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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지게 하시고 같이 지신 내 십자가[마27:27-44] 본문

신약 QT

주가 지게 하시고 같이 지신 내 십자가[마27:27-44]

주하인 2019. 4. 18. 08:30



31.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희롱.. 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난..

희롱도

희롱을 당한다고 착각하는 과민함도

주님이 들여다 보라심이신가보다.


그 약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

희롱 자체보단

희롱이라 느껴지고 고민하게 하는

내 문제.

내 속의 문제..........!

내 십자가와 연관되었을지도 모를..........

나의 그 부분.


(아래,과거 묵상의 사진이 넘 가슴을 쳐서 그냥 가져다 붙였네요.. ^^;)


그러네요 

아버지


제게

지워졌던 십자가


몸부림치고

벗어버리려고만 하다가

무심코 바라본

내 곁에 

같이 나누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된 후

깨닫게 되었습니다다


이 무게 

이 고통 

이 지독한 삶의 무게....


억지로 지워진듯

벗어 버리려고

피하려고

그리도 노력했던

바로 그 십자가

그러고 보니

그것은 

나의  주님 닮기 위함이셨으며

나를 사랑하셨음이 

그 이유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랬습니댜

주님의 땀 흘리시면서도

나를 바라보시던

그 눈빛의 깊은 애처러움이

내게 

모든 것을 말씀하심을

이 미련한 자

이제야 깨닫습니다


주여

그게 필연이시라면 

기쁨으로  지게 하소서

회복의 기대로

그리하게 하소서

그러함으로

또다시 내게 임하게될

주님 하나님의

철저한 은혜를 소망함으로 

그리하게 하소서

내 주 예수시여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32.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그런데

나가다가.. 라 나온다.

'만나매' .. 란다.

그리고 '억지로'라고 나온다.

억지로...


그 '구레네 사람' 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다고 한다.


이것.......

굳이 나가다가 만난 사람을 선택할 필요가 어디있었을까?

주변에서는 없었는가?

그리고 저 뉘앙스는

아무런 필요성 느끼지 못하다가 '갑자기 '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어떤 , 자기도 모르는 , 무의식의 소리를 들은

집행자 누구의 뇌리에 떠오른 생각으로

그게 진행되었다한다.

 '만나매'라 되어있다.

우연한 조우.

수천 수만명 중, 그 시대, 예수님 십자가 달릴 그때ㅑ

그것도 먼 곳에서 여행온 구레네 사람을

'만나게 '한 것.......

모두 '필연적 ' 어떠한 것...

그러함을 그렇게 되게 한

큰 손.

우리 인간이 아무리 '예정'.. '우연' ..을 갑론을박해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손에 의하여

그리된 것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선택이

예수님 십자가 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같이 지는 것.

........

그러함을

우주와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말이다.


그리고는

구레네는

당연하고도 엄청난 '희롱'의 장면에 같이 합류하고

십자가 지는 고난에 같이 참예하게 되었던 것이다.


언젠가 오래전 묵상할 때

구레네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 뙤약볕 아래서 지은

그 십자가의 무게 아래에서

힐끗 '예수님'의 눈을 바라본 장면이 스치고 지나가며

그의 마음에는 더 이상의 .....그러함이 없어지고

감당할 수 없는 감동으로

십자가 사건 이후 집으로 가

가족 모두를 구원한 .......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이후의 일들이

이 가족을 통해 많이 이루어져갔다.


 무엇인가?

오늘 내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

 '희롱'

아니면 일련의 내게 부담을 유발하는..

더 정확히는 희롱 내지 부당한 대우를 당한다고 생각하게는

내 속의 어떠한 오동작의 움직임까지 포함하여

그러함을 주님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에 동참함은

내 결심에 끝나고

깨달음에 끝남이 아니란 이야기다 .


