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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인간 지혜의 한계[왕상11:1-13]

주하인 2017. 5. 30. 10:44



3.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6.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지혜가 넘친다고 해도

수많은 장애물 ( 하지말라는 이방여인을 들였으니 얼마나 많은 논리적 방어기제가 필요햇을까.. 그 중 하나는그의 심리적 장애물이 되지 않았을까.. 결국 넘어지는?... 불쌍한.. ) 을 매사에 다 넘어 갈 수 있었을까?

 


10.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이게 이해가 가지 않지 않는가?

그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 경험,

그 엄청난 축복

거기에 세상을 꿰뚫을 만한 지혜가 있었음에도

왜 그는 이럴까?


그리 똑똑하지 않은 내 머리로도

저러하면  결국 그의 영원이 지옥같이 변할 것임을 알것이고 엄청난 고난이 따를 것을 알것임에도

가장 머리 좋은 저니가 저런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가 아닌가?


 머리가 뛰어난 사람들은 많은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움직이겟고

당연히도 버퍼가 뛰어나기에

더 많은 '장애물'들을 감당하면서도 버텨나갈 힘이 있을 것이며

그러함은 결국, 그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누구가 인생에 허락된 절음, 영적인 에너지가 있지 않겠는가?) 가면

서서히 그 논리를 지탱할 힘이 빠지고

그것... '영적 싸움'에서 짐을 의미하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다보면

가장 똑똑한 세상의 지혜가

가장 미련함과 일맥상통하게 되지 않겠는가?


성경에서는 그래서 가장 미련하고 천한 자들로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고 나와 있고

예수께서 선택한 제자들이야 말로 흙수저의 진수.ㅎ...아니던가?


 
13.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그러나 그러함에도 세상은 아직 그런 '금수저'들,

너무나 뛰어난 머리를 가진 진정으로 미련한 자들.(이게..서로 비가역적일 듯하지만 가역적인게 하나님 나라의 원리 일 뿐더러 세상에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임을 오래전 부터 알아왔다.. .난.. 실제로 사실이고... ) 이

그래도 떵떵거리며 사는 이유는 (아직..이다.) 하나님의 시간이 되지 않았기에 이다.


저런 지혜로운 미련둥이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본다.

특별히 기독교계통에서 리더로 나선 미련한 자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곳저곳 큰 일을 벌이면서

결국 그것이 자신의 자아의 성취의 다를 바 아니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먹이기도

주변사람들을 어렵게 하기도 하는...


나..내게는 그런 면은 없던가?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절대로 주님 앞을 나서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을 하기보다

'하나님'의 이유로 일을 해야 한다.

 또한 , 지혜가 넘치고 가진게 많은 자들을 부러워할 일이 없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책임져야 할 게 많기에 더 많은 예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그것..

자유를 선호하고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내게는 합당치 않다.

 너무 많이 가짐은 너무 미련할 가능성이 높아짐도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타인의 것을 이유로 부러워할 이유도 없지만

그들의 그러함에도 누리는 아직까지의 풍요는

아직 주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에 임을 이해하면 더욱 편하다.



주님.

오늘.. 말씀이 제게는 중구 난방 이어지는 듯해서 죄송하나이다.

많이 환우 들이 밀림에 자주 단속되는 것도 이유가 있지만

어쩌면 말씀을 앞서서 제 습관적 지혜의 놀음이 앞서는 탓은 아닐까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주여.

주신게 많으면

더 겸허해야할 노력이 맞는듯합니다.

생각이 많아지고 폭이 넓어지면 어느 순간 그 것들이

한계를 넘어설 때 일시에 넘어지고 말아

가장 미련한 자들이 벌이는 일보다 더 미련하고 극악한 일들을 벌이게 되기도 함을 많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여.

이나라  WCC에 적극 나서는 목회자들의 과거는 존경할 만했엇음을 봅니다.

주여.

열심으로 나가던 미션병원 리더의 미련한 이리저리 뜀이 어이없이 보이기도 합니다.

주여.

정말 존경하려던 목회자가 한 순간에 넘어짐도 봅니다.


제가 감사드릴 것은

제가 감당할 만한 생각의 능력과

그것에 제동을 걸만한 인생의 고난입니다.

돌이키면 그 어려움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조금 더 뚜렷이 바라보게 되니

이 늦은 지혜야 말로 감사드릴 것이 맞음을 고백합니다.


내 주여.

앞으로 살날이 제게 얼마나 더 허락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동안도 죽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마음에 결림으로 받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의 패턴이 달라지지 않도록 도우소서.

내 주여.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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