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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조금만 더 참자(창 44 :1-13)

주하인 2007. 6. 9. 12:41

제 44 장 ( Chapter 44, Genesis )


1.  요셉이 그 청지기에게 명하여 가로되 양식을 각인의 자루에 실을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인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3.  개동시에 사람들과 그 나귀를 보내니라 
13.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오니라
 

 끝날 것 같지 않은 두려움과 함께

애굽에 돌아온 형제들이

생각보다 쉽게 일이 마치고

돌아가게 되는 길이다.

 나름대로 휴우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가슴은

일시적으로 트인 것 같지만

앞으로의 삶이

아직도 가뭄과

이전과 전혀 달라질 것 없는

똑같은 삶의 되풀이 일거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 어항 속은 얼마나 단조로울까 ? )

 

 

 

 변함없는 삶
 

 그러나,

실제로 그런가?

 

 그들이 넘어갔다고 생각하는 고난이

그들의 입장에서 쳐다보면

다시 한번 더 크게 밀어 닥칠 것이다.

그것도

바로 전에 그들을 그렇게도 큰 두려움으로 밀어 넣었던

훔치지 않은 돈에 대한 누명으로 했던 그 고생과 곤란이

또 다시

똑같이 되풀이 되며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것이라는 공포를 동반하고 다가올 것임을

그들은 아직은 모르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이전보다 훨씬 큰 고난이 닥쳐올 것이다.

 그런데도 그 고난이 실제로 그런가?

 

요셉의 살아 있음과

그들의 가뭄으로인한 고난의 끝임과

안락한 삶이 시작할 즈음임을

이제 곧 알게 되지 않는가?

 

 내일 묵상 구절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우선 유다가 나선다.

난 이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예수님 계보 시조인 유다가

나름대로 올바른 지혜를 가지고

용기 있게 나선다.

 고난은 심해지지만

고난에 대처하는 게 달라진다.

 이전에는

풍파에 그냥 밀려 다녔지만

이제는 더 거센 풍랑에 적응하고

하나하나 물길을 찾아가는 능숙한 어부와 같이..

 

 

 이상하게도

요사이 다시 옛 생각들이 슬그머니 몰려오는 느낌으로 당황하고 있다.

괜히 장래가 걱정이 되는 듯

사람들의 반응에 좀 예민해지고

마음 한 구석에서

부정적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게

예민한 레이더에 잡히듯이 잡힌다.

 

 내 반응은 두가지다.

하나는 옛날에 그랬듯이

걱정과 당황.

이제 주님 손잡고 많은 부분 헤쳐 나왔는데

다시 옛날의 현실에 대한 그 걱정으로 눌리는게 겁이 나기도 하며

또 하나는

주님을 급하게 찾는,

그러면서 새롭게 내 인격 속에 채워둔 주님의 원리로 대처하려는....

 

 엊저녁 둘째아이 공부 지켜보고

그 아이의 요청에 못이겨 좀 늦게까지 찬양하다가

늦잠을 자느라

아침에 급히 나오느려

들쳐본 묵상 구절이 내일의 것도 일부분 포함하게 되었다 .

거기에 유다가 정확하게 반론하는 것이 나온다.

 

아침에 바쁘게 환자들을 처리하고

잠시 틈을 내서 묵상을 하자

주께서는

나의 상태에 맞추어 또 한번 정확한 응답을 허락하신다.

 

( 낚시할 때도 기다리는 데 주님의 축복을 기다리는 것이야...ㅎ )

 

 주님은

주님이 허락하셔서

내 성화를 위해서

나의 선을 위해서

필요한 연단을 또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고난은 눈을 예전처럼 세상의 원리에 맞추면

훨씬 큰 고통으로 느껴질 것이란 것을 확 깨닫게 하신다.

바로 식구들의 그 어이 없는 모함에 대한 당혹감과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궁지에 몰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난 유다가 슬그머니 영적 리더로

가족의 앞에 나선 것처럼

주님은 어느새

이 불안함과 장래를 알 수 없고

남들과 꼭같지 않은 중년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나이지만

그 속에서 옛날보다 조금은 더 주님 중심적이고

자신의 소리에 충실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음이

마치

유다가 혼란스러운 가족 앞에 나서는 것과

아주 유사하다는 느낌으로

마음이 뿌듯하다.

 

 그래

고통은 고통이다.

고통이 있을 수도 있다.

그토록 사랑한 선택된 가족에게도 저런 연단이 계속되었는데

나라고 별수 있는가?

오라 .

불안이 현실이면

주님이 허락하신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고난보다는 고난 후의 축복을 위한 쎄리모니 성 흔듦어 보심이실 것이다.

그리고 아니시면 곧 요셉이 정체를 밝힐 것 처럼

축복이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서

유다같은 리더가 조금은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

서서히

이스라엘의 역사가 유다 家를 중심으로 쓰일 것임을

이 고난은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오랜 불신의 시절과

그 불신의 의혹과 부정의 생각들을 벗어날 10여년 가까운 초기의 내 믿음이

이제는 또다른 시험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관인

유다 같은 심성이 내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 오랫동안

주여

내 속의 인지체계를 주의 말씀이 기준이 되게 하소서...하던

그 기도가

서서히 응답을 받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듯하여

신통하기 까지 하다.

 

이제 조금만 더 불안함을 쳐다보리라.

주님

그 분의 역사하심을

눈으로 볼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남들은 못보아도

주님이 주시는 그 영적인 선한 눈으로 판별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제

나에게는 얼마남지 않을 듯싶다.

 

조금만 더 참자.

 

 

적용

 

1.  내 속을 휘도는 부정적 생각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 놓겠다.

 

2. 말씀으로 인지를 새로 세운다.

   힘껏 !

   성경 5장 이상 읽겠다.

 

3. 아들에게 최선을 다 한다.

 

4. 운동하겠다 .

 

5. 인내로 참고 기다린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고난이

고난이 아닐 수 있고

고난이

좀 있으면

확하고 열릴 축복의 마지막 세리모니일 수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유다가 리더로 세워지고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 알게 된 것처럼

혹여

나에게 다가오는 또다른 현상이

내 속에  강하게 주님의 말씀의 자리잡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축복이

내 앞에 펼쳐질 것임을

예상하게 있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모든 게 주님의 뜻이면

내가 믿고 알고 기다리게 하소서.

걱정

주여

당신이 가져가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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