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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무서움(창4:1-1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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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무서움(창4:1-15)

주하인 2005. 8. 19. 14:53

 

 1. 질문

 

 

1) 아담은 에덴 추방 후에야  이브와 처음 잠자리(Sex)했는가?

 

; 그러자.. 라는 1절의 표현으로 그럴 개연성이 충분하다.

 

 

2)  이브는 하나님의 '크게 잉태하는 고통'을 주신 다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1절에 '여호와로 말미암아(help)'라는 것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 고통 후의 기쁨.   생명 잉태자로서의 기쁨. ...  그러나, 그 기쁨이던 가인의

존속 살해 등의 죄악성으로 인한 결과는 결국 태초의 인간 때 부터 찾아올 수

밖에 없는 고통과 죄악과 주님의지함으로 얻을 기쁨과의 돌고돔의 운명을 볼

수 있다. 

 

  또한 인간으로 오는 모든 기쁨을 의지하는 위험성을 알수도 있다.

 

 

3) 세월이 지난 후에'(3절)는 상당히 평화로운 , 별로 어려움이 없는 시간으로

이해해도 가능한가? 

 

그렇다면 이 평화의 기간은 폭풍 전야의 기간이다.  

 평화의 기간-신광야-에 영적인 위험은 더 커진다는 의미가 있다.   

 

무엇이 그렇게 했을까? 

회개와 반성이 없고 주님의 말씀을 깊이 접한 시간이 점차 작아짐이 답이 될 듯 싶다.

 

 

 

4)  세월 지난 후 가인은 '땅의 소산'을 제물로 얼마 정도(some) 드렸다. 

그러나, 아벨은  첫(first) 양(flock) 으로 역시 얼마 정도 제물로 드렸다.  

무엇이 두 사람의 차이 인가?

 

; 아벨은 양으로 , 가인은 적당히.. 

 

 

5) 주님은 가인은 받지 않고 아벨은 받으셨다.( look  with favor on Abel)...

주님은 마치 사람처럼 직접 받기도 하시고  대화도 하시고 하신다.   

 어떤 상황일까?

 

: 아기와 같은 상태이기에 보이지 않는다면 안될 것이다.   

마치 사람과 같이 그러면서 영적으로 이분은 누가봐도 신이실 수 밖에 없는

신비로움이 있는 상태로 만화처럼 나타나셨다 사라지셨다 하셨을 것이다.   

그러면서 가인의 것은 당신의 성소로 받아 들여가지 않으셨을 것이고 아벨의

것은 스윽~ 들여 가셨을 것이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주님은 절대로 가인에게 노했거나 엄한 모습으로 대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그걸 그러나, 가인은 서운해 한다.

 

 

6) 가인은 매우 화가 났고, 안색이 변했다.(downcast-눈을 내리깔고 얼굴을 굳힘).....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제물열납 건이 왜 그에겐 '화'가 나게 되었을까? 

  화는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가?

  아벨인가? 하나님인가?   

 

 ;  제물을 잘 받아들이셔야 축복이 더 커진다는 내규(?)가 하나님과의 사이에 있었나? 

처음 바친 제물인데... 그건 아닐 듯 싶다.    

 그렇다면 단지,  '사랑과 관심에 대한 욕구', 또한 '게으름과 무지'와  그 결과로

인한 '배척감'과 그에 따른 '질투'에 의한 분노라고 생각이 되며 이것은 철저히

인간의 원죄-선악과 사건으로 인한..-에 의한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더더구나  그는 축복 가운데 태어난 상처 없는 자로 , 상당히 평온한 오랜 기간

지난 후에 갑작스럽게 나온 돌발적이고 위험한 죄라서 놀랍다.

 

 이 만큼 인간은 예수님의 보혈이 없으면 절대로 천국에 갈 수가 없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7) 가인의 죄에 대해 주님은 적극적으로 막을 의도는 없으셨다.  

그 분은 모든 걸 다 아시는 분이시다. 

 

단지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  라는 말씀으로

 제재하실 뿐이시다. 

   왜인가?  

 

: 주님은 인간의 의도를 철저히 존중하신다. 

  단 지도는 하신다.  결과는 우리가 책임 져야한다.

   문제는 주님이 우리의 속을 모르실 것이라고 막연히 착각하는 것이다. 

 '그 분을 의식하고 사는 삶은 죄를 지을 수가 없다. '

 

 

8)  가인은 무엇에 그리 화가 났는가?

  왜 화가 났는가?  

그 원인이 질투라면 질투는 어떤 의미인가?   

누구에게 화를 냈는가?  

 '하나님'인가? 

'아벨'인가?   

 

 대상이 '하나님이신 것 같은데 전혀 상관없는 아벨에게 화살을 돌린 가인의

행동은 어떤 마음 상태인가?  

 

 지독히 빨리도 죄는 극을 향해 달린다.  

 결국, 주님의 걱정스러운 경고에도 가인은 전혀 망설임이 없이 아벨을 '들로

나가자'고 유혹하여 죽인다.  

 

 계획된 첫 살인....그리고  주님의 아벨을 찾는 물으심에 거짓으로 대답...

 

;  질투는 아주 위험한 죄악이다.    '

 

욕심', '게으름' , '적당주의', '이기주의'가 그 밑에 깔려 있다가 시기와 조건 만

 맞으면 전혀 상관없는 자를 향하여 '열등감'의 형태로 배출이 된다.   

 그리고 그 대상은 약한 자를 향하여 투사 되게 되고 아주 강렬한 분노로 나타나게

된다.   

질투는 '하나님의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고 다른 대상을 통하여 주님께 반항하는

현상이다.  

인식하고 인정하고 회개하고 깊이 자제하지 않으면 자기 뿐 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지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질투성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하는 동안의 마음은 지옥이나 다름이 없어

 '될대로 되라'는 깊은 좌절감, 자책감, 화,  자제력 상실에 대한 고통... 으로 스스로

도 엄청난 고통을 가져온다.  

 

 

 

 2. 적용

 

. 주님은 새해 아침 창세기를 통하여 깊이 나의 정체성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고 그

분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 지를 느끼게 하셨다.

 

   한편 , 죄가 우리의 영혼에 들어오게 된 과정과 그 바탕에 대해서도 다시 상기

시키신 후 드디어 '죄'가 용트림하는 지옥도를 한편 상영하셨다.

 

'원죄'에 의한 할큄은 마치 온순해 보이던 '사자'가 발톱을 드러내는 것 처럼 '세월

이 지난 평온한 기간 후'에 나타난다.  

    쓰나미 처럼......

 

 그러는 가운데 주님은 그 죄가 가져오는 처참한 결과에 대하여 알게 해주셨고

 죄의 유혹은 시초 부터 반드시 물리쳐야 함을 말씀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주님과 대화하고 그 분을 생각지 않고는 가능치 않음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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