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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편에 서서(마26:47-56)

주하인 2010. 3. 27. 10:52

제 26 장 ( Chapter 26, Matthew )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느꼈던가

왜 저리 서둘러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고야 마는가

 

주여

잠시라도

절 놓치 마시어서

주님의 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계신 그곳에

지금

있게 하소서

 

그게

주님의 뜻이시기에

그리하게 하소서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예수님과 함께 서 있던 자.

예수와 함께 서 있는 .. 이 아니고

함께 서 있던..으로 바뀌었다.

그, 베드로가 주님 라인에 잘 서 있다가

갑자기 한발을 내 디디어 손을 펴고 검을 빼어

대 제사장의 종을 쳐서 귀를 떨어뜨리는

이 일순간 사이에

그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에서

함께 있던 자로 바뀌었다.

 

 무슨 의미던가?

서 있는 자는 넘어질까 주의하라는 말씀처럼

주님 말씀 앞에 늘 서 있다고 생각하던 자들이

일 순간에 주님과 멀어지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 자신이 '아직 예수님과 함께 서 있다고 ' 생각을 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어디까지나 주님을 위한 일이며

자신은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아무 꺼리김없이 저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주님께서 아래에서 이야기 하시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인간적 면모'에서 멋져 보이는 행동이

주님의 뜻 안에서는 다를 수 있음,

즉 주님 예수님의 라인에서 멀어지는 일일 수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얼마 전 '천주교 정의 실천 사제단' 인가.. 의 과도한 사회활동,

예를 들어 '촛불집회에서의 과격한 앞장섬', ' 방조제..'에 대하여

'정의'를 명분으로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을

천주교내 몇분 들께서 성명을 내서

장문의 반박논리를 신문에 크게 게재한 것을 보았다.

 그들, 사제의 이름을 들고

사회정의라는 이름 하에

'폭력'을 당연시 하는 모습에서

베드로님의 저 모습과 어느 정도 일치함을 깨닫고

씁슬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지도층, 깨인 분들, 리더라는 분들의

'명분'이 걸리면

가장 기본적인 도의를 무시함을 보면서

개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나.

화를 잘내는.....

그 논리의 안에 숨어 있는 움직임이

베드로의 그것과 다름없다고

어찌 장담할 것인가?

매일 회개해도 부족할 일이다.

 

 어찌 되었든

베드로는 아직 '오순절 성령 세례' 전이고

거친 인간적인 면이 많이 남아 있는자이다.

부족한 면은 부족한 면이 맞다.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주님 예수님은 이리 말씀 하신다.

'내가 천사 들을 보낼 수 없어 인내하는가?

 모든게 하나님의 뜻이고

 참는게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럴 뿐이다.

 성경을 그대로 이루게 하려는게 말이다.'

 

 나.

어떤 논리에 맞는 다면 성질을 부릴 수 있다. ㅜ.ㅜ;;

많이 줄었다고 해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순절이라서 인지 자꾸 올라오는 짜증이 있다.

해마다 사순절 기간 동안  난 아내와 자식들과 trouble이 생겼었다.

대부분 내 조급한 '노' 탓이다.

조금 만 더 참으면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을

이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그게 더 안된다.

 요새  화날 때

내 논리에 하나 더 합쳐진 게 있다.

'난 옳아.

 난 이 만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조금 더 '우아' 한 듯이 자신감 넘치는 '화'를 내니

당하는 식구들은 어쩌면 더 속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베드로는 이전보다는 조금 더 세련 된 모습으로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사람들 다루는 모습이라든가

신앙적인 면에서  더욱 자신감이 생기고

나름대로는 신앙의 깊이가 깊어졌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특장점이던 '의리'로

위기의 상황에서 주님을 멋지게 보호하려며

내는 '분노'.

소위 말하는 '의분'.

나보다는 훨씬 고차원의 논리고 감정이지만

그 특성은 하등차이는 없다.

 

이것이 옳은가?

그 의롭다는 판단.

특별히 사회적으로 보아도  칭찬 받을 일일 가능성이 많은 일에 대하여

그것을 '주님의 뜻'이라는 오판으로

함부로 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 하는 것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시는 것이다.

늘 그렇듯,

주님은 오늘도 말씀으로 나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성경'에 맞추어 보라는 말씀이다.

맞다고 생각하는 그 판단의 착오가

성경적으로 틀리다는 이야기다.

