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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부르시면( 왕상 1:1-10 ) 본문

구약 QT

이제 곧 부르시면( 왕상 1:1-10 )

주하인 2010. 9. 1. 11:32

제 1 장 ( Chapter 1, 1 Kings )

 

( 예식장 위로 하늘과 구름이 보인다.   그 위를 누르듯 이정표가 보이고 있다. )

 

 천국 만을 바라보려

몸부림쳐도

 하나님 만을 집중하려

애를 애를 써보아도

왜 아직 이렇게도

세상으로 향하는

내 관심을

끊을 수가 없단 말이던가 

 

주님이시여

언제나 되어야

이 가련한 자에게

깨달음을 허락하시렵니까

 

언제나 되어야

이 비천한 육신에 힘이 빠져

더 이상의 욕심이

존재하지 않게 된단 말입니까

 

도우소서

성령이시여

도우소서

불쌍한

이 주하인에게

힘을 주소서

 

 

 

( 왕상 1:1-10 )
1.  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천하의 다윗도

늙은 육체를 가지고는

만족할 그 아무것도 없다.

젊을 적의 육신은 '솔로몬'의 모친을 탐하는 죄를 짓고

무엇을 해도 겂이 없고

무엇이든 욕심을 냈을 것을..

그 어느것도 나이든 육신에게는 효용이 없다.

 

이래도 육신의 것을 탐할까?

무엇이 중요한가?

영적인 것이 아니던가?

 나.

육적인 것에 더 이상 흔들릴 나이던가?

무엇이 나에게 중요한가?

무엇이 나를 흔들 나이던가?

흔들리면 또 무엇하고

흔들리지 않으면 또 어떨건가?

이제 곧 나이 더 들어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지 못하고

천하 미인이 옆에 있어도 감흥이 없을 것을.......

그렇다면 놓을 것은 놓아야 한다.

빨리 놓을 수록 더욱 행복해질 것을..

무엇을 붙들려 그리 몸부림 치던가?

주하인아?


   
 
6.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육신의 모습이 뛰어난 자.

아버지의 혼냄을 한번도 듣지 못하고 자란 자.

왕자.

그의 육적인  교만은 얼마나 강할 것인가?
 솔로몬은 청하지 않았다.

천국을 바라보지 않고

땅을 바라보며

천국의 왕을 바라지 않고

땅의 왕을 바라는 그의 육적인 관점은

자기와 경쟁상대가 될 '솔로몬'은 초빙하지 않았다.

 옳은 것인가?

육신의 힘이 강하면

영적인 부분이 약해진다.

 육신의 힘이 세면

진리를 볼 수 있을 힘이 약해진다.

 

 두 대비를 극명히 보고 있다.

 권세를 포함한 육적인 영광이 극강하였던 다윗이

육신의 힘이 떨어지며 그 어떤 것도 그에게 의미가 될 수 없는

'육신의 틀'에 갇혀 가는 인간의 본질

즉, '영혼'을 생각해 볼 수가 있고

육신의 힘이 강해져 가는 그 아들을 통해

영혼에 대하여 생각조차 하기 힘들 만큼 몰아가는 육신의 힘을 볼 수 있다.

 그 역시 나이가 들면 똑같이 될 것을...

육신에 어떠한 자극을 가하게 되어도

만족할 수 없는 '본질'의 허덕임.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육신의 삶이후의 어떤 것에 대하여

당연히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천국'

육신의 껍질에서 벗어난 '자유의 경지'

 

 내가 그리도 추구하고

내가 그리도 안타까워 하던

이 생의 어떠한 붙듦도

과연 더 이상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조금 있으면 아무리 더 한 무게로 육신의 자극을 주어도

더 한 물질이나 육신적 영달이 가하여 져도 의미가 없을 것을...

아니.. 의미 조차

두꺼운 피부 속에 갇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나병환자의 감각처럼

둔하게 세상에서 고립되어 버리고 말것을...

 

진정으로 의미가 되는 것은

'천국' 뿐이다.

주님의 뜻 뿐이다.

늙어가는 이 DNA 역사의 결과물인 육신은

그냥 늙어가게 두고

날 이 세상에 이처럼 만들어 두고

가만히 지켜보시는

그 분의 뜻,

즉,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삶의 축복을 누리다가

하나님 계시는 그 나라에 가는

그 엄청난 축복의 기쁨으로

내 생을 채워 가는 것 이외에

또 어떠한 의미가 있을 것인가?

.........

 

 가만히 묵상해 본다.

나.

혼자라면 이 것이 맞지만

날 붙드는 존재가 있다.

나 혼자라면 모든 것 훌훌 털어버리고

주시는 대로 먹고

형편되는 대로 입고

부르는 대로 가서 찬양을 하고

도움이 되는 자리에 가서 기도하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내 엉덩이 붙이는 그 곳에서 그냥 숨을 거두어

그 자리에서 다시 눈 뜨고 보면

주님 계신 그 천국의 영생을 보게 될 것을..

 하지만..

내 자식들은 어쩌란 말인가?

내 아내는?
그들은 그들의 삶이 있고

그들은 그들의 젊음이 있지 않겠는가?

누가 이러한 나의 생각과 깨달음을 모르겠는가만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지 않을 것인가?

 비록 아도니야가 패착은 했지만

그의 젊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남성 호르몬의 이유로 해서

그는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에서

세상에, 권력에 , 재미에...그의 눈을 고착시킬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 누가 안 그런가?

결국 세상은 수천년이 지나도 똑같다.

육신의 세월을 땅에서 살면서

육신을 이끄는 유혹에 의하여 원동력으로 삶을 지탱하다가

힘이 빠져 '이불을 덮어도 추위를 몰아내지 못할'

영혼의 고립 상태에 빠져가야

그제야 영적이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그 것을 아는 나로서

어찌 한꺼번에 다 놓고

불현듯 찾아드는 자유로운 방랑의 욕구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말인가?

 참 힘이 들다.

불현듯 아침에 '열왕기상'으로 장면을 바꾸시어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 삶의 허무한 성향,

주님 안계시면 탁탁 털고 정리했고

자식들 없으면 이전에 세상 밖에서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을

이 자에게 이토록 삶을 꾸려가도록 하고 계시다.

아직도 버리고 정리할 것이 많아서 인가?

아직도 내 속에 정화해야할 것이 그리도 많던가?

 

새삼

이 아침의 묵상이

날 허허롭게 한다.

 

 

주여.

귀하신 분이시여.

하루 종일 마음이 안좋습니다.

늘 그런이유가 있을 것 없었지만

그럼에도

주님 만 바라보고 가만히 정리해가던 제 마음에

혼돈이 있습니다.

부딪쳐오는 걱정들도 자꾸만 찌르는 듯합니다.

아직도 세상의 흔듦이

세상의 찌름이

제육신의 정욕을 자극하는

덜 늙은 다윗의

덜 중년의 에너지 탓인 듯 싶습니다.

아.

아도니야 같은 이 어리석은 육신의 자랑과 비교와 교만과 술수...

언제나 없어질 수 있겠나이까?

언제나  내 묶여 있는 식솔과의 정리를 정리하고

주님 말씀하시는 그 길에

가장 현명하고 합당히 행할 수 있겠나이가?

말년의 다윗의 모습을 보며

깨닫고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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