만나매

나가서

.......하신 것처럼

모든게 나랑 상관없이

주님과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들이 아니고

그런 것들을 다 내려놓고 맡기는 것은

주님이 아주 오래전 부터 원하시고 바라심이고 알고 계심이시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그냥.

내가 짊어질 십자가는

희롱.. 그런 부분이다.

그런 것들..

그냥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과 같이 간다 생각하고

무조건 지라... 심이

오늘 내게 말씀하심이다.


그렇다면

내 일상에 어떻게.. 각론적으로

그 실제의  십자가짐을 이루어낼까...?


하루 살면서

또 깊이 묵상하며 살 일이다.



주님.

아시오매

제게

힘을 주소서.


구레네사람의 그 우연으로 보이는 희대의 망신이

실은

하나님의 오래전 부터 예비되신 일이시며

그 희롱의 십자가를 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 세상에 전파되는 역사에 참여하게 되는

진정 놀라운 결과가 예비되어 있었음을

제가 잊지 않도록 하소서.


제 약함, 제 곤란함, 제 부족함, 제 결점, 제 안되는 절망........

모든 '희롱'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런 부분들

오늘 만큼이라도

주님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그래서 드디어는

깨닫고 돌이키게 하소서.

 주여.

그리고

그 모든 것..

억지로.. 지워진 것.

주님의 뜻가운데 억지로 지워진 것이니

주님도 아신다는 뜻이고

주님의 아프시지만 허락하신

그 필연의 십자가가

바로 내 안의 '희롱'으로 느껴지는 것 임도 잊지 않게 하소서.


내 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이전의 묵상 들 (참조하셔도 좋으실 듯합니다. ^^*)



1.  2010.04.01

  하나님의 뜻이시라면 

세상이 온통 어두워도

주님 만

제 곁에 계시면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하나

날 이해하는 자 없다해도

주님 십자가 

그 놀라운 사랑과

그 처절한 순종을

잊지 않을 수만 있다면

견딜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주여

부디

그 모든 것

저 혼자의 힘으로는 안되는 줄 아오니

성령의 강력한 인도하심 기대합니다

 

주님

도우소서

오늘 하루도

강력히 잡아 주소서

 

 

29.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1.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홍포를 입히고

가시면류관 씌우고

희롱하고

다시 홍포를 벗기고

옷입혀 끌고가고
  
  
35.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십자가에 못박은 후

옷마져 자기들끼리 제비 뽑아 나누고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44.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십자가

그 극한의 고통 중에 계시는 주님께

지나가는 자들도 모욕하고

대제사장 일행도 희롱한다.
 뿐만이던가?

그럴 자격없는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 조차

주님을 모욕한다.

 

 

 세상에 어이가 없어도

너무 어이가 없다.

기적을 엄청나게 베푸시고

지혜로운 설교가 눈이 부시게 펼쳐지고

뿌리시는 神的인 위엄, 카리스마가 엄청나시던 분이

갑자기 잡혀

아무 저항하나 못하시고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며

모욕, 수난, 고통, 비방.....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수난을 겪으신다.

그러시면서

그 분이 보이시는 반응은

'무저항'이시다.

아니, 그를 넘어서는

온전히 맡겨 버리신 듯,

힘을 빼고 끌려다니는 느낌이시다.

 '양'

양의 도살 장 모습은 보지는 못했지만

수없이 들은 양의 특성을 감안해보거나

아.. TV등에서 실크로드나 몽골 등에서

양을 살육할 때 나타나는 특성에 의하면

아예 저항하지 않고

맡겨 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 그런 모습처럼 느껴진다.

   

 안에서 수모 당하시고

끌려 나오시며

구레네 사람 시몬과 십자가를 나눠 지실 때 그러셨을 것이고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그 엄청난 고통의 시간에도 그러하셨고

매달리셔서 피가 빠져나가고

열사의 햇빛아래 체액이 말라가실 때도 그러셨고

그 시간에 지나가던 사람들에 의해서도

심지어는 같이 매달렸던 죄수들에게서도

수모와 멸시의 공격을 받으셨다.