주님 예수님은 설령 당신이 판단이 옳을 것 같다고 해도

성경에서의 뜻이 아니시면

과감히 돌리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그 분은 자신의 뜻이란 아예 없으신 분이신 듯 하다.

주님 하나님이 원하시면

어떤 것이든 순종하고 따르실 수 있다는 것.

 당신의 목숨을 노리는 상황이고

제자로서 따르던 자의 배반의 키스의 역겨운 장면이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자의 숭앙을 받던 자신을

그 새벽에 살그머니 와서 공격하려는

비열한 상황임에도

그 분은 그런 것에 대하여 하등 신경을 쓰지 않으신다.

 베드로는 그런 상황에 당연히도 인간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예수님은 그러시지 않으셨다.

' 성경의 이룸'을 위해서 그 분은 모두 참으신다.

 

나.

성경의 뜻은 당연히도 온화하라 하신다.

하지만 내 판단은 벌써 베드로처럼

흥분 상태로 올라와 있다.

거기에  성경의 말씀을 준행함은 호소력이 있던가?

 그렇지만 주님은 나에게 말씀하신다.

' 참음이 성경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 '

 

 그렇다면 사도행전에 보여지는

그 대단한 위세의 베드로와 지금의 베드로는 어떤 차이가 있으신가?

어찌되었기에 '며칠 '되지 않은 차이에

'성경에 쓰여진 대로 따르는'

그래서 '거꾸로 매달려 십자가에서 순교'하는 베드로가 되셨을까?

 '성령'이시다.

성령 만이 답이시다.

 

 나.

오늘 비쳐 주시는 베드로의 인간적 모습에

너무 닮아 있고 그런 나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성경의 쓰여진 대로 따를 것'에 대하여

그리 자신이 없다.

어쩌야 되는가?

베드로에겐 '희망'이 있다.

그는 달라졌다.

나도 희망이 있을 것을 안다.

'성령의 온전한 세례'로서 가능하다.

성령을 사모해야 한다.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내 인간적 판단을 내려 놓을 결심을 해야 한다.

아직도 자아가 살아 있음이다.

싱싱한 붉은 자아.

 내 모습.

내 자랑.

내 의.

내 생각.

나..............

 

참으로 질기게도 '나'를 쫓아 다니는 이 '나'.

내 자아.

나란 개념.

내것이란 생각.

오직 '성령'의 도우심이 간절한

이 토요일이다.

 

 

 

적용

 1. 주님의 편에 서자.

   손해 보고 당하는 것 같더라도 인내하자.

 주님이 오늘.. 그러라시니까.. .그러자.

 그게 이유다.

  그리고는 주님의 칭찬을 깨달아 보자

 

2. 성경에 쓰여진 대로.

 모든 이유가 다 이것이 되어야 한다.

 

3. 성경 여덟장 읽겠다.

 

4. 당직이다.   

  수술이 세분 예약되어 있다.

  짜증내지 않겠다.

  새벽에 불러도 무조건 맑은 목소리로 그리하겠다.

 

5. 사순절.

  조심한다.      

  사단이 준동하지 않도록 ..

 

 

 

 

기도

 주님.

살아계신 주님.

감사합니다.

늘 깨닫게 해주시고

늘 주님 안에서 행할 기회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사순절 기간이라서인지

이 급한 성격에 자꾸만 올라오려는 그 무엇이 느껴집니다.

주여 이럴 때

베드로님이 오늘 그랬듯

발 내밀어

내 인격이 먼저 튀어나가게 하지 마시고

주님의 뜻

성경의 말씀이 먼저 생각나게 하시어서

그 말씀이 내 판단과 차이가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주님의 뜻으로 날 누르게 하소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럼으로 승리하게 하시고

그게 제 인격적 성화에 큰 깨달음의 훈장이 되게 하소서.

기쁨으로 절 채우소서.

말씀을 더 현명하게 깨닫게 하시고

더 사모하게 하시고

더 준행하게 하소서.

예수님이 그러셨으니 그러하게 하시고

성경에 써있으니 그러하게 하소서.

주님 만이 이유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시여.

오늘 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당직입니다.

그리 몰려서 그리되었습니다.

나이 들어 당직이라는 일까지 있게 하시어 감사드립니다.

사고 없이 하여 주시고

너무 힘들어 짜증나지 않게 하시고

설령 그렇더라도 주님의 뜻안에서

주님 말씀이 아니니 인내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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