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 옳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마27:11-26] 본문
11.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굳이 변명이 필요치 않을 때는
굳이 말을 많이 할 이유는 없다 .
그냥 '침묵'함이 옳을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말이 줄어들고
필요한 이야기만 하는게
맞는듯하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모본을 보이셨다.
19.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그리 말 많이 안해도
가만히 있어도
'알 사람은 다 안다 '
'저 옳은 사람'
예수께 저런 표현이 맞지는 않지만 (말도 안되게 부족한 표현이긴 하지만.. )
인간들이 할 수 있는 한계에서
가장 진솔한 표현이다 .
부디
나도
예수로 인하여
'저 옳은 사람'이 되어보였으면 한다.
비록
그들에게 보이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들은 '보여지는 것'으로만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정말 부족한 존재들 아니던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더 바라는 가?
그냥.
옳게
주님 말씀 대로 살려 노력하다가 (본질.. 말이다. .. )
남들에게
그리 판단 받아
주님의 영광을 높여드리는 계기만 되는 자가 되었으면 한다.
이전의 묵상 들을 긁어 놓아 보고 있다.
시간 마다 같은 구절이라도 다르게 주시는 말씀을 보며
참.. 살아계셔서 다양하게도 가르치시는 구나.. 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많지만
이 묵상 구절에 오면
왜 이리 비슷한지..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데
가만히 보면
지금은
더 본질적이고 직접적인 느낌이다.
논리적 구성, 생각을 조절하여 펼쳐가는
조금은 시간이 걸리는 그런 느낌이
과거의 것으로 갈 수록 더 들지만
오늘 주시는 말씀은
좀더 직접적으로 하시는 것 같다.
'주하인아.
그냥 참아라.
그냥 침묵하라.
그리해도 '그 옳은 사람' 이라고
아는 사람은 알리라.
그리고 그러함 조차 기대하지 않고도
그냥 말씀이 있으시니
그리 참아내다가
그 옳은 사람이란 소리가
그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 조금이라도 더 인내했구나하는
느낌이라도 받게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하시는 듯.
그래서
그러함이
오늘
내게 느껴지고
그게 승리함으로 받아 들여져
다른 어떠함이 주는 만족감보다
훨씬 더 큰 편안함과 행복으로 느껴지고
그러한 자신을 더 기뻐하게 되는 것..
그게
주님이 어쩌면 오늘 내게 기대하시는 바 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 점차로 점차로
주님이 원하시는 성화와 순화의 길..
내 속을 막아서는
마지막 장애물 까지 건너서게 되는
그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
이제
곧
더 이상은
이 세상의 권세잡던 자,
과거의 소리들... 주변의 입들... 세상의 큰 힘들......로 부터
영향을 받지 않게 되게 되는
그런 상태가 되어
날로
주님 예수님의 품성을 닮아가게되는
그러한 계기가 오늘 되어야 할 듯 싶다.
감사하다.
주님.
저 옳은 사람이라고
총독의 부인이 강하게 말리는 모습을 봅니다.
그 과정에서 부딪는
세상과 예수님
사단의 세력들과 하나님...
그 지점에서
인내하시고 아무 말씀 안하시는
주님 예수님을 모본으로 봅니다.
주여.
제게도 그러함을 주소서.
어이없고 엉터리 같아도
다른 아무 논리적 이유를 가져다 대지 않고
그냥
예수님이 그러셨으니
말씀에서 그러셧으니
하나님이 원하시니
그냥
아무 말도 안하고 참을 수 있길 원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내 '자아'..
자존심으로 불려지던 내 자아를 뒤흔들고 맘대로 하던
사단의 영향들이 , 그 발톱들이
드디어는 완전히 떨어져 나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아니고는
나를 흔들 그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완전성화의 길
주님 예수님을 그대로 닮은
그 옳은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내 주여.
성령으로 그리 되게 붙드실 줄 믿습니다.
예수 십자가를
다시한번 묵상합니다.
주님 예수 십자가의 고난을 지시기 위한
하나님 이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합니다.
내 주여.
그 과정에서 저도 같이
제 자아, 제 자존심, 제 .. 제.. 모든 것을
십자가에 달기 원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아무 소리 안하고 침묵할 수 있길 원합니다.
어떤 어이없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냥 참아낼 수 잇길 원합니다.
내 주여.
도우소서.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감사하신 이름 받들어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 이전의 묵상 들 (참조하셔도 좋으실 듯합니다. ^^*)
1. 2010.03.31
주님 닮은 옳은 사람
주님 앞에
다가 가기에
크고 오래된
장애물이
날
가로 막습니다
어느땐
너무 커 보여
주님 십자가가
잊혀질 때도 있습니다
주님
그러나
제 안에
주님 계심은
너무도
뚜렷한 사실이기에
저
다시 고개들어
주님 만을
바라봅니다
주님
제게
힘을 주소서
저로
담담하고
잠잠하게 하소서
주님의
그
평강으로
그리하소서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난 이게 놀랍다.
어쩌면
아무 대답도 안하실까?
