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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금처럼 은처럼( 슥13:1-9))

주하인 2007. 4. 25. 14:08

 ( Chapter 13, Zechariah )


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8.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9.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 금도 연단으로 잘 정제되어야 아름답게 쓰일 수 있습니다. )

 

 

 주님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다.

샘.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맑은 물로 갈증을 씻어 주는 곳.

크게 호화롭고 눈에 띠는 강렬함은 없지만

그 이름을 들으면 어딘 지 모를 청명함이 느껴지는 단어.

 

 그분 예수님은 그렇다.

3년 넘게 옆에서 쫓아 다니며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보고

그 분의 넘치는 카리스마를 보면서

온갖 더러움과 죄가 씻겨나가고

그 분의 하나님이신 기적을 수도 없이 보았으면서도

제자들은 어느 순간에

그 분이 샘보다는 화려한 온천 탕이기를 바랬던 바램이 그냥 들통 나버렸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

그 들은 그 샘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 버렸다.

그 들조차 그러니

샘이신 그 분을 알기만 하고

눈으로 보지 못하는 이런 어리석은 주하인은 오죽할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그 어리석은 자들을 통하여 2천년을 넘는 세월 동안 

이 지구상에 그 분이 샘이심을 증명해오셨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원죄를 가진 자들.

그러한 자들이 어찌 씻지 않을 수 있을까?

씻기 위하여 결국은 닦을 곳을 찾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샘처럼 보이는 탁수 濁水도 많이 찾아갔다.

그런 곳일 수록 더 화려한 모양새를 가졌다.

그러나, 그 것은 그들로 하여금 더 더러운 씻을 수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진리는 한 곳.

더러움과 죄를 씻을 수 있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그리하여 역사 2007년이 증명하는 그 샘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 분 곁에서야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제 그 분 재림하실 징조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샘에서 몸을 씻고 나서

다시 혼탁한 세상에 머리를 돌리고 마음을 주었던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할 때이다.

실은

그 분께서 선택하신 이 세상의 1/3이 되어서도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그 분 나라의 거민이 될 자들을 추수하시려 올 그 시간을 위하여

우리는 시험과 연단에 있을 수 밖에 없다.

 

 힘이 드는가?

주하인?

힘은 연단의 다름아니다.

어려움은 시험을 거치는 시간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험을 시험으로 인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인식했어도 그것을 금처럼 받아들일 수가 있는가가 문제다.

연단이 무엇인지 아는가가 문제다.

연단은 구원 받았지만 날마다 짓는 자범죄의 때를 벗겨내는 과정임을 인식함이 문제다.

인식했어도 그것을 은처럼 받는가?

시험을 금처럼 받는가?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소리 지르고

속상하면 있는 대로 화내고

좌절하면 온 몸의 근육에 힘을 빼고 나 몰라라 하고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시옵소서 ~!'라고 눈감고 두손들고 괴성을 지르면서 기도의 형태를 띠었을 뿐이지 과연 내가 시험과 연단을 금처럼 은처럼 해나왔던 흔적조차 있던가?

 

 

우리 주님은 금처럼 받기를 원하신다.

내가 은같은 빛을 발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비록 험한 고통의 골짜기 나락 속이라도

주님을 생각하고

그 분을 위하여

그냥 어려움과 힘듬 속에서도

두손들고

'주여

주님의 뜻이시면...'

하기를 원하신다.

그러하면 그 분이 원하시는 때가 되어

우리의 원함보다 더 큰 상급으로 보응하시는 그런 그림을 가지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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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하고 내려오니 묵상이 잘 진행이..ㅎㅎ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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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처럼 은처럼 잘 묵상을 받고

고통 자체를 금이나 은으로 귀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된다면

우리는 그제야

주님을 깊이 만날 조건이 되게 된다.

 

그때는

어릴 때 배고프거나 밑이 축축할 때

소리 소리 지르면서 달라고만 하던 어린아이의 부모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나

진실로 아버지를 인격적으로 만나

이해받고

공감받고

칭찬받고

가슴 깊이 그 분 아버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감사하는 상태가 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라고 되어 있지 않은가?

 

금처럼 은처럼

연단과 시험을 받아야만

아니

연단과 시험이 있어야만

아버지를 아버지로 깊이 만날 조건이 시작이 되는 것이며

금과 은 같이 받아내면

우리 주님이 우리를 보는 눈이 촉촉히 젖으실 것이고

우리가 주님을 부르는 소리는 물기어린 목소리와 감동어린 해후의 그것이 되지 않을까?

보라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이렇듯

깊은 목소리로 고백하게 된다.

그러면

이렇게 깊은 만남의 필요성에 대하여 정말 필요한지 안한지 의문이 생기는가?

주님은 주님이시다.

주님의 뜻이 우리를 깊이 만나기를 원하시는 것이시다.

그분은 그러해서 우리를 세상에 만드신 것이다.

그 기쁨이 그 분의 유일한 우리에 대한 바램이시다.

그 바램은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라는 감격적인 언어 구사로

표현하고 계시는 것이시다.

 또한 인격적 만남이 있어야 우리가 마지막 날까지

실족하지 않고 기쁘게 나아갈 수 있으며

그 나라 가기까지 덜 어렵게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좋은 일도

좋은 애인도

일년 반이면 식어가기 시작하는게 연구한 결과다.

주님에 대한 인격적 만남 없이 어찌 우리의 머리속의 산물로

잠시 받은 첫사랑의 기쁨으로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는가?

 

어찌되었든...

오늘은 주님이 날 좀더 깊이 만나기를 원하시는 모양이다.

 

 

기도

 

주여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여

아직은 자신이 없지만

주님이 원하시고

주께서 도우시기만 한다면

은처럼도

금처럼도

한번 받아보길 원합니다.

주여

힘을 주소서.

아직은

힘이 부치면

온전히 넘어지고 싶은 어린아이 같습니다.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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