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늘 마주하여 벗어낼 것[마27:1-10] 본문
1.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사도 바울도 그랬고
이들도 그랬고
유다도 그랬다.
'새벽'같이 일어나
열정적으로
그들의 신념 , 그들의 이익, 그들의 불안을 막기 위함...그들의 삶의 방향...
어떠한 이유든 그러함을 위하여
저렇게들 살아가고 있다 .
열~시~미~.................................... !
그들.
그런데
그렇게 하는게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데 왜 그렇게 열정적일까?
강하게 사로잡는
그 무엇 때문 아닐까?
'신념을 가장 한 무의식의 소리'
영적 존재일 수도..
고장난 내 회로의 오작동일 수도.......ㅠ.ㅠ;
5.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그런데
그런 . 사로잡혀있던 생각...
(난... 멍에의 끈, 사슬, 올무.. 라 생각한다)
인간 모두가 묶여있는 자신만의 인생관 ( 철학, 핵심신념...으로 표현되어도 될듯 )에
기조를 둔 어떤 관념에 사로 잡혀 있어
매일매일, 일마다 판단의 근거로 삼고 있고
때로는 그 생각의 확신에서 벗어나기 힘든 오류들 인
이 멍에의 끈 같은 생각의 올무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렇다.
유다가 불현듯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고난을 보고는
자신의 생각의 올무의 오류를
느낀 것이다.
단..그는 직면하지는 못했다.
단지0 느꼈을 뿐..
이게 중요하다.
그리고는 그는
순간 죄의식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는
지금껏 그를 유지하고 있던 각종 논리를 가동하기도 전
겪을 수 밖에 없던
생각의 폭주로 인하여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어가게 되었다.
자살.
그렇다면.......
오늘
내게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
아무리 보아도
은혜되는 구절은 없는데 말이다.. .^^;;
며칠전..
이곳 가까운 AS 문화센터에서
'최현우 매직 쇼, Brain' 이라는 공연을 봤다.
이 작은 소년 같은 남자에게서 뿜어내는 에너지가 만만치 않았다.
그 내용인 즉슨..
미리 미리 모든 것을 제시하고는
다 맞추어 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맘대로 부르는 '숫자' ,
좋아하는 색깔
좋아하는 커피.
가고 싶은 곳...............
............
그리고는 마지막에
그것을 미리 예언하여
그 장소에서 그 색깔로 그 커피 브랜드를 마시고
무작위로 뽑혀진 사람들이 불러준 숫자를 하나도 틀림없이
미리 예언해 적어 놓은 대로
맞추어 가는..........................
정말 소 름끼치도록 놀라운 쇼였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비밀을 말해 주는데
이런 것이었다
기계를 이용하여 사람이 들을 수 없는 고 주파수의 소리로 계속 '되뇌이고'
이곳 저곳 '광고판'이나 안내장.... 모든 곳에 '암시 문'을 적어 놓고
사진 그림.......등을 곳곳에서 스쳐지나가도록 숨겨 놓고
...........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람들이 한치도 틀림없이 선택하도록 하는 것..........
그게 비밀이었다 .
그게 우리 '뇌'의 비밀이란 것........
놀라운 것은 그 사실을 가지고
공연을 만들어 기승전결 풀어내는 그의 능력이 배가된 것이긴 하지만...
알면서도 입을 쩍~벌리지 않을 수 없는
대단한 공연이 맞았다.
이 시골에서 8만원대의 돈을 냈지만 ㅎㅎ. 아깝지 않았다.
각설하고
거기에서
난
다른 영적 원리를 발견했다.
그 고주파의 소리.
무의식에서 들려오는 소리........
어쩌면 '세상의 권세잡은 자' .. '사단'의 소리..
상처입어 (원죄적으로, 성장과정에서 )고장난 우리 뇌 속의 '일부 회로'에 숨어
끊임없이 들리지 않는 소리로
되풀이 되풀이 됨을
마치 우리는
우리의 결심인 것 처럼 착각하지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어떤 '관념'이나 상처의 소리, 사단 (어떤 정체인지 어찌 알까?) ...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떠도는 것인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오늘.
유다가
정신을 차렸다.
갑자기.. .
그토록.. 새벽에 나가 잠을 잊고 몰두할 정도로 악하게 잡혔던 그의 머리가
순간 풀려 났다는 것 아닌가?
나도 그런적 있다 .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눈물 콧물쏟으며
난.. 완전히 180도 세상을 달리보는
'회심'.. 을 겪었다 .