사사로운 비평과 공격이
그 분에게는 정말 어쩌면
시편의 표현처럼
날아가는 제비의 그것,
재재거리는 참새의 그것처럼 밖에 느껴지지는 않을까?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득차있고
그것이 성령으로 온전히 융화되어
그안에 ' 평강' 이외는 어떤 것도 작용하지 않으시기에
그 불합리하여
소리라도 '버럭'지르고
'너희들이 이러이러이러한 이유로 틀렸다'라고
반박성명을 발하고
얼굴이라도 화낸표정을 잡고
눈빛이라도 번쩍 거렸으면
마음이 시원해졌을 것을..
그 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그냥.. 가만히 있으시다.
왜 그러실까?
난 위에 나타나는 증상을 표해야 '속이 시원한데'..
저분은 그러지 않아도 평안하신가?
난, 안다.
비록 난 부족하여 시원한 폭팔을 시켜야
압력밥솥이 소리를 내야 되는 것처럼
아주 잠시라도 그렇게 해야 평안을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셔도
내적인 흔들림이 없이 유지되는 게 있으시기에 그러신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성령'이시고 '하나님의 평안' 이 그 이유다.
그렇다면 나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평안.
늘 말씀 가운데 거하면서
놀라운 평강을 체험하고 하지만
저런 상황에 거하면 여지없이 흔들린다.
그러기에 더 가까이 ..
더욱 주님 말씀에 침착되어
성령을 사모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긴다.
14. 한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great amazement 여기더라
' 심히 기이히'
아주 깜짝 놀랐다.
great amazement라는 NIV의 표현대로
그 분의 그 아무 소리 하지 않으심은
'심히 놀라 경이로울 정도'였다는 뜻이다.
부디 나도 저렇게 되길 바란다.
일상의 삶에서
날 부대끼는 일들이
나에게는 얼마나 많던가?
그때마다 '아무 소리 하지 않아'
나 뿐아니라
나를 기독교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amazing for Christ의 기적이
나로 인하여 일어나길 원한다.
나 때문에 주님이 영광받길 원하신다.
19.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총독 빌라도의 그 놀라움 뒤에
아내가 다가와 한번 더 말한다.
'저 옳은 사람'..
그게 옳은 것이다.
예수님의 잠잠하심은
그 옳은 사람이 당연히 해야하는 '옳은 행동'이 맞은 것이다.
그것은
부담이 되지만
내가 따라야 할 길이다.
별로 해보지 않던 내 삶의 태도.
늘 폭죽 끓듯, 급히 반응하던
내 삶의 오래된 행태가
'가만히 있기'가 절대로 쉽지 않다.
그런데 이제는 주님이 그러시니 그러라 하신다.
내 급한 반응의 뒤에는
'늘 ' 그 순간에는 '내가 옳다'라는 생각이 날 사로잡는다.
예수님은 생각 뿐 아니라
실제로도 옳았다.
당연히도 '옳으시다'
영원히 옳으시다.
그런 그 분이 참으시니 나도 참아야 한다.
고난주간이라 새벽교회 가야 한다고
기도하고 잤는데 일찍 깨우시긴 했다 .
그런데 좀 늦었다.
묵상을 오랫만에 일찍 일찍 했다.
십자가 앞에 눈을 감고
주님을 묵상하고
감사함을 묵상하고
주님의 인도하실 것임을 묵상하고
회개할 것 회개하고
큐티집을 들여다 보려 ..했는데..
머리 속에 빙빙도는 생각 들이 있다.
걸리는 사람.
미우려 하는 사람.
상황.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가 '아차'했다.
많은 부분 해결 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또...........
사순절이라서 더욱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들이 뭐라하면 또 올라올 것 같은데 생각이든다.
기도하며 십자가 앞에 열심히 내려놓으려 했다.
큐티 집을 들여다 보았다.
주님의 어이없는 핍박이 나온다.
그분의 초절한 인내를 본다.
그 분의 담대함을 본다.
그러면서 그런 그 분을 보는 '빌라도'의 놀라는 눈을 본다.
그 뒤에 쫓아 들어와
'여보, 저 옳은 사람을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본다.
나.
그 상황에 들여다 놓으면
틀림없이 가슴에서 '지진'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지진은
내 속을 용암으로 끓게 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아무리 묵상을 해보아도 자신이 없다.
생각하는 것 만으로 속이 상하려 한다.
하지만
오늘은 결심을 한다.
'주님의 고난 주간이니 나도 한번 그래 보리라. '
이유가 필요 없다.
주님이 그러시니 나도 그래 보리라'
마음이 가라앉는다.
미운 사람이 안 밉게 느껴진다.
오늘 나도 '옳은 사람'으로 행동해 보리라.
적용
1. 잠잠한다.
어떤 이유든 입을 다물리라.
2. 속의 부대낌도 주님의 뜻이 아니면 동조하지 않겠다.
비판아 물러가라.
3. 옳은 사람.
주님 뜻 따르려 노력하는 순간, 난 옳은 자다.
4. 성경 여덟장 읽자.
말씀 만이 내 살길이다.
내 영혼이 살 길이다.
5. 성령님 제 마음을 사로 잡으소서.