 

 쉽게 말로 표현한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과연 범인으로서 견딜수 있는 것들인가..

하지만 그런 극한의 고통의 시간들이 지나가면서도

그 분은 '순한 양'같은

모든 것을 '행하는 자'들에게 맡기는

극도의 무저항의 이유는 어디에 있으셨을까?

 나라면,

가능치 않은 이야기이겠지만

설령, 단 한마디 말로서 저항을 하지는 않았을 지라도

또는 그 과정을 넘어서는

초 절정의 인내로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댔대도.. )

얼굴이나 눈빛으로 '원한'이나 '살기'를 쏘아내지는

다행이도 안했어도

내 속에 흐르는 다양한 생각 들은

어찌 자제 했을 것인가?

 아니,

다행이도 '멍'했더라도

잦아드는 '자괴감'은 어찌 감당했을 것인가?

불가능한 상상이 틀림없다.

만일 그 마음에 조금이라도 '악한' 생각이나 '부정적'인 생각을 했더라면

'순한 양'의 그 철저한 무저항은 가능치 않았을 것이다.

 어딘가 근육의 긴장이 되고

자신도 모르는 '반항'이 짧게나마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

오늘 묵상에 흐르는 전체의 '기조'는 철저한 '무반응' 맞다.

그 예수님은 그러기에

그 길고도 지루하고 무섭고 힘든 시간 동안

그 마음에 '죄성'이 발휘되지 않았다는

전제가 가능하다.

당연히도 그 분은 '죄'가 없는

흠없는 어린 양이다.

 그렇다면 , 저 무지막지한 극한의 고통 속에서

그 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떤 이유로 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저런 '무저항', '무 반응'의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이던가?

 당연히도 '하나님의 뜻을 준행함'이시다.

하나님이 원하심이니 그러시는 것이시다.

도저히 위에 기술한 것 처럼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상상할 수 없는

'인지의 괴리'

즉 , 엄청난 능력자가

가장 무능한 '양'의 도살 같은 태도를 취함이

충격이겠지만

그러기에 인간의 이유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지만

그 분은 이유가 너무도 뚜렷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이다. '

'도저히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원죄 때문이다' 가

그 답이시다.

 주님의 뜻을 준행하시고

세상의 사람들의 구원을 위함이 너무도 절박하셔서

그 분은 그것을 위해서는

'무저항'을 취할 수 밖에 없는

'어린 양'으로서의 자신을 드려야 하기에

그 분은 그렇게 하신 것이다.

 

 나.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비평'당하는 것이다.

내 잘못을 비평당함은 잘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이없는 무지하다 판단되는 자의

'횡포'적 비평에는 견디질 못한다.

분노를 폭팔시킨다. ㅜ.ㅜ;;

 오히려 육신의 아픈 것은 낫다.

놀림 받고 공격 받는 것은 정말 싫었다.

아마도 오랜 상처 탓이리라.

주님의 상황에 날 대입시켜 보면

난, 정말 가능치 않는 일이다.

하지만 조금은 '희망'은 보인다.

 '아..

 하나님의 뜻이시라면.. '

하지만, 내 삶 속에서 부닥치는

내 터부에 대한 좌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매일매일 , 매시간 마다 잊는다.

그러기에

'만일 예수님 같이 주님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합당히 행동하고 생각할 수 만 있다면... '이란 전제에

들어가면서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다.

나.

아직 너무 부족하다.

그러나, 이전에 없던 나의 인격에 새로운 패턴이

아주 느리지만 서서히 생겨가고 있음을

난 잘 알고 있다.

말씀을 억지로라도 순종하면 생기는

놀라운 평강과 자존감의 상승,

그리고 주님의 위로.

성령의 충만한 은혜.

 그렇다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늘 인지할 수 있는

조금은 더 성장한 상태라면

'무저항'도 가능할 것이란 가능성은 보인다.

