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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윗은 정의로운가 (삼하22:14-:2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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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윗은 정의로운가 (삼하22:14-:28)

주하인 2005. 11. 17. 10:08

28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어제에 이은 다윗의 조금은 제정신이 아닌듯 들뜬 듯한 어조로 말을 이어간다.

 

 " 하나님이 하늘에서 천둥으로 큰 소리를 내서 깜짝 놀라게 하신 후...
화살을 날리시고 번개를 쏴서 쫓으셨어.

 

이렇게 되니까 바다 밑 계곡이 드러나고 땅의 기초가 드러났어.

 

이건..........

주님이 날 물 속에 익사하려니까 건져내신 거야.
그 원수들이 나보다 훨씬 힘이 세었기 때문이지"

 

 다윗은 분명히 군졸에게 죽을 뻔 했다.
힘이 빠져서...

 

그런데 이렇게 들떠서 고백하는 어투에는 창피하다거나 현실에 바탕을 두기 보다는 어제의 묵상에서 처럼 절체절명의 순간에 본 하나님의 환상에 감동하여 읊조리는 말이다.

 

 이렇듯 실제 보다 크게 느꼈던 그의 심사가 19절 재앙(disaster 개인이나 사회 전반의 큰 재해로 생명·재산 등의 손실이 따르는 것 )이란 표현에 잘 나와 있다.


 " 에구 무서워 죽을 뻔 했어.. 쪽팔려 죽을 뻔 했어.. "의 표현이 맞아야 할 상황에 재앙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그의 이러한 두려움에 반(反)하는 큰 기쁨이 19절 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그분이 그러한 상황에서 의지가 되셨다.
그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셨다고 고백한다.

 CF에서 차 한대가 달리다가 폭풍우 치는 상황에서 갑자기 해가 쨍쨍찌는 평온한 상황으로 바뀌는 것...   머리가 아프다가 진통제 하나 먹으니 갑자기 해가 뜨면서 연기자가 환하게 웃는 그러한 모습처럼... 확 바뀌는 다윗의 안온감이 그대로 밀려온다.

 

 그런데......

 

또 한번 당황되는 다윗의 심사가 21절 부터 갑자기 나온다.

 

 " 내 의를 따라 하나님이 상주시는 거여... 이건..
내 손이 깨끗했었으니 갚아주시는 거야.
내가 완전하게 행동하여 죄악을 피해서 그런거여.. 이건..(24)
주님은 그러셔.
 자비한 자에게는 자비하게..
완전한 자에게는 완전하게 ..
깨끗한 자에게는 깨끗하게..
곤고한 자는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는 낮추시는게 그 분의 원리야.
 내가 그렇게 행동을 해왔기에 그 분께서 오늘 날 이렇게 도우시는 거지..
암... "

 

 정말 다윗이 이런 말 할 자격이 있었던가?

 

자식들에게는 아버지로 역할을 잘 하지 못했다.
아들에게 쫓겨나는 수모까지 당했을 때는 한번 쯤 반성했어야 하지 않는가?

 밧세바를 간음할 때는?
 우리아를 죽일 때는?

 살아가면서 잔 죄는 기억도 하지 않나부지?

 

최소한 양심이 바른 나는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많은 죄를 짓는 걸 가만히 두고 있지 않는다. 
죄지으면 회개하고 안되면 그 죄로 날 칭칭 둘러매서 고개를 수그리고 다니는 죄책감이라도 가지고 다니지..
그러다 보면 .. 내가 어찌 다윗같은 상황에 이르러서 저렇게 자신있고 엉터리 같이 말을 할수 있다는 말야?... 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정말 과연 다윗이 자신의 고백처럼 깨끗한가?
의로운가?
정말...?

 하나님은 그걸 그대로 받으시는 걸까?
그대로 받지 않으셨다면 결국 다윗의 저 고백은 내일 쯤 슬그머니 사그라지는 창피한 상황이 연출될 것 같은데...
아니... 오늘의 고백이 아예 성경에 기록되지도 않았을텐데... 왜? 그대로 주님은 두실까?

 다윗은 자신을 전혀 돌아 볼 줄 모르는 인성마비, 인격파탄자인가?
그렇다면 성경의 위인전에 나올 수 가 없을 텐데. . .

 

 일시적으로 감정적 혼란으로 자기 혼자 주절거리는 것이지도 않다.

분명히 전체적으로 흐르는 스토리 전개 상 다윗의 고백은 열정을 담고 있고, 그의 고백은 분명히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고백이 되는 것 같다.


 그 감정적 흐름과 주님의 받으심을 통하여 현재 우리에게 그대로 흘러 나오도록 허락하신게 분명한데......
 
무엇일까?
이 뜻은?

 

 다윗은 육신의 자신감을 다 잃은 후에야 드디어 주님의 뜻을 깨달은 것이다.

 우선은 자신이 죽어야 하나님이 사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죄 부분 조차 자신의 뜻에 따른 정죄감 보다는 주님에게 맡기고 그 분이 해결해 주시면 그것이 '선'임을 깨달은 것이다.

 죽을 때까지 주님을 의뢰하면 반드시 주님이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것과 그 구원은 육신의 의지로 성취해 나갈 때보다 몇천배나 큰 기쁨 - 황홀-이 있을 거란 사실이다.

 

"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다윗은 자신이 죽어나가자 모든 사사로운 법률 , 율법 고민, 갈등... 에서 자유로와 짐을 느낀 것이다.


그랬다.

기독교의 본질에 대하여 다윗은 오늘 몸으로 느끼고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쁨이다.


기독교는 역설적 종교다.


포기하면 이루어진다.


포기하면 자유로와 진다.


고통은 또다른 축복이다.

 

그러나...

모든 중심에는 주님이 있어야 한다.

 


기도)

 

 주님..
 
다윗의 격렬한 기쁨이 벌써 이틀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분의 체험적 고백
그 분의 살아있는 기쁨
그 분의 토해내는 열정
그 분의 이웃에게 알리고 싶은 안타까움... 이

절절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천년의 시공을 넘어 오늘도 제 곁에서


다윗의 그 기쁨과
다윗의 그 자유와
다윗의 그 축복과
다윗의 그 안전함과
다윗의 그 성공을
함께 누리지 않겠냐고 웃으시면서 권하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저도 그리하고 싶습니다.


빠져가는 육신의 기운과
커져만 가는 현실의 고민과
힘들어져 가는 환경 속에서..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커지는
우리 주님의 기회를 ..
우리 주님의 사랑을..
우리 주님의 기쁨을..

더 체험하고 느끼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직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믿을 때만 입이 아닌 삶으로 그 찬송을 부를 수 있다.

- 이재철 
 
 

 

 

 

 

 

------------

QT

 

 

 

 

 

1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2 가로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3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4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5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6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7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8 이에 땅이 진동하고 떨며 하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렸으니 그의 진노를 인함이로다
9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10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



11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



12 저가 흑암 곧 모인 물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둘린 장막을 삼으심이여
13 그 앞에 있는 광채로 인하여 숯불이 피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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