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에 대한 정직(잠11:6-31) 본문
6.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정직한 자'
일단, 여기서 말하는 정직은
모든 사람의 도덕적 정의라기보다
믿는 자들에게 해당하는 정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거.. 다시 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레마'시니
내가 과연 '정직'함의 원하시는 표준에 합당한가..보아야 한다 .
아니..
늘 정직한자라는 기준에는 난 합당하지 않다.
내가 보아도 ..
정직한 부분이 많기도 하고
때로 부정직하기보다 정직하게 행동하려 할 때가
하루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내 인생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정직하게 산 경우의 시간이 비율적으로 더 많아서 일 뿐,
난, 결코 '정직한 자'의 표준에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
그렇다면 무엇인가?
오늘 내가 취해야 할 '생각'이나 '태도'에서
정직함을 선택해야 하는 것을 말씀하시지 않을까?
이 부족하고 , 고백한 대로 불완전한 나의
인격,
이 영혼을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어
결국 구원하기로 '선택'하신 건,
어차피 늘 온전한 나,
말씀 만 하시면 온전하게 되는 온전하기에 쉬운 자.. 가 아니고
늘 죄에 시달리는 죄덩어리의 죄많은 자 아니던가?
그러기에 다시 말하면
또 한번 우리 주께서 나에게
새로운 '정직함의 주하인'
정직할 주하인을 기대하며 말씀하시는 게 아니신가?
나.
죄 지을 때,
특별히 내 급한 분으로 인한 죄를 지을 때
조금 과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그거...
대부분 성격 급한 사람들이 그렇듯
뒤끝없다고 하는 것처럼
정신을 차리고 나며 '많은 미안함'이 있다.
그런데도 그 상황에서는.. .
정신차리고 뒤끝없다고 자꾸 자위를 하는 이유는
그 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자신을 향하여 다구치는 '자책'의 소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아주 아주 무거워 진다.
아예.. 못느끼고 그냥 누구나 요즈음 그렇듯
방송에까지 나와서 나쁜 소리하고도
들키지 않고 구설수에 오르지만 않으면 당당히도 사는 시대인데...
거기에 '믿는 자'로서의 '말씀'을 배반했다는 마음은
자꾸만 더 큰 중압감으로
죄진 후의 우리 급한 성품의 사람들에게는
다가오게 된다.
그럴 때 자주 선택하게 되는 '기제'가
타인에게 투사다.
투사해서 '그가 잘못해서.. ' , '그가 그러지만 않았더라면.. '
이게 온전히 그 마음을 속이면
일시적으로 마취된 듯 덜 미안해지고 편안해지리라.
그러나, 그게 버릇이 되면 어떤가?
나처럼 성질 급한
스스로 속이는 자들,
양심이 마비가 되고
세상은 따라서 더 혼란하게 된다.
나.
이제 필요한 게 있다 .
더 정직해야 한다.
죄 지은 거 어쩌던가?
돌리기 어렵고 그렇다고 자책을 해서 죄가 없어진다면 그래야지..
다행이도
우리에겐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다.
그 분이 흘리신 보혈이 있고...
매일 '부활'할 성령의 도우심이 있다.
끊고 다시일어남.
죄에서 허덕이지 아니함.
그게 '예수님' 믿는 자들의 '다행'이고 복이다.
완전히 해결된다.
물론, 타인을 위하여 중보도 해야 한다.
혹여 그가 나로 인하여 고통을 겪게 된다면..
그런데 이렇게 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필요한 것은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상황에 내가 어느 정도 잘 했는지 잘못했는지 인정하는 것이다.
이거..
이게 '스스로에 대한 정직'이다.
정직하게 잘못한 거, 잘 못하지 않은 거 분석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며
그게 비록 억울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더라도
하나님이 대속하라면 대속해야 한다.
그게 '공의'다.
정직을 통한 '공의'
딱딱한 내용 같지만 다 이해가 된다.
그러기로 해야겠다.
그리고 그리 되면 그게 우리를 '지킬 것이라 '한다.
무엇으로 부터 지키고
무엇으로 부터 구원인가?
이거...삶은 '영적 전쟁터'라 하지 않았던가?
내 죽어 주님 나라 들어가기까지
성화되기 위한
깨끗한 백지 같은 영혼이 되기 위한
연단의 도구들이다.
그리되기 위해서는
'죄'가 허용되었다 .
주님의 우주적 뜻 가운데서..
그리고 그 죄를 '주님 앞에 가져와'
십자가 예수의 보혈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결받는 연습,
그런 후 '부활'되는 체험,
부활된 자의 '성령'충만한 은혜의 어떠함,..
그런 체험 후 '죄로 부터 멀어짐'이
점차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 전제가 ' 스스로에 대한 정직함',
'나에 대한 정직함'이다.
그리되려 마음먹고 매사에 스스로를 적응시키려는 노력이
'공의'의 노력이다.
그것.
주님이 기뻐하신다.
주여.
아시지요.
이 패악한 마음의 흔들림...
그리고 순간 튀어나오는 어이없는 언사들..
주님
그게 비록 누구의 이유이든,
내 죄가 있음을 통하여 확대된 것은 사실이고
그 죄를 인정하오니
주여...
불쌍히 여기시어
다시 부활케 하소서.
예수 보혈로 씻으시고
다시 생기를 부어주시사
귀한 여정을 다시 손잡고 나가길 원합니다.
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늘은 특별히 나에 대한 정직한 공의를 묵상합니다.
지지 않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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