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자연스러운 복(잠10:18-32) 본문
18.미움을 감추는 자는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요 중상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니라
" 미움을 감추는 자"
미운 마음을 그대로 표출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가리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런 사람
사회생활 유들거리게 잘 특화된
자신을 가릴수 있는 사람을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라 신다 .
그게 맞는가?
성경의 말씀은 무조건 옳기에
그런 관점으로 다시 들여다 본다.
'미운 마음을 가지고 아닌척 사람을 대하는 자'의 의미가 아니던가?
세상을 유연하게 살려면
감정을 속이고 가능하면 문제 안만들고 사는 게 옳은 것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게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가..다.
결국 언젠가는 눌려 터지며 '과도한 폭팔'로 나오거나
자신을 향한 '미움'으로 전가되어
'우울'증으로 투사되는게 문제지..
그렇다면
미움을 감추는 자라는 뜻은
미움을 있는 대로 표현하라는 것이 아니시고
미움이 생기기 전에 마음으로 부터 해결하고
사람을 대하라는 말씀이신 것 같다.
그래야.. 순간 순간 입술로
쏘는 듯,
틱틱대는 말이 안나올 것이고
비비 트는 듯한 '비아냥'의 말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 그렇다면
그 미움의 정체를 눈치채고
그 상황을 알면서도 습관이 되거나
너무 오랜 가슴의 아픔으로 인하여
자신도 모르게 성격적으로 굳어 버린
화 잘내는 급한 성품들은
어찌 대인관계를 할까?
완전히 '성격'이 고쳐지기 까진
세상 사람들을 만나지 말까?
아니다.
정말 깨닫는게 중요하다 .
가능하면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내 거친 입에 당하는 자들이 당하는 아픔을 겪을 수 있단 것을
인식하는 인사이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꾸만 돌이켜야 한다.
마음의 왜곡이 왜 있는 지..
왜 그런 생각이 드는 지 자신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어차피 이땅의 짧은 인생사는
모든 인간들은
원죄적 존재다.
누구나 '죄인'이란 이야기다 .
자신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가 아니다.
아이도 '몸부림치고 뗑강 '부리면 '천사'가 더이상은 아니다. ^^;;
철들며 '영악'해지면 미운 세살, 미운 일곱살이 된다.
콧털이라도 나거나 , 유방이 봉긋해지기 시작하는 사춘기라도 되면
아이들은 '악마'의 대행자 같아진다. ㅠ.ㅠ;;
인간은 누구나 본성적으로 그런 존재다 .
그러기에 '미움을 온전히 해결하고 '사람을 만나서 잘해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오늘 말씀은
'미움의 마음이 있으면서 ' 위선하는 입술을 이야기 한다 .
'미움이 있으면 ' 고민하고 돌이키는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22.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보라.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되
근심을 같이 주지 않는다 한다 .
'미움을 숨기면서 '
남의 해악을 통해 '부'를 누리려는 자들은
그게 비록 그들에게 이땅의 부를 허락되어질 지언정
결코 '복'은 아니란 이야기다.
'위선의 입술'은 영혼의 깊은 곳에
그가 비록 인지하든 못하든
양심이 작용을 하여
가슴이 답답하게 한다.
만일 , 그마져 누르는 자들이라면
그것은 '싸이코 패스'거나 선택적인 '악인'이다.
그렇지 않은 보통 사람들은
그 삶이 결코 밝지 못하다.
결국, 나이 들어 그 어두움은 그의 영혼에 부담을 주어
몸으로 나오거나
마음의 흐름을 막아
어딘가 '고장'이 나거나 '불안'하다 .
많은 돈을 가지면서도
안절 부절 못하는 것은
'복'이 아니다 .
그것은 '저주'다.
현대의 많은 경제논리들은
진정한 복,
마음이 편한
자연스러운 축복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미움을 누르며
입으로만 하는 위선을
진정 '능력'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
그래서 문물이 발달할 수 록
영혼은 파괴가 되어간다 .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기 힘든 세대가 되어간다 .
고민할 필요가 없다 .
우리는
세상이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세속을 떠나 도피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소리에 충성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
그 노력 속에는 자신을 향한 노력도 있다 .
미움이 솟구치는 자신도 모르는 마음의 흐름은
올바로 인식하고 자꾸 내려 놓아야 한다 .
말씀으로 그래야 한다.
미움을 없애는 게 목적이 아니고
불안을 없애는 게 주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미움을 간직한 위선'이 죄라시니
내 미움의 상태를 들여다 보는
하나님과의 소통,
하나님과의 동행하다가
점차로 나아지는
그래서 인생이 평안해지고
세상의 그 어떤 상황도 흔들수 없는
고요한 평강의 상태가 점점 되어가다가
주시는 하나님의 '복'으로 같이 풍성해지는 것...
이것이 온전한 '축복'이다.
주님.
곧 있을 미래에는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힘들 시대랍니다.
그것을 구분할 수도
구분할 이유도 없어지는 시대랍니다.
마치 매트릭스의 컴퓨터 안에 의식만 살아 있어도 살아있는 것으로 착각되는...
그렇게 되면
이제 하나님을 찾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 만 같습니다.
이러할 때
제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더욱 깊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진실을
진리를
죽도록 붙잡는 노력
남들의 핍박과 비아냥과 놀림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
더 하나님...
오직 예수님..
오직 보혈..
오직 십자가..
성령의 검..
그래서
주님으로 승리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
더욱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여.
주의 지헤로 살기 원합니다.
제게는 '미움'이 늘 흐르고 있었습니다 .
많이 십자가에서 해결받았지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아직도 스물거리는 기운을 느낍니다.
주여.
오늘 말씀이 있으셨사오니
더 미움을 가지고는 이웃을 제대로 대하기 힘들듯합니다.
주께서 '미움을 감추고 ..'하시지 않으셨나이까?
그래서 소원합니다.
더 착하게 되게 하소서.
더 깨닫게 하시옵소서.
더 맑은 영혼되게 하소서.
주님 곧 부르실 때
그래서 온전한 영혼 되게 하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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