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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의 만족(출16:13-20)

주하인 2015. 2. 24. 11:42

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아.  .

음식거리를 주시니 감사하다 .

메추라기인 단백질과

만나, 정확히 모르지만 당과 불포화 지방산이 충분한 견과류가 아닐까?
그런 음식재료를 아침 저녁으로 주시니

감사하긴 한데

주님의 능력으로 그것 뿐이실까?

아예.. 잘 요리된 프라이드 메추라기나 삶아져 나온 고기라면 어땠을까?
만나... 맛있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시면 그냥 신기한 그 것 보다

더 맛있는 ..

아.. 찾아가는 산부인과 오전 진료가 끝나고  

(단양 시내 'T' 식당의 칼만두..비주얼이.. 크기도 엄청나고... 맛도.. 와..ㅎ )

 

점심 먹으러 가서

이곳 만의 별미인 '칼만두' 한그릇 먹고 나서

간호사가 조신하게 받들어 떠다준 '맛있는 일회용 커피'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당연히도 그 정도의 달콤한 음식을 허락하실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이실 텐데

겨우 두끼 , 그것도 생메추라기와 만나라니....

 

 처음에는 감사했겠지만 곧 질리지는 않았을까?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부족하지 않게 ,넘치지도 않게

즉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하긴 하지만

조금 더 배부르게는 주실 수 없었을까?

좀 더 넉넉하게 ..말이다.

마음도 여유롭고 든든하고

사막이지만 그래야 견딜만 한 힘이 나지 않았을까?

 

 

20.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그런데 주님은

그 조금 넉넉한 거둠 ,

기왕에 주신 메추라기 , 기왕의 만나를 조금 더 힘써 거둔 것 가지고

이리 '노하신다' 신다.

벌레가 생기게 하시고....

 

 

 이상은

'현대' , 현재의 내가 누리고 있는 풍요 가운데서

조금 쪼이는 생활로 내려갔을

일용할 양식 만 주시면

내가 만족할 수 있었을까 하는 가정 속에서

성경을 들여다보니

곳곳에서 하나님의 베푸심이

조금조금 내 마음에 걸려드는 듯해서

그런 부분만을 가지고 묵상을 해보려

하나님의 일에 '딴지'를 걸어본 것이다. ^^;;

 

 그런데

정말 내 고민이

내 고민 만일까?

 지금의 누구도 저 상태를 기도하고 바랄까?

부르짖고 소나무를 뿌리 뽑는 기도의 용사들도

많은 부분에서 지금보다 '더'를 전제로 하지 않던가?

시편의 '부족하여 기도할 시간이 없고 넘쳐서 민감도 떨어질까 두려우니'

적당한 정도만 달라고 부르짖는 기도가

내 진정한 기도가 될까?

 

무엇이 문제인가?

왜 하나님은 우리의 그 소박한 바램 마져 '노'하실까?

무엇을 바라시는가?

 

그것은

일용할 양식으로 대표되는

최소한의 일상의 것에 대한 '만족감'과

우리의 육체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니코틴, 알코올, 이성에 대한 갈증, 마약...'을 바래서 얻는 만족감과 사이에서

어느 것을 바라는 것이 옳을까 하는 문제가 아닐까?

 

 즉 만족은 만족하면

그것이 어떠한 방법이든 똑같은 거 아니던가?

많이 가지고 만족하던

적게 가져도 만족하던

만족감은 똑같은 것이고

그것은 다시 말하면 '행복'은 가지는 것과 상관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만족감의 정도는

'외적'인 존재, 여기서는 가진 것..에 있지않고

중심에 '내적'인 것

즉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다..

내가

주신 메추라기와 만나에만도 진정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날것이던 요리된 것이던

만나보다 더 맛있는 칼만두와 커피던

그보다 더 뛰어난 고급 레스토랑의 후식이던 아니던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

 

그렇다.

그것을 위하여

불교나 다른 도...에서는

자기 성찰, 명상.... 수없이 많은 방법들이 역사로 되풀이 되어 추구되어 오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전제로 한 만족을 이야기 하신다.

