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조금 더 나아지자 (시 82:1-8 ) 본문

구약 QT

조금 더 나아지자 (시 82:1-8 )

주하인 2009. 12. 29. 10:45

 제 82 장 ( Chapter 82, Psalm )

 

한 겨울 핀 개나리

힘이 들기도

외롭기도

춥기도 하겠다

 

하지만

한낮의 햇빛은

하나님의 손길인양

여린 꽃잎을 뚫고

진노랑으로

빛을 발한다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에게

저런

투명한 사랑을 보내는 

그런 새해가 될 수 있기를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셀라)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7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연말이라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들을 위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눈이 많이 오고

강추위가 오랫만에 몰려오니

추위도 추위려니와

이 추위에 고생할 노숙자 분들과

인생의 고비에 계신 분들을 다시한번 또 생각하게 된다.

직원 남편 분께서 50대 중반을 넘어서시며

격랑을 겪고 계시며 눈물을 자주 보이신다는 상담을 하러 온다.

그들이 안타깝다.

 이전..

주님을 깊이 알지 못하던 때

연말에 조차도

가난한 자들을 위해 힘든 자들을 위해

그리 마음을 쓰지 못하던 게 사실이긴 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나'였으니까..

예수님을 영접하고

연말 연시 성탄절 ..

교회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곳 !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행사가 많아지며

서서히 그들을 돌아볼 기회는 많이 생겼지만

깊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냥.. 그들은 가난하고 힘이 드니

당연히도 도와야 할 차원이라는

도덕적 개념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싶었다.

그외의 시간,

그들 가난한 자들, 냄새나는 자들,

조금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결과로

그들의 궁핍을 가져온 자들에 대한

내 시선은 그리 곱지 만은 않았던 것은 사실이 아닌가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지금도 그렇다.

환우 분들이나 사회에서 만나는 분들이

옷차림이 깨끗하고 비치는 이미지가 고우면

나도 모르게 '선한 생각'을 하고

그들이 그러하지 않을 시는

판단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만 같다.

어느때인가

그런 나를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었다.

넋을 놓고 살 때는 그게 당연한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면 성경의 구절이 하나도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예수께서 옷을 잘입고 가면 상석에 앉히고....라 하시며

질타하신 게 어쩌면 그들보다

더러운 내 속을 그대로 집어 주신 것 만 같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은

이렇듯 더러운 내 영혼,

마치 그게 옳은 듯 살아오고

설령 나름대로 도덕적 견지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해도

그 속은 얼마나 주님 보시기에 깨끗하지 않은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시는

거울 같다는 느낌이 새삼스럽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 말씀으로 단련 받으며

어느새 내 속에는

나도 모르는 사랑이 들어와 앉아 있다.

이제,

환우를 볼때도

자주 부드러운 눈을 보내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들의 옷에서 냄새가 나도

진료하려 펼쳐진 그들의 속살에서 발견되는 깨끗지 못함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으려 노력하는

내 습관적 착해짐을 발견하며

나는 나도 모르게 대견해질 때가 있다.

가난한 자를 더 가까이 가서

그들에게 사회적 봉사를 하지는 못하고 있더라도

이제 그들의 외견에서 주는 혐오적 상황으로 인해

내 판단이 흐려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자주 하고 있어지고 있다.

가끔은 힘이 든 자들의 아픔이

가슴이 미어지게 하는

그래서 눈물이 나오는 현상을

아주아주 아주 가끔이지만 경험하고도 있다.

 

 지금까지 표현한 것이

다 사실이다.

가끔이다.

가끔이지만 이전보다는 '더'라는 사실이 다행이다.

이제 며칠 안 남겨 놓은 올해다.

이 올해의 마지막 며칠에

주님은 다시 오늘 하루라도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해서 판단하자

그들의 입장에 한번이라도 더 서서 공감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를 공의롭게 바라보자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전에

더욱 더 공의로운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넓은 폭의 인격을 갖출수 있길 바란다.

가난한 자 곤란한 자 ... 그들은

그렇지 않은 자들에 비해 무엇인가

실수나 실패가 있을 가능성이 많기는 하다.

그러기에 그런 힘듦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여 그러는 것이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하는 것이지

판단하고 정죄할 것은 아니다.

 

 주님 일어나셔서

어리석은 저의 영혼에 힘을 주시길 바랍니다.

 

이 연말

그동안 그리 하지 못하였던

가난한 자들과

고아들과

곤란한 자들에게

마음 깊이

영혼 깊숙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공감할 수 있길

기도한다.

 

 

적용

 

1. 성경 일곱장 읽겠다.

 

2. 가난한 자와 고아들을 위한 마음으로 판단하리라.

 그들을 진심으로 공감할 여지를 갖추리라.

 

3. 곤란한 자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리라.

 

4.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5. 감사하자

 굳어 있던 영혼에 나도 모르게 이해하는 마음이 늘어 났다.

 영혼이 살아난다.

 묵상글을 올리는 동안 그러한 성령의 열매가 내 속에서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에 정직하다고 살고 있던 그런 내가

 얼마나 죄 덩어리 였던 가가 느껴진다.

 그들에게 죄 안짓고 해는 안끼치지만

 그들을 바라보던 내 눈이 얼마나 싸늘했던가를 깨달았다.

  주님이 없는 어떤 도덕적 행위도 다 '죄''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삼 주님의 구원이 감사하다

 

 

기도

 

주님.

주님 모르던 시절에

착하고 정직하다는 개념이

그 얼마나 머리 속의 개념 자체가 아닌 가 생각합니다.

세상에 벌어지는 남을 위한 다는 일들.,

가난한 자를 도우는 일들,

그들을 위해 돈을 내고

사회 봉사를 하는 일들.....

모두가 영혼의 상태와 상관없이

내 잘난 맛에 의해 벌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심으로 선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을 공감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 쪽에서

같이 가슴아파하며 판단할 수 있는 것 만이

진실한 '사랑'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랑은

인간의 깨달음으로는 불가능하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리 속의 개념 임을 알았습니다.

영혼으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신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능력으로만 가능함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말씀 앞에 서며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동안

제 영혼,

이 뱀같이 차던 영혼이

어느새 부드러워지고

일부분에 사랑이 이런 것임을 아는 마음으로 변했가고 있습니다.

주여.

죽을 때까지 주님을 붙들고 몸부림 쳐야

주님이 원하시는 지경까지

사랑으로 영혼이 바뀔 것만 같은...

아직은 멀고도 먼 여정이지만

그래도 이 연말

지난 해 연말보다는 조금은 더

이웃을 위해 사랑을 키울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됨을

발견하고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새해에는 더 넓은 사랑으로

주님의 뜻을 준행할 수 있을 가능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사랑하듯이

세상 사람도 주님의 원리 가운데서 사랑하겠습니다.

더 이해하고

더 가난한 자와 고아의 입장에서 판단 기준을 내리곡

더 곤란한 자를 공감하는 마음이 되겠습니다.

차가운 내 기준의 자를 내려 놓겠습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흐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자녀

내 아내

내 아는 모든 분들

그러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