구원의 시간.
각설하고
그는 그런 후
더 비참한 결심을 하고 만다.
그마져 '그의 온전한 선택'이라기 보단
알수 없는 거대한 뜻과 자신의 선택의 어우러진 결과이겠지만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아......
무엇인가?
무엇을 내게 말씀하고자 하시던가?
이제..
큰 끈을 끊고
주님의 영역에 들어와 사는 나에게
아직도 매일 '내 원치 않는 ' 악한 소리들에 의하여 좌지우지 될 때도 있다
죽어 주님 앞에 갈 때까지
누구라도 자유롭지 못할
영적 전쟁(그 마져 불신자... 악함을 선택한 위험한 신자들에게는 의미가 없겟지만.. ㅠ.ㅠ.)에서
그 영적 전쟁이 우리의 일상에서
별 의미를 갖지 못하고
그냥 그냥 허덕이며 살던 때를 넘어
이제는
진짜 마주하고 벗어내야할 문제임을
오늘 유다를 묵상하게 하시는 뜻이신가보다.
거기에
그러함은
당연히도 '예수님 십자가 ' 달리시는 고난의
그 고난 같은 어려움을 동반하게 될 것이며
우리가 깨닫고 마주해 벗어버려야할
과거의 고정관념,
우리의 잘못된 핵신 신념
사단의 소리.......들을 끊기 위하여
예수님의 고난에 기쁨으로 동참하라시는 말씀이신 듯하다 .
무엇을 할까?
어찌할까?
오늘 내가
이 일상에서
무엇을 함으로
그러한 '멍에'를 끊어낼 수 있을까?
어찌하면 너무도 당연히 살던 것들에 대하여
다시한번 돌아보고
주님 말씀 가운데 비추어 볼 것인가?
어찌 그 너무도 익숙한 생각에서 벗어나
불편하고 어색한
밝은 세상, 주님이 원하시는
자아 부인의 과정에
집중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아야 하겠다.
주님.
주님.
주님.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향한 마지막 여정의 시간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우리인 것처럼 우리를 혼돈시켜왓던
우리 속의 '들리지 않지만 속삭여 왓던'
아주 오래된 잘못된 생각들을 들여다 볼 수 있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도 힘들고 어려움을 알겟습니다 .
주님.. 고난의 주간에
그 말씀을 하시고 보여 주심을 말입니다.
주여.
이 어려운 과정에
오직 주님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에 같이 동참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게 하소서.
그 부분..
그러한 인내...
이전까지의 내 생각과 행동 패턴으로는 불가하오니
오직 성령으로 인하여
그리되게 하소서.
내 주여.
힘을 주소서.
저희를 무비판 적으로 끌고 가려던
모든 사단의 멍에를 끊어내고
어색하고 힘들고 속상한 듯하여도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이면
선택하고 주저없이 행하게 하소서.
내 주여.
지혜를 주시고
깨닫는 깨달음을 주시고
주님의 뜻 이 맞는 지를 확신되면 나가는 용기와 힘을 주소서.
내 주여.
주의 고난..
예수 그리스도의 그 고난을 기억하게 하소서.
힘을 주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2010.03.10 거......^^*
고범죄와 자살 죄
늘
이렇듯
티없는 웃음을
웃을 수만 있다면
이 험한 세상에
근심과 걱정이
남아 있을 수나 있게 될까
항상
이렇듯
해맑은 표정만
짓고 살 수만 있다면
이 땅에도 아마
심령 천국이
속히 올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주님
부디 간구하오대
당신의 성령으로
이 웃음을
온 세계에
널리 퍼뜨리시고
제 영혼에도
어서어서
회복시키소서
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새벽
그 생기 충만할 때
기도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죽이는 음모'를 꾸민다.
더구나
그 새벽에 '함께' 모여서
뜻을 모은다.
의논한다.
의논하는 그 주제가
참으로 어이가 없다.
'예수님'을 죽이는 게 '회의의 주제' 다.
저들 대제사장 일행이...
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유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것도 모자라 ' 예수님을 판 자'.
베드로와 다른 것은
베드로는 '미련이 남은 미련한 죄'였지만
유다는 '이익'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지은 '죄'다.
그게 큰 차이다.
베드로는 용서되되 유다는 용서 받지 못한..
더구나 그 판 대상이 '예수님'이시지 않는가?
대상을 잘못 정했다.
의도적인 죄였다.
유다는
때 늦은 후회였지만 스스로 뉘우쳤다.
