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네 속에도 그런게 없다[요1:43-51] 본문
46.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나다나엘'
사뭇 부정적인 어투다 .
"나사렛에서... 있느냐"
47.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그런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께로 나아오니
그를 보시고 주께서는
특별한 멘트를 하신다.
" 이는 참으로... 간사한 것이 없다"
왜 그러셨을까?
저 말이 정말 접대성 멘트인가?
단순히 주변사람에게 어떠한 깨달음을 주시게 하시거나
당신의 하나님이심을 알리기 위한 도구로
정말 '멘트'를 날리신 것인가?
아님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
아니..
나는 너무도 잘안다 .
'나다나엘의 비아냥 거리는 말투'도 아주 익숙하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적주적 (정말 이 표현이 나다나엘이 예수님 구경하려 오는 ^^;; 걸음거리에 딱맞는 표현 같다. ^^;) 거리며
예수님 쪽으로 다가오는 듯한 그 몸짓도 익숙하며
그러나 그 내면이
정말 주님 보시기에 '순수한 면'이 많음을 알 수 있을 거 같다
그래서 주님은
그 자신도 알수 없는
온통 부정적으로 세상을 삐닥하게 바라보는
'나다나엘'을 읽어 주심이다 .
48.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하고
깜작 놀라 여쭈어보니
'네가 .. 무화과.. ' 라하신다.
그러고는 나다나엘이 무너진다 .
무슨 흐름인지
난.. .잘안다
그 내면의 순수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면에
좌절하고 '무화과 나무 '아래 ( 상징적의미 아닐까?.. 무화과의 성경에서 어떤 귀중함의 의미인지 잘 안다.. 그 아래에 앉았다는 것은 '엘리야 선지자'의 그 우울과 비슷한 느낌 아닌가?) 앉아 있었는데
그 의미를
그 이전의 그의 모든 내면의 이루어짐을
주께서 읽어주시고
통찰해주신 것이시다.
나다나엘
엘리야의 까마귀 밥 사건 때의
그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던 우울과 비슷히도
그는 '무화과 나무 ' 아래서
진리와
내면의 상태와의 부대낌으로
혼란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겨우 힘을 내 찾아갔던 예수님께서
그의 내면을 읽어 주시면서
그러한 그의 스스로의 부정적 자괴감에도 불구하고
'선한' 간사함이 전혀 없음에대한
확신 -얼마나 더 이 이상의 확실한 확신이 있을 수 있는가? 예수님이 직접 그러시는데 ^^* -을 통해
그는 거듭났다.
예수님의 제자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난...
안다.
그래서 감사하다.
주님
귀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께서 오늘 도 또 말씀으로 다가오십니다.
스스로 깊은 부정감과 세상에 대한 어두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간사한 데가 하나도 없는 너 나다나엘아... 라 하십니다.
괜히 묶이려 하던 저를
'간사한 자가 없는 주하인아' 라.. 하시는 듯 싶습니다 .
그냥 풀려나가는 느낌입니다.
주여.
바라옵기는
성령으로 충만한 하루 되게 하소 서
붙들리지 않게 하시고
나다나엘에 대한 말씀이
나를 보고 하시는 말씀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깨닫게 하시고
성령으로 강하게 인도하소서.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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