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잠잠하기 위해 (마 26:57-68) 본문

신약 QT

잠잠하기 위해 (마 26:57-68)

주하인 2010. 3. 28. 10:26

 제 26 장 ( Chapter 26, Matthew )

 

  여성 병원 주일 당직 때.

 

지독한 바쁨 후

한가한 여유시간에

네시 예배 다녀온 후 .

 

간만에

봄볕이

병원 마당을

생기로 채웠다.

 

마음이 풀어지는 듯

 

늘 이렇듯

여유롭고

착해져 보이고

잠잠하게 되었음..^^;

 

 


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 
 왜

멀찍이던가?

난 아니던가?

열렬히 쫓던가?

목숨걸라시면 그럴 수 있던가?

그럼에도

예수님에 대한 미련으로

'멀찍이 ' 서 있는 베드로의 모습으로

내 모습을 투영해 본다.


 매일 매일 지는 삶.

성령의 충만함으로 매사에 승리했으면 좋으련만...

그럼에도 이전과 같으면

한동안 좌절하여서 혼자 구석에 처박혀 있으련만..

이제는 멀찍이라도

흘끔흘끔 곁눈질 하면서라도

주님 예수님 곁에서 빙빙 도는 듯한 

내 모습..
 
 
63.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예수님 
그분이 대단하신 것은

난 저런 면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다 존경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부족한 면

자신이 닮아 가고 싶은 면을 우선 보겠지만

난 예수님의 전분야에서 다 그러하시지만

그 분의 이러한 면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잠잠하실 수 있는 것'

그 분은 세상에 생명을 주러 오시고

그 분이 하시는 일은 온전히 '타인'을 사랑하셔서 인데

공생애 동안 그처럼 많은 '비방'과 '비난'에 시달리셨다.

그럼에도 그 분은 그것에 대하여

미워하거나 마음 앓이 하신 적이 없음을 본다.

며칠 전 묵상에서

그 분은 '십자가 ' 달리시기 하루 전에야

'슬퍼하시고'

' 번민하시기'   시작했다는 묵상을 한 것을 통해 보더라도

그분의 마음은 거의 흔들림이 없으심,

특별히 '타인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

또한 '변명' 같은 것은 일체 없으신 것을 보고 있다.

 

오늘.

특별히 주님은 '침을 뱉는 자'  , '손바닥'으로 치는 자 들의 수모 뿐 아니라

모진 언어 폭력에도

'잠잠하심'을 보고 있다.

 난

이분의 이러하신 점이 부럽다.

닮아가고 싶다.

전혀 자기의 이득이 없음에도

모든 어이없는 비방과 손해에

말 그대로 끌려가는 어린양 처럼,

이사야 서의

' 때리는 자를 향하여 등을 내밀고

 수염 뽑는 자에게 맡기고

 침뱉는 자를 피하려 얼굴 돌리지 않고

 ........

이는 여호와께서 함께 하셔서' ..라는 구절대로

그대로 행하신다.

 그분의 그 잠잠함이 부럽다.

그 분의 그 담담함이 부럽다.

그 분의 그 미워하지 않으시고

그 분의 그 변명하고자 하지 않으시는 태도가 부럽다 .

 난 십자가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십자가 이전의 심리적 고통도 그에 못지 않았다 생각한다.

특별히 남들보다는 더욱 민감한 지

난 그런 모독이 '아프게 느껴진다'

아픈게 진짜로 찔리듯이 아프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상처에 고추가룻 뿌리듯이........

심장을 후벼판다는 표현이 느껴질 때가 많았고

지옥의 고통이라는 표현으로 아플때가 있었다.

 

 그런데 주님은

왜 저러시는가?

무엇 때문에 그런 그들의 모독을

아예 당신의 '십자가 사건'에

저들이 저런 어이없는 비방이나 굴욕적 상황을 하지 못하도록

하지 않으셨던가?

 온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무소불능의 권능자이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한마디면 가능할 일이 아니던가?

 

 그것은 '성경을 이룸' 이라는 어제의 묵상에서처럼

하나님의 뜻이시기에 그렇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하나님은

십자가에 세상의 모든 아픔을

다 짊어지고 가져가시기 위해서 그러신 것이라 생각된다.  

 그 아픔.

아담의 원초적 죄악으로 인해서

이 세상에 만연하게 된 '죄'로 인한 아픔들..

