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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농양의 수술과 회복 과정(느11:15-36)

주하인 2006. 9. 21. 13:37

 (느헤미야11:15-11:36)  

 

 

16 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요사밧이니 저희는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고

20 그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기업에 거하였고  

 레위 사람 족장 삽브대가 족장이라는 위치에도 불구하고 '전 바깥일'을 맡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각각 자기에 맞게...자기 기업에 거하였다.

거기에는 삐걱거림이나 위신에 맞는 주장으로 인한 불협화음의 기조가 전혀 없다.

 자신의 현재 위치가 족장임에도 바깥일을 무리 없이 맡을 정도이다.

또한 예루살렘 내부에 거하는 것이 더 좋은지 위협에 노출되어 더 긴장된 삶의 연속인지 알수는 없으나

 각각 자기 기업에 거하였고라는  구절을 보아 '소명' 내지 '사명'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렇다면 이런 개미 사회같이 무리없이 착착 진행되는 자기 소명감의 이유가 무엇인가?

또한 이러한 모습을 성경에 보이시는 주님의 뜻은 무엇인가?

 

'겸손을 통하여 이 땅에 이루어질 천국 생활의 모습의 현상'에 대한 보이심이고

또한

이러한 연습을 하여 그 나라에 올 때까지 준비하라는 ...

그리하여 '귀있는 자는 세미한 이 소리를 들어서 겸손해져라' 고 외치시는 강한 말씀이 아닐까?

또한

겸손은 주님 나라에 가장 근저에 깔린 기조감정(基調感情)이 아닐까?

그렇다면

오늘 부터 더욱 낮아지는 연습을 하고

결과로서 조직 사회에 충성함으로

이것이 단순한 사회정서에 충성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주님의 원리임을 깨달음으로써 이 땅위의 삶이 좀더 평안해지고 움직이는 모든 행동과 사상과 생각이 자유로와 짐으로써 이 세상 삶이 단지 육신을 운신하는데 급급함을 넘어서 저 하늘의 삶을 준비하는 바람같은 거침임을 깨닫는 일종의 '주님의 도'를 깨닫게 하는 기틀이 아닐까?

 

 오늘날 삶이 버겁고 힘든 이유는 끊임없는 비교와 질시와 더 나은 육신적 환경유지에 있으며 결과로서 사회는 곪고 자신은 마비되어, 경제는 좀 윤택되는 것 같아도 기대 수명이 현저히 짧아지고 우울증 환자가 폭팔적으로 늘어나고 세상의 기독교인은 점점 더 줄어드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 Abcess라 되어 있는 곳이 농양입니다. .. 이구..아파라...)

 

 어제 '난소난관 농양'이 심해서 레이져 -실제로는 골반경'-로 수술한 환자 분이 계시다.

난소와 난관은 사람의 생명이 잉태되기 위한, 남자로 따지면 '고환'과 '정관'에 다름 아닌 아주 귀한 장소이다.

이곳에 고름 주머니가 잡히는 현상을 '난소 난관 농양'이라고 하며 상당히 고열과 통증을 동반하며 심한 경우 복막염과 패혈증까지 생기는 심한 질병이다.

 

 원인은 크게 나누면 두가지이다.

하나는 '신체 저항력의 감소'이다.

또 하나는 '균의 침범 수 증가'이다.

 저항력의 감소는 스트레스나 다른 이유로 해서 육체적인 방어 능력이 감소되는 것이고

균의 침범 증가는 당연하게도 몸이 이길 한도 이상의 과도한 성관계나 , 깨끗지 못한 자와의 성관계 혹은 상대하는 이성이 많은 경우... 이다.

 어느 경우가 그 환자의 경우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한마디로 얘기하면 버겁고 힘든 것을 몸이 견디지 못해서 생기지 않을 곳에 고름 주머니가 생긴 것이다.

 

1cm 내외의 절개 두곳과 그 반 정도의 절개를 하고 들어갔다.

예상과 틀림없이 대장이 심하게 달라 붙어 있어 도저히 원래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들었다.

장이 다치면 위험하기에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박리- 떼어나가는 시술-을 하니 한 곳에서 턱~ 하고 숨어있는 죄의 소굴이 발견되었다.

 

 

 아름다운 - 정말 액체 치즈나 황금색 마요네즈, 요구르트를 연상시키는 이~~쁜 색- 고름이 터져  나온다.

 열심히 흡인기로 빨아내고 나서 한참에야 흘러 나오는 고름이 없어서 터진 틈 사이를 통과하여 흡인기를 집어넣고 이번엔 세척을 시작하였다 .

소독제가 섞인 깨끗한 물을 양압(陽壓)으로 넣으니 속에 있는 찌꺼기들이 둥둥하고 밀려 나온다.

열심히 다시 흡인을 하여서 더 이상 퍼지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는 또 다시 또 다시 ...