일견, 착한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다.
인간 스스로는 스스로를 용서할 힘이 없다.
자격이 없다.
그게 부처이든, 모하멧이든 마찬가지다.
오직 주님 예수님 앞에 와 그 분이 주신 '회개'의 영으로
회개를 해야 한다.
그리고는 사죄의 은총으로 해결 받았으면
더 이상의 유다의 죄는
세상이 없어질 때까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일은 없었을 것을..
그는 뉘우치는 것도 '스스로' 뉘우치고
그것으로로 인하여 죽는 것도 '자살'이다.
스스로 뉘우치니 '죄책감' 이 가중, 또 가중되지 않는가?
이게 문제다.
그는 인간적으로는 매력이 있는 사람일지 모르고
인간적으로는 동감의 여지가 없지 않아 있지만
그의 죄가 끝까지 용서 받을 수 없는 패착은
모든 걸 '스스로 '판단 했다는 것이다.
회개... 아니다 !
회개는 주님 앞에 와 완전히 돌이키는 게 회개다.
그는 후회했을 뿐이다.
온전히 돌이킬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익도 자신을 위해서
후회도 자신의 죄책감 때문에..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그리고는 그 해결도 '자살'이다.
자살은 무서운 죄악이다.
주님이 주신 생명을 마음 대로 끝내는 것이다.
주님의 전지 전능 , 그 분의 주인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자살'
절대로 하면 안될
아주 아주 큰 죄이다.
에스겔 서에 이리 나오지 않던가?
(겔 16: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절대로 죽지 말라.
피투성이가 될지언정 '살아라 !'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
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대 제사장 일행은 당당하다
그들은 죄에서 멀어진 듯 행동한다.
그들은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악함 중에서 더욱 악하다.
서두에서 표기했듯이 그들은 '죄'를 알면서
더 도모했다.
새벽에 모여서 그랬다.
의논하며 그랬다.
그리고도 자책감 조차 없다.
그들은 어쩌면 '유다'보다 인간적으로는 더 악해보인다.
이들을 지옥 바닥까지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죄송하게도 ...
그러나, 그들은 죽지 않았다.
그들은 자살을 하지는 않았다.
살다보면 이중의 일부는 '회개'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수님 믿게 될 '기회'나마 있다.
'자살'은 죄 중에서도 아주 아주 끔찍한 죄다.
오늘 묵상의 키워드는 '고범죄'다.
거기에 어제 저녁 '최진실' 동생인 '최진영'의 자살 사건이 있는 지 아시는 지
'자살 죄'에 대하여도 말씀 하시려는 듯하다.
고범죄.
죄인지 알면서도 짓는 죄.
잠시 사단의 유혹에 홀려서 죄의식이 없어서 지었을 지라도
자신의 이익을 전제로 짓는 죄.
실수와 상관없는 의도적인 죄...
그게 고 범죄다.
성경을 보면 큰 죄가 아닌 듯 한 죄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극렬하게 그려지는 부분들이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구약의 '엘리 제사장 일가'의 파멸.
전리품 숨겼다가 죽는 경우들...
.................
그게 '고범죄'의 경우이다.
성경은 수천년을 두고 지어질 죄에 대한
일벌백계의 의미가 없지 않아
더욱 극렬한 징죄가 베풀어 졌지만
어찌되었든 하나님의 뜻은
'고범죄'는 극도로 싫어하신다는 것이시다.
유다와 바리새인들의 죄.
그것은 어제의 베드로의 죄와는 차원이 다르다.
전혀 그들은 순수하질 않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철저히
양심을 눌렀던 자들이다.
비록 유다는 추후에
예수님과 의 정리가 남아서 인지
그 비애 탓인지 양심이 돌아왔지만
때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그리고는 더욱 나쁜 '자살 죄'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런데 과연 이들의 '죄'가 성경에서 만 볼수 있는
특별하고 너무너무 깊은 죄가 맞던가?
극소수이겠지만
교회에서 들려지는 '악한 이권' 문제들..
중임을 맡은 자들의 사회적 지탄 문제.
이런 것은 '고범죄'다.
고범죄의 유혹은
때론 경미한 듯하게
아무 죄가 아닌 듯 다가와
그 사람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데 문제가 있다.
유다의 죄도 그렇지 않던가?
재정을 관리하던 자로서
돈에 대한 크지않은 욕심은 결국
예수님, 자신의 지도자를 파는 데까지
큰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다가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후회'하고 자살에 이르게 된다.
