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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내게 이러신 분이시다 [시118:14-2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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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내게 이러신 분이시다 [시118:14-29]

주하인 2018. 12. 28. 07:37

 

 

 2011/12/22(  제목 이나 사진 △을 누르시면 연결됨 )


이 들판을 흐르는

 잔잔한 바람은

이전에도 불었겠고

앞으로도 

그 자리를 흐를 것이다

 

그 흐르는 우주의 흐름 속에

세상은 또다시 이렇게

그 시간의 한 면을

아름다움으로 장식하고 있으리라

 

나도 그래야 한다

내 닫혀 있던

영혼의 문을 활짝 열고

우주 궁극으로 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하나님의 성령의 기운을

받아 들여야 한다

 

그래서 그래야 한다

그 시간의 어둠이 아니고

그때 그시간의

한 풍경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그렇듯 그렇게

아름답게 만드셨듯

내 영혼도

주님의 그 예정된 뜻에

맡게 흘러야 한다

 

이제

문을 열자

내 영혼의 닫혔던 문을

활짝 다시 열자

 



14.여호와 나의 능력찬송이시요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여호와' 하나님은

내게

능력과

찬송과

그리고 또

'나의 구원'이 되셨다. ..되셔 버리고 말았다. (와우.. 표현.. ^^*) 


그런데

이전에는

동일한 구절을

여러차례 읽고 ,

또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묵상구절이기도 했을 지 모르지만

그냥 스쳐 지나가던 구절이

유난히도 한글자 한글자 의미를 담고 온다.

 아..

레마로 받던.. 이전의 모든 구절도 다 그랬다 .

마치 글자가 꿈틀대듯 느껴지기도

굵은 체로 써 있는 듯 힘있게 다가오기도...

지금도 그렇다 .

가슴을 흔~들 하면서 말이다.

공통된 느낌의 .. ..

 하지만, 이전의 그런 부분들은

여러차례 되풀이 되풀이 나와 '하나님이 강조하고 싶으신 듯'하거나

운율있게 느껴져 내 숨겨진 '詩性 (맞나?ㅎ )' 을 자극하거나 한 구절이 대부분이고

이렇듯

교훈적이거나 가르치는 듯하고 그냥 요식적 글인 듯한 부분에는

별 .. ..^^; .. 그랬다.

하지만.. 요즈음은 아니다 .


 조금 다르다.

그러함과 큰 상관없이

은혜가 되고 마음이 흔들거릴 때가 자주 있다 .


내 스스로 생각해도 그런 게

대견하고 감동스럽기도 하다 .

 이유로

일단, 감성 차원에 머물던 하나님과의 만남이

'진실', 사실 부분으로 올라왔다는 것이고

그러함은 내 삶속에서 많은 경험과

그러함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좀더 성숙해져 가는 단계로 느껴져서 그렇단 말이다.

그것은

머리가 발달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천재적인 (난.. 내 삶속에서 어쩔 수 없이 지금같이 민감한 묵상 者일 뿐이지만.. 어쨋든..) 아이가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심리적 부분, 통합적, integration부분에서는

전혀 괴리를 가지다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이 늘고 조율이 되고 다듬어진 후에야

정말 대단한 인재가 되듯

신앙에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

그래서 ..

오늘 말씀에 눈이 감이

기대가 되고 기쁘기까지 하다. ^^*


 각설하고

주님은 나의 '능력'이시다 .

맞다.

내 삶의 모든 것 .. 간증을 통해 수도 없이 그랬다.

여기까지 오게 되고

이 자리에 서게 되고

그러한 나를 그냥 자연스레이 받아 들이게 되고

장래에도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게 되며

불운할 지 모르는 상황, 불안할 수 있는 지금에도

그냥.. .기도하고 차분해지고 오히려 행복을 논하게 됨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실까..?

나.. 의사지만 의학적으로 설명불가한 삶을

내가 영위하게 되어가고 있으니

그 것이야말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 중

아주 아주 적은 일부분이 아니실까?

'엘샤다이 하나님' 할렐루야다 .


 주님은 나의 '찬송'이시다 .

나.

정말 달란트가 있다 .

자랑이 아니다.

그냥 사실이다.

불신자 시절부터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별명을 듣고 살았으며

온갖 모창에 정말 탁월한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

그런 내가 . .. 오랜 방황끝에

아주 작은 교회의 반주자 ( 배운적 없는 데 반주하고 찬송하게 된 젊은 여성.. )의 찬송을

의탁하여 (ㅎㅎ.. 많이 도움 받았다. 정말.. 내 신앙 그 흔들리던 초기에.. ^^*)

깊이 감동을 받고

점차로 찬양리더로 오래 역할을 하며

많은 기적도 체험하곤했다 .

이곳저곳 불려도 다니고..

그런 내가 .. 지금도 찬양을 하며

그 운율에 실려 느껴지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통해

깊은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

 하나님..