몇차례를 되풀이 하고 나서야 나오는 게 없어서 , 이제는 소량씩 삐져 나오는 출혈을 막았다.

그리고 나서는 이제 뱃속의 다른 부분을 확인하고 맑고 깨끗한 물로 다시 한번 세척을 하여 혹시나 오염되었을 위험에 대비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수술 부위를 확인한 후 달라 붙어 있는 곳은 원상복귀가 불가능 하므로 더 이상의 고름이 차이지 않도록 소위 '심지'를 박고 수술을 마치었다.

 

 아침 묵상을 보며 어제 수술이 다시 선명하게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이것이다.

 

 주님의 바라시는 질서를 벗어나면 병이 생긴다.

 병은 눈에 보이지 않도록 진행된다.

 죄는 아름다와 보인다.

 그러나 그 찌꺼기를 들여다 보면 더럽다.

 죄는 이곳저곳 오염을 유발한다.

 죄는 흔적을 남긴다.   마치 장 유착이 심하게 온 것처럼..

 상처는 회복이 될 수 있다.

    주님의 손대심이 있으면...

    그러나 일정부분 손대시는 통증은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회복해도 죄의 흔적은 남아 있을 수 있다.

 

아침에 회진가니 환자의 얼굴이 많이 편하다.

웃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난소 난관 농양 병으로 오랜 고생 후에 하나님의 손길이신 '느헤미야 '레이져 치료를 받은 후 웃고 있다.

그들은 성벽 재건법으로 치료를 받은 후 주님의 손길로 심지를 넣는 시술을 기쁘게 받아 들였다.

자신의 사명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고

자신의 위치를 주장하지 않고

어느 곳에 거하던지 주님의 뜻인양 기업에 충실하고

안팎으로 다시 새 삶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기 위한 기저 원칙은 '수술에 대한 동의서 '작성이고

마취에 대하여 겸손히 받아들임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회복이다.

 

회복되고 늘 겸손하고 결단하여 주님 나라에 합당한 인격을 이루어야 한다.

비록 과거에는 눈에 띠지 않고 뱃속에서 벌어지는 듯 감추어진 죄의 고름 주머니를 털어내야 한다.

그리고 회복되어 풍성한 삶을 누려야 한다.

그 삶이 금전과 명예와 자존심을 보장하지는 않더라도

죄의 무거움과 아픔과 누름에서 자유로와 져야 한다.

자유로운 삶을 서서히 체험하고 있다.

자유로움은 흔들리지 않는 회복기간의 웃음이다.

우리는 주님으로 자유로와 질 수 있다.

주님을 인식하고 그 분의 뜻을 생각함을 늦추지 않음으로 자유로와질 수 있다.

 

 

 

적용

 

1. 겸손하자 .

 

2. 죄를 인식하고 회개하자

 회복이 필요함을 인식하자

 

3.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있으면 결단하자.

 

4. 현실에 최선을 다하자 .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회복을 위하여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자가 된다.

 

 

 

 

기도

 

 주님 하나님

특별히 레위족장의 겸손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들이 과감히 자신의 위치를 버리고 아픔을 감수하며 성전의 바깥 일만 돌보는 데 까지 낮춤이 눈에 띱니다.

그처럼 ,

마치 농양의 아픔으로 부터 해방되기 위해 수술의 결단을 내어야 하는 것 처럼 저도 일상에서 헛된,

정말 주님 눈으로 보시기에 아무 것도 아닌 나이와, 위치와 명예와 육적인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이 원하시는 자리까지 아주 쉽사리 내려 앉을 수 있는 깊은 자존감을 허락하소서.

 남들에게는 온유하고 책임감 있는 자가 되게 하시고

스스로는 강하고 자존감이 있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나 혼자 되지 않사오니

내 속의 오래된 죄의 주머니를 주여 녹이시고 청소하소서.

그리고 심지로 박아 회복되게 하소서.

예수님께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믿음이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양식이다.

- 에이버리 덜레스 

 

 


 최상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아 그 사명에 부응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흔히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자신이 깨달으면 비로소 세상이 깨닫기 시작한 것 같고, 자신이 포기하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안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의 큰 구원의 물줄기를 따라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그 과정 속에 슬쩍 끼어든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일정 부분 맡겨 주신 사명을 다하고 나면 조용히 사라져야 한다.

그렇더라도 하나님의 구원사는 변함없이 도도히 계속 흘러간다.
하지만 조용히 사라지거나 죽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이걸 다 이루어야 하는데….”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즉시 “안심하고 죽어도 됩니다”라고 말하겠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시기 때문이다.

구원의 사역은 하나님의 큰 역사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그 커다란 흐름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거기서 이러니저러니 자기주장을 편다.

그럴 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실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흐름과 분위기를 먼저 파악하라!”

우리는 그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하나님이 어떤 맥락 가운데 나를 부르셨는지 깨닫는 것이 바로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깨닫는 일이다.

 

- 「울어야 산다」/ 전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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