세상에 벌어지는 수도 없는 부조리들.
리베이트.
그 속에 있는 자들은 그게 죄인지 무감각해진다.
또 하나의 큰 죄.
'자살'
자살로 자신을 몰고가게 될때까지
그 절박한 상황이야
어느 누가 공감하고 불쌍히 여기지 않으랴 마는
자살은
自殺이라는 한자의 표현처럼
스스로 죽이는 것인 것처럼
'혼자'에 국한되는 뉘앙스에 머무는 것이 아니란 게
큰 문제다
최진실에 이은 최진영 남매의 자살은
그들의 불행은 별개라도
남아 있는 '모친'은 어떨까?
그들이 죽음으로 가기 전보다 더욱 깊은 아픔이
그분을 몰고가지 않겠는가?
'자식'들, 조카 들은 어떤가?
그 아이들을 좇아 다니는 평생의 꼬리표가
'자살자의 자식'
'자살영이 붙어 있는 가문의 자손'이 되지 않겠는가?
자살자가 있는 집안의 자살율이 몇배가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다.
또한 , '이은주'라는 탤런트의 죽음이 후
3배 가까이 자살율이 급증했고
그 이후 계속 자살하는 연예인들이 꼬리를 물고 있지 않는가?
이들은 이들의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결심을 하게되지 않는가?
자살은 '타인'에게 극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기에 '영적 세상'을 인정하는 우리 기독교인은
그 이후의 영벌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스베덴 보리의 천국에 대한 글을 보면
자살한 영은 자신이 자살한 줄을 모르고
영원토록 그 자살한 상황에서
자살하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고 한다.
영화에 보면
자살한 영들이 받는 고통을 잘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지박령'이라는 용어로
자살한 자의 영혼이 자살한 장소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하기도 한다.
가끔 비슷한 자리에서 귀신을 보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What Dreams May Come, 1998) 이란 영화를 보았는가?
꼭 보길 바란다.
너무 화면이 아름답고 영적인 세상에 대하여
비교적 잘 그리고 있다.
줄거리 소아과 의사 크리스(Chris Nielsen: 로빈 윌리암스 분)는
큐레이터인 사랑하는 아내 애니(Annie Nielsen: 아나벨라 시오라 분)와
너무도 단란한 가정을 이끌다가 자식들이 죽고
아내는 결국 자살하자
지옥의 가장 깊은 - 자살자는 그렇다 한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너무도 회색으로 암울하게 묘사하고 있다 - 곳에서
영원토록 절망하는 아내를 발견하고
사랑으로 이끌어내서 화가인 아내의 그림 속에서
죽은 가족들과 다시 천국의 삶을 산다는 이야기다.
거기에서도 '자살자'의 그 암울한 영원이
실감나도록 묘사되고 있다.
.........
왜 이리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되는 '靈的 특이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영적특이 현상은 '자살영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살.
현실, 그 암울한 고통을 탈피하고자 죽음으로의 도피 유혹은
사단의 장난이다.
그것은 절대로 끝이 아니다.
또다른 영원한 고통의 시작일 뿐이다.
에스겔 16: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주님은 분명코 이리 말씀하신다.
또 다시 쓴다.
'자살하지 말라'
'피투성이가 되어도 살라'
그 어떤 이유를 떠나서라도
주님이 말씀하시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게
자살하지 말 ... 첫번째 이유다.
고범죄는
주님이 가까이 못하시도록 한다.
주님이 느껴지지 않는 영혼은
그 갈급함이 커질 수 밖에 없다.
갈급함이 커지고 오래되면 파멸이 올 위험성이 많아진다.
나.
나의 고범죄는 어떠한 것이될까?
어떤 것이 될 위험성이 많던가?
난 급한 '판단'의 죄...가 그 위험성이 될 가능성이 많다.
되풀이 되는 상처에 대하여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음도 그렇다.
때가 되면 자꾸 똑같은 아픔이 건드려진다.
특별히 내가 짜증이 날 때,
요즈음이 그렇다.
사순절 기간이 되면 더 커지는 것을 느낀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자주 건드려지는 어떤 부분들이 있다.
특별히 환우분들에게 그럴 때가 있다.
'똑같은 것 되풀이 되풀이' 질문할 때 난 그렇다.
스스로 왜 이럴까 당혹해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와 견딜수 없을 때가 있다.
어렸을 적 , 어머니의 잔소리가 매우 심하신 편이었다.