 

 오늘 묵상함은 그렇다.

'주님의 무저항을 닮자'

어떤 비판이나 공격이나

어이없는 상황에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자.

그리고 그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성령의 은혜'로 가능하다... 는 것이다.

 오늘, 고난 주간의 막바지를 향해 가는 목요일이다.

아침 한끼 금식하고 있다.

정말 , 주님의 그 고난...

주님의 그 우리를 향한 거대한 사랑을 비하면

어이없는 착한 일이지만

내 할 수 있는 작은 결단임을 바쳐드린다.

주님.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서라도

나를 조금이나마 이쁘게 보셔서

늘 주님의 뜻 가운데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고

결심하는

내가 되어갈수 있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적용

1.  인내한다.

  오늘은 어떤 상황에서도 참겠다.

 얼굴도 변하지 않으리라.

 눈빛도 변하지 않으리라.

 말은 하지 않으리라.

 변명의 욕구, 상대를 이기고자 하는 승리 욕심.. 무조건 포기하리라.

  주님의 뜻이기에 그렇다.

 하나님이 좋아하시기에 그렇다.

 예수님이 겪는 고난이기에 그렇다.

 

2. 성경 여덟장 읽겟다.

 

3.  내일 아침 새벽교회 나가겠다.

 오늘도 늦었다.

 내일은 꼭 그리하려 노력한다.

 

4.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한다.

 

기도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주님의 그 사랑은..

주님

제가 어찌 주님의 그 절정의 인내를 흉내낼 수 있겠습니다.

주님

제가 어찌 가능하여

주님의 그 사랑을 닮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여.

하지만 주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함으로

저 그리 닮아 가게 하소서.

주여

하나님의 뜻이시라면.. 이라는

전제 하나만으로

제 안의 모든 악한 생각들이

봄눈 녹듯이 소멸되어 버리는 경험을

늘 했으면 합니다.

주여.

주님의 그 무저항을 닮을 수 있길 소원합니다.

오늘 하루 만이라도 ..

주님의 뜻이고

주님의 모범이시기에 그러하길 원합니다.

주님.

힘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2017.04.17

  너희는 모르지만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세상에..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비록 인간의 육신을 입었지만

이리 대우를 하다니..

 

침 뱉고

빼앗고

머리 때리고........

..............

..............

그것도 모자라

십자가에 같이 달린 강도들까지....

 

그런데 주님은 한마디도 대꾸를 안하셨다.

말그대로

도살장에 끌려온 '순한 양' 같으시다.

 

보고 있을 때

속상하다.

열불이 나려한다.

맘 같아서는 벌떡 일어서서 '네~~ 놈~~들이'.. 하고 싶다.

 

그래도 주님은 참으셨다.

곧 있으실 십자가 승리를 위하여 그러셨다 .

다시 부활하실 우주적 대 역사를 위하여 참으셨다.

 

잠시 ,

아주 知力이 많이도 모자라

그 분을 오랫동안 묵상하지는 못해서

아주 잠깐이지만

내 속이 부글거리려는 것을 참느라 힘들다.

 

한편,

그 분은 세상의 무지한 인간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저리 기세등등한 인간들이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과 승천과

하나님이 결심하시고 실행하시는 모든 '승리'의 것들을

알지 못하여 저리하고

결국 그리 승리가 이루어져도

그들은 죽도록 깨닫지 못할 것이 가련하기도 하지만

그 가련한 긍휼만 가지고 어떻게 이겨내셨을까?

 

 무슨 생각이 떠오르셨을가?

