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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속에도 그런게 없다[요1:43-5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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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속에도 그런게 없다[요1:43-51]

주하인 2022. 1. 5. 08:34

 

46.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나다나엘'

사뭇 부정적인 어투다 .

"나사렛에서... 있느냐"

 

 

47.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그런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께로 나아오니

그를 보시고 주께서는 

특별한 멘트를 하신다. 

" 이는 참으로... 간사한 것이 없다"

 

왜 그러셨을까?

저 말이 정말 접대성 멘트인가?

단순히 주변사람에게 어떠한 깨달음을 주시게 하시거나

당신의 하나님이심을 알리기 위한 도구로 

정말 '멘트'를 날리신 것인가?

 

 아님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

아니.. 

나는 너무도 잘안다 .

 

'나다나엘의 비아냥 거리는 말투'도 아주 익숙하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적주적 (정말 이 표현이 나다나엘이 예수님 구경하려 오는 ^^;; 걸음거리에 딱맞는 표현 같다. ^^;) 거리며

예수님 쪽으로 다가오는 듯한 그 몸짓도 익숙하며

그러나 그 내면이 

정말 주님 보시기에 '순수한 면'이 많음을  알 수 있을 거 같다 

 

그래서 주님은 

그 자신도 알수 없는 

온통 부정적으로 세상을 삐닥하게 바라보는 

'나다나엘'을 읽어 주심이다 .

 

 

48.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하고 

깜작 놀라 여쭈어보니

'네가 .. 무화과.. ' 라하신다.  

 그러고는 나다나엘이 무너진다 .

 

무슨 흐름인지 

난.. .잘안다 

 

 그 내면의 순수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면에 

좌절하고 '무화과 나무 '아래 ( 상징적의미 아닐까?.. 무화과의 성경에서 어떤 귀중함의 의미인지 잘 안다.. 그 아래에 앉았다는 것은 '엘리야 선지자'의 그 우울과 비슷한 느낌 아닌가?) 앉아 있었는데

그 의미를 

그 이전의 그의 모든 내면의 이루어짐을 

주께서 읽어주시고

통찰해주신 것이시다. 

 

 나다나엘

엘리야의 까마귀 밥 사건 때의 

그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던 우울과 비슷히도

그는 '무화과 나무 ' 아래서 

진리와 

내면의 상태와의 부대낌으로 

혼란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겨우 힘을 내 찾아갔던 예수님께서

그의 내면을 읽어 주시면서

그러한 그의 스스로의 부정적 자괴감에도 불구하고

'선한' 간사함이 전혀 없음에대한

확신 -얼마나 더 이 이상의 확실한 확신이 있을 수 있는가? 예수님이 직접 그러시는데 ^^* -을 통해

그는 거듭났다. 

예수님의 제자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난... 

안다. 

 

그래서 감사하다. 

 

 

주님 

귀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께서 오늘 도 또 말씀으로 다가오십니다. 

스스로 깊은 부정감과 세상에 대한 어두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간사한 데가 하나도 없는 너 나다나엘아... 라 하십니다. 

괜히 묶이려 하던 저를 

'간사한 자가 없는 주하인아' 라.. 하시는 듯 싶습니다 .

그냥 풀려나가는 느낌입니다. 

 

주여.

바라옵기는 

성령으로 충만한 하루 되게 하소 서

붙들리지 않게 하시고

나다나엘에 대한 말씀이

나를 보고 하시는 말씀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깨닫게 하시고

성령으로 강하게 인도하소서.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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