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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위하여 (골1:24-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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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위하여 (골1:24-5)

주하인 2005. 11. 25. 10:06

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제 "..

 

 뭔가 비장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누군가를 위하여 시동을 걸면서 손흔들고 출발선을 향해 나가는 국가대표선수의 비장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너희를 위하여"


 목표가 '내'가 되면 힘이없어진다.
기독교의 목표는 '예수 안에서의 연합'이다.
연합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방향은 '남'을 위함이다.
 순교 선교 전도 교제 ... 모두 남을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받는 괴로움"


고통은 누구나 따라오는 필연적 코스이다.
오죽 했으면 맹자라는 비신자 까지도 '인생은 고통의 바다(人生 卽 苦海)'라고 했을까?


 그런데 여기서 괴로움의 느낌은 뭔가 시원한 듯한 느낌이 든다.
애기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산모들의 고통은 '시원하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저주하기도 하지만..
아기를 위한 고통이라 인식하는 분들은 대개 고통 중에도 묘한 감동어린 얼굴 표정이 보인다.


 난 산부인과 의사다.
진짜다.ㅎㅎㅎ

 

 

 

 "기뻐하고"


 남을 위한 고통은 기쁨이 될 수도 있다.
거기에 배가되는 주님의 위로에 의한 기쁨이 있다면...
이 기쁨은 누구도 이해 못하는 우리 기독교인들 만의 비밀이 된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이 기쁨이 있기에 -은혜-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어 복음을 전파하려는 시

도를 하게 되는 거 아닌가?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항상 난 이 구절에 오면 가슴이 벌렁 거리기 시작한다.
표현 자체가 절묘하고 뉘앙스가 멋있어 보여서 그렇다.

뭔가 튀어나올듯 '두두~둥'하는 음악 소리와 함께 장면은 쵸콜릿 색 톤의 방으로 장면이 바뀐다.

 갑자기 카메라가 식탁 위로 빨리 포커싱해간다.
그 위에 빛이 내리 쬐며 보이는 것은 짙은 핏빛 포도주가 약간 남아 있는 칵테일 잔...

 

 담겨 있는 내용물이 '고난'이다. ㅎㅎ


마시면 속이 탈듯하지만...
넘어가면서 온 몸에 퍼지는 나른한 기쁨........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

 

말은 쉽지만 그 고난이 얼마나 큰 것인가?
얼마나 힘들것인가?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맞으신 채찍의 수가 4천대란 이야기도 있다.
살을 헤비어서 뼈가 드러나셨다고도 한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실 때..
중동의 뜨거운 햇빛과 모래가 그 상처를 부비지 않았겠는가?
그 무게는?
오죽했으면 지나가던 남자를 불러서 같이 들고 가게 했겠는가?

땀은 안흘렀겠는가?
흐를 때 상처는 얼마나 쓰리셨겠는가?

사람들의 손가락질.
신으로서 참으셔야할 모멸감.
몇 분 후에 있을 아픔에 대한 두려움.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좌절.....

 

어찌.....................................
쉽게.....................................
포도주 잔.......하면서...................

 

 이런 이유로 가슴이 뛴다.

 

주님은 살면서 겪어야 했던, 또 그분의 길을 따라가야 하면서 겪을 그 수많은 고통들

을 미리 성경에 예시하고 계신 것이다.

 

 


 " 몸된 교회를 위하여"


 교회는 그 분의 몸이다.
그분은 머리시고.. 우리는 연합된 지체이다.
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함은 당연한 기독교인의 본분이다.

 

 


 " 내 육체에 채우노라"

 


 사도 바울 그 분은 우리 몸이 주님의 성전이란다.
성령을 담고 있는...

 고난을 육체에 채운단다.

 

29절에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이란 표현이 있다.
당연하지만...
성령님은 우리 속에도 계신다.
기도할 때 우리 곁에도 계신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16:8)"


 이 신비한 현상이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당당하다.


그 분의 역사는 '고난을 예수님의 남은 분량'으로 이해하고 그걸 육신적인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하나님'의 허락하신 분량으로 이해하고 인내하고 주님을 간구할 때 속에도 계시도 옆에도 계시고 하늘에서 계신 그 분의 신묘한 비밀이 체험된다는 것이다.

 

" 이 비밀(the mystery)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27)"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2:3)"

분명하지 않은가?


 어려움이 올 때 눈을 땅으로 돌리면 고통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하늘로 향하고 '예수의 남은 고난'으로 인지하고 승화시킬 때 ...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지혜, 지식의 엄청난 보물 들이 내 속에서 꿈틀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기도)

 

참.... 오늘 말씀은 힘이 있고 희망적입니다.
고난이 마치 진하고 독한 포도주 처럼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셔서 제 속에 채워 버리고 성령으로 취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고백입니다.

 

허나...


그 고난은 현실로서 제 앞에 다가올 때
심장이 요동질 치게도 하고
눈은 아래로 깊이 쳐지게 하고
숨을 자신도 모르게 깊게 들이키고 더 강하게 내쉬게 됩니다.
그리고 그 빈도가 점차로 빨리 되게 됩니다.

얼굴 근육은 쳐지게 되고 무거워 지게 됩니다.
온갖 시름이 온몸을 내리 눌러 나른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은 또다른 축복이란 너무도 많이 들은 말씀처럼
눈을 들어 주님을 쳐다보고
예수님의 남은 고난으로 인식하고
깊이 깊이 묵상하고 인내하면

어느 순간 그 고통은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세상 사람이 알 수없는 미스터리 (비밀)로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입니다.

알지 모를 기쁨이 함께하게 되고
우리에게는 소망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지혜와 지식으로 넘치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폭풍우가 쳐도
항공모함 속은 커피잔 하나 흔들림 없듯이...

몸과 마음은 흔들려도
우리의 영혼은 늘 잔잔한 상태가 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


주님이 원하시는 이 땅위의 심령천국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이 귀한 비밀을 오늘 다시금 알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성령으로 인쳐진 자...
저희 기독교인 들 만이..
그 중에서도 끊임없이 주님을 사모하는
우리 나눔 원들은 특히더.....
강하게 느낌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면 오라..
우리 주님으로 기뻐하겠다..
이런 각오와 지혜 허락 하시고 평온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내가 항상 져야 할 가장 사랑스러운 짐이다.

- 마크 피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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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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