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인자한 아침 ^^* (시 90:1-17 ) 본문
제 90 장 ( Chapter 90, Psalm )
(기도원 기도굴 앞 흰무궁화 )
아름다운 꽃도
십 일을 꽃 피우고 나면
그 아름다움이 시들거린다
꽃은
아름다움이
그 본분이다
본분에 못미칠 수 있는
덜 아름다움도
주님이 전제가 되면
이유가
뚜렷이 보인다
(시 90:1-17 )
1.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하나님의 사람.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던 분이시면
'하나님의 사람'이라 하는가?
나도 그리되길 원한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4.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기도하는 첫 시작을
주님을 '찬양'하는 기도로 한다.
'오 주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 합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 하지만
깊이가 없고 주님의 그 위대하시고 어마어마하신 분을
높여 드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듯 하고
어찌하다 보면 습관적이고 예식적인 마음이 되어 있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래서 죄송하다.
오늘 묵상 구절에서
주님은 산이 생기기도 전 , 땅이 생기기도 전
영원부터 영원까지........
천년이 하루 같고 밤의 한경점 같다..'는 살아 있는 감동의 하나님을
감동적으로 올려 찬양드리는 구절이 나온다.
느껴진다.
모세.
'하나님 만나서 얼굴을 뵙는 ' ,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 힘있는 고백을
오늘 아침 만나니
나도 부럽다.
감개가 무량하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들 빼놓고는
팔십 세까지를 최대한으로 본 그 시기의 수명이 적지 않다.
문제는 길고 작은 게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 펼쳐진 게 꼭 기쁨 만이 아니었던 것이
수고와 슬픔 뿐이라는 표현에 그대로 나온다.
지금과 무엇이 다른가?
지금도 안그런가?
수명이 조금은 연장이 되어 남자의 평균 수명이 70 몇세 ,
여자는 조금 더 길어 팔십 몇세고
먹고 마시는 환경이 훨씬 나아졌다고는 하나
인생이 무조건 기뻤다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리라.
나.
아침에 일어나니
새삼 흰머리가 많이 눈에 뜨인다.
어렵다 힘들다 하면서
하루 하루가 왜이리 안가누 하면서
벌써 이만큼 걸어왔다.
옛어르신 들이 40넘어서는 화살 보다 빠르다하고
눈 감았다 뜨면이란 표현으로 순식간(瞬息間)이라더니
시간의 흐름은 정말 빠르기도 하다.
14.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그럼에도 오십 넘어서의 요즈음이
이전의 오십년 보다 훨씬 행복하다.
그게 사실이다.
오히려 활기도 더 차고 몸도 그렇다.
예수님 탓이다.
탓이라면 나쁜 소리인 듯 하지만
그분의 덕 이라 표현하는 것보다 조금 더 강렬한 내 마음을 담아서
문법에 맞지 않을 듯하지만
그 분의 '탓'이란 표현이 좋다.
'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이 표현이 가슴의 심금을 울리려 한다.
아침.
눈뜨기 싫어 늘 아침에 뒹굴다가 늦어 버릇하던 것이
내 삶의 방식이었다.
저녁 늦은 시간에 별밤을 다새우며 혼자만의 시간 속에 머물다
삶이 시작되는 아침이 싫어서 눈을 뜨지 않으려 했던..
그러다가 지금은 훨씬 맑고 깨끗이 일어난다.
잠이 없어진 탓은 결코 아니다.
'xx 잠'이란 내 본명과 비슷한 이름의 마지막 글자 - 창-에 잠을 대신 불러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잠이 많던 사람이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지만 아침이 맑아짐은 하나님의 은혜 탓이다.
그 분의 말씀과 그 분의 임재가 주는 기쁨이
이 아침을 '인자한 아침'으로
자주 채워 주시는 탓이다.
문제는 아직 일상이 그리 맑지 만은 않다.
훨씬 자연스럽고 좋아지긴 했지만
내 삶은 고난이 많다.
내 영혼의 버퍼 탓이다.
너무 오랫동안 주님 모르는 세월을 살아온 영혼의 상처 탓이다.
성령의 기름이 날 채우시며
이제 내 낡은 영혼의 깊은 곳을 윤활시켜 가시지만
그래도 버거운 게 많다.
주여.
이제 제 일생을 즐겁고 기쁘게 해 주소서.
15.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주님 만은 아신다.
그 아픈 세월의 시간,
그 힘든 세월의 시간 .
'그 시간 만큼, 그 연수대로 절 기쁘게 하여 주소서. '
적용
1. 감사하면서 오늘 하루 산다.
2. '하나님의 사람'
어제 기도원 목사님께서 모세님에 대하여 설명하시기를
수많은 선지자가 있지만 예수님과 대면한 선지자는 -'변화산'- 모세와 엘리야 밖에 없다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한 선지자는 모세 밖에 없다.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
그 분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만
'죄 덕지덕지 '묻혀 살지만 그래도 '의인' 의식이
날 차지해감은 오직 주예수님 그 분 탓이다.
나.
하나님의 사람.
욕심이 난다.
내가 행위대로 할 수 없을 것을
주님의 은혜로 가능할 가능성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성화가 되어야 한다.
주님 은혜로 그리되어야 한다.
오늘 그리 한발 짜국 더 나가고 싶다.
3. 성경 세장 읽자.
말씀 만이 살길이다.
인자한 아침을
하루 종일 유지하고
상황에 상관없이
이 인생을
즐겁고 기쁘게 살
유일한 길이다.
기도
주님.
많은 세월 힘들었었습니다.
주님 만나고 나서
제 인생은 변화가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침이 밝아지고
인자한 아침이라는 표현이
제 속에서 환희처럼 터져 나오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많이 흘러
정신이 들고 세상이 주님의 은총 가운데서 돌아감을 알고
그 은총 가운데 거함이 은혜의 연속임을 눈치채게 된
주님의 사랑 안에서
기쁨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나니
내 나이 많이 들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여
주님 모르고 지내온 지난 세월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그 시간의 아픔이 오늘의 영광을 위한 배려임을 눈치채고는 있지만
주여..
그러함에도 이제 남은 시간동안
제가 받은 고난의 미련한 시간 만큼
즐겁고 기쁨으로 채우소서.
상황을 돌아봅니다.
전혀 그럴 상황은 아닌 지 압니다.
제 행실이 그렇듯 뛰어나지 못하였음도 고백합니다.
주여.
그러함에도 누리는 주님의 절대적 사랑을 믿습니다.
확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확증되시는
당신의 사랑이
조금도 내 잘못으로 인하여
변개치 않음을 믿어
오늘 모세님의 이 귀한 고백을
제 고백으로 토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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