제 마음을 담대하게 하소서.
제 마음을 여유롭게 하소서.
6. 회개합니다.
잦은 짜증을 내려 놓습니다.
기도
주님.
저에게는 급박한 성품이 있습니다.
어쩌면 아픔과 연관된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금의 자극에도 아프게 반응하는 것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주님.
주님의 그 담대함,
주님의 그 여유로움
주님의 그 크심을 사모합니다.
저도 그리하게 하소서.
주님.
제 얼굴을 잡아주소서.
주님
제 눈빛도 그리하소서.
주여
제 언어도 순화시키소서.
주님.
아무렇지않길 원합니다.
주님.
주님의 뜻 만
아주 크게
제 안에 부담으로 남게 하소서.
주님의 평강만
절대의 감정으로 절 사로잡게 하소서.
그래서 옳은 사람 되게 하소서.
주님을 닮은 옳은 사람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나이다.
아멘
2. 2014.04.16
긍정과 침묵
오늘 한번 만이라도
마음이 한없이
넓어져 봤으면 합니다
어떤 비난이라도
긍정으로 받아낼 수있는
너그러움과
어떤 상황에서도
넓은 바다 같이
침묵할 수 있는
그런 여유 말입니다
그리하면
어느 몇은
저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도우실 줄 믿고
기대합니다
내 주여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사실이긴 하지만 비아냥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냥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긍정을 해 버리셨다.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그리고 그 후로 부터는
'고발'을 당하셔도
'아무 대답도 아니하셨다'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셨다'
총독이 놀랄 정도로..
아닐까?
분명코 죄를 뒤집어 씌우고
죽을 위험 앞에 있는데
그런 위기의 사람이 ' 변명'을 하지 않는다.
아예.. 한마디도..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어쩌면...
어쩌면이다 내 생각과 다른
어이없는 일이 오늘 하루 나를 자극할 수도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
나.
논리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여
거기에 대하여 많은 변론 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억울한 일에 대하여
분노를 잘하고
미련한 자들에 대하여
교만한 경멸을 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나보다 더 똑똑한 자들에 대하여
비굴..^^;; . 하여지는 경향이 없지 않아있다.
그래서 때로는
일이 적게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
크게 번지기도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아니.. 않았다. ^^;;
반드시 정면 돌파를 하여서 깨드리거나
내가 깨져서 수긍을 할 수있어야 끝나는..
그런데 그러함에는 나름 '선한' 자 편에 있다는
정의 감이 많이 있음을 부인할 수 있다.
하지만 , 오늘 주님은
비난에 '긍정'으로 대답하고는
가만히 '침묵' 하셨다.
침묵하지 않고 변명을 하셔도
상황은 더 나아질 것은 없다.
그것은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예비되어 있는 것이고
모함하는 자들이 '변명'에 대하여 절대로 그냥 넘어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긍정은 그들의 악한 에너지를
잠시나마 잠잠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고
하나님 일에
더러운 말들,악한 언어들이 끼어들어
뜻을 흐리는 위험성을 잠재운 것이다.
그렇다 .
실제로 비난을 당할 때
'긍정' 해버리면 문제는 그 순간 소실되어 버리는 것을 많이 보았다 .
그러고 오히려 자신을 더 낮추어
자신을 '희화'하면
그것은 적을 동지로 만드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런 자들을 '대인배'라 하나?
TV에서 개그나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
인기끄는 사람들은
자신을 낮추어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같이 자신을 유머거리로 이야기 하며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사람들이
결국 인기를 끌고
많은 이의 호감을 끄는 것에서 보아도 알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위 '기'가 센사람들이나 가능하다.
특별히 요즈음, 누구나도 옳은 세상에서
자신을 낮춤은 정말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모본으로 보이시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 하신다.
그 십자가를 진다함은
'자아'를 ,'자기'를 낮추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 같다.
자신을 낮추는 것은
십자가 지는 것 같이 아플 수 있다.
누구나 자기 존중 욕구가 가장 기본적이고 큰 욕구임에도
그것이 낮아짐은
결코 행복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의 예를 든 인기 인들조차
먹고 살기 위해 그러지만
그들 속에 그들의 부족함이 아픔으로 작용할 것은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
온전한 낮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음이다.
오늘 특별히 예수께서
주하인에게
'침묵'하라.
'긍정한 후 침묵하라' 신다.
때로 남들이 날 비웃으려 할 때 그래라
남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까지 그래라.. 하시는 것 같다.
참 어려울 것이다.
힘들 것이다.
난.. 잘 안해보던 일들이다.
그럼에도 그런 조건이 오면 그리하리라.
예수님.
오늘 묵상의 레마는
비난을 수긍하고
가만히 잠잠하라 ..십니다.
거기에 아무렇지 않게 가만히 있어
나의 콩 볶듯 바글거리는 가벼운 심성이
그렇지 않음을 보여
이상히 여길 만큼 그러라 하십니다.
주여.
'제게 그런 능력을 주소서.
알았으니 깨닫는 기회를 주소서.
깨달아 내 영혼의 흐름이 될 수 있도록
성령으로 붙들어 앉히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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