상처.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생명의 원리 ,

그 놀라운 평강의 에너지를 차단하는

이 '죄'는

행복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인간 세상에

모든 아픔과 억울함과 더러움과 추악함과

각종 이간질과 ...........................

어두움의 속성으로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극도의 육체적 고난을 체휼하셨고

극도의 외로움을 경험하셨으며

십자가 지시기 전에도

살이 찢어지시는 육신의 아픔 뿐 아니라

위에 기술하는 것 같은

모든 인간의 '상처'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아픔과

그에 반응하여 올라오는

죄의 영향인 '원망' .. . '미움'.. '분노'....의 상황을

다 경험할 수 있으신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슬프다'의 그 절제되고 순수한 감성 만을 표현하신 것처럼

오늘의 반응도

'잠잠하다'라는 표현으로

그 분의 심사를 대신하고 계신 것이다.

 이것은

이 엉터리 같은

주하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시다.

그 분은 '나'도 '그러길' 바라시는 것이시다.

 

그렇다면 어찌 가능한가?

난 분명코 내가 나가야할

인격의 방향이

모진 소리

모진 핍박

수모에도 불구하고

주님 처럼 '잠잠해야 '하는 데

난 결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주님을 의식하여

강도나 빈도는 줄여가고 있지만

아직도 내 속에서 부딪치는

이 급한 분노의 생각들까지

잠잠하게 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다.

10번 모두 튀어나올 생각들이

몇번은 줄어 들었다고는 하나

언제 또 눌렸던 생각들이 튀어나올지 몰라

노심초사 하고 있다.

특별히 , 사순절 기간이다.

이 기간.. 눌렸던 그 엉터리 생각들이

또 잠잠치 못하게 하고 있다.

 

 

 당직이다.

어제 부터 시작하여 월요일 아침 아홉시까지다.

힘은 들지만 보람은 있다.

특별히 내 손에서 나아서 건강해져 가는 분들을 보면

보람이 많다.

 하지만 산부인과는 늘 위험에 노출 되어 있는 과.

어제는 본원에서 1시까지 근무하고

여성 병원에서 당직을 서러 왔다.

토요일이면 거의 어김없이 한달에 1-2차례 응급수술이 뜬다.

본원에 응급수술을 예약하고

시간이 되어 기다리는 동안 여성병원 당직하고

준비되면 다시 10분 거리의 본원으로 가서 수술하고 돌아오려했다.

그러던 것이 여성병원에 대기 산모가 갑자기 늘고

정신없이 환자는 밀어 닥치며

본원의 수술은 앞의 수술이 연달아 느려지며

예정보다는 서너시간 뒤로 늦추어 진다.

그렇지 않아도 그 환자가 내 출혈이 심해질 것에 대한 염려가 있는데

거의 수술 시간이 다되어 가는 시점에

산전진찰의 거의 받지 않던

3째 아이 분만 산모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한 상태에서

분만을 받아 달라고 급히 도착했다.

자중지란..

마음이 뒤죽박죽, 혼란하려 한다.

머리 속에서는 온통 빨간 불이 앰불런스 소리 내는 듯

빙글빙글한다.

토요일 오후.

이제는 '산부인과 레지던트'를 구할 수 없어

병원에는 나 혼자다.

한참을 고민한 후 수술은 한시간 더 뒤로 미루고

그 사이에 촉진제를 써서 환자 분을 받으면 되겠다.

그러나, 그것도 위험한 일이다.

환우의 빈혈 상태, 혈액형..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아니던가?

그런데 '보호자'가 촉진제 안맞는 다 한다.

설명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밖에 생각 안하는

'이기적인~~ '

정말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급한 마음으로

다시한번 '단정적인 설명'을 했다.

'상황이 이러이러하니

다른 병원으로 가시던지

수술을 한시간 더 딜레이 해볼테니 따르라

다른 병원 가시려면 빨리 선택을 해야 한다.

앰블런스 안에서도 분만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이다.

안절부절 못하겠다.

마지막으로 여성병원 원장님 집으로 전화했다.

마침 대기하고 계시겠다 한다.

 다행이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보호자와 산모에게 설명하고

기다리겠다고 말하고는

상황이 그래서 어찌 할 수 없었음을 이해하라는데

보호자는 약간 격앙되어 있다.

난 오히려 속이 뒤집히려 한다.

'그래 어찌되었든 간에 의사도 서비스 직종이긴 하다.

 그렇다면 친절은 무한 경쟁의 시대에 의무이긴 하지만

 저리도 자신들의 생각 밖에 않다니.. '

비판이 나오려 한다.

