

그 파고드는 아픔과 무게가 주는 중압감

매 분 쉬지 않고 뇌리 속을 파고드는

죄인의식도 문제다.

 

 그러나,

소망 때문에 묶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힘들어도 힘이 아니다.

그것은 기쁨이다.

 

 지난 2년동안

큐티를 하면서

글을 올리기 시작한 이후

여러번 고백을 한 바

나의 인생을 지독히도 어렵게 하는

쇠사슬이 날 묶고 있어

난  그 무게가 견디기 힘들었다.

아직

그 쇠사슬은

날 묶고 있음을 느끼지만

예전같은

그런 차가움은 아니다.

가끔은 살을 파고 드는 아픔은 있지만

그것은 견딜만하게 변했다.

이제

서서히

그 쇠사슬이 행운일 수 도 있음을 고백할 수도 있게 되었다.

 

 예전과 다른 것은

그 쇠사슬이

날 구속함이 유일한 목적이 아니고

그것을 통해

남을 위해

주님의 영광을 들어낼 이유가 됨을

서서히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랬다.

사도 바울이

쇠사슬이 '이스라엘의 소망'을 위하여

자기에게 가해진 고통임을

확신하고 있기에

그 묶임이 오히려 기쁨임을 고백하듯이

이제 나도

나에게 가해진 인생의 이 쇠사슬이

실은

주님의 이유가 있음을 눈치 채고 나서야

훨씬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고백하였듯이

오히려 서서히 기쁘게 받아 들여질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이스라엘의 소망이라 표현하는

사도바울의 그 대단한 '선교'의 역사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의사로서

직장에 근무하면서

단지 내 가진 달란트를 가지고

어찌되었든 간에

'찬양 인도'를 하게 하신게

나에게 가해진 '쇠사슬'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매주 목요일.

거의 매주.

올라갈 때마다 속이 상함을 금할 길이 없었었다.

'이 나이에..

 내가 왜?

 남들은 내 나이에 벌써... 난.. '

 난 과거를 돌아보면

누구의 갈채나

내가 하고 싶어 하거나

내 기분 상 할 때가 아니면

절대로

하지 않던 사람이다.

그러기에 불규칙적이고 규제를 싫어하고

어디에 소속되기는 불가능한 삶을 40몇년을 해왔었다.

그러기에

규칙적이고

어딘가 의무에 매여

강렬한 남에 대한 소명의식 없이

찬양을 한다는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었었다.

내 속의 쇠 사슬이 그런 묶임을 당할 때

얼마나 파고드는 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이

전인치유 무대 위에 설때마다

주님이 주시는 영적인 감동에 비교하여

하찮은 사슬의 고통임을 깨닫게 되면서

이제

아직은 고통은 남아 있지만

그 고통을 극복할 때마다

주시는 은혜의 그것에 비교할 때

그것은 오히려 기쁨이다.

 

 아직

불신의 삶에서

주님을 믿는 자로서의 정체성이 전환되면서

나의 소명이

나의 이스라엘의 소망이

그냥

찬양을 통한 주님의 기쁨을 전함,

부흥..에 있을런지는 잘 모르지만

주님은

내 가진 쇠사슬이

누구보다

야생마 같은

교만하고

포악덩어리 주하인을 다스려

영혼에

올바른 소망

즉,

이스라엘의 소망을

깊숙이 들여 넣는 데는

너무나도 적절한 방법이셨다고 판단되셨던 듯 싶다.

지금은

돌아보기도 싫은 과정이지만

그 탈출하고 싶은 몸부림을

묶게 한

내 쇠사슬이

얼마나 감사하게 쓰였는지

살포시

짐작이 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삶도

그리 큰 고민하거나 걱정하거나

괜히 머리를 쓸 이유는 별로 없다.

 

그냥

내 쇠사슬이

이스라엘의 소망

즉,

나를 통하여

나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주님의 일을 위한 도구가 됨을 인정하는 것과,

그 쇠사슬이 요동을 칠 수록

오히려

기뻐해야할 당위성을 가지는 것 만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 장래는

승리하는 삶이 될 것이란 것을

느끼는 것 뿐이다.

믿어지는 것이다.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근본은 이것이다.

 

내가 삶의 어떠한 행태를 취하더라도

'주님을 위하여' 사는 모습이다.

 의사로 살며

선교를 하던

더 공부를 하여 신학을 정통으로 배우고

복음을 더 정확히 남들에게 가르치던,

온전히 주님과 하나가 되는 찬양을 함으로

가는 곳 마다

부흥이 일어나고

차가운 자들이 깨어나고

불신자들의 영혼이

주님 앞으로 넘어지던..

아니면

다른 어느 곳에서

어떤 삶의 패턴을 취하던...