한번 시작하시면 거의 한시간 여를
같은 소리 되풀이 하시며 한탄을 늘어 놓으시는 게
지독히도 힘들 때가 있었다.
급하고 안정적이시지 못하던 아버지,
어머니의 잔소리.
그러다가 중 2때 서울로 전학와서
이모댁에 거취하게 되었다.
이모님은 유순하신 분이심에도
이 분도 되풀이는 심하셨다.
어머니보다 더.....ㅜ.ㅜ;;
아마도 그런 탓이지 않을까..
내 삶을 돌아보면 내 급한 분노의 이유는
잔소리 하고 비평하고 되풀이 하는 자들에 대하여
견딜 수 없을 때가 많았던 것만 같다 ㅜ.ㅜ;;
그런데,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당하는 타인에게는 힘들지 몰라도
나 자신에게는 어쩌면 '큰 죄'가 아닐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주님 안에서 말씀으로 거듭 거듭
배우고 깨우치며 인도하심 받는데도
똑같은 부분에서 '짜증'으로 반응을 마무리 짓는 것은
알면서 짓는 '고범죄'의 그것은 아니던가?
한번 죄를 짓고 나면 마음이 무겁다.
다행이도 난 말씀 앞에
자꾸 내려 놓으려 하고는 있기에
유다의 그 어리석은 '자살 죄'까지야 가겠느냐 마는
어쨋든 '고범죄'는 나로 하여금 힘들게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고 나면 '주님'이 멀리 계신 듯
마음이 곤고한 것이 견디기 힘이 들 때가 있다.
오늘 하루.
그들, 자살하는 자들의 기본 마음이
'암울함'과
그 암울함의 '지속' 확대고
그 기본은 '고범죄'와 '주님 앞에서 멀어짐'임을 기억할 때
다시한번 '회개'하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내 늘 짓는 '고범죄'의 수레에서 벗어날
결단과 깨우침을 생각해 본다.
적용
1.내 고범죄를 밝혀라.
. 짜증 날때 짜증내지 말아야 함에도 짜증내는 고범죄
. 리베이트에 관심이 없음에도 힘없는 그들 대상을 좌지우지해보고 싶은
권력욕심의 고범죄
. 음란한 관심, 누구나 빠져나갈 수 없는 고범죄.
..........
. 용서하지 못함의 고범죄.
2. 고범죄를 회개하라.
. 오늘은 발견하는 고범죄를 주님 앞에 가져간다.
기도하자.
3. 자살하는 자들이 늘어나지 않도록 기도한다.
자살은 극악한 죄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고
이웃과 사랑하는 자들을 파멸로 이끄는 길이다.
그들을 붙드는 어둠의 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떠나라.
4. 성경 여덟장 읽겠다.
시간이 지날 수록 번잡해진다.
말씀이 없으면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순간순간들이 이어진다.
말씀 앞에 겸허하자.
5. 주님께 맡기는 자세로 다시 돌아가자.
큰 아들이 '제일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나와의 갈등을 제가 노력으로 깨우친 모양이다.
아내의 기도가 '제일교회에 나오는 큰 아들'이다.
그걸 회복의 신호탄으로 삼아 기도한 것이 들려졌다.
아이는 주님께 맡긴다.
내 마음이다.
기도
주님.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기쁨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사랑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조금이라도 체험하고
인격적으로 만났던 기억들이 있다면
이 세상엔 전혀 '자살'이란
극도의 죄가 머물 틈이 없었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
어릴 적
아니 꽤 오랜 나이까지
주님 깊이 만나지 못할 때까지
죽음에 대하여 자주 생각했던
암울한 사람으로서
이제 그것 만은 절대로 안됨을 알기에
또 감사합니다.
주님.
오랜 방황 끝에 아들도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고
많은 혼란 끝에
그래도 주님 앞에 모든 것을 하소연하고
돌이키는 원리를 흔들리지 않게 체득하게 하여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더 부탁드릴 것은
간구할 것은
이 고범죄,
급한 판단, 그로 인한 급한 노,
그리고 강한 좌절.. 등의 고리를 끊어주시길 빕니다.
그게 죄인줄 알면서도 하는
이 고범죄.
멈출수 없도록 뿌리가 박혀 있던 이 죄... . ...
죄.. 죄..
주님.
그 유혹을 절제 해 주소서.
잘라 주소서.
우리 모두 그리하소서.
그리하여
아이의 저 순결하고 티없는 웃음을
저희 모두 발하게 하소서.
제가 그리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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