거기에 겹치는 것은

'아직도 이렇게 밖에 정리가 안되었던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지가 십수년인데..

 어찌 남들에 비해서 이렇게 잘 흔들리는가?

 왜 더 온유하지 못하는가?'...

이럴 때 이 자기 비하적 생각까지 겹치면

많이 흔들린다.

더구나 아직 환우분들 정리도 되지 않고

외래 환자까지

입원환자 '열'난다고 전화까지.....

'이구.......'

 만일 '산모 보호자 께서 격앙되어서 뭐라 더 하셨더라면....ㅜ.ㅜ;;;;

 그래도 억지로 집중하며 잘 마무리 했다

 

 아침에 묵상이 저렇다.

아침에 연달아 산모분이 다섯 분이나 입원하셨다.

제왕절개가 네분.

그 중 한분은 정말 절체절명의 순간, 바로 앞에서

제왕절개를 했다.

예상치 못한 '태반조기 박리'

태반이 자궁 안에서

애기가 나오기도 전에 미리 분리되어

태아와 산모가 모두 곤란한 지경에 빠질

위험한 ....

자궁을 절개하고 나니

양수에 피가 흥건이 섞여 나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몇 분만 늦었더라면 애기와 산모가 사망했을지도 모른다.

네분이 연달아 하나도 보호자들의 저항이나 반대가 없어서

순차적으로 줄줄이 하게 됨으로

시간적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것이다.

 아침묵상하고 '잠잠할 것'을 예상하셨던가?

주님이 미리 그러지 못할 것을 아셔서

환우분들과 보호자들을 잘 순종할 마음을 주셔서 이던가..

어쨋든 '너무나도 다행이다'.

그 산모분 마취 전에 기도 해줄까 물어 보면서

 -늘 그런다 - 교회에 다니냐니 아니시란다.

그러면서도 기도는 해달라셔서

진득한 목소리로 해주었다.

마취는 '경막외 마취'라는 특수 마취로 해서

대화하면서 편안한 가운데 절개를 하고

애기를 꺼내는 데 그렇게 된 것 아니던가..

애기 나와서 보여줄 때까지

산모는 정신이 그대로 있다.

너무나 놀라면서 상황설명하고 아이를 보여주고

다행이도 잘 우는 것을 보여주니

산모가 눈물을 흘리신다.

교회를 다녀야 한다.

그것보아라.

기도하니 이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나지 않았더냐...했다.

마취과장께서 그렇지 않아도 마취하자마자

혈압이 급속도로 떨어져서 이상했다 한다.

바로 태반이 떨어져 출혈하는 순간에 마취와 수술을 하게 된 모양이다.

 너무 다행이다.

산모 분은 눈물을 흘리면서

교회다니겠다고 두차례나 나하고 다짐했다.

 

 잠잠하지 못할 뻔했던 어제 이후

다행이도 외적으로는 비교적 잠잠함을 유지한 후

문제가 잘 풀리더니

오늘은 모든 분들을 잘 인도하신다.

 

주님은

잠잠함을 보여주시며

과정은 모두 주님이 인도하실 것임을 보여주시는 듯하다.

그리고

잠잠하면서

내 속에 들어올

그 수많은 비방과 비판에 대한 민감함 마져

주님의 성령으로 다 가라앉히실 것을

말씀하시는 듯하다.

 살면서

참 많은 경험을 한다.

주님은 '나 여기있다~'하고 누구처럼

기도만 하면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나에겐..

하지만 말씀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이 일상에 벌어질 일들을

미리 말씀하시기도 하고

동감하고 공감해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순종'할 것을 전제로 권고하시기도 하시고

마치 살아계신 아버지 처럼

그리 날 인도하심을

가끔 가끔 자주자주 정신차리고 돌아보면 느껴진다.

그게 감사하다.

 

오늘

나에게 '잠잠하길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하길 선택합니다.

주님은 그것을 모르시고

그 힘듦을 알지못하시는

설화속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제가 겪을 모든 혼란을 다 미리 경험하시고 체휼하심으로

우리를 공감해주시기에

더욱 생동감이 있습니다.

주여.

오늘은 주일입니다.

그러나 상황으로 인하여

주님 전에 아직은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그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저 주님의 뜻과 멀리 서 있는 자가 아니고

열심히 일상에서 예배하는 마음으로 나갈 수 있길 원하나이다.

주여.

저녁에라도 주님 날 예배 성수 할 수 있게 하소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