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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창3:1-13) 본문

구약 QT

죄(창3:1-13)

주하인 2005. 8. 18. 14:52

  1. 질문

 

 

1) 뱀은 잘못된 창조물인가?
(가장 간교하더라) 

아니면 마귀의 장란인가?
태초에는 동물과 말이 되었나?
왜 여자에게 말을 걸었을까?

 

: 주님의 창조 목적

 - 완벽한 불완전

 ( for 재미 by선택 - 마귀는 '부처 손위의 손오공)


; 에덴은 평화롭고 아름다우나 생명과를 먹지 못한 이브에게는 약간의 지루함을 유발하는 환경이었을 줄 모른다.  

 

 아담은 남자로서 우직함이 있지만 이브는 여성특유의 섬세함이 있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노래와 사뿐 거리는 발걸음으로 수풀 사이의 새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이브의 발아래,

 뱀이 슬그머니 다가와 직격적으로 말을 건다.   

 

 예상치 못했던 동물의 말에 이브는 깜짝 놀라 잠시 멍한 상태로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리는 ' 놀랐다. 신기하다. 재미있다... '여러 생각이 떠돌아 지나갔을 것이다. 

   
 이때 마귀인 뱀은  ( 완벽한 장소에 숨어 들을 수 있는 마귀의 능력도 놀랍다.  

하나님의 묵인 하이지만...  뱀의 뚫고들어오는 계략을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순간의 헛점을 노리고 질문을 던져댄다. 

 

 " 하나님이 참으로 모든- 실은 선악과 만인데...- 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게 하더냐?"라고 ..

 

그러자 이브는 순간 착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3절에 정녕(surely)이란 단어를 뺀 '죽을까하노라'라는 경고만 말씀하셨다고 한다.


 벌써, 신기함과 지나친 여유로움, 주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지 못하는 자의 게으름,

죄에 대한 경계가 흐려짐,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솔직치 못함)을 뚫고 마귀에게 농락당할

전조가 되어가고 있다.

 

 

2) 뱀은 아직 기어다니지는 않았지만 흉칙한 동물이다. 

 또한 뱀은 다스림 받아야할 동물이다. 

 뱀의 말을 듣고 흔들리는 이브의 심령은 어떠한 상태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구나 정면으로 부인하는데...

 

; 기본을 충실하지 못한 논리.

자신의 감정상태에 따른 합리화, ..은 어린아이 보다 못한 대실수를 가져올 수 있다.

 

 

3) 6절에 '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  처럼 나무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마귀의 주문인가?  욕심의 안경으로 가린 탓인가?

 

 

4) 6절에 남편에게도 주매'를 보면 지금까지 아담은 이브와 계속 함께 했었다. 

 그런데 왜 뱀은 이브에게만 얘기 했는가? 

아담은 이브를 어찌 생각했는가? 

왜 사과를 거부하지 않았는가?

 

; 아담은 이브에게 완전히 반해서 이성을 잃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보다 세세한 판단력이 약하다.  
하나님 보다 여자를 더 중시한 인본주의의 함정이다.

 

 

5) 7절의 '무화과 나무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었는데 어떤 형태의 치마였을까?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그 마음 상태는 어떠 했을까? 

 

; 치마는 치부를 가리는 목적이다.   

마음 속에 있는 욕정과 욕심을 안 것이다. 

 그것을 들킬까 가린 것이다.  

 

 둘 사이에 무엇이 문제인가?  

치마는 아마도 하와이 원주민 스타일 이었을 것이다.   

  그 생경함이 주는 찌르는 고통, 어색함...은 마음의 부끄러움을 좀더 현실적으로 강하게 느끼게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는 서로를 바라보며 멍하였을 것이다.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이전의 세계와 너무도 달라진 그들의 의식세계에 깊은 충격을

서로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갈등, 욕정, 욕심, 하나님에 대한 묘한 거리감, ...으로 마음이 터질 지경까지 와 있었을 것이다.

 

 

 

6) 뱀은 어떻게 되었을까?


; 미소를 지으며 슬그머니 뒷걸음치며 사라졌을 것이다.


 마귀는 언제나 그렇다.
나의 속에 그럴 듯한 명분을 가져다 주고, 합리적이고 똑똑한 사람이란 환상을 가져다 주며

 그 identity를 유지하는데 순간 최선을 다하도록 유혹하고 저항하는 세력을 '분노'로 대하여

파괴 시키게 한 후  자신은 스르르 흔적도 없이 비웃음을 머금고 사라진다.


 난 정신이 들고 나면 치마를 찾게 되고... 가르쳐 주진 않았지만 스스로 깨달은 자기 합리화의

 치마 ~~

 

 

7) 날이 서늘할 때 주님이 동산을 거닐었다..는 것은 어떤 장면인가?

 

; 영이신 하나님은 볼 수 없고 본 자는 죽는데... 여기의 장면은 천사로 대신 현신하시게 하시는

 주님의 모습이시던가 아니면 처음의 무죄한 인간 아담에게는 특별한 사랑의 방법으로 아주

가까이서 아버지처럼 , 예수님처럼 에덴 동산에서 일정한 서늘한 시각에 교류하셨을 수도 있다.


이처럼 아담은 주님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 하나님의 아들들'

 

 

8) 숨은 아담과 이브를 주님은 '아담'을 불러 찾으셨다.  

 그러나 벗어서 두렵다는 아담의 마음 상태는 무엇인가?

 

; 벗어서 부끄러움은 그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대적, ...죄악이 들어와서 들킬 것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이다.


 부끄러움은 '들킬 죄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러나 , 부끄러움이 내 죄에 대한 것 만은 아닌 경우가 있다.  

어린 상처의 거짓 죄책감도 그 이유가 된다.


이럴 때, 주님이 부르시면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얼른 나가서 주님 부끄럽지만

저 나왔습니다.   죄를 벗겨 주세요... 하면 된다.

 

 

8) 여자, 그가 그 나무...'라는 12 & 13절의 모습에서 무엇을?
 
; '핑계'는 더 큰 죄의 시발 점이다.
부끄러움을 벗길 찬스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더 꽁꽁숨기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2. 적용.


 마귀는 예기치 못한 모습으로 내 약한 부분에 충격을 주며 다가온다.


 그 과정에서 내 자아를 만족시키고, 이성적 , 감정적 만족을 유도하며 다가온다.

거기에는 오랜 관습과 옳은 습관에 대한 이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기본을 무시한 행동을 통하여 자기 만족을 가져오고 그로 인하여 주님을 멀리하게 한다.


 죄의 여파는 다양하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는 '부끄러움' '수치감'이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은 롬10:21에서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는 주님의 종일 벌리시는

 손을 의지해서 얼른 회개하고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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