그 분은 '찬송'으로 영광 올려드리기엔

너무나도 크신 분이시어 짐작하기 조차 어려운 분이시지만

난.. 이 조그만 지구 땅에 발을 붙이고선

늙어가는 육신을 가진 자로서

유일하게 올려드릴 내 가장 잘하는 방법이

그냥 '찬송'일 뿐이라서

그리 드린 다 생각하곤 있다

 오늘 주님은 나의 '찬송'이라신다.

그렇다.

난. .깊은 감동으로 쉽게 몰고 가게 되는

찬송을 부르는 그 상황으로

내 하나님을 매시매초 일상에서

이제 만나고 있게 될 것이고

내 단 한순간도 주님의 찬송으로 흐름에

같이 흘러 흘러가며

마지막 내 여명을 메워가게 될 것을 기대한다.


 또..

또 라신다.

이 표현도 좋다 .

감동에 의해서 주님은 나의 능력이시고 나의 찬송이시고... 하면서

그 격동을 한차례 더 올려 드리기 위한 추임새 처럼 느껴진다 ~♡

 주님은 "또' .. 나의 '구원'이시다.

그렇다 .

당연하다 .

구원이 .. 십자가 구원의 일차적 구원을 넘어

위의 .. 지속적으로 고백해오는

내 모든 기쁨과 행복과 소망과 감동의 근거.. .

그 끝.. 그 궁극의 '완전한 구원'.. 을 의미한다.

감사하다.

 그 완전한 구원, 완전한 성화가

내 운명이 될 것임을

다짐하는 것이자

하나님의 도장 찍으신 것으로 느껴져

그게 기쁘다 .

 


17.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내가 죽지않고 살아서 '

아.. .

이게 운율로 느껴져..

위의 묵상구절과 다른 의미이지만

주님의 말씀하심으로 느껴져 이렇게 써 놓았다 .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선포한다' ..


이 말씀은 십여년전

'조그만 교회' .. 수도자 성향을 띤 교회 (갈등은 오래전에 써놓았다. .. 블로그에.. )에 다닐때

목사님의 설교 중 나왔던 구절이며

그때.. 내 머리속은 confusion덩어리였고

마음은 뒤죽 박죽였지만

하나님의 강한 인도하심과 첫사랑의 기억으로

그냥 그냥 매일 끌려 인도 받던 시절이었고

그때.. 첫사랑의 기쁨은 가라앉은 지 오래고

마음이 그래서

자주 불신시절 처럼 '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곤 하던 때였었다 .

아.. 물론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두렵고 , 빈도는 적었지만... ㅠ.ㅠ;

 그 목사님께서

'자살은 죄'이라시면서 저 구절을 설교하시고

그리 힘들어도

그냥 살아야 할 당위성에 대하여 얘기하시던 게

지금 눈에 뜨인 것이다 .


 아.. 그때랑 다르다.

지금도 여전히 고난은 '죽고 싶을 만큼 많지만 ' (올해.. 특히 격렬했다.. ㅠ.ㅠ;;)

그래도 '죽지않고 살아야 '할

너무도 뚜렷한 이유가 내 영혼에 각인되어있다.

 어째서냐고?

행복해서다.

힘들지만 기뻐서다 .

조금더 가면

더 온전한 구원과 영생이 기다릴 것이 서서히 믿어져서다.

그래도 하루 하루 살아내다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쓰다듬으시는

그 은혜의 기쁨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점차로 나아져가는

내 대처 방법이 기특함을 자꾸만 체험하게 되어서 그렇다.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 감을

목도하고 확신하고 이처럼 .. 줄줄 늘어놓을 수 있게 되는

그 사실이 기뻐서 그렇다 .


그래..

그러니 이제

죽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의 살아계신 일들을

점점 더 크고 뚜렷이 늘어 놓아야 한다.


나..

진료실에서

길거리에서

불특정한 시간에

자주..

느낌이 있으면

말씀으로 주어지면

나도 모르게 전파한다.


개중에 어떤 분은

천국에서 날 보고 뛰어오시지 않으실까?

당신 덕분이라고.. .^^*

그게 감사하다.


이러한 빈도를

진짜로

내 영혼에 밀려오는 , 폭주하는 감동으로

항상 , 더 , 크게 하다가

어떤 상황이 이르러

주님이 날 부르시는 '선교'의 장에도 서게 될 것도

기대는 아직 못하지만 (무서워서.ㅎ .. 적은 믿음.ㅎ^^;;)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다.

 '죽지 않고 살아서'

그렇게 하고

주님을 뵈어야

면목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함들.

내게는 소망이고 힘이고 살 에너지며

매일이 행복할 이유다 .



주님.

주님이 계심이

제게는 너무도 큰 행복입니다.

전..

표현이 맞는지 모르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가며 사는게

너무도 큰 행운이라 생각되어집니다.

내 주여.

모든 .. 제가 감당하지 못할 것

주님께 의탁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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