아마 긍휼한 마음이 그 분의 마음 속에 그득하셨을 것 같고

이제 마무리 되는

영원 중의 33년이란 짧은 이 땅의 육신 세월을 돌아보셨을 지도 모르며

하나님 곁으로 다시 가 누리실 영광을 그리셨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그 보다는

육신으로 다가오는 모든 '조롱'과 '비판'을 통해

주님 다시 재림하여

이 땅이 심판 받고 천년왕국이 이루어질 때까지

죽도록 인간들의 심성에 되풀이 될

이 '무섭고 힘든' 고난 ( 침뱉음..조롱... 십자가 아픔.. ) 을

예수께서는 '긍휼'한 마음으로

모든 인간의 영적 육적 심적 고통을

공감하시고 계셧을 지 모른다.

아. .

거기에 육신을 통하여 찾아오는 극한 의 아픔과

곧 있을 더 심한 십자가 아픔,

......

모두 그 분은 다 미리 아시고 계시는 분 아니신가?

그러한 두려움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으실지도 모르겠다 .

 

그러한 그분의 기도에

성령의 도우심이 반드시 있으셨으리라.

그래서 그 분이 희망이고 소망이다.

우리가 겪을 모든 세상의 환란과 고통이

그리고 있을 대환란의 사건의 예견되는 어려움도

그 분의 그때 함께 하시었을

성령의 '감하시는 ' 힘으로

자연스레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우리는

곧 갈

예수님의 미리 보이신 '천국'이 예비되어 있지 않은가?

 

어찌되었든

그분은 그 극도, 극한, 최고도의 고난의 집합체와

그것을 몰고오는

악한 얼굴과 추한 분위기를 어둡게 가지고 오는

인간 군상들의 소리지름 속에서도

그 분은

그 육신 속에서

아마도 눈을 감고

평강을 유지하고 계셨을지 모른다.

 

고통은 있으시되 표현 못할 안온감.

나.

아내가 머리수술 해서 입원했을 때

그런 '묘한 '체험을 입원내내 했다.

둥둥 떠 있는 ,

가슴은 아프지만

고민과 걱정대신 묘한 기쁨.

오히려 성경이 더 깊이 이해되고

찾아오는 친구나 지인들과 폭넓은 교류.........

그때 내내 나는 '성령'이 그날을 감하신다는 것을

믿게 되며 지냈던 기억이 있다.

 

세상아..

그래라.

그리하거라.

이제 곧

하나님의 시간이 오게 될 것이다.

세상은 '십자가'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를 통하여

수도 없이 많은 절망의 사람들이

소망의 시대로 들어설 것이고

사단, 세상의 권세잡은 자들의

이런 온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한 듯한

날뜀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무당의 푸닥거리'보다 약하게 될 것이다.

 

아.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고난과 환란.

그 무엇이 내 앞에 있든

나는 주님 예수를 사모하고

그 분의 십자가를 확신하며

매일 말씀 앞에 서는 한

난 '승리' 편에 서 있다는 것이고

그 분은 나의 이 어이없는 비난감, 조롱감..등이 있더라도

다 체휼하고 가시기에

날 긍휼히 여기시고 계실 것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홀로가 아니다.

내 홀로 지고갈

무미건조한 고행덩어리 십자가가 아니다 .

예수께서

다 아시고 다 체험하시고

내 영혼 마음 육신의 고통을 다 그 십자가에 짊어지고 가셔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날 깨끗하게 해주신 자격을 부여 해주신 것이다.

기대하고 기도하자.

성령으로 내 나머지 인생도 또

승리로 이끌어 가실 것이다.

 

 

 

주님.

아시지요.

제 마음 아시지요?

힘을 주소서.

어려움.힘듦.. 모든 것 아시지요?

조롱과 비난에 예민한 것도요.

이제 주님 예수님.

이 사순절 동안

조금이나마 주님의 은혜에 동참하는 마음이 되길 원합니다.

내 생각을 절제합니다.

내마음을 주님께 내려놓습니다.

내 눈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더 꽂습니다.

주여.

앎을 행실로 바꾸어

내 모든 것이 조금은 더 순화될 수 있도록

성령으로 강하게 잡아 주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신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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