그것을 가르치시고

그리하도록 도우신다.

인생을 통한 훈련, 연단으로

성령으로..

 

왜 이신가?

왜 주님은 오늘,

인생에 대하여 만족을 말씀하실까?

 

왜 내 만족의 역치(Threshold)를 낮춤으로

만족을 원하시던가?
일단, 하나님이 안계시는 불신자의 시절에도

청빈, 욕심이 줆은

고고함이 늘어난다.

향기가 풍긴다.

건강에도 활성산소가 줄어서 더 건강해진다.

인격에도 덜 가짐으로 누리게 되는

빈 마음이 자연스럽게 된다.

그러나, 그들에겐.. 그게 다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빈마음에 드실 하나님의 영의 공간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의 성전'에

하나님이 임하셔서

일생을 우리, 각개인과 동행하시는

개인의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하시고

그러함으로

자연스레이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는

성화되어 가고

내 안에 사는 것이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시 되게 된다 .

 

몰아 일체라는 한자 성어가 있다.

나와 다른 것의 하나됨.

내 자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내 자존심, 내 만족 .. 내.. 내....내가 사라지고

외적인 자극에 더 이상 별 흔들림의 의미가 사라지고

크게 바라는 것도 사라지고

그저 고요한 자연의 한 부분이 된다는...

 

그들은 그렇게 노력하고 면벽하고 하지만

우리는 그 빈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맑고 선한 몰아일체가 된다.

선한 기쁨.

그것이 '샬롬'의 정체인

그 하나님 '몰'과 내 '아'의 하나가 됨..

그것이 하나님이 진정 우리에게 원하시는 원리다.

그것을 위하여

그 중심에 우리의 선택을 위하여

훈련을 하시길 원하신다.

 

우선 어려운 과정에서도

그래서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의 훈련'을 시키시는 것이시다.

더 바래서 더 만족하길 원하지 않아도

하나님으로만 만족하게 되는 것.

 

그 방법은 개인차게 있겠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하시는 우리의 선택은

그게 되어야 한다

 

그런데요 하나님.

제가

칼만두국을 배 터지게 먹고 왔습니다.

그리고도 부족하여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단 커피도 한잔 했습니다 .

어찌 된 것인지 제 육체는 만족을 모르고

더 더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주여..

지금 이곳 . 단양의 허허로운 여유로움에도

그냥 똑같은 만족으로 만족스러워 합니다. .

 

오늘 날씨가 참 좋습니다.

하늘을 보니 황사는 뿌옇게 낀듯하지만

날씨는 화창합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습니다.

주님

주님이 허락하신 만족도 에 맞추어

제가 의사로서

사회적으로 바랄수 있는 기대를 내려 놓고

그 기준에 부족한 나를 허탈해 하지 않아서 생기는 만족감임을

난.. 눈치 채고 있으며

그 내려 놓음,

그 만족스러움

그 기쁨은

모두 하나님이 허락하신 바임을 믿습니다.

 

부디 바랄 것은

이제 육신의 식욕의 만족,

다른 탐욕의 만족에서

조금은 더 자제하고 청빈한 마음이 되길 바랍니다

 

어제 디도서를 읽다가

늙은 남자는 절제와 겸손해야하며

믿음과 사랑과 오래참음에 힘써야 한다는 말씀이

저에게 꽂혔습니다.

아직은 육신적으로 부족한 식욕, ..

주님.. 이제는 말씀따라...

자연의 허락한 순리에 따라

조금 더 절제가 되길 바랍니다.

 

입은 닫고

지갑은 더 열라는 성현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불현들 들어갑니다.

말씀에 맞추어

세상의 원리도 존중하며

주님이 기뻐하실

스스로 만족할 주 아는 자,

일용할 양식만으로도

그냥..

기쁨의 웃음으로

걱정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자

상대적 빈곤감의 이유를 멀리 벗어 던질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저로

모든 세상에 바른 모범이 되는

조그 맣지만

주의 말씀대로 사는 자 되게 하소서.

 

모든 그리 몸부림 치는 자들에게

동일한 축복을 허락하시고

주의 뜻이라면

넘치게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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