그 근본은

내 삶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단 한명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는 결과가 벌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어리숙한 주하인은  

가끔

가만히 넋 놓고 있을 때가 많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어려서 부터 '완벽'주의 성향이 많아

모든 사람이 다 내 말에 집중하고

주님 앞으로 듣는 자 모두 영접할 기회가 아니면

잘 전하지 못하는

그러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두려워 하는 것이 '거부'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그 강력한 카리스마의 전도에 의해서도

그 명료한 설교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도 있고

듣지 않는 사람도 있다.

 

 

 

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담대하다는 것.
그것은

결과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現狀에 흔들리지 않는 다는 것이다.

 결과는 '주님이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즉 ,

결과에 초연하다는 것이다.

 

 그는

죄수로 묶여 있는 자이며

상대하는 자들이

로마의 유복한 유대인들이다.

듣지 않는 자들도 많다.

그래도

그냥 가르친다.

믿는 자는 믿게되고

믿지 않는 자도 있게 된다는 것을 안다.

전인치유

" 찬송하며 살리라"

 

 

 어제

40주년 개원 기념을 맞이하여

일본과 대만의 병원에서 손님들이 오시고

'필그림' 앙상블의 대단한 공연이 있었다.

 

 그 사전에 '찬양'을 20여분 인도하게 되었었다.

늘 그렇지만

올라갈 때마다 긴장한다.

라파팀에 메시지를 띄우고 시간이 되어 내려갔다.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안내려 온다.

드럼도

키타도

여성 보칼도....

마이크도 장치가 안되고

보면대도 .......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며

속이 타려 한다.

 

 아침에

새벽기도 다녀온 아내가

' 주님을 위해 한 구석을 비어 두래요.'라고 던진 말이

가슴에 들어온다.

 어제 묵상에

독사가 물어 뜯는 순간의 바울은

그냥 가만히 불에 떼어 넣는 장면이 나온다.

 

 주님께 기도했다.

현재 상황을 가지고 또 독사들이 물어 뜯으려 달려들 때

주님이 알아서 들을 자 듣게 하소서....하고..

 

찬양은 은혜롭게 끝났다.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다.

기쁘다.

난, 주님 앞에서

담대히

찬양으로 듣는 그들에게 기도를 했다.

말씀을 전했다.

 

' 이 험한 세상 ~~♬'

 

 

 사도 바울의 죄수의 신분에 상관없이  '담대히 전하되 금하는 사람이 없더라'는 표현에서

감시하는 자가 있되 자유롭다는 표현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주 안에서 자유로운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로서의

기쁨을 느끼도록 하신다.

 

어찌되었던,  

 난 바울님과 같은 자유를 아주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있다.

 

 

 

적용

1. 나의 쇠사슬을 인정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2. 감사하며 현상황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3. 내 이스라엘의 소망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한다.

 막연한 느낌 보다는 확실한 그 무엇을 기도한다.

 현실에 의하여 흔들릴 듯한 것이 아닌...

 

4. 남을 위하여 좋은 일 한가지 한다.

 

5. 성경 다섯 장 읽겠다.

 

6. 지혜와 실력을 달라고 기도한다.

 주님의 뜻에 더욱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안된다'는 패배의식 보다는

 더 잘쓰임 받기 위해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다.

보는 책 마다 환자를 위해서 도움이 되도록 기억 남게 하고

찬양의 능력을 더하도록 반주나 음악적 소양도 키우시도록 기회를 달라고 기도한다.

교만을 들추지 않는 한도 내에서...

 

 

기도

 주님.

전 쇠사슬이 무겁습니다.

그동안은 눌려서 고개 조차 들지 못했었지만

주님을 알고나서는

그래도 많이 가벼워 짐을 느껴왔습니다.

쇠사슬이 늘 짐이기만 했었습니다.

지금도 조금은 버겁습니다.

시간이 되면

벗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너무나 많이 듭니다.

그러나,

주여

주님의 뜻이 무엇이신지요?

그걸 통해

지금껏 인도하심은 느끼지만

.......

가르쳐 주소서.

이스라엘의 소망을 더 잘 이루기 위해

끝까지 지고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더 잘 하기 위해 벗기를 기도할 지요?

주님 도우소서.

주님 안에서 가장 선할 때

선한 방법으로 벗기시리라 믿습니다.

주님

특별히 찬양인도할 때

주님 앞에 서는 의식을 잊지 않도록 도우시고

단지 주님이 주시는 그 힘으로만 찬양하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제가 대신 받는 어리석음 버리게 하시고

어떤 상황이든

주님을 생각하도록 도우소서.

아침.

힘들지만

자유를 허락하신

그 귀한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상고하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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