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흐르는 자연스러움[요2:1-12] 본문
(펌) 아.. 우연히 마주한, 기성가수분으로는 보기 드물게 뛰어난 영성이 느껴지는 BJY의 찬양
써핑하다가 그냥 감동해서 가져다가 붙혔네요.. ^^;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어머니
마리아님은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왜 굳이
예수께 포도주를 말했을까?
당연히도 주변에 가게가 있거나 , 있다해도 종이 없는것도 아닌데...
거기에는
아들이지만
하나님이심을 뼛속 깊이 알고
그의 성장과정 중 보인 모든 기적들 내지 범상치 않은 능력 (성경의 외경에는 많이 나온다 ..)
그런 아들이 자랑스럽기도
한편으로 아쉽기도 (아무리 하나님으로 보려해도 아들인 육적 욕심을 인간 마리아가 어찌 다 놓았을까.. 가련 ㅜ.ㅜ;..)하여
마침 그 큰 자리에
그 아쉬움을 타인들에게 보이고 싶은
작은 .. 여인의 내면적 표현이기도 했을 수 있다.
당연하지만 그 모든 것 마져 하나님이 허락이지만..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자여"
십자가에 달리셔서도 마리아님을 보고 그리 하셨다.
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당연히도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께서 (당연히 하나님의 예정된 프로그램에서 인간의 정에 이끌리면 안됨을 표현하심이겠지..)
'인간'으로서의 '마리아'님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시겠지만
그 안에 흐르는 뉘앙스는
'존경' 내지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나 뿐일까?
성육신 하셔서 비록 인간의 '죄성'은 전혀 없는
실제적 '속죄제 어린양' 으로 오시었지만
당연히
인간의 속성을 다 가지신 예수님이시기에
신성(神性)의 하나님 특성으로 '공생애' 사역 시작하기 전
인간 모친 마리아님의 복잡한 심령의 흐름을 마주하자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여자여"라는 표현으로
완곡히 거부함이시다.
그러나,
거기에는 차가운 거부가 아니고
안타까운 사랑이 엿보인다.
슬며시...............
(참고로 히브리 원어로는 '귀네'라는 단어이며 귀부인이라는 뜻이기도
NIV에서는 'Dear woman ' 즉 친애하는 여인으로
KJV에서는 단순히 woman으로 표기했다 한다 ^^;;)
그러시면서 '하나님의 시간'이 중요하심을
"내 때가 아"니시라는
정확한 표현으로
포도주에 대한 어머니(肉的) 마리아의 '사역'에 어쩌면 방해될 요구에 대하여
거부하시는 표현이기도 하다 .
'선을 정확히도 긋는'..........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님은
지혜롭게도 ( 예수님의 위신을 배려하신 듯하게 더 조르지는 아니하시고)
당연히 아들 예수께서 해주실 것을 믿고
기대하고 기다리라는 명령을 하인들에게 하고는
'당찬' 기대로 기다렸다.
그리고는
예수께서는 당혹 스럽게 (당혹스러운 것이 맞는가?.. 육적어머니지만 십계명에 부모를 공경하라시는 말씀과 더불어 그 자애로운 사랑의 주님이 차갑게 끊는게 정말 당혹스러운 거가 맞지 않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을 어긴다는 것은... )
하나님의 시간과 다르게
인간 마리아 엄마의 말을 들어줬다 .
이거..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내 기준이라면
흑백이 너무 칼 같아서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 맞고
두 가치, 즉 인정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판단키는 어려울 때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라.. 가 맞는게 맞는데 ㅠ.ㅠ
다른 대부분의 성경 내용에서도
그것이 맞는게 또 맞는데
오늘은 다르다.
이것을
하나님의 뜻보다는 인정에 치우친 예수님의 실수로 보아야 하는가?
밀밭 사이로( 궁금하시면 ㅎ ->https://blog.daum.net/kbclmy/12049740 ,2008년 성령충만하게 묵상한 게 있다 ^^*)
걸어가시면서 안식일에 밀을 먹는 제자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
다윗의 도피 중 제단의 음식물 먹는 일............들이
비근한 비유가 되려면 되지 않을까?
인정이 많으신 하나님...
율법을 넘어서시는 사랑의 가치..
세상의 눈을 넘어서시는 하나님으로서의 옳음........등
생각할 것이 많지 않은가?
하지만 ~
오늘
내게 주시는 것은
그 단순한 ^^; 깨달음을 넘어서길 원하심이 아닌가?
위의 현상이 나오기 위하여
심리를 읽어내려 애쓴 위의 결과를 보아서라도
오늘의 내게 주시는 주제는
'흐르는 자연스러움' 이다.
나.
만일 예수님의 입장에서
'마리아'님의 같은 어머니의 요구를 받았다면
친족이나 가까운 자의 무리하다 생각되는 요구를 받았더라면
어찌했을까?
위의 표현대로 칼같이.........차갑게.....했을 개연성이 많다.
예수께서
요즈음의 내 내면을 자꾸 보게 하신다.
그 자연스러운 흐름
흐르는 자연스러움.....을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게 하시는가?
너무 흑백으로만 바라보지 않던가?
아직도?
때로는 '회색'같은 오늘의 상황을
'여자여'........하시면서도 '포도주'를 최상품으로 만들어 주시는
그 예수님의 하심에서 읽을 수 있지 않던가?
조금더 성장하기 위하여..
더 필요한 것은
지혜이고
흐르는 성령의 은혜로 인한 깨달음이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사랑'을 베풂의 조율이
순간순간
내 안에 흘러야 하지 않을까?
주님.
아시오매
모든 것..........
다 아시고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흐르는 자연스러움..
그 안의 올바른 판단을 보고 있습니다 .
제게
꼭
필요합니다.
저의 중심을
그리 붙드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듭거듭 성령으로 만[요3:1-15] (0) | 2022.01.08 |
---|---|
성경 말씀 근거한 열심으로 나를 [요2:13-25] (0) | 2022.01.07 |
네 속에도 그런게 없다[요1:43-51] (0) | 2022.01.05 |
보라 내 죄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요1:29-40] (0) | 2022.01.04 |
새해 벽두에 묻는 물음[요1:19-28